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전시회 관람 - 대림 미술관 수석 에듀케이터가 알려주는 미술관 사용
한정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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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이 딱 내가 좋아하는 주제라 못 지나치고 빌리게 됐다.

집에 와서 펼쳐 보니 전에 읽었던 책이다.

하루에 200 페이지씩 읽는 게 목표인데 참 진도가 안 나가고 힘들다 생각했는데 역시 이런 쉬운 책들은 술술 잘 넘어간다.

미술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에듀케이터라는 직업답게 쉽게 글을 잘 쓴다.

어제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전 관람을 다녀와서 느낀 점들을 생각하면서 편안하게 책을 읽었다.

미술관은 이제 단순히 전시를 하는 곳이 아니라 마치 도서관처럼 복합문화센터가 되는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몇년 전만 해도 이런 전시는 나같은 사람이나 오지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을 정도로 한산했는데 요즘은 어떤 전시를 가도 항상 북적인다.

그래서 관람하기기가 참 어렵다.

저자는 에듀케이터인 만큼 영화관을 가듯 미술관에 쉽게 놀러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요즘 미술관들의 정책 방향도 좀더 대중에게 친근하게 접근하자는 쪽인 것 같다.

미술관이라는 건축물 자체에 관심이 커지는 것도 좋은 현상이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우리나라 뮤지엄 산 같은 경우도 미술관 그 자체를 보기 위해 방문하게 된다.

미술관의 정원도 관람하고 데이트도 하고 관련 이벤트나 교육 강좌도 참여하고,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저변이 확대될수록 관람 에티켓에 대한 강조가 매우 중요할 것 같다.

요즘은 어린이들 체험학습 같은 사설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는지 어느 전시회를 가나 아이들을 끌고 다니는 팀들 때문에 감상이 참 어렵다.

어제 전시 같은 경우도, 아이들이 가야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다른 관람객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설명하는 모습이 정말 눈쌀이 찌푸려졌다.

이래서 박물관에서 사설 도슨트를 금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 수준에서 저런 어려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까, 또하나의 사교육인가 싶기도 했다.

관람 에티켓에 대한 교육이 매우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를 직접 보는 것은 원작을 만날 때의 강렬한 감동 때문에 언제나 흥분되는 미적 체험이 된다.

책에서는 천천히 한 작품을 감상하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관들은 대부분 기획전시라 여러번 방문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감상 시간이 한 두 시간만 넘어가도 금세 피로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외국 미술관에 가면 다시 오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보기 위해 강행군을 한다.

우리나라 미술관은 상설 전시작이 너무 적어 여러 번 보기가 힘들다.

저자가 추천하는 것처럼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정보를 얻고 가서 보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의외로 전시 관람이 머리와 몸을 금방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나는 오디오 가이드 듣는 것도 힘들어, 일단 빠르게 한 바퀴 돌아본 후 도록을 구입해 다시 찬찬히 읽어본다.

그러면 그 주제에 대해서는 호기심과 친근감이 생겨 다음에 비슷한 주제에 대해서도 찾아 보게 된다.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앤디 워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중산층의 조건 중에 문화생활이 있던데 정말 공감하는 바다.

먹고 사는 게 해결되면 그 다음은 문화 생활인 것 같다.

최근에 콘서트에 다녀와서 1년 내내 그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즐거웠고, 어제 가야 전시회를 보고 나서 가야에 관한 궁금증이 생겨 책을 찾아 보고 있다.

미술관에 다녀오고 나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게 분명하다.

미술관에 좀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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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 사라진 바미얀 대불을 위한 헌사
이주형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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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저자가 글을 참 잘 쓴다.

간다라 미술에 관한 전시회의 도록 같은 책에서 저자를 처음 알게 됐고, 그 때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에 반해 오래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고, 드디어 읽게 됐다.

중심소재는 탈레반의 바미얀 석굴 파괴이고 아프가니스탄에 처음 문명이 시작했을 때부터 탈레반의 집권과 현대사까지 역사를 문화 유적 발굴 등과 버무려 친절하고 상세하게, 그러면서도 재밌게 설명해준다.

칼라 사진도 많이 실려 있어 책 편집도 예쁘다.

고대사는 다소 지루했고 역시 현대사가 흥미진진하다.

페르시아가 지배력을 뻗쳤을 때는 배화교의 흔적이 있었고 알렉산드로스 원정 이후에는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가 전파됐으며 그 후로는 불교 문화, 7세기 이후에는 이슬람이 지배하는, 어찌 보면 문화의 교차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산으로 둘러싸인 산악국가, 다민족과 여러 종교들이 어울어져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됐다.

특히 탈레반이 왜 바미얀 대불을 폭발시켰는지에 대한 분석이 가장 유익했다.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이 매우 근대적이고 유럽적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도 일제 시대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첨성대며 불국사 같은 유적지에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가서 놀고 있다.

