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반의 역사 - 역사는 그들을 역모자라 불렀다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2001년도 책이면 심지어 내가 대학도 졸업하기 전에 나온 책이구나.

아빠 책장에 있던 책인데 드디어 읽게 됐다. 

젊은 학자들이 필자라 신분이 강사인데 지금은 다들 대학 교수로 있는 분들이라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앞의 삼국시대 부분은 알려진 사료들이 적어서 그런가 좀 지루했고 고려사가 젤 재밌었다.

삼별초의 난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공민왕은 왜 개혁에 실패하고 살해당했나?

무신정권의 성격은 어떠한가? 

고려 시대는 조선에 비해 훨씬 덜 알려져서인지 흥미롭게 읽었다.

책에 나온 것처럼 한때 삼별초를 몽골 항쟁의 상징으로 여겼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최씨 정권의 사병 집단으로 평가절하된 것 같다.

무인정권 역시 한때는 신분제가 동요되고 하층민이 출세할 수 있었던 역동적인 시기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았던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사회 변혁을 위한 비전이 없었고 결국은 일인군사독재에 지나지 않았음을 명시한다.

신돈 등을 통해 나라를 개혁해 보려고 했지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후사를 이으려 하다가 결국은 잔인하게 살해당한 공민왕.

노국공주가 원나라와 권문세족을 막아주는 이렇게 중요한 후원자였는지 미처 몰랐다.

후사 문제는 혈통으로 이어지는 왕조 국가에서 언제나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조사의, 이징옥이나 이시애, 정여립, 이괄, 이인좌, 홍경래 등 조선시대 모반을 정리한 부분도 재밌었다.

조사의의 난은 결국 아버지 태조가 아들 태종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셈이니 아버지에게 인정받지도 못하고 아버지를 상대로 싸워야 했던 아들의 참담한 심정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오류>

87p

이때 사숙태후의 다른 아들인 계림공 희는 이자의의 모반을 눈치채고 소태보 등과 함께 이자의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숙종이다.

-> 숙종은 인예왕후의 아들이고, 사숙태후는 형인 선종의 아내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아니라 시동생이다.

191p

이러한 상황은 이징옥이 반란을 일으킨 1353년까지 변함이 없었다.

-> 이징옥의 반란은 1453년에 일어났다.

229p

1575년 11월 2일 생원 양천회는 상소를 올려 조정에 있는 이발, 이길, 백유양, 정언신, 정언지 등이 정여립과 결탁된 인물이므로 죄줄 것을 청하였는데

-> 양천회가 상소를 올린 시기는 1575년이 아니라 1589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도교의 탄생 - 역사학의 눈으로 본 원시 그리스도교의 역사 역사도서관 16
정기문 지음 / 길(도서출판)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언제 샀던 책일까?

아빠 책인가?

산 기억이 전혀 안 난다.

2016년 출간된 책이면 나온지 얼마 안 된 책인데.

저자를 보니 요즘 재밌는 역사책 많이 내는 정기문 교수라 기대감을 많이 갖고 읽게 됐다.

330 페이지 정도로 짧은 분량이지만 역서가 아니기 때문에 가독성이 뛰어나고 종교적 관점이 아닌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탄생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그럼에도 100%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기독교의 탄생이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유대교라는 민족종교로부터 분리되어 보편적인 종교로 발전했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명료한 과정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인류의 탄생이 직선상으로 연결되는 계보가 아니고 수많은 가지치기를 통해 오늘날의 현생인류로 발전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이해한 부분과 의문들

1) 예수는 곧 종말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와 바울로는 죽는 순간까지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새 종교를 창시한 혁명가가 아니라 유대교의 갱신을 바라는 개혁자들이었다.

바울로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방인의 선교를 주장했지만 과연 그는 예수가 단순히 메시아가 아니라 신이라고 믿었을까?

내가 책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이 부분을 명확히 모르겠다.

바울로는 예수가 신이라는 삼위일체를 주장했는가?

예수는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했는가?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면 삼위일체설은 훨씬 나중에 교부들에 의해 성립된 신학인가?


2) 유대교는 오직 유대인만의 종교가 아니었다.

저자는 바빌론 유수 이후 고대 유대민족은 사라졌고 페르시아에서 다시 귀환하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여 여러 이방인이 존재하는 새로운 유대교가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생각해 보면 상식적으로도 그렇게 오랜 시간 디아스포라를 겪고 있었으니 민족의 융합은 너무 당연하다.

마카베오의 반란 등을 거치면서 예수가 탄생할 무렵에 모세 시절과는 다른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유대교가 성립됐고 그들은 요즘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방인들을 받아들였고 신약에서 예수가 설파한대로 똑같이 사랑의 정신을 강조했다.

