역사스페셜 2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 효형출판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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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읽기로 하니 이것도 의미있는 독서인 듯 하다.

1권부터 7권까지 쭉 읽고 있다.
판형 너무 귀엽고 읽기 편하다.
TV 로 볼 때는 약간 지루하기도 해서 보다 말다 했는데 영상을 글로 잘 풀어 썼다.
2권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섞여 있다.
화순에 있는 운주사나 진도의 삼별초가 세운 용장산성 등은 실제 가 봤으면서도 무심히 지나간 것 같아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삼국사기에서 빠지는 바람에 잊혀진 국가 가야인의 편두 선호 현상이나 철갑 이야기도 재밌었다.
삼별초의 항쟁을 무조건 외세에 대항하는 자주적 저항으로 본다거나, 연개소문을 당나라에 저항한 독립적 인물로 치켜 세우는 등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이 다소 불편하긴 했으나 전문 사학자가 아닌 이상 방송에서 더 깊은 역사적 평가를 요구하기는 무리일 듯 싶어 넘어간다.
어쨌든 역사책에서 중요하지 않게 다루고 넘어간 유적지나 유물들을 조명해 준다는 점에서는 무척 의미있는 기획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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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칠공예 한국 미의 재발견 10
김동우.박영규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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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기 시작한 <한국미의 재발견>
도판 풍부하고 내용 알차고 무엇보다 읽을 때 부담이 없다.
<목칠공예> 편은 특히 표지가 너무 예쁘다.
조선 시대 이전 공예품은 아쉽게도 재료의 특성상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해설로 대신했고, 조선 시대 목가구들은 사진이 많이 실려 있어 보는 내내 즐거웠다.
목가구가 주는 자연미와 단아하고 우아한 느낌은 조선시대 선비 문화의 미의식을 잘 구현해 낸다.

온돌을 하다 보니 구들의 열기만으로 방을 데우기 위해 낮은 천정과 넓지 않은 실내를 만들게 되어, 그 구조에 맞게끔 가구들 역시 키가 낮고 부피가 크지 않다.

정갈미가 돋보이는 단아한 느낌의 목가구야 말로 우리나라 한옥 구조에 아주 잘 어울려 보인다.
고려 시대 하면 화려한 청자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전칠기 역시 매우 화려하고 눈부시다.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목공예품도 전시회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역시 나무라는 재료가 주는 독특한 미감이 있다.
전에는 유럽 바로크풍의 화려한 미감만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목가구의 정갈하고 단아한 자연미가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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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 서울 경기도편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4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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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책이라 기존에 읽었던 내용이 살짝 겹치기도 한다.
약간은 중구난방 같은 느낌이 없지 않으나, 그래도 대한민국 곳곳의 역사와 유적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지도를 보면서 같이 읽으니 이해하기가 더 쉽다.
조선왕조의 수도였던 서울과 경기도에 관한 내용이라 가장 풍부할 것 같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지방 답사를 해도 참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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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너머의 역사담론 1
오항녕 지음 / 너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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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기씨가 쓴 <광해군>이라는 책을 보면, 광해군이 왜 실각할 수 밖에 없었는지 잘 나온다.
무리한 토목공사로 인한 재정 압박, 폐모살제에 따른 여론 악화가 오늘날의 관점보다 당시로서는 훨씬 더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또 청나라에 대한 대외 정책은 기본적으로 인조반정 이후도 크게 변하지 않았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청의 국세가 강성해지면서 조선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조선의 외교 정책과는 상관없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심지어 광해군의 중립 외교는 임진왜란을 치룬 선조에게서 배운 바라고까지 했다.
이런 평가가 매우 신선했고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광해군 시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덕일씨 책을 보면, 조선은 임진왜란때 망했어야 하는 국가이고 정조가 죽고 나서는 목숨만 겨우 연명한 것으로 평가한다.
흔히들 인조반정으로 조선이 주자학 일변도로 바뀌면서 매우 폐쇄적이고 퇴보하는 나라고 바뀌었다고 보는데 저자는 이런 평가가 잘못 됐다고 본다.
광해군이 계속 정권을 유지했다면 호란도 없었을 것이고 인조 이후 주자학만 숭상하는 닫힌 사회가 되지 않았을텐데 아쉬워 한다.
그러나 책을 읽어 보면 왜 광해군이 반정으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는지 잘 나온다.
임진왜란이 막 끝난 상태에서 민심을 추스러야 할 시기에, 궁궐 공사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나머지 백성들이 궁핍해지고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사사하는데 국정의 대부분을 보내느라 경연도 거의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신한들과의 소통 부재로 본다.
선조의 사망 직후 임해군 옥사가 시작됐던 걸 보면 둘째라는 컴플렉스 때문에 광해군이 민감했던 것일까?
그러나 세종이나 성종 모두 형이 있는 상태로 즉위했으니 반드시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임해군은 하나 뿐인 친형제인데 말이다.
유교 국가에서 어머니까지 폐위시키는 무리수를 왜 뒀는지 안타까운 부분이다.
당시 정국에 대한 좀더 많은 해석이 필요할 듯.