전통사회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슬람 원리주의 교육이 전부인 탈레반으로서는 외세에 대한 일종의 시위였을지도 모르겠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지역에 대한 얼개를 대략적으로 그릴 수 있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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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문화 순례 - 세비야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김창민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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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아주 유익하고 재밌다.

스페인에서 유학한 교수들이 문화와 역사 각 부분을 나눠서 쓴 책이라 그런지 밀도가 있고 내용도 전문적이라 스페인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제목만 좀 더 멋지게 바꾼다면 훨씬 많이 읽힐텐데 아쉽다.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강추하는 책.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이 쓰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출판물 속에 살고 있어 오히려 좋은 책을 고르기가 더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그럴 듯한 사진 좀 싣고 책 디자인 화려하게 하고 광고 좀 붙여서 문구만 멋지게 뽑으면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요즘 시대는 마치 책 공해 속에 사는 것 같아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한 안목이 특히 필요한 듯하다.


1. 첫 부분에 나온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시대와 현대사의 프랑코 독재 시대, 그리고 카탈루냐와 바스크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운동 부분이 가장 유익했다. 

특히 민족주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이 두 지역의 움직임이 어떻게 다른지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간단히 말해 카탈루냐는 상업주의 전통으로 인해 개방적이고 문화적이며 근대적인 오늘날의 가치관과 잘 들어맞지만, 바스크 지역은 전통사회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보수주의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와 대립하여 폭력적인 양상을 띈다는 것이다.

또 카스티야 중심으로 정치가 발전했으나 오랜 국토회복과정 동안에 군사적 덕목이 중시되어 보수적이고 종교적이며 권위주의가 팽배했다.

프랑코 사후 민주주의 국가로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을, 책에서는 스페인 내전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국민들의 열망 때문에 타협한 덕이라고 한다.

좌우 대립이 매우 날카로운 한국 사회에서 눈여겨 볼 대목 같다.

정의를 구현하는 것보다 (절대적인 정의가 과연 있을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명확한 정의가 과연 인간 사회에서 존재할까?) 내전을 피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2. 스페인의 회화사도 유익했다.

도판도 많이 실려 있어 좋았다.

벨라스케스에서 고야에 이르기까지, 또 피카소와 달리, 미로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미술가들의 활약상도 흥미롭게 읽었다.


3. 건축 부분을 맡은 분은 학자가 아니라 그런지 분석적이기 보다는 유명 건축물을 나열하는데 그쳐 아쉬웠다.

영화사 부분은 흥미롭게 읽었다.

"오픈 유어 아이즈"를 아주 지루하게 봤던 기억만 나는데 중요한 영화였던 모양이다.


4. 마지막에 관광과 축제를 정리한 부분도 인상적으로 읽었다.

스페인 하면 관광대국인데 조상한테 받은 덕분으로 끝이 아니라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관광산업에 큰 투자를 하고 그 결과물로 오늘날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동북아 끝에 붙어 있어 여전히 세계와 큰 교류가 없는 고립된 이미지가 강한 나라라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프랑스만 해도 문화유산이 넘쳐나고 스페인은 태양이 내리쬐는 자연환경도 있고 여러 문화권의 유산이 공존하며 프라도 미술관의 엄청난 작품들이 큰 자산인데 한국과 비교는 어려울 것 같다.


스페인은 신혼여행지로 간 곳이라 책을 읽을 때마다 특별한 기분이 드는 나라다.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오류>

89p

이 전쟁은 1833년 페르난도 7세가 세 살 먹은 손녀(이사벨)을 후계자로 남기고 죽자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전통주의자들이 여성의 왕위 계승을 배제하는 살리법에 호소함으로써 이 아이의 왕위 계승을 저지하고, 대신 페르난도 7세의 동생이며 '편협하고, 경건하고 고집이 센 전통주의자' 돈 카를로스 마리아 이시드로를 추대하려고 함으로써 일어났다.

-> 이사벨 2세는 페르난도 7세의 손녀가 아니라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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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Art Classic 10
유스투스 뮐러 호프스테데. 콘스탄티노 포르쿠 지음, 이지영 옮김 / 예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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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루벤스와 티치아노이다.

루벤스 역시 티치아노를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바로크 시대의 역동적이고 강렬한 명암 대비 기법을 시작한 대가라고 하면 카라바조가 대표적일텐데, 그림이 너무 어둡고 강렬해 밝은 분위기의 루벤스가 더 마음이 간다.

여신들 관능미나 그리는 타락한 화가라는 네티즌 평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생각이 난다.

이렇게 강렬하고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그리는 위대한 화가가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퇴물 취급받는다는 게 속상했다.

