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속의 사랑, 사랑 속의 신라 - 진솔하고 열정적인 신라 여인들의 삶과 사랑, 삼국시대편
신라사학회 엮음 / 경인문화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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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옛날에 나온 책이라 그런가 시의성에 떨어지는 느낌이고 학자들이 출간했다고 보기에는 밀도가 약해 아쉽다.

본격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대중들이 읽기 편하게 쉽게 쓴 책인 모양이다.

책임 저자인 김창겸씨의 "신라 하대 국왕과 정치사"를 인상깊게 읽어서 고른 책인데 많이 아쉽다.


기억에 남는 주장들

1) 진덕여왕에게도 남편과 자식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김춘추가 즉위한 후 이들 계통을 역사에서 지워버렸을 것이다.

딱히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선덕여왕이나 진성여왕도 남편이 있었다고 하니 있음직한 가설이다.

2) 진지왕이 폐위된 후 도화녀와 사통해 낳은 자식이 비형랑인데 김춘추의 아버지인 용수라 본다.

이것도 아무 증거없이 용수임이 분명하다고만 해서 좀 의아하다.

3) 무왕과 선화공주의 혼인은 당시 백제와 신라의 대치 상황으로 봤을 때 설화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미륵사지 서탑에서 사택왕후 사리봉안기가 나오기도 전의 책인데, 합리적으로 추론하고 있다.

4)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부인이 섭정할 때 화랑 제도가 생겨났는데 미소년들을 풍월주로 세우고 사통했다는 주장은 아무 근거도 없어 뜬금없다.

5) 필사본 화랑세기를 마치 공신력 있는 사서처럼 인용해 반발심이 든다.

6) 진흥왕의 여동생인 만호 부인은 조카인 동륜 태자와 혼인해 진평왕을 낳는다. 

이모와 조카는 종종 봤어도 왕의 딸인 공주가 친조카와 결혼한 예는 처음 접하는 것 같아 신기하다. 

그런데 동륜 태자가 일찍 죽자, 이번에는 다른 형제인 숙흘종과 혼인해 김유신의 어머니인 만명 부인을 낳는다.

아무리 고대라고 해도 친남매끼리 혼인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둘은 이복남매, 즉 숙흘종이 진흥왕과 만호 부인의 이복 형제라 추론하는데 일리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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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전쟁과 민족의 탄생
김자현 지음, 주채영 옮김 / 너머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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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왕이라는 유산"을 인상깊게 읽어서 신작이 나왔길래 기대감을 갖고 읽은 책.

그런데 이 책이 저자의 유고인 모양이다.

60대면 아직 젊은 나이인데 안타깝고, 한국인도 아닌 저자의 부군이 머릿말을 써서 애틋했다.

초고 정도만 써 놔서 전체적으로 분량이 짧은 것 같다.

전작에서도 느낀 바지만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 탓인지 아니면 번역서의 한계인지 복문이 많고 한번에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 종종 있어 가독성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내 학자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관점들이 신선하다.

책에 나온 바대로 한국은 오래 전부터 역사적 국가였기 때문에 서구와는 달리 한민족은 수천 년 전부터 계속 있어왔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비로소 민족이라는 공동체 개념이 확립됐고 더 나아가 인민주권 사상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서구에서 말하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그런 사상이 아니라, 상호호혜적인 관계에서 나라가 백성을 돌보았듯이 백성도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보답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정치 이데올로기가 발전된 사상이라고 설명한다.

그 예가 바로 의병활동이다.

전통적으로 문치주의를 숭상했던 조선은 중국과의 사대 외교를 통해 국방의 부담에서 벗어났었고 개인의 무기 소지나 결사 등을 엄격하게 금지했는데, 전쟁이 터지가 사족들의 자발적인 무장을 오히려 격려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희사하며 무장 봉기한 주체들이 바로 향촌 사회를 장악하고 있던 재지사족인데 단지 양반층에 국한되지 않고 조선 민족의 이름으로 비지식인들까지 함께 참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민족이라는 공동체 관념이 확립됐다는 것이다.

이 때 한글 격문 등이 하층민까지 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작용했고 전후 한글 소설 등이 널리 읽히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번도 임진왜란을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무척 신선했다.

생각해 보면 조선 같은 문치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무장봉기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왕조를 뒤엎으려는 시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왕조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셈이니 매우 특이한 현상이긴 하다.

저자가 설명하는 인민주권 개념으로 확장됐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민족 공동체 정신의 확립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 같다.

비단 사족층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백성들까지 함께 참여했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오늘날 조선 양반들을 백성에게 기생한 무능력한 착취자로 비난하지만, 향촌 사회의 유교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고 성공적이었던 듯하다.