바리새이파들은 복잡한 율법의 규정들을 유대인들이 현실에서 잘 적용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 즉 안내자였지 그들을 율법으로만 억압하려고 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예수가 새 종교를 창시한 혁명가가 아니라 유대교를 새롭게 일신하려는 개혁가였다고 주장한다.


3) 그렇다면 왜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가 분리되어 새로운 종교가 탄생했을까?

저자의 기술 범위가 기원후 70년까지, 즉 예수가 죽고 바울로가 선교하러 다니던 1세기 무렵이라 그 후의 기독교 성립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아 아쉽다.

베드로와 야고보 등은 이방인들이 반드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할례당, 즉 기존의 율법을 지키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힘이 셌기 때문에 적당히 현실적으로 타협하려고 했다.

그러나 바울로는 여기에 정면으로 반박했고 할례당의 공격으로 결국 예루살렘에서 순교하고 만다.

당시 유대 민족주의가 힘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율법 없는 믿음을 설파하는 바울로는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바울로의 사망 이후 그의 사상은 소멸될 뻔 했으나 역사는 로마에 의해 할례당들을 전멸시키고 만다.

로마의 공격에 유대인이 몰살당하고 나서 다시 그리스도교가 재건될 때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긴 바울로의 사상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사도의 초기 저서는 거의 바울로의 편지들 뿐이었고 또 기존의 민족주의 유대인들이 로마에 의해 몰살당했으므로 이방인의 선교를 주장한 바울로의 사상이 주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는 그리스도교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무척 의미있는 시간이었고 신앙인이라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음 책은 예수는 언제 신이 되었나는 주제로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여러 근거를 각주로 성실하게 첨부하고 있어 신뢰도는 높아지지만 어쩔 수 없이 전개가 산만한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유대교에서 분리되려는 초기 기독교의 시작에 대해 너무나 흥미롭고 성실하게 잘 설명하고 있는 좋은 저작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넷 2020-03-10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했었는데, 이사할때 정리 해버린 책이네요.

이미 당시에 정리할때도 기준에 따라 제외가 되었던 책이라 재구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안들지만 그래도 리뷰를 읽으니, 한번 읽었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marine 2020-03-10 17:17   좋아요 0 | URL
이 분이 글을 재밌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벌써 품절인거 보면 책이 생각보다 금방 시장에서 사라지는 듯 합니다.
 
중국회화산책
왕야오팅 지음, 오영삼 옮김 / 아름나무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이상하게 산 책은 안 읽게 된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 기한 때문에 강제 독서가 되는데 구입한 책은 언제라도 읽을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 때문인지 항상 책꽂이에 꽂혀만 있다.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 못 간 기념으로 집에 있는 책들을 읽고 있는데 이 책도 구입한지 몇 년 된 것 같다.

알라딘에서만 보고 소장 가치가 있겠다 싶어서 구입했는데 막상 받아 보니 의외로 분량이 작아 약간 실망했었다.

200 페이지 정도로 얇은데 대신 도판이 아주 훌륭하다.

저자가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에서 근무하는 학예사인 것 같은데 본문에서 밝힌 바대로 요즘은 도판 기술이 아주 좋아져 중국 회화를 책으로도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번역도 매끄럽고 중국회화사를 지루하지 않게 작품에 초점을 맞춰 이론과 감상 포인트를 설명하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제목만 좀더 임팩트 있게 바꾸면 훨씬 많이 팔릴 것 같다.

표지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중국회화는 간단히 말해 입체감과 색채를 추구한 서양화와는 달리, 선묘 중심의 수묵화가 주를 이루었다.

서양화가 그림 그 자체만으로 예술의 한 분야가 됐던 반면, 중국화는 문인화라는 아마추어 화가들이 주를 이루면서 시서화가 하나로 묶어져 순수회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당대 이전까지는 중국도 평면적이긴 해도 색채화 위주였다고 한다.

그 후 문인화가 발전하면서 그림에 시와 글씨를 곁들이면서 일종의 높은 인격적 경지를 표현하는 수준으로 발전해 단색의 선묘를 추구하는 수묵화가 발전하게 됐다.

단순히 안료의 발전이 더디기 때문인가 했는데 추구하는 예술의 경지가 달랐던 셈이다.

한자가 궁극적으로는 상형문자이므로 회화적 요소가 강해 그림과 결합하여 독특한 형식이 만들어진 것 같다.

동양화의 산수화라고 하면 실경 보다는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그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옛 화가들은 자연 환경을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하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천 년 전에 그려진 송대의 황산과 오늘날 실제 사진을 보면 아 바로 여기를 그렸구나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황하에 있었던 북송의 산수화와 강남으로 이주한 후 남송의 산수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던 것이다.

