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이슬람
야히야 에머릭 지음, 한상연 옮김 / 삼양미디어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슬람 사회나 문화권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원했는데, 이슬람교의 교리 설명에 치중한 책이다.

저자가 이슬람 교인이라 자신의 종교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근본적인 정신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은 좋지만, 외부의 비판적인 시선은 배제하여 결국은 자기변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테러리즘 때문에 이슬람 교인들이 전 세계의 오해를 받고 특히 9.11 테러로 인해 사회로부터 인권 탄압을 받은 일은 가슴 아프다.

걸프전도 사담 후세인과 미국의 전쟁이었는데도 마치 이슬람 전체와 서구권이 대립하는 이미지라 독재자에 반대했던 주변 이슬람 국가들로서는 억울했을 법하다.

이슬람교는 자신들의 신앙고백처럼 알라, 즉 유일신으로부터 가장 마지막에 계시받은 종교라 그런지 확실히 유대교나 기독교에 비해 합리적이다.

나도 한때 기독교인이었지만 삼위일체, 더 정확히 예수가 과연 신인가, 우리는 원죄를 갖고 태어났는가, 왜 야훼신은 특정 민족하고만 계약을 맺었는가 등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 때문에 죄인으로 태어났고 오직 신의 아들인 예수의 대속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수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원죄를 씻을 수 있었는가?

복음이 전해지지 못한 곳의 사람들은 구원이 불가능한가?

야훼는 전 우주를 관장하는 유일신인데 왜 특정 민족만 선택하여 그들에게만 계시를 내렸는가?

결국 야훼는 유대인들의 민족신이 아닌가?

이슬람은 이런 기독교 교리의 모순을 말끔히 해소하여 단순명료하게 천명한다.

신은 오직 알라 뿐이고 특정 민족하고 계약 따위를 맺지 않는다.

이슬람도 그저 알라를 믿는 민족일 뿐 특별하게 선택받지 않았다.

야훼와 알라는 결국 같은 개념의 유일신이고 유대인과 기독교인도 같은 신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알라는 대속할 아들이 필요없고 오직 인간이 자신을 믿고 최후의 심판일에 그 행동에 따라 구원 여부를 결정할 뿐이다.

인간은 원죄 같은 것 없이 그냥 무의 상태로 태어나 자유 의지에 따라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책임을 지고 마지막 날에 알라의 심판을 받을 뿐이다.

무함마드는 예수 같은 신이 아니고 최후로 알라의 계시를 전하는 선지자일 뿐이다.

다만 그 후로 다른 계시자는 없고 이것을 신앙고백으로 매일 외운다.

이슬람은 교회 밖의 구원을 인정하는가?

가톨릭에서는 그렇다고 알고 있고, 개신교에서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오기 전까지의 선지자들, 이를테면 모세나 예수, 심지어 석가모니, 조로아스터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의 지도자들도 알라의 계시를 전하는 사람으로 인정한다.

다만 무함마드는 마지막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이슬람이 가장 알라의 계시를 정확하게 유일하게 전달하므로 이슬람 외의 새로운 종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와는 달리 강제 개종을 하지 않는 이유가 이런 까닭인 모양이다.

이런 점은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이슬람의 교리 자체는 명확하고 직관적이라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

그러나 종교와 세속의 삶이 분리되지 않은 현재의 이슬람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서구의 기독교는 국가와 완전히 분리되어 심지어 문화마저 지배하지 못하고 그저 매우 개인적인 신앙 생활을 이룰 뿐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여전히 거대한 국가 권력이고 법적인 처벌권을 갖고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여성의 복장마저 규제하는 이슬람을 21세기에 보편적인 종교로 수용하기는 매우 어려운 듯하다.

저자는 이슬람의 여성 차별에 대해 오히려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도임을 강조하나, 여성이든 남성이든 다른 사람의 보호가 필요없고 오직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똑같이 대우해주길 바랄 뿐이다.

군인이나 경찰을 뽑을 때도 기준에 맞는 사람을 뽑으면 되지 남자 여자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법고시나 의사고시, 공무원 시험 등을 볼 때 남녀 구분을 안 하는 것처럼 군인이나 경찰도 마찬가지로 해당 직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뽑으면 된다.

공평한 기회가 필요할 뿐 특별한 배려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줄곧 이 책에서는 여성을 배려해야 할 약자로 취급해서 남성과 똑같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존재로 한정짓는다.

요즘의 여성할당제 역시 여성을 보호해야 할 존재로 여기고 있다.

순종하지 않는 아내를 때리라고 한 것은 정도가 매우 심할 때에 한정되는 것일 뿐이라는 해석은 얼마나 황당한가.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족의 부양은 오직 남성에게만 한정된 것이므로 여성을 보호한다는 관습들도 결국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정을 이룬 성인은 당연히 가족을 부양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고 종교적 교리를 세속의 법에 적용하고 있는 이슬람을 긍정하기가 힘들다.

