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2
이태하 지음 / 책세상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2006년도에 두 번 읽었다고 책 앞장에 기록되어 있다.
13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인데 책 곳곳에 밑줄과 나의 생각들을 메모한 흔적이 있어 굉장히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기독교인에서 무신론자로 바뀌는 과정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으면서 무신론자가 됐는데 (더불어 과학이 단순히 학문이라기 보다는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고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찾아가는 다른 의미의 "진리"라고 생각하게 됐다. 과학만능주의 이런 식의 말장난으로 가볍게 지칭할 수 없고, 자연철학이라고 해두자) 여전히 종교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즉 죽음이라는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더불어 근본주의적 신앙을 갖고 있는 엄마의 눈물어린 전도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의 유익성에 대해서라면 엄마의 경우 충분히 공감이 된다.
윤치호의 일기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내가 기독교인인 이유는, 기독교를 믿는 서구 사회가 잘 살고 현재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 공감하는 바다.
엄마를 보면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 왔으면서도 인격적으로 너무나 훌륭하고 타의 모범이 되고 무엇보다 본인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내적 충만감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믿음을 타인에게, 특히 가족처럼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까운 이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 책처럼 철학적 관점 정도의 전도라면 귀기울여 볼만 한데, 지구 6천년 설을 믿고 진화론을 부정하고 종말이 살아 생전에 올 것이라고 믿는, 이단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항상 기독교의 끈을 놓지 못하고 인격적 신의 부재를 확신하는 내 믿음이 올바른 것인지 회의적인 관점에서 돌아보게 된다.
이 책에서도 신의 존재를 딱히 철학적으로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한다.
사실 합리적인 이성으로 논증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우주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으므로 혹시라도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도박 논증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도 항상 얘기한다.
죽어서 혹시라도 천국과 지옥이 있으면 어떻게 하냐, 밑져야 본전이니 믿어라는 식으로.
그러면 나는 왜 꼭 사후세계가 기독교적 세계라 단정하는가? 신이 정말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기독교적인 형태가 아닐 수도 있지 않는가?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다 이런 식의 반발심이 생긴다.
복잡한 철학적 논증을 거치지 않더라도 선사시대부터 종교라는 제도가 있어 온 걸 보면, 종교심은 인간의 본능이라 생각한다.
마치 양심이나 도덕이 인류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이 있냐 없냐 이런 근본적인 논의보다는, 그것이 과연 반드시 특정 종교의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다.
책에도 가난한 자들을 위한 투쟁이 우선이라고 나온다.
어떤 교리가 옳은지 따지기 보다 (왜냐면 인간의 이성으로 정확히 판단하기 너무나 어려운 주제이므로) 우선 실천적인 측면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이단일수록 보편성에서 벗어나고 극단적으로 신자들을 몰아세워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결국 소멸하게 된다.
제사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조선시대에 종교가 없었던 이유가 바로 조상신을 섬기는 제사, 즉 주자학이 종교를 대신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전 세계적인 보편적 종교로 성장하고 유교는 소멸한 이유가 무엇인가?
보편성, 확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밖의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한 가톨릭은 좀더 보편적으로 열린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종교는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일까?
대체적으로 책의 내용에 공감했으나 사회윤리적인 측면에서 종교의 역할을 강조한 부분은 동의하기 힘들었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고 수많은 이익집단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과연 종교가 그들을 선도할 능력이 되는지 매우 회의적이다.
오히려 어설픈 종교적 입장 표명이 세속과 종교의 분리를 막고 인간의 구원이라는 본질을 훼손시킨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는 개인의 도덕이 의미가 없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임에도 조선시대 때 대명의리론을 주자학적 관점에서 주장했기 때문에 병자호란의 불행을 맞지 않았는가.
현대사회야말로 종교는 자신들의 한계를 인지하고 개인의 구원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의 의미, 신의 존재 등에 대해 생각해 본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