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장인들의 아틀리에
이지은 지음, 이동섭 사진 / 한길아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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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른 책들이 워낙 유익하고 재밌어 기대를 했는데 처음 출간한 책이고, 주제가 여러 아틀리에를 소개하는 일종의 탐방 에세이라 그런지 내용이 부실하고 산만해서 아쉽다.

사진도 전문 작가가 동행한 만큼 기왕이면 컬러로 실었으면 장인들의 수공예품이 훨씬 더 빛을 발했을 것 같아 아쉽다.

장인이라고 하면 막연히 갓 만드는 노인, 옹기장이 이런 한국적 이미지만 생각했는데 프랑스에도 전통 공예가들이 대량 생산의 시대에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전통을 잇고 있었다.

열 다섯 명의 각종 수공예 분야의 장인, 이를테면 마스터들이 소개된다.

유럽 장인은 가구 만드는 에베니스트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등장한다.

파이프 오르간, 종, 안경테, 상아 공예품, 시계의 무브먼트, 클라브생, 직물 짜는 사람, 활자 인쇄공, 부채 등등 온갖 종류의 수공예가 소개되어 흥미롭다.

사라지는 것은 참 아쉽다.

갑작스런 근대화의 길로 들어선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명력을 잃어가기는 유럽 전통문화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와 손잡은 가방이나 구두가 놀라운 변신에 성공했다고 할까.

귀갑이나 상아 등은 자연보호 규약 때문에 아예 구할 수도 없어 100여 년 전에 유통되던 재료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공예 관련 일을 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예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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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 - 일본, 유럽을 만나다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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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은 더 재밌다.

역사 전공자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 깊이있는 관점을 가지고 책을 쓸 수 있는지 저자의 분석력에 놀랄 뿐이다.

세계사라고 해서 너무 거창하게 주제를 잡은 게 아닌가 우려했으나 책을 열어 보니 서양이 어떻게 대항해 시대를 시작했는지부터 배경 설명이 잘 되어 있고, 일본이 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돋보인다.

저자는 참 쉽게, 그리고 깊이있게 글을 잘 쓴다.

전직 외교관이라고 하는데, 류광철씨 책을 보는 느낌이다.

일본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일본이 얼마나 한국과 다른 사회인지, 또 그 저력이 얼마나 큰지 깜짝 놀라게 된다.

여전히 일본에 대한 역사적 인식은 아스카 시대에 문화를 전수해 주던 때에 머물러 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왜구와 임진왜란, 식민지배가 끝인 것 같다.

매우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일본과 전통 가치관에 함몰된 한반도의 차이는 왜 생긴 것일까?

정말 반도와 섬나라의 차이일까?

고대사에 대한 책을 읽을수록 한반도의 작은 나라가 중국이라는 엄청난 제국에 함몰되지 않고 주체적인 민족성과 나라를 유지해 온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일본은 그마저도 바다 건너 있었기 때문에 중화제국의 거대한 구심력으로부터 일정 부분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포르투갈 역시 마찬가지다.

대항해 시대라고 하면 에스파냐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그 시작점에 포르투갈을 놓는다.

이베리아의 작은 반도 국가는, 에스파냐라는 큰 제국에 막혀 살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린다.

저자는 미지의 바다로 배를 띄워 항로를 발견한 이들의 도전정신을, 오늘날의 화성 탐사에까지 비유한다.

바다 끝으로 가면 낭떠러지가 있어 악마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고 믿었던 시대에, 아무 지식도 없이 무역을 위해 배를 띄운 이들의 모험심과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다.

대항해시대라고 하면 아프리카 노예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몰락에만 초점을 맞춰 경제적, 사회적 동인은 크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저자는 왜 그들이 바다로 나섰는지 그 동력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오늘날이 서양 위주로 세계화 된 것도 그들의 모험심이 경쟁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2천 년 전에 벌써 대제국을 이루고 통일 국가가 되어 주변국을 조공 체제 안에 묶어 두고 번영했으나 그 안에 안주했기 때문에 근대화에 실패하고 2류 국가로 몰락한 듯하다.

어떻게 해서든 아시아의 물자들을 구해 와 교역을 통해 이득을 보려고 애쓰는 경제적 욕구가 강하고 모험심이 충만한 개방적인 사람들이 주를 이룬 유럽이 결국은 세계화에 성공하고 오늘날 선진국이 됐다.

