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상고사연구 - 한국사연구총서 8 서울대학교 한국사연구총서 8
강종훈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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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어렵게, 그렇지만 신라사에 대한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책이다.

제목부터 벌써 흥미가 당긴다.

신라사라고 하면 흔히 중고기로 알려진 진흥왕 대부터 삼국 통일 당시까지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일종의 설화와도 같은 상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기가 어려웠다.

한자가 많아 읽는데 힘들었고 새삼 한자 공부에 의지를 더하는 계기가 됐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설화들은 대부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정확한 내용과 의미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이제 다른 신라사 책들은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삼국사기 기년이 약 300년 정도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인데, 기년이 틀렸다고 해서 전혀 없는 내용을 조작했다 볼 수는 없다고 한다.

나 역시 이러한 사료비판에 동의하는 바다.

경전으로 절대시 하는 성경마저도 고고학적 증거와 맞춰가면서 비판하는 마당에, 당연히 역사책들도 여러 증거들과 교차적으로 논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절대적인 자료 부족 탓에 저자의 주장도 어느 부분에서는 딱 떨어지는 증거 없이 추론으로 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신라의 세 왕씨 중 김씨가 가장 늦게 경주로 합류했는데 그 전에 살았던 원거지를 영주로 잡고 후에 충주까지 세력을 넓혀 백제와 다퉜다고 하는데, 그 근거는 소지왕이 영주에 신궁을 세웠다는 것과 충주가 국원경으로 불린 이유는 그만큼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니 이것은 김씨족과 관련있지 않냐는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고 어디까지나 저자의 추론일 뿐이다.

보통 신궁이라고 하면 박혁거세를 제사지내는 곳으로 보는데 저자는 이를 김알지로 대표되는 김씨족의 시조 제사로 이해했다.

알지라는 인물은 고려 중기 이후 삽입된 전설로 본다.

문무왕비나 고려 초 부도비 등에 기록된 김씨족의 시조는 알지가 아닌 성한으로 표기됐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지적 같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지증왕의 즉위년은 500년인데 영일 냉수비가 기록된 504년 경에도 여전히 갈문왕으로 나와 소지왕이 죽기 전 이미 권력을 장악하여 500년에 즉위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즉위는 비가 기록된 504년 이후로 본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것도 그저 흥미로운 주장일 뿐이라는 대목을 읽고 확립된 학설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저자의 주장들은 학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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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3-12-24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상고사는 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말미암아서 추측이 많은 듯 합니다. 그탓에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차가 크기도 한 것 같구요. 어느 것을 절대적으로 믿기보다는 '아,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에서 넘어갑니다.

그리고, 어제 일독한 책인데,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도 신라상고사 이해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기년을 수정하는데에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여야 한다는 입장인데, 주로 기년의 수정이 신라본기에 한정되어 있는 측면이 있기도 하고, 신라본기만 기년을 수정할 경우에 고구려본기와 백제본기의 상충이 있을 수도 있고, 아주 조심스러워야할 문제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 저자의 주장에 더 공감이 갔습니다.

marine 2013-12-25 10:03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앞의 책은 근처 도서관에 없어서 경기도 사이버 도서관 이용해서 빌려 봤어요.
추천하신 책도 읽어 보겠습니다.
올해 마무리 잘 하시구요^^

가넷 2013-12-25 12:0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며칠 전에 다시 빌려서 읽으려고 합니다. 저도, 이책 읽고 나서 신라상고기에 대한 관심이 급 높아져서요. ㅎㅎ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은데, 중고로 파는 곳도 잘 안 보이는 군요.

marine님도 올해 마무리 잘하시고, 아직 일주일 남긴 했지만, 다가오는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 청 황실이 빚어낸 영광과 치욕의 증언자 걸작 논픽션 6
신슈밍 지음, 쭤위안보 엮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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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서태후와 궁녀들>과 비슷한 맥락의 책.

