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 한국 미의 재발견 2
김인덕.서성호.오상학.오영선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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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드디어 이 시리즈도 다 읽었다.
총 16권으로 처음에는 부담이 됐지만, 도판이 절반이고 각 유물에 대한 해설을 다는 정도라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과학문화>편은 제일 관심이 적어 읽을까 말까 했는데 시리지 완독 의미로 마지막으로 읽었다.
역시 예술품이 아니다 보니 제일 평이했다.
표지에 나온 첨성대 사진은 환상적이다.
저렇게 낮은 곳에서 무슨 별 관측을 했겠냐는 말도 들었는데, 책에 보니 고려나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모양의 관측대가 있었다.

천문 관측이나 자격루, 측우기, 앙부일구 같은 시간 관련 기기들, 지도, 활자, 농업 관련 책 등이 나온다.

의학서가 빠져서 약간 의아했다.

제목을 과학기술이라고 하지 않고 과학문화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문화 전반에 관한 내용이다.

팔만대장경은 매우 중요한 유물인지, 전체가 하나의 국보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각 장서들이 따로따로 국보로 지정된 점이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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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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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임용한씨가 요즘 책을 많이 내는 것 같다.
학자가 쓰는 글이니 기본은 보장하는 듯.
이덕일씨와는 달리 민족주의 사관이나 과도한 자의적 해석에 매몰되지 않아 읽기 편했다.
박제가는 실학파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 밖에는 없었는데 한 사람의 전기를 읽으면 역사에 가려진 인생이 보이는 것 같다.
똑똑한 천재였으나 신분상의 불운, 즉 서얼차별법 때문에 관직 사회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한을 평생 품고 살았다.
문기 있는 소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능호관 이인상 역시 자신도 아닌, 증조부가 서얼이었기 때문에 평생 외방으로만 전전했다고 하니, 정약용처럼 남인으로 노론에 밀려 평생 유배지를 전전한 양반들도 있지만 본시험에 진출조차 못한 서얼들이 얼마나 한스러웠을지...

박제가는 이순신의 후손인 이관상의 서출 딸과 결혼하여 장인의 지원을 물심양면으로 받는다.

선조한테 미움받아 자살했다는 설까지 나돌았지만 정조 당시에 고위직을 역임한 무관 가문이었다고 나오는 걸 보면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구국의 영웅을 내팽겨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천재적인 성품 때문에 억울한 차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에서만 빙빙 돌다가 정조의 배려로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되어 13년 동안이나 관직 생활을 하고 청나라 사신으로도 네 번이나 다녀온다.

김정희가 한 번 청에 가서 그 인연을 평생 이어갔는데 박제가는 무려 네 번씩이나 다녀 왔으니 답답한 조선 사회에 대한 울분이 얼마나 컸을지.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친 것이 바로 <북학의>다.

민족주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발언이 많은데, 이를테면 중국어를 쓰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중심 내용은 사회를 안정화시킨다는 구실로 국가적 가난을 강요하는 농본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상공업 진흥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명이 망하고 청에 항복한 이유 이른바 소중화가 조선을 휩쓸어 진경산수화 같은 우리 고유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높였다고만 들었지, 그 소중화가 사회를 얼마나 정체시켰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강조한 학자를 못 봤다.
그런 면에서 조선 후기 사회를 직시하자는 박제가와 저자의 비판은 일리가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사생아는 사회적으로 차별받을 수 있으나 법으로까지 차별을 명시하고 대대손손 그 신분적 차별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혹하다.
19세기 말까지 존속했던 노비제를 두고 조선왕조는 노예제 사회였다고까지 말한 서양 학자도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신분제가 철폐됐는데 조선은 갑오개혁까지도 노비제가 유지됐으니 사회 역동성에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책을 보면서 얼핏 자본주의적 시각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일단 조선 사회는 대단히 가난했고 자본주의의 맹아니 하는 소리는 후대 학자들이 하는 얘기 같다.

내수 산업의 활성화를 말하면서 소비가 미덕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유층의 사치스런 소비 행태가 빈부격차를 부른다고 문제시 한다.

명품이나 골프, 외제차도 신분 과시용으로 사긴 하지만 대놓고 자랑하면 욕 먹는다.

그러니 인간의 본능인 소비욕구를 조선사회에서 인정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18년의 유배생활 동안 많은 저작을 낸 정약용과는 달리, 함경북도 끝 종성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주변 지원이 미흡해 변변한 저작을 남기지 못한 박제가는 정순왕후의 배려로 풀려나긴 했으나 1년 만에 사망하고 만다.

자신의 뜻은 다 펴지 못하고 죽었으나 그래도 역사에 한 줄 이름이 남아 후대 사람들이 실학자로서 평가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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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 역사스페셜 5 - 실리인가 이상인가, 근대를 향한 역사의 선택, 완결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박기현 엮음 / 효형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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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씨가 4권까지 집필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5권에서 필자가 바뀌었다.