일본 역시 아시아의 다른 오래된 전통 국가들과는 달리, 나라의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유럽인들의 통상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다.

메이지 유신이 어느날 갑자기 페리 제독이 배를 몰고 와서 뚝딱 이뤄진 게 아니었다.

서양과의 통상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 알고 놀랐다.

오늘날의 세계는 인터넷과 자본주의 시장에 의해 더욱더 개방되고 있으니, 전세계에서 거의 가장 늦게 근대화된 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무역국가가 된 것도 놀랍고, 앞으로도 보다 적극적으로 문호를 열고 모험심을 갖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항해 시대부터 자본주의의 발생, 일본의 근대화까지 너무나 잘 짜여진 재밌는 역사책을 읽었다.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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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이전 중국이 쓴 한국사 - 중국 24正史에 기록된 '솔직한' 한국사
이기훈 지음 / 주류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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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제목 때문에 선택한 책인데 새해 벽두부터 이런 야사류를 읽다니...

제일 싫어하는 책이 이런 환빠스러운 비전공자의 뇌피셜 같은 책인데 끝까지 읽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은 완독했다.

저자 약력을 반드시 확인하고 책을 골라야겠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해당 분야에 대해 논문이 없는 사람이라면 말 그대로 아마추어 작가에 불과하므로 기존 역사학계의 정론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읽을 때는 쉽게 쓰여 있고 고대 한반도의 기원에 대해 중국 역사서를 근거로 설명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발음 연관성에 근거를 둬서 설명할 때부터 이상하더니만 급기야는 자기만의 썰을 계속 풀어낸다.

기자조선의 실체부터 기존 통설과 맞지 않다.

상나라 멸망 후 기원전 11세기에 그 유민들이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넘어와 단군조선을 몰아내고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것이다.

단군조선은 말그대로 설화이므로 고고학적인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역사적으로 그나마 고조선의 증거가 나온 것은 기원전 7세기로 본다.

저자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상나라를 세운 동이족은 중원을 지배한 화하족과는 다른 종족으로 이들의 후예가 만주와 한반도, 일본까지 퍼졌다는 것이다.

가장 황당한 주장은 우리의 조상이 동이족이므로 그들이 이룬 고대 문화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처하는 역발상인가?

청나라도 고구려와 발해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제일 어이없었던 주장이, 모용선비족의 마지막 나라인 북연이 멸망한 후 그 유민들이 고구려로 넘어갔는데 장수왕이 이들을 내치자 한반도로 건너와 백제와 신라 왕실, 더 나아가 일본까지 장악했다는 것이다.

흉노가 신라 왕실의 조상이라는 주장은 들어봤어도 선비족 주장은 처음이라 황당함을 넘어 신선하기까지 했다.

법흥왕이 모용선비족의 일파였다는 것이다.

울진봉평비에 김씨가 아닌 모즉지라고 쓰여 있는 것을 근거로 든다.

학계에 따르면 신라에 성씨가 도입된 것은 진흥왕 때이다.

모즉지는 성이 모씨 이름이 즉 혹은 진이 아니라 그냥 이름이다.

아버지 지증왕의 이름도 냉수리비에 따르면 지도로이다.

흉노족인 김일제가 신나라 멸망 후 한반도로 이주한 게 바로 김알지라는 것도 역사적 근거가 없다.

문무왕 비문에서 우리 조상 운운한 것은 선조의 기원을 먼 옛날의 유명인으로부터 찾는 숭조 사업의 일환으로 본다.

그렇게 따지면 고려 왕건의 조상은 <편년통록>에 따라 당나라 황제 숙종인가?

개로왕이 고구려에 죽임을 당한 후 아들(혹은 형제)인 곤지왕이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이 되어 일본도 선비족에게 장악됐다고 주장한다.

그 아들인 동성왕이 백제로 귀국하여 자신들을 멸망시킨 북위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남조 사서에 나온 내용이지만 당시 정황으로 봤을 때 영산강 유역의 마한 세력도 완전히 멸망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바다 건너 북위를 어떻게 공격하겠는가?