앞의 책은 서태후를 지근에서 모신 궁녀의 구술로 이루어졌고 이 책은 역시 서태후를 비롯한 광서제의 황후와 후궁인 융유태후와 단강태비를 모신 환관, 중국 용어로는 태감이 쓴 유고다.

473페이지의 비교적 많은 분량이지만 구술 형태라 그런지 어렵지 않고 쉽게 잘 읽힌다.

대한제국의 궁중 비사 같은 것도 궁인들에 의해 쓰여져 널리 읽혔다면 우리 역사가 훨씬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서태후와 궁녀들>을 읽으면서 역사적으로는 매우 냉혹한 권력욕에 넘치는 승부사로 알려진 서태후가 일상적인 면에서는 희노애락을 가진 여성임을 느꼈고 이 책에서도 가까이 모신 이의 눈으로 본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

사람 사는 것은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다 비슷한가 보다.

청 황실은 궁녀가 적은 대신 환관들이 그 역할을 대신 했다.

심지어 후궁들의 머리를 빗는 것마저도 태감이 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내시들이 주로 왕의 시중을 든 반면 청에서는 황제와 황후, 후궁 모두가 남자들의 시중을 받았던 셈.

또 조선은 한 번 궁녀로 입궁하면 평생 수절해야 하고 대궐 밖을 못 나간 반면, 청은 만주족 기하인의 딸들이 의무적으로 궁녀 선발에 참여해야 하고, 10년 이상 일하면 주인의 은을 받은 후 나가서 결혼을 하고 살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고 보면 궁녀의 혼인을 평생 금지시키고 출궁도 허락하지 않았던 조선의 법도가 훨씬 완고했던 것 같다.

태감 역시 궁에서 재물을 모으면 고향에 땅을 사서 일반 백성으로 살았다고 한다.

공석이 생겨야 그 자리를 물러 받기 때문에 주변에서 다들 부추겼다고 하니, 한 번 궁에 들어오면 죽어서 나간다는 조선의 궁인들과는 매우 다른 문화 같다.

조선에 사신으로 보내는 태감들이 번국에 와서 온갖 행패를 부렸다고 하는데 실제 이 태감들은 책에서 고백하기를, 황제의 개인 노비였다고 한다.

주인이 기분이 좋으면 친하게 대해주고 기분이 나쁘면 이유없이 얻어맞고 심지어 맞다가 죽어도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고 하니, 생식기를 거세한 것은 물런이려니와 이 환관 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잔인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존귀한 분 옆에 있기 때문에 가난을 이기기 위해 부모들은 자식을 거세한 후 궁으로 들여 보내려고 안달을 했고 심지어 아버지가 직접 아들을 거세한 경우도 나온다.

본인이 직접 증언한 것이니 사실일 것이다.

한나라나 명나라 때와는 달리 청은 환관을 매우 강력하게 통제해서 대부분의 환관은 시골 무지렁이 출신이라 글을 읽지도 못해 권력을 장악하기는 커녕 전적으로 황제의 개인 노비에 불과했다고 한다.

청 황실의 총 궁인 수는 3600명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서태후는 극을 좋아해 건륭제가 친히 남긴 희곡을 바탕으로 황실 내 극단을 만들어 매일 연극을 올리고 감상했다고 한다.

루이 14세가 직접 발레를 연출했다는 일화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만약 중국식으로 세계화가 됐다면 오늘날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발레 등이 성행하는 것처럼 동양의 이러한 전통문화들도 현대화 되어 계속 감상되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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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착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 굽히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설득의 기술
김일중 지음 / 센추리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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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혹했나 보다.

그냥저냥...

저자가 방송작가라고 해서 뭔가 산뜻하고 톡 쏘는 글솜씨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너무 뻔한 내용이 이어지는 반면, 문장은 평이해 수필로서 매력이 크지 않다.

확실히 요즘은 시대가 변했는지 자기 의견을 강하게 어필하는 사람을 바람직한 모델로 보는 듯하다.