그림의 본질이야말로 색채인데, 루벤스의 작품은 정말 화면에서 빛이 난다.

값비싼 물감들을 아낌없이 화폭에 쏟아 부었던 모양이다.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신체의 동작들을 어쩜 저렇게 생생하게 그려내는지.

아무리 찬사를 거듭해도 부족한 느낌이다.

보통 이런 번역서들은 문체가 어색하기 마련인데, 역자가 번역을 참 잘해서 한 눈에 들어온다.

책의 저자 역시 현학적인 설명보다는 루벤스라는 화가의 생애와 넘치는 인간적 매력, 그리고 작품의 위대함에 대해 친절하고 알기 쉽게 묘사해 준다.

도판은 정말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다.

미술전문 출판사라 역시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림의 위대함과 넘치는 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으로도 참 훌륭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외교관으로서도 승승장구해 기사 작위도 받았고, 피카소처럼 사업적 재능도 뛰어나 공방을 운영하면서 부를 이룬다.

무엇보다 두 아내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여자인 내 입장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

첫번째 아내와도 매우 화목했고 그녀가 일찍 죽자 크게 상심하면서 애도했다.

두번째 결혼은 무척 파격적으로 50대의 나이에 16세의 헬레나 푸르망을 맞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영조와 정순왕후의 국혼과 비슷한 경우랄까?

이렇게 어린 아내와도 사이가 무척 좋았는지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자녀를 다섯 명이나 낳는다.

또 안트베르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이 어린 신부를 미의 여신으로 화폭에 자주 등장시킨다.

나이를 초월한 애틋한 부부관계가 아닐 수 없다.

말년에 통풍으로 오른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망가져 마지막 자화상에서는 장갑으로 가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르누아르가 류마티즘으로 노년에는 손에 붓을 묶어서 그렸던 일화가 생각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음악가와, 손을 쓸 수 없는 화가라니 인생은 정말 비극 그 자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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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 화가들이 기록한 6.25
정준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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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일까 봐 약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쓰여져 술술 넘기면서 금방 읽어버렸다.

6.25 당시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는, 어찌 보면 평범한 민간인들이었던 화가들이 양쪽 정부에 동원되어 숙청당하고 고통을 겪었던 사정을 이야기한 책이다.

저자의 주관이나 평가가 많이 들어가지 않고 당시 화가들의 증언과 신문 기사 등을 주로 인용하여 한 편의 다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난을 간 화가들이 부산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또 거기서도 노숙을 하고 행상을 하면서도 변변한 화구 하나 없이 포기하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우는 모습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이 분들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피지배인으로써 오랫동안 고통받다가 겨우 독립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쟁의 고통 속으로 빠진 셈이니 가장 불행한 세대가 아닐 수 없다.

외적의 침략도 아닌 내전으로 말이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 정권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원흉에게, 친일파를 처단하고 민족 주체성을 살렸다는 오늘날의 일부 평가가 과연 가당키나 한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강제로 헤어져 사는 이산가족의 슬픔도 화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중섭만 불우한 줄 알았더니 다들 힘든 세월을 보냈었던 모양이다.

근대화가들에 대한 전시회 도록들을 여러 번 봤더니 익숙한 이름들이라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47p

부산 화가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서울 화가들이 내려와 쉬지 않고 그룹전이나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설쳐대는 모양으로 비춰졌던 것도 있었고 미국대사관이 서울에서 온 작가들의 그림을 사준 것이 심기를 상하게 한 이유도 있었다. 게다가 김환기는 여러 모임에 주동이 되었기 때문에 가장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228p

김용환은 6.25 전쟁이 시작된 후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인민군에 의해 삐라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던 이력 때문에 9.28 수복 당시 다시 국군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출중한 만화실력으로 인해 육군본부에 배속되어 대북 선전만화와 삐라의 원화를 그리는 일을 맡게 되고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리다 뿐이겠소? 뭐든지 시키는 대로 그릴 테니 종이와 붓만 가져다 주시오. 내 앞에는 즉시 종이와 붓과 먹물이 준비되었고, 나는 곧 붓을 들었다. 만화 아이디어 걱정은 필요없었다. 지금까지 괴뢰군 사령부에서 그렸던 그림을 반대로만 즉, 이승만이 김일성을 압록강 저쪽으로 몰아내는 그림으로 바꿔 그리면 되는 것이었다."

263p

당시 정훈 부장 이선근은 종군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이념 창조자라는 입장에서 파악했다. 문화인들의 작품을 통해 국민들의 애국심과 전의를 고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종문의 경우 현대전에서 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선전전을 문화적 기술로서 전쟁을 수행하는 하나의 전투수단으로 보았다. 곽종원은 '행동적 휴머니즘'을 내세우면서 경험과 그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창작방법의 채용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소설가 김동리는 전쟁과 문학이 결부되면 전쟁은 문학의 한 소재에 불과하며 반대의 경우에는 문학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무기 또는 도구로서의 의의를 가진다고 정리한다. 나아가 전쟁에서는 이념이 매우 중대한 무기이며 위력을 발휘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문학과 예술이 정신적 무기로 간주된다고 하였다.