어차피 TV 방송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라 비슷한 논조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들이 많아 유물로 보는 고대사에 비해 흥미는 약간 떨어졌다.

그렇지만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이나 서유견문의 유길준, 흥선대원군 등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 나오는 역할이 아닌, 개인적인 면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북관대첩비나 초량 왜관 등도 흥미로웠다.

이로써 역사스페셜 시리즈 전7권과 HD 역사스페셜 시리즈 전5권을 완독했다.

시리즈를 다 읽은 건 처음인 것 같아 나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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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전쟁사 3 - 부흥운동과 후삼국 한국고대전쟁사 3
임용한 지음 / 혜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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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후대의 복잡한 반란에 한 장을 할애해서 흥미롭게 읽었다.

후삼국 시대의 분열과 고려의 통일 과정은 역사책에서 자주 다룬 소재가 아니라서 그런지 장황한 설명이 약간은 지루하기도 했고 지도 보면서 열심히 따라 읽느라 시간은 걸렸지만 전반적인 이해는 높아진 기분.
역사서에 나온 한 줄 기록을 읽는 것에 더해, 실제 답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고구려 유적 답사가 어려운 점은 무척 안타깝다.

 

나당전쟁은 삼국 통일에 비해 너무 가볍게 다뤄져 신라가 당을 몰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썼는지 무심히 지나쳐 버린 느낌이 든다.

이런 노력들 때문에 불완전한 통일일 망정, 한반도 남부에라도 통일된 국가가 들어선 점을 평가받았던 게 아닐까 싶다.

자칫하면 원정군을 끌고 온 당나라에 먹혀 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에 문무왕은 나당전쟁을 성공리에 이끌어 왕국을 안정적으로 존속시킨다.

고구려 땅을 이민족에게 넘겨 준 반민족적인 행위였다는 비난은 당시 신라인들에게는 너무나 억울한 소리일 것 같고, 당나라를 어떻게 몰아내고 한반도 남부를 안정시켰는지를 좀더 평가해 줘야 할 것 같다.

 

도판도 정말 화려하고 설명도 매우 꼼꼼하고 자상해서 재밌게 읽었다.

다만 사료가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세한 설명은 많은 정황증거와 추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음은 아쉬운 대목이다.

어차피 사료에는 한계가 있고 (그나마 저자의 비판대로 유가 역사서는 대부분 교훈적 서술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니) 고고학적 발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물적 증거가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다.

아차산성 발굴이나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사택왕후의 발원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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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전쟁사 2 - 사상 최대의 전쟁 한국고대전쟁사 2
임용한 지음 / 혜안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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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고 있는 고대전쟁사 시리즈.

2권은 신라의 통일 전쟁이다.

고구려와 백제에 밀리던 신라는 진흥왕 시대 때 한성을 점령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김춘추의 외교 전략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남부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제일 약했던 국가가 끝까지 살아남았으니 통일 무렵 신라 지배층의 능력은 인정해 줘야 할 것 같다.
고구려나 백제가 당나라의 군대에 밀려 한 번에 멸망한 줄 알았는데 과정을 살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연개소문의 쿠데타로 국론이 분열되고 그의 사후 자식들의 내분으로 망한 과정이 안타깝다.

백제 역시 왕과 귀족 사이의 알력 다툼으로 당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제일 황당했던 것은 백제와 고구려의 지배층이 다시 당나라로 가 벼슬을 하고 잘 살았다는 대목이다.

마지막에 저자가 지적한 대로, 의자왕은 낙화암에서 몸을 던지지 않았고 그 아들들과 당으로 끌려가 귀족 대우를 받고 증손녀 때는 당의 황족과 결혼도 한다.

연개소문의 아들들 역시 당나라 조정에서 활약한다.

대한제국사를 읽으면서 고종과 순종, 그 이하 종친들이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고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걸 보고 참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지배층은 나라가 망해도 울분에 차서 자살하거나 독립운동가가 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국가와 개인을 떼어 놓고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김유신이 68세의 노구를 이끌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고구려에 당의 식량을 수송하기 위해 죽음의 길을 자원한 점은 왜 신라가 통일을 이룩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고 하겠다.

노블리스 오블리쥬라는 단어가 뻔한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누린 만큼 책임감도 가져야 나라가 발전하는 건 틀림없다.

외세를 끌어들여 같은 민족을 멸망시켰다는 이유로 김춘추나 신라가 욕을 많이 먹는데, 당시 상황으로 보면 외교를 이용해 국가를 지켰으니 대단한 외교술이었다고 하겠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저자가 화랑세기 내용을 전부 사실로 받아들여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월성에 해자가 있었다든가, 포석정에서 포석사라고 적힌 기와 명문이 발견됐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위작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저자 말대로 혹시 미실의 비문이라도 발견된다면 엄청난 센세이션이 일 것 같다.

화랑세기의 혼인관계는 너무 복잡하고 자유분방해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니 부디 고고학적 증거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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