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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왕국 신라
김기흥 지음 / 창비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2000년 출간된 책이니 벌써 20년 전에 나온 책이구나.
세월이 참 빠르다.
이 당시만 해도 책을 사서 읽을 때였나 책꽂이에 있길래 정말 오랜만에 재독을 하게 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도서관이 휴관이라 할 수 없이 집에 있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의외로 흥미로운 책들이 많아 3월 한 달은 도서관에 안 가고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줄 긋는 거 싫어하는데 이 때는 참 열심히도 메모하고 밑줄 그으면서 읽었구나 싶다.
그 당시만 해도 역사학 전공도 아니고 신라에 대해 거의 모를 때라 공부하듯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재독이고 300 페이지 정도라 금방 끝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간이 꽤 걸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이 다르고 금석문의 해석이 알고 있던 상식과 달라 확인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1. 제일 의아한 점은 울주 천전리 서석의 명문 해석이다.
사부지 갈문왕과 처음에 계곡으로 놀러왔던 이가 누이와 어사추안랑이라고 나온다.
저자는 누이가 바로 훗날 다시 와서 추명으로 기록에 남은 지몰시혜비, 즉 법흥왕의 딸이자 사부지 갈문왕의 부인이며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라고 설명한다.
어사추안랑은 법흥왕의 아들인데 추명 기록시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다른 책에서는 처음 원명에 기록된 어사추안랑이 법흥왕의 아들이 아니라 사부지 갈문왕의 누이, 즉 지몰시혜비 보다 먼저 결혼한 첫번째 부인이 어사추안랑이라고 나온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전부 어사추안랑을 사부지 갈문왕의 죽은 첫 아내로 해석한다.
사부지 갈문왕이 두 번째 서석을 방문했을 때 죽은 지몰시혜비를 그리워 했기 때문에 그녀는 아들인 심맥부, 즉 진흥왕이 즉위하기 전에 이미 사망했고 섭정은 그녀의 어머니, 즉 법흥왕의 왕비인 부걸지비, 곧 보도부인이 했다는 것이다.
지소부인은 왕의 어머니이지만 왕비가 아니었기 때문에 태후가 될 수 없고 섭정은 법흥왕비였다는 것이다.
보통 지소태후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부분이 정말 의아하다.
2. 저자는 진지왕이 폐위 후 도화녀와 관계해 낳은 아들 비형랑이 바로 김춘추의 아버지인 용춘이라고 본다.
이 주장도 여기서 처음 접해 학계에서 받아들여진 학설인지 궁금하다.
또 가야에서 투항한 김유신 가문을 신김씨로 따로 구분했다고 하는데 엊그제 읽은 책에서는 신김씨라는 말이 기록된 <봉림사진경대사탑비> 의 주인공 심희의 부친 관직이 낮은 것과 세계 등을 종합할 때 김유신과는 다른 계통의 금관가야 후손들을 지칭하는 성씨였다고 주장한다.
어떤 게 맞는 말인지 궁금하다.
신라 천 년의 역사를 전부 기록할 수 없으므로 통일이라는 업적을 이룬 가장 핵심적인 시기, 중고기에 초점을 맞춰 역동적인 신라 사회를 잘 설명해주는 좋은 책이다.
특히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비로소 생기게 된 계기가 된 신라 통일의 의의를 정확히 짚어 주고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오류>
85p
이듬해에는 금관가야의 왕이 양국 왕실간의 결혼을 청하매 이찬 비조부의 동생을 보내 결혼케 하여 이후 금관가야와의 화친을 적극 도무하였다.
-> 이게 오류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찬 비조부의 동생과 혼인한 이는 금관가야가 아니라 대가야의 이뇌왕이고 그 아들이 바로 월광태자로 알고 있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