(문학이나 그림이 전쟁의 한 도구가 된다면 예술로서 무슨 가치가 있을까? 공산주의 체제에서 예술이 몰락한 것도 이념의 수단으로 이용됐기 때문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예술지상주의가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247p

이 중 무엇보다도 큰 종군화가단의 이점은 어려운 시기에 생계유지의 수단과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망 확보였다. 특히 월남한 예술가들의 경우 소위 '빨갱이' 또는 '간첩'으로 몰리면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생면부지의 땅에서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종군화가단증뿐이었다.

 일부 젊은 작가들의 경우 군복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부수적 수입을 얻을 수 있고 때로는 권력까지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너나없이 종군화가단의 문을 두드렸다.

299p

그녀는 이 책에서 "한국에서 우리는 대비하지 못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승리는 많은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패배의 대가보다 훨씬 쌀 것이다"라는 명문으로 많은 이들에게 승리를 독려했고 맥아더 장군과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미군이 파견될 것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해서 특종을 만들어냈다.

305p

2차 서울탈환은 희생을 최소화하며서 비교적 순조롭게 성공했는데 이것은 당시 중공군이 병참공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의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데 이유가 있다. 6.25 전쟁에서 예상보다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중공군은 3월 11일 이미 서울에서 자진철수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으며 비교적 손쉬울 것이라 보았던 용문산지구 북한강 전투까지 육군 6사단에 대패한 것을 계기로 휴전회담을 진지하게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이 승리로 인해 국군은 약체라는 이미지가 상쇄되었고 UN군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계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중부전선을 동서로 나누어 공격과 방어를 하고자 하는 중공군과 북한군의 전술을 차단하면서 서울에 미칠 군사적 위협을 사전에 제거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큰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이 승리가 중공군과 인민군 측이 우리 쪽에 휴전회담을 제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317p

한편으로는 작품을 제작한 김환기와 남관, 김병기 모두 이후 미국이나 프랑스로 떠난 것을 보면 이들이 작품의 해외전시를 빌미로 전쟁 중에 해외로 나갈 기회를 만들고자 한 것은 아닌가 추측도 해본다.

343p

"불란서에서의 그것과 일본에서 유행된 그것은 퍽 장식적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그런 장식적인 것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체험한 그것을 화면에 나타내되 휴머니즘을 무시하지 않고 사실적인 것 또한 무시하지 않은 추상이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 동양화란 원래가 추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암시적이지요. 말하자면 공간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서양화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공간에서 발달된 것입니다."

 한국 화단에서 가장 긴요한 문제는 새로운 미의 창조이며 새로운 미술이 추상임을 상정하였고 김병기는 '추상회화의 문제'를 통해 현대미술의 양식은 추상적 경향이라고 정의한 후 "원래 회화는 하나의 추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비형상 회화는 실제 세계와는 하등의 관련을 맺지 않는 것이며, 완전히 관념세계에의 탐구이며 형이하의 현상세계와 절연되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352p

남북한의 정치가들에게 6.25 전쟁은 '전쟁'이라는 공포를 통해 적절하게 국민들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남북한이 공히 그렇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일부는 이런 상황이 남한에서만 존재했던 정치 상황인양 몰아가고 비판한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자면 남과 북이 끔찍한 전쟁의 트라우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은 6.25 전쟁 기간 중 일어난 참혹했던 양민학살을 평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353p

일부 재주 좋은 작가들에게는 치열했던 전쟁이라는 특이한 삶의 조건은 실력가들에게 줄을 대고 화단정치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기회였다. 그러나 이런 처세술조차 없었던 작가들은 광복동의 다방가에 모여 앉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리고 이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잊기 위한 목적으로 작품을 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 앞에서도 그들은 순수주의와 자연주의를 노래했으며 용기있는 데카당한 실존의 흔적을 남기려 애쓰는 지사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일군의 작가들은 낭만주의, 퇴폐주의에 빠져들어 기인적인 삶을 통해 세상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많은 경우야 어찌되었던 간에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들이 이러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화가 또는 문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의와 편의를 얻었던, 예술가들을 사회가 존경하고 예우하던 유일한 시기가 이때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예술가들은 그들의 신분만으로 보호의 대상이 되었으며 하다못해 배급에서도 우선권이 주어졌다. 종군작가라는 이름으로 입대를 면제받을 수 있었으며 많은 작가들이 종군화가단에 들어가서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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