아마도 위로, 즉 위나라 오랑캐라고 칭한 것이 사실은 고구려인데, 남조측에서 북위로 잘못 알아들었을 거라는 해석이 그나마 납득이 된다.

근초고왕 때 요서 경략 얘기도 나오고 일본서기의 어떤 구절을 인용해 백제가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는 주장도 펼친다.

369년에 목라근자 등이 일본측 장군들과 함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원정하여 복속시켰다고 <일본서기>에 나오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여전히 영산강 유역에 재지세력들의 고분군이 등장해 학자들 사이에서 과연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복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연이 확고하게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던 요서 지역을 어떻게 경략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저자는 전연에 의해 북부여가 망한 후 그 유민이 백제로 내려왔는데 그가 바로 근초고왕이고 자신의 땅을 되찾기 위해 요서를 정복했다고 주장한다.

단지 사료에 나온 몇 글자를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말이다.

저자에게 사료비판을 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역사서에 나온 내용도 고고학적으로 입증이 돼야 비로소 정론으로 인정이 된다.

최근에 읽은 사학자들의 학술대회 발표글들과 너무나 비교된다.

아마추어 작가이기 때문에 고고학적인 자료를 같이 비교하기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면 기존의 정론에 반대되는 이런 주장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명백히 역사서에 나온 내용인데도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아 학자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논쟁이 많은가.



<인상깊은 구절>

63p

고구려, 백제, 신라는 이 중국 군현인 현도군, 대방군, 낙랑군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고구려는 만주지역 현도군의 중심지 중 한 부분이었고, 백제는 시조가 경기도 지역에 있던 대방군 출신 사람이며, 신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평양지역 낙랑인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을 중국역사로 간주하고 한국역사에서 구분하면 안 될 것입니다.

68p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풍습들이 한반도에 오랫동안 살던 사람들의 고유 풍습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살던 빗살무늬를 사용하던 원주민들은 농경보다는 주로 해변에서 채집 생활을 영위하며 살았고 그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이에 비해 국가를 조직하고 청동기, 철기 문명을 이끌 만큼 문명화된 사람들은 중국 동북지역에서 서서히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유물로 확인됩니다. 따라서 고대 한국의 발달된 문명은 한반도 원주민 고유의 풍습이라기보다는 청동기와 철기를 일찍부터 개발하고 사용한 발해만 유역 동이문명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됩니다.

109p

현도군은 중국에서 고조선을 정복하고 강제로 설치한 행정구역이었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긴 현지 사람들의 반발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반발하던 사람들 중 북쪽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현도군의 중심지인 고구려현을 한나라로부터 빼앗고 고구려의 시조가 됩니다. 고구려가 한나라 현도군을 몰아내고 건국해서 그런지 고구려는 한나라와 시종 원수처럼 싸우는데요, 결국 220년 한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수백 년간 그 싸움이 이어지게 됩니다.

176p

"북적은 중국과 아주 가까워서 변방 침입이 예로부터 있어 왔다. 동이는 영해 밖에 떨어져 있어서 분경을 일으켰다는 것은 듣기 드문 일이다. 이는 형세상 그러할 뿐만 아니라 아마 타고난 성격도 그러한 듯 하다. 

 우리 태종 문황제가 친히 융차를 몰고 동으로 고구려를 정벌한 것도 성공은 하였으나 잃은 바가 또한 많았다. 개선하여 돌아오던 날에 좌우의 신하들을 돌아보며, '짐에게 위징이 있었더라면 반드시 이번의 정행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서 출사를 후회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찌하여서일까? 이적의 나라란 돌밭과 같아서 얻어도 보탬이 안되고, 잃어버린들 무엇이 손상될 것인가? 반드시 허명을 힘써 추구하므로 수고로움에나 쓸모가 있을 뿐이다. 다만 마땅히 문덕을 닦아서 이를 오게 하고, 성교를 입혀서 이를 복종시키며, 신실한 신하를 가려 이를 무마하고, 변경의 수비를 단속하여 방어해야 한다. 그리고 통역을 거쳐서 조정에 오게 하고, 바다를 건너서 들어와 조공을 바치게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 것이다.