조선 왕조가 500년 동안 유지된 힘이 바로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오류>

42p

1592년 조선 왕조 건국 이후 3세기에 들어선 조선은~

-> 1592년이 아니라 1392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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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의 조선사 - 지배 권력에 맞선 백성의 열 가지 얼굴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2
조윤민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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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성과 왕국"을 재밌게 읽어서 고른 책인데 기대에 부응한다.

보통 아마추어 작가들은 야사 위주의 에피소드를 편집해서 쓰기 마련인데 (김종성씨나 박영규씨) 이 책은 사료 참조도 성실하고 역사 비평 의식도 수준있어 읽어볼 만하다.

제목답게 주로 조선 하층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습노비제의 폐해와 백성들 사이에서도 천대받는 최하층민 백정 이야기 등을 인상깊게 읽었다.

특히 백정이 단지 북방 유목민의 후손이 아니라 도살업을 천시하고 사회 낙오자들이 섞여 들어가다 보니 최하층민으로 굳어졌는데 인종주의적 관점이 더해져 차별이 더욱 심했다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기술을 천시하고 작은 농업 생산력을 소수의 양반 계층이 착취하는 구조였던 조선 사회에서 수공업자나 상인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지 안타깝다.

500년 동안 정치적 안정은 얻었을지 모르나 근대사회에는 맞지 않은 국가였던 셈이다.

양반 계층을 대신할 계급이 생기지 못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양반이 되기 위해 애쓰다 보니 일본에 의해 망하기 직전까지도 여전히 조선은 구체제 봉건 사회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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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 - 카프카에서 스메타나까지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2
조성관 지음 / 열대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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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알차고 재밌다.

기자들이 쓴 책은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가급적 안 읽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정말 괜찮다.

문장력도 좋고 무엇보다 자기가 쓰려고 하는 주제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 독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카프카나 드보르작, 스메타나 등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아마데우스>를 만든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이나 밀란 쿤데라, 바츨라프 하벨 등은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알게 됐다.

하벨의 경우는 체코 현대사까지 덤으로 알 수 있었다.

<프라하의 봄>은 영화로 먼저 접했고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원작을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내게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노벨상에 추천되는 작가라 그런가 줄거리 중심으로 읽는 나 같은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다만 저자의 소설론에는 많이 공감했다.

자전적 소설을 지양하고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가 아닌 실존적 고민을 하는 또다른 실험적 존재라는 것.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고 작가와 주인공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어떤 책에서 밀란 쿤데라가 체코의 현실을 외면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고 비난하는 투의 글을 읽은 적 있는데 시대참여 정신과 예술로서의 소설은 별개의 문제 같다.

문화예술 전통이 거의 없는 한국과는 확실히 서구 문화권은 다른 것 같다.


<오류>

121p

사회 현실에 무관심한 삶을 살았던 그는 예테보리에 살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1960년대에 들어 조국 체코의 상황은 급변했다. 스메타나는 1961년 3월 31일자 일기에 심경을 이렇게 적었다.

-> 1960년이 아니라 186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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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덴.마이얼링.아이젠슈타트.툴른 풍월당 문화 예술 여행 4
박종호 지음 / 풍월당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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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빈 이야기.

저자의 전작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와 겹치는 느낌도 들고, 이 책에서는 개인의 소회보다는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춰 한편의 에세이로서는 많이 아쉽다.

대신 빈 곳곳의 카페와 왕궁, 건물 등을 애정어린 눈으로 소개한다.

빈의 카페는 무려 100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과연 문화예술의 도시답다.

자본주의 시대에 작은 가게가 1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문화전통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든 부분 같다.

한국은 유교적 사회라 위인들이 죄다 학자인 반면, 오스트리아는 문화예술가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확실히 서구 문화권의 예술 전통은 동양 사회와는 매우 다른 듯하다.


<인상깊은 구절>

242p

이제 <베토벤 프리즈> 전체를 다시 정리해보자. 인간은 끝없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 유혹과 방해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인간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시와 미술과 음악이다. 나약하고 불쌍한 인간이지만, 예술이 있기에 기쁨도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와 행복하게 결합할 수 있다.


<오류>

133p

1671년에 안나 황후가 이곳에 카푸친 수도회의 수도원을 짓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페르디난트 2세는 어머니가 세운 수도원의 지하에 부모님의 관을 보관했다.

->1671년이 아니라 1617년에 마티아스의 황후 티롤의 안나가 후원금을 내서 수도원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페르디난트 2세의 어머니가 아니라 사촌 형수이다. 즉, 남편인 마티아스와 페르디난트 2세는 사촌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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