궁궐 공사에 집착하고 풍수지리에 민감했던 걸 보면 정신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다.

강홍립을 필두로 군사 만 3천 명을 파견해 적당할 때 항복해 실리를 챙기라고 했던 중립 외교도 결국은 8천 여명이 사망하고 나머지는 노예로 전락했으며 강홍립이 호란 때 앞잡이가 되어 돌아오는 비극으로 끝났으니 저자는 현대에 높이 평가받는 외교 부분의 공도 별로 없다고 본다.
대동법 역시 대북 정권에서는 적극적으로 시행하려는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경기도 내의 시범 사업에 국한됐고 오히려 광해군은 궁궐 공사의 경비를 대기 위해 수시로 특별세를 걷었다고 밝힌다.

 

역사의 가정은 아쉬움에서 비롯돼나 실제로는 별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다.
소현세자가 살아서 집권했으면 개화가 빨랐을텐데, 효명세자가 살아서 등극했으면 세도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었을텐데,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다면 호란은 없었을텐데 이런 가정들이 실제 당시 상황을 분석해 보면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아쉬움에 불과함을 잘 알 수 있다.
역사학자의 책답게 근거와 주변 상황 분석을 입체적으로 고려한 신뢰할 만한 책이긴 하나, 저술 자체는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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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 새로운 한국사의 이해를 찾아서 너머의 역사담론 2
미야지마 히로시 지음 / 너머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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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줄 알았는데 논문과 에세이 등이 섞여 있어 생각보다는 쉽게 읽었다.
전에 이 분이 쓴 <양반>과 <조선과 중국 근세 500년을 가다> 도 인상깊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전에 읽은 거라 이 책들도 다시 들여다 볼 생각.
내재적 발전론의 비판에 동의하는 바다.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는 것 자체가 서구 중심주의로 역사를 해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역사 발전의 틀을, 고대 노예제 사회-중세 봉건주의-근대 자본주의로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정약용을 한국의 루소라고 하는 것 자체가 서구주의 관점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동의함.
한국 사회를 기본적으로 소농 사회라고 본 점, 그리고 양반이 법률에 나오는 세습적 통지 계급이 아니고 토지 귀족도 아니기 때문에 족보 등을 통해 신분을 표시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 등은, 존 B. 던컨의 <조선왕조의 기원>에서도 나온 바다.
중국은 이미 오대 십국 시대 등의 동란을 거치면서 귀족 계급이 소멸했고, 송나라부터는 도시 상공업이 발달해 신분제가 해체되고 관료를 역임한 사람들만 사대부가 됐지만, 한국의 경우 전적으로 소농에 의존하는 농경 사회였고 조상 중에 관료가 있으면 관습적으로 양반이라는 지위를 인정했고, 서얼 차별이나 노비제가 20세기까지 지속됐을 정도로 중국 보다는 폐쇄적 사회였다고 본다.
심지어 조선 왕조를 노예제 사회로 본다는 말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양반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족보가 필수이고 지역 사회에 오랫동안 세거하여 향안에 등록이 돼야 함을 다른 책에서도 읽은 바 있다.
과거제가 능력 본위의 선발 제도였기 때문에 특정 가문에 집중되는 폐쇄성이 없지 않으나 급제자의 가문을 분석해 보면 한 문중에서만 전적으로 독점하지는 못했고 내부 경쟁이 매우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관직에 대한 격렬한 경쟁이 붕당이나 세도 정치를 불러 왔다고 본다.
중앙 집권적 관료제 사회였던 만큼 양반들은 토지 귀족으로서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국왕의 대항 세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서구처럼 의회제가 힘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왜 조선이 20세기까지 전제주의 왕조 국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다.

일본인이라는 저자의 특성상 일본과 한국 사회를 비교하는 시각도 도움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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