화가로도 유명한 송의 휘종은 전문 화원을 설립해 전문적인 그림 교육 뿐 아니라 이론의 배경이 되는 유교 경전도 학습시켰으며 화원들의 대우도 훌륭해서 좋은 화가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역시 기술만 가지고는 안 되고 이론적인 무장과 사회적 대우가 함께 이루어져야 격이 높아지는 것 같다.

필요에 의한 공예품에서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예술로 발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원대에는 한인들의 정치 참여가 금지되자 예술로써 응어리를 풀다 보니 문인화가 더욱 발전하게 된다.

명과 청의 회화는 단순한 아마추어적 문인화를 넘어서 서양화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 채색이나 입체감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세련된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양주팔괴의 개성있고 화려한 그림들도 과연 이래서 怪 라고 표현했구나 수긍이 갈 정도로 기존의 문인화와는 느낌이 다르다.

회화라고 하면 당연히 서양화가 먼저 떠오르는데 중국 전통 회화의 발전 과정도 정말 흥미롭고 천 년 전의 송대 그림이 여전히 전해져 내려오는 걸 보면 과연 대단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문명의 나라구나 싶다.


<오류>

61p

오대 양의 원제가 쓴 <산수송석격>에는 

-> 양나라 원제 소역은 오대가 아니라 남북조 시대 사람이다.

126p

춘추전국시대 (기원전 1121~255) 청동기의 디자인이나 장식문양에는

->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70년부터 221년까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덕일의 여인열전 - 보급판, 반양장본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래 전에 나온 책인가 보다.

아빠 책장에 있길래 읽게 됐다.

2003년 출간된 책이니 직장 생활 막 시작했을 때 봤었나 보다.

이덕일씨 역사관, 특히 조선 왕들 독살설이라는 음모론 때문에 싫어하지만 사료 분석은 꼼꼼하게 잘 하고 이야기꾼의 재주가 좋은 작가 같다.

500 페이지나 되는 긴 분량인데도 재밌게 잘 읽힌다.

거의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정리하는 기분으로 읽으니 새삼 흥미롭다.

남존여비의 시대에 양반가 여식으로 태어나 충분히 성리학적 학문 능력이 있음에도 마음껏 펼치지 못했던 허난설헌이나 임윤지당 같은 재능있는 여성들의 삶이 안타깝다.

허난설헌은 자식도 없이 일찍 죽었으나 남동생 허균이 문집을 모아 세상에 전했고 심지어 중국에까지 알려졌고, 임윤지당 역시 70대까지 장수했으나 시집온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청상과부가 되어 자식도 잃었으나 남동생과 시동생이 유고를 출간해 주어 역사에 이름을 남겼으니 가족 복이 많아 다행스럽다.

일관되게 저자가 비난에 마지 않는 혜경궁 역시 성리학적 저작은 아니지만 불행한 왕실의 삶을 생생하게 글로 남긴 것을 보면 문학적 소양이 뛰어났을 듯하다.

여성들의 저작이나 수필도 적극적으로 출간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얼마나 역사가 풍부해졌을까 아쉬운 대목이다.

신유박해 때 순교한 강완숙이나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의 삶도 인상적으로 읽었다.

화랑세기의 위서 여부는 알고 있었지만 미실을 중심으로 다시 읽으니 역시나 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 구절>

468p

대개 중인 출신들이 맡았던 남성 의관들은 내의원 수장인 내의원정이 정3품의 고위직을 받았으나 의녀들은 조선 멸망 때까지 천역으로 취급되었는데, 이에는 천류들로 선발되었던 것과 일부 기생의 역할을 병행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개화 이후에도 양가 여성들이 간호사가 되기를 꺼렸던 것은 이처럼 천류가 선발되는 직책이었던 점과 기생의 역할을 함께 수행했던 관습 때문이었다.



<오류>

37p

이 목격담은 소현세자의 생모 인열왕후의 서제(庶弟)인 진원군 이세완의 아내가 내척의 자격으로 세자의 염습에 참여했다가~

-> 이세완의 아내는 인열왕후의 여동생으로 서제, 즉 첩의 자식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1637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함락될 무렵, 시아주버니 상원군이 죽자 시어머니와 그 아내가 자결했고 그 때 함께 따라 죽어 정려문이 세워졌다. 그러므로 소현세자의 장례식에 참여한 것은 이세완의 아내가 아니라 이세완 본인이다.

56p

장경왕후의 아우 윤임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이 대윤이고

-> 윤임은 장경왕후의 오빠이다.