 동이의 사람과 북적의 풍속은 <주관>에 상고해 보면 바로 '만복(중국의 지배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일컬었다. 얻지 않아도 괜찮은데, 얻어서는 무엇하겠는가? 그저 회유에 힘써야 할 뿐이니, 이것을 '기속(굴레로 묶어둠)'이라 한다."

(구당서에서 태종의 고구려 정벌에 대해 사관이 평한 부분이다. 어쩜 이렇게 현실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하는지 놀랍다. 중국 사서는 그저 당위적인 좋은 말이나 늘어 놓은 줄 알았는데 이런 날카로운 비평이 정사의 힘인 듯하다. 중국이 이적들을 조공체제 안으로 포용하려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말로 실리적인 민족이었던 듯하다. 한반도의 여러 왕조들 역시 거대한 중국 제국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정확히 잘 알고 있었고 사대 외교를 통해 국체를 보존했던 까닭을 알겠다. 역시 우리 조상들이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202p

진왕은 경상도 지역에 있던 진한의 왕을 항상 마한 사람에게 맡겼다고 하는데, 이는 진왕이 작은 진한의 왕이 아니라 삼한을 아우르는 진국의 왕으로서, 마한을 중심으로 한 '봉건국가 황제'의 위치에 있었음을 뜻한다고 봅니다.

-> 삼한은 국가 체제조차 정립되지 않은 일종의 연맹체 수준으로 보는데 봉건국가의 황제라니!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하다.

244p

5,6세기 백제는 활발한 해양국가로서 동남아시아 각 지역과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백제는 일본이나 중국보다 동남아시아 지역 통제권이 더 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기록처럼 대만보다 훨씬 아래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통제했다면 백제가 대만을 장악한 것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논리적 비약이 아마추어 사학자들의 특성인 것 같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사료의 몇 글자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심지어 대만을 장악했다니, 대만인들이 들으면 뒤로 넘어갈 것 같다)

272p

'왜'는 사실 여러 정황상 만주와 한반도에 폭넓게 살고 있던 한반도 원주민인 부여족(예족) 아닐까 추정됩니다. 기원전 3세기 이후 한반도는 중국의 대혼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한반도와 만주로 이주 합니다. 대표적으로 기자조선을 비롯한 발해만 북부 세력이 직접적으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으로 밀려오는데요, 이들에 의해 점차 세력을 잃은 한반도 원주민인 부여(예)족 사람들 중 일부가 일본으로 간 것으 보입니다. 일본의 역사는 사실상 이 시기(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시황의 폭정과 혼란기에 한반도로 진나라 사람들이 대거 이주했고 그들이 진한을 세웠다는 학설은 들어본 적이 있다. 혹은 고조선 유민들이 내려와 세운 나라가 신라라고도 한다. 그런데 한반도 원주민을 부여족이라 하는 부분도 증거가 없고 특히 왜로 이주했다는 주장은 그저 "정황상"이라고만 할 뿐 아무런 근거를 밝히지 않아 신뢰할 수가 없다. 어떤 학자는 백제가 과연 부여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고 했다.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왔다는 것에 대항하여 백제도 부여 출자 의식을 강조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가 뒷받침 되어야 비로소 의미있는 학설이라 할 것이다.)

277p

왜에서 한반도 도래인의 영향이 점차 커지고 있을 때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압박을 크게 받습니다. 이로 인해 두 나라는 왜에 의지하여 고구려를 막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로 인해 백제에서는 왕이 왜에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내고, 신라는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왜에 볼모로 보내게 됩니다. 당시의 혼란한 국제성세를 '광개토대왕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 아래 왜왕은 자신들이 백제와 신라를 고구려로부터 지켜주는 종주국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왜왕은 백제와 신라까지 포함하는 왕이라고 중국에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온대로 왜가 신라와 백제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인가? 저자는 한반도에서 넘어간 도래인이 일본을 지배했기 때문에 왜도 결국은 한반도인과 다름없다는 논리적 비약으로 넘어간다. 동북공정의 새로운 형태인가?)

