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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
김자현 지음, 주채영 옮김 / 너머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저자의 전작 "왕이라는 유산"을 인상깊게 읽어서 신작이 나왔길래 기대감을 갖고 읽은 책.
그런데 이 책이 저자의 유고인 모양이다.
60대면 아직 젊은 나이인데 안타깝고, 한국인도 아닌 저자의 부군이 머릿말을 써서 애틋했다.
초고 정도만 써 놔서 전체적으로 분량이 짧은 것 같다.
전작에서도 느낀 바지만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 탓인지 아니면 번역서의 한계인지 복문이 많고 한번에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 종종 있어 가독성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내 학자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관점들이 신선하다.
책에 나온 바대로 한국은 오래 전부터 역사적 국가였기 때문에 서구와는 달리 한민족은 수천 년 전부터 계속 있어왔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비로소 민족이라는 공동체 개념이 확립됐고 더 나아가 인민주권 사상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서구에서 말하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그런 사상이 아니라, 상호호혜적인 관계에서 나라가 백성을 돌보았듯이 백성도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보답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정치 이데올로기가 발전된 사상이라고 설명한다.
그 예가 바로 의병활동이다.
전통적으로 문치주의를 숭상했던 조선은 중국과의 사대 외교를 통해 국방의 부담에서 벗어났었고 개인의 무기 소지나 결사 등을 엄격하게 금지했는데, 전쟁이 터지가 사족들의 자발적인 무장을 오히려 격려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희사하며 무장 봉기한 주체들이 바로 향촌 사회를 장악하고 있던 재지사족인데 단지 양반층에 국한되지 않고 조선 민족의 이름으로 비지식인들까지 함께 참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민족이라는 공동체 관념이 확립됐다는 것이다.
이 때 한글 격문 등이 하층민까지 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작용했고 전후 한글 소설 등이 널리 읽히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번도 임진왜란을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무척 신선했다.
생각해 보면 조선 같은 문치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무장봉기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왕조를 뒤엎으려는 시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왕조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셈이니 매우 특이한 현상이긴 하다.
저자가 설명하는 인민주권 개념으로 확장됐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민족 공동체 정신의 확립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 같다.
비단 사족층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백성들까지 함께 참여했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오늘날 조선 양반들을 백성에게 기생한 무능력한 착취자로 비난하지만, 향촌 사회의 유교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고 성공적이었던 듯하다.
조선 왕조가 500년 동안 유지된 힘이 바로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오류>
42p
1592년 조선 왕조 건국 이후 3세기에 들어선 조선은~
-> 1592년이 아니라 1392년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