직장생활 해 보면 착한 사람 보다 좀 못 됐더라도 일 잘 하는 사람이 훨씬 좋은 동료라는 걸 실감하긴 한다.

그래도 인간관계에서는 약간 손해보는 듯 하지만 남을 편하게 해 주는 사람에게 더 끌린다.

앞으로 이런 수필은 좀 신중하게 생각하고 읽어야겠다.

도서관에 신간 신청까지 해서 읽은 책인데 너무 평이한 내용이라 약간 실망스럽다.

좋은 수필을 만난다는 건 다른 어떤 분야의 책보다 더 어려운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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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윈이 중요한가 - 진화하는 창조론자들에 맞서는 다윈주의자들의 반격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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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비교적 가벼운 분량.

다윈주의가 옳음을 학술적으로 분석하기 보다는 진화론과 종교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중을 위한 책이다.

마이클 셔머의 다른 책들도 재밌게 읽었고 나 역시 회의주의자이기 때문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종교와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과학은 서로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반드시 무신론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이미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동설처럼 진화론도 과학으로 받아들였고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과학과 종교가 상호보완적이라 생각하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점에 마음이 간다.

오늘날 달나라에 사람이 가고 태양계 밖으로도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이 마당에도 여전히 교과서에 창조론을 실어야 한다고 투쟁을 하고 있으니, 17세기에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싶다.

이른바 지적설계론이라는 기독교적 우주관을 교과서에 싣게 되면 이슬람이나 불교의 우주관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적설계론은 대부분 복음주의자들,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니, 과연 그것은 셔머의 지적대로 과학이 아니라 종교적 태도에 관한 문제다.

99%가 아니라 하더라도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닌 것이 바로 과학이고, 자연 현상을 신념이나 교조 등과 상관없이 설명하는 방식이 바로 과학이고 보면 더이상 이런 소모적인 논쟁으로 사회 자원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중력을 받아들인다, 받아들이지 않겠다라고 말하지 않듯,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아니다라고 말하지 말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많은 다양한 증거들의 수렴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니 옳은 이론으로 인정하라고 한다.

결국 셔머도 리처드 도킨스처럼 무신론을 주장하고 싶겠으나 (과학자이자 회의주의자라면 당연히 무신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논리구조다) 대중의 반발을 의식한 탓인지 과학과 종교가 서로 다른 분야라는 걸 강조한 것은 올바른 방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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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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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만큼 유익했고 재밌게 잘 본 책.

공저인 것 같은데 알랭 드 보통이 워낙 유명해서인지 저자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좀 촌스럽긴 하지만 내용은 좋았다.

철학은 늘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상에서 삶의 가치관과 내적 욕구에 부응하는 성찰들을 읽으니, 책에서 예술이 인간적인 목적에 부응하라고 했던 것처럼, 실제 삶과 유리되지 않는 학문임을 깨닫는다.

원제인 치유로서의 예술은 과연 가능할까?

저자는 예술적 가치를 삶에서 실천하라고까지 주장하지만 실제로 작품을 보고 느낀 바를 현실의 행동 변화로 이끌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일상의 고된 노동과 인간관계 등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는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판이 큰 판형으로 많이 실려 보는 즐거움도 크고 번역도 비교적 매끄러워 잘 읽힌다.

돈 많은 부자들이 죽을 때 무렵 거액의 기부를 하는 걸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분석이라든가 (명예를 얻는 바람직한 방법을 개발하자고) 올바른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예술을 활용하자, 타당한 검열의 필요성, 미술관의 작품 배열을 시대사 순으로 하지 말고 관람객의 마음을 울리는 방식으로, 이를테면 희망, 용서, 사랑 등등으로 분류하고 그와 관계된 비평을 써 놓자, 취향을 고양시키기 위해 필요한 예술 등등 신선하고 본질적인 발상의 전환 등이 많았다.

생각해 볼 꺼리가 많은 책이고 책에 나온 것처럼 예술이 삶 자체나 행동을 바꿀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대체적으로 피곤한 삶에서 위안은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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