288p

한반도 남부에 왜계 무덤과 부장품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5세기 말 왜를 정복한 백제계 선비세력(곤지 세력)이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왜에서 한반도 남부로 왜군을 파견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시기 고구려에 멸망한 한성백제는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왜의 도움으로 국가를 회복하고 중국 북위를 공격하는데, 백제가 고구려가 아닌 북위를 공격하는 이유는 백제계 선비족들(모용계 북연세력)이 자신들을 멸망시킨 탁발선비의 나라 북위에 대한 보복을 하는 동시에, 고구려를 한반도 남부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공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곤지가 왜를 정복했다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 곤지가 곧 모용 선비라고 한다. 왜 이런 논리적 비약을 일삼는 것일까? 저자는 백제 왕실이 왜를 지배했기 때문에 왜가 곧 백제이고 모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군사를 파견했다는 것인데, 뒤집어 보면 왜가 한반도 남부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임나일본부 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북위는 도대체 어떻게 공격을 했다는 것인지? 고구려를 넘어 북위까지 진출했다고?)


<오류>

138p

이이모 임금(고국천왕)은 아들이 없었는데, 권노부 지역의 여자와 몰래 정을 통하여 아들을 낳고~

-> 권노부가 아니라 관나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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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0-01-0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책을 고를때 작가, 출판사등을 고려해서 고르는데, 주류성 출판사는 한번씩 요런 요상한 책을 내더군요. 그래서 주류성 출판사의 도서는 조심스럽게 고를때가 많답니다. 읽을만한 책도 있기도 해서 아예 무시할 수도 없고...

고고학 연구도 내는 것 같은데....도대체 어떤 흐름의 출판 방향인 건지 감이 안오는 경우네요.-.-;;;

marine 2020-01-03 09:24   좋아요 0 | URL
신년에 인사드리네요. 한동안 너무 어려운 학술서 읽다가 표지 디자인도 예쁘고 주제도 좋아서 기대하고 읽었는데 시간 아까웠어요. 저자의 전작이 <동이 한국사>더라구요. 이 분은 상나라 유민이 세운 나라가 바로 고조선, 부여, 삼한, 일본이기 때문에 다 우리 문화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선비족도 동이족이므로 우리 민족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새로운 대처 방안인가 싶었어요.
 

하루에 200페이지씩 읽기, 주말에는 300페이지, 주 4권 목표!

(200페이지씩 읽기가 매우 힘들긴 하다 ㅜㅜ)

1주 평균 5권 읽었으니 목표 달성이다.

독서인의 기본 조건이 恒産 이라는 구절이 생각나는 시절이다.

근심 걱정 없이 책만 을 수 있는 시간은 죽어서 천국이나 가면 가능하려나?

왜 천국이 거대한 도서관일 거라 했을지 정말로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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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로 읽는 세계사- 살아남기 위한 세계 왕실의 치열한 생존기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전경아 옮김 / 책밥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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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 여행- 황윤 역사 여행 에세이, 개정증보판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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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트 스나이더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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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읽다 - 꽃의 인문학 ; 역사와 생태, 그 아름다움과 쓸모에 관하여
스티븐 부크먼 지음, 박인용 옮김 / 반니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표지가 참 예쁜 책이다.

과학적인 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인문학적인 꽃이 궁금했다.
인간은 왜 원예를 하게 되었나, 원예의 역사, 원예가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 뭐 이런 것들?
앞부분의 꽃이라는 식물의 탄생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어렵기도 하고 약간 지루해서 많이 건너 뛰었고 뒷쪽의 꽃 재배에 관한 이야기부터 흥미롭게 읽었다.
간단히 말해 꽃이 피는 이유는 스스로 종족번식을 못하기 때문에 수분을 매개해 줄 동물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꿀은 벌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꽃가루에 단백질이 풍부해 박쥐나 곤충, 새들도 꽃에서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꽃가루가가 다리에 묻어 수분을 시킨다고 한다.
꽃에 영양가가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꽃은 보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데 금방 시들어 버려서 꽃꽃이를 못하겠다.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할까?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본능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있어 왔고 품종 개량을 통해 현대의 원예 산업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꽃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안면도에서 열리는 꽃 박람회에 다녀온 후 그 아름다움에 시각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예술적 성향은 정말로 오래된 본능인 듯하다.
가지에서 꽃이 꺾였는데도 수일에 걸쳐 외국에서 배송돼서 소비자의 집까지 배달되는데도 여전히 싱싱한 걸 보면 오히려 꽃의 생명력이 길다고 해야 할까.
유전자조작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들이 많은데 사실 품종개량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됐고 저자에 따르면 자연에서도 무수한 변종들이 일어나 진화홰 왔다고 한다.