86p

남편 의경세자가 세조 3년(1457) 만 18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 의경세자는 1438년생으로 만 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88p

한씨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은 한명회의 사위였다. 한씨는 서슴없이 만 15세였던 장남 월산군을 버리고 동생 자을산군을 선택했다. 한명회는 예종의 장인이기도 했으나 세 살짜리 손자 대신 열 두 살짜리 사위 자을산군을 선택했다.

-> 월산군은 1455년생이고 자을산군은 1457년생이다. 성종이 즉위하던 1469년에 월산군은 만으로 14세였고 성종은 만으로 12세, 우리나이로 13세였다. 또 한명회가 예종의 장인이긴 하나 아들인 제안대군은 한명회의 딸 장순왕후 소생이 아니라 계비인 안순왕후 소생이므로 조손 관계도 아니다.

90p

공혜왕후 한씨가 1474년 열여섯의 나이로 후사 없이 사망하고

-> 공혜왕후는 1456년생으로 열 아홉의 나이로 사망했다.

98p

윤씨가 죽을 때 연산군은 만 세 살이었다.

-> 폐비 윤씨는 1479년에 쫓겨났고, 1482년에 사사되었다. 

연산군이 1476년생이므로 어머니가 쫓겨날 때 만 3세였고, 사사될 때 만 6세다.

104p

김창국은 서인 김수항의 아들이었다.

-> 김창국은 김수항의 형인 김수증의 아들이다.

287p

고려인 기자오의 막내딸(?~1565)이 원나라에 바쳐지는 공녀로 결정되었을 때

-> 기황후는 1315~1369년생이다.

345p

이들은 사돈 관계로 얽혀 있었는데 정약용의 어머니는 이가환의 누이이며, 이승훈의 아내는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의 딸로서 이승훈과 정약용 형제는 처남 매부 사이가 된다.

-> 정약용의 어머니는 윤두서의 손녀이고, 이승훈의 외삼촌이 이가환이다.

363p

이광은 헌종 10년(1844)에 발생한 '민진용의 옥사'와 관련해 큰아들 원경이 사형당하는 비극을 다시 보았고, 같은 해 그도 죽고 말았다.

-> 전계대원군 이광은 1841년에 먼저 사망했다.

486p

그의 사업을 열심히 후원했던 염석주가 장례위원장을 맡아 진행된 사회장에서 최용신의 아주머니인 최직순은

-> 최직순은 최용신의 아주머니가 아니라 친고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 -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기행- 유럽편
권삼윤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6월
평점 :
품절


1999년에 나온 책이라니, 정말 오래 됐구나.

아빠 책장에 있던 책인데, 두브로브니크라는 도시 이름도 발음이 안 돼서 봐야지 하다가 드디어 읽게 됐다.

너무 옛날 책이라 시의성에 다소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지중해 주변 나라 소개가 괜찮은 좋은 여행 에세이다.

무엇보다 사진이 너무 선명하다.

흑백이 더 많아 정말 옛날책이구나 싶긴 한데 컬러 사진의 색감은 진짜 선명하고 훌륭하다.

개정판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유명 관광지만 가는 게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들 위주로 가서 더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의 암각화 계곡인 발카모니카 지역이라던가, 몰타 섬의 간티야 거석 유적지, 불가리아 카잔주크의 트라키아 왕묘군,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호수 근처의 교회들, 이런 의미있는 문화유산 소개가 개성있고 참 유익하다.

오히려 책의 제목인 두브로브니크는 로마 시대부터 휴양지 정도로 짧게 넘어갔고 발칸 반도 역사를 곁들여 좋았다.

여행 컨셉을 세계문화유산 탐방으로 잡아도 참 좋을 것 같다.


<오류>

251p

우리가 '지혜의 인간'이라 보르는 크로마뇽인이 앉아 있었다.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이 괴상한 존재가 아름다운 벽화를 그렸다는 설명을 들으며 인류는 진화한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생물학적 진화는 의식의 진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단 말인가.

-> 크로마뇽인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현생인류이다. 크로마뇽인에서 현생인류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곧 우리와 똑같은 사람 종이기 때문에 당연히 의식도 우리와 같고 예술적 감수성도 이렇게 풍부한 것이다. 

300p

그렇다면 소수의 귀족들만 즐기던 홍차가 어떻게 해서 국민적 음료가 되었을까.

 첫 번째 계기는 네덜란드 출신의 메리 2세 여왕의 등극으로 이루어졌다. 그녀가 친정인 네덜란드 왕실의 차 마시는 풍습과 함께 일본, 중국산 고급 찻잔을 영국 귀족 사회에 소개하자~

-> 메리 2세는 제임스 2세의 딸로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 즉 윌리엄 3세에게 시집갔다. 그 후 명예혁명으로 아버지가 쫓겨나자 남편과 함께 다시 영국으로 와 메리 2세로 등극한 것이다. 그녀의 친정이 바로 영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