<인상깊은 구절>

112p

우리는 필요나 호기심 때문에, 그리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가꾸려는 천성에 따라 식물육종의 경우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는 권능으로 수분을 매개하고 있다. 7000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나라들에서 대추야자로부터 시작되고 곡물의 경우에는 그보다 더 오래된, 농작물의 꽃과 관련된 우리의 '뚜쟁이' 재능은 지금까지도 계승되고 있으며, 씨를 비축하는 농부들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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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문화권 중에도 집단 전체가 배가 부르지 않으면 유원지를 만들지 않는 사회가 있다. 이 부족들은 아마도 하루 5000 칼로리나 먹었을 것이다. 오늘날 '이상적인' 섭취로 생각되는 하루 2000 칼로리를 소비하는 것은 대체로 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먹는 사회-흉포한 대형 동물을 쫓아가 죽이는 등의 행위가 없는-가 바탕이 돼 있다. 사람들은 잘 먹고 곳간 가득한 경우가 아니면 아름답지만 불필요한 사치품(꽃)에 한정된 농경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비옥한 땅은 분재에 낭비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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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정원은 서양문명의 정원에 비해 사색적이며, 크고 두드러지는 꽃에 덜 의지해 꽃이나 열매가 없는 속씨식물도 아름답게 여기며 잎이나 줄기도 똑같이 관상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꽃이 피지 않는 요소를 활용한다는 것은 특히 장식적인 암석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알 수 있다.

 란쑤 정원은 그 당시 한 부유한 가정의 정신적 이상향을 보여준다. 세부적인 데까지 능숙하게 설계된 이런 위안처가 있음으로써 가족은 일상생활의 근심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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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서는 디자인이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많은 정원에서 원예 전문가를 다수 고용할 여력이 없다는 게 한 가지 이유이다. 또한 자신의 토지를 관리할 수 없는 '노인'을 위해 돈을 받고 잔디를 깎거나 가지치기를 해주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일벌레나 사커맘 등 집이나 정원을 비워두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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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장의사산업에 방부처리가 자리하기 전까지는 향기 짙은 흰 백합이나 오리엔탈백합을 교배한 잡종꽃들로 만든 화환과 부케가 시신의 부패로 인한 냄새를 가려주었다. 타오르는 촛불과 함께 꽃이 환기장치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빅토리아시대의 장례행렬은 장엄하면서 고비용의 사교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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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도시 거주자들에게 꽃은 대체로 사치스럽고 값비싼 물품이었다. 수명이 짧고 연약해 며칠씩 장거리 운송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꽃은 식품처럼 소중하게 여겨지지는 않아도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즐겁게 함으로써 우리의 자연과 생활환경에 부가가치를 더한다.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절화용 꽃재배나 실내장식용으로 화단에서 재배하는 일은 부유한 상인이나 왕족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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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육종 기법에 대체로 무지한 대중들은 좋은 취지의 환경단체들이 우리의 식품공급에 표명하는 우려에 겁을 먹는. 오늘날 가공식품 회사들은 공개토론, 가두집회, 과격한 항의 등이 불러일으킨 유전자조작생물과 관련된 악령을 자신들의 가공식품이나 상표에서 털어내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사람이 식물의 유전체를 바꾸기 위해 새로운 방법(유전자조작생물이나 유전자총)과 과거의 방법(이종교해만 꽃의 잡종이나 돌연변이를 이용한 육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은 정원용 화초의 잡종을 만든 루서 버뱅크에 대해 목사가 반대하면서 혐오감을 표명했던 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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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꽃은 자연 속에 그리 흔하지 않으며, 대부분 정원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푸른색 때문에 제비고깔, 물망초, 제라늄, 초롱꽃, 나팔꽃 등이 마당에 피는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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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이나 묘목원에서 구입한 꽃들은 수분매개동물을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주는지를 확인하는 게 어렵다. 인기 높은 여러 변종들은 향기가 줄어들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다. 절화수명을 늘리고자 품종을 개량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향기인 경우가 많다. 향기분자를 만들어내려면 물질대사 측면에서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향기가 전혀 없거나 적은 꽃이 식물이든 절화든간에 더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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