기독교 교리도 많은 모순이 있겠으나 서구권은 이미 종교가 세속국가로부터 분리되어 개인의 영역에서만 기능하고 있지만 이슬람은 여전히 국가와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어 21세기의 보편적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고대 도교
장인성 지음 / 서경문화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도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의 도교문화"를 본 이후부터다.

아쉽게도 그 때 도록은 못 샀던 것 같고 나중에 정재서 교수의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책에서는 조선 시대 선비들 중 도교를 추구했던 사람들, 이를테면 김시습 같은 단학파가 소개됐고 이 책에서는 삼국시대에 포커스를 맞췄다.

삼국 시대 역사 이야기가 있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도교가 반드시 중국에서 시작된 토착 종교라 할 수 없고 샤머니즘, 산악숭배, 조류숭배 등의 특징을 동북아시아에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생적 요소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저런 무속 신앙은 너무나 보편적인 전통적 신앙이라 신선을 추구하는 중국의 도교라는 종교적 형식과는 별개인 듯하다.

도를 추구하여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된다는 개념 자체가 중국에서 체계화된 도교의 특성이라 생각된다.

샤머니즘, 특히 산신을 숭배하는 것이 도교인가?

오히려 도교가 들어와 샤머니즘과 융합된 것은 아닐까?

사극을 보면 주문을 외워 사람을 저주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런 呪禁 이 바로 도교 의식 중 하나라고 한다.

막연히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찔렀던 것이 아니라 나름의 종교적 체계가 있는 행위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이런 주금을 엄금하고 극형에 처하기도 했다.

고구려가 당으로부터 도교를 받아들인 것은 연개소문 이전의 영류왕 때라고 한다.

당나라는 불교가 성행한 나라라 생각했는데 국초에는 도교를 가장 중요시하고 주변 국가에 퍼뜨렸다.

무위지치, 혼란에 빠졌던 백성들을 위무하기 위해 다스림을 최소화 하는 정치를 펼쳤던 것이다.

고구려의 영류왕은 당의 도사를 받아들여 도교를 정권의 안정에 이용한다.

도교는 연개소문 시기에 성행했지만 그 이전에 당과의 원만한 외교관계를 위해서, 또 통치에 이용하기 위해 영류왕이 먼저 청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도교는 백제에서도 성행했다.

저자는 궁남지나 월지 같은 연못과 그 위의 누각을 전부 도교적 요소라고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좀 의아하다.

신라는 불교가 융성했으나 화랑도의 풍류를 도교적 요소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국 도교의 비조라는 최치원이 당에서 모신 절도사 고변이 바로 도교 신봉자였다.

당에서는 도교가 매우 성행했고 최치원이 그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도교적 색채를 풍겼으나 신라로 돌아온 후로는 신선이 되어 속세를 떠나기 보다 제세구민을 추구하는 불교와 유학을 더 강조했다고 한다.

확실히 삼국시대는 호국불교가 기본 이데올로기였으나 중국의 영향과 무속 신앙 등이 합해져 도교적 색채도 많이 남아 있었던 듯하다.

신선이 되기 위해 광물질을 갈아 만든 단약을 복용하다가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약초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서양의 연금술사 같은 개념이었나 보다.

도교 자체의 내용도 재밌지만 삼국시대 도교의 흔적을 찾아가는 역사 이야기가 흥미로운 책이다.


<오류>

134p

무왕 이전의 왕위계승을 보면 위덕왕이 장기간 집권한 후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혜왕이 즉위하여 재위 2년 만에 사망했고

-> 일본서기에 따르면 혜왕은 위덕왕의 동생, 즉 성왕의 아들로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한글의 역사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4
김주원 지음 / 민음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음운학은 어려운 것 같다.

다른 글자도 아니고 한글인데도 쉽게 와 닿지가 않는다.

저자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 중 하나로 애민정신을 들고 있는데, 서양 학자의 평가처럼 문맹을 혁파하려는 근대인적 사고방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성리학적 인간을 교화시키려는 노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리석은 백성이 글자를 알면 오히려 교활해지고 법을 이용하려 들 것이라는 당시 높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교화시키면 좋은 심성을 가진 백성이 될 것이라는 의도는 매우 획기적이고 앞서가는 사고이긴 하다.

또 단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쉽게 표음문자를 만들 수 없는 일이니 과연 놀라운 언어학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요즘 쓰는 용어인 근대인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세종은 백성을 교화시켜 성리학적인 인간을 만들고, 또 중국과의 사대 외교를 잘 시행하기 위한 두번째 목적도 한글 창제의 큰 동기였을 것이다.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를 읽을 때, 중국어를 정확히 표기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갔는데 이 책을 읽어 보니 과연 외교 문서를 격식에 맞게 정확히 작성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도 매우 중요했던 듯하다.

요즘 생각하는 외교 의전 문제 정도가 아니라 사대는 건국된지 얼마 안 된 조선의 존망이 달린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최만리 등도 이런 걱정 때문에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점도 컸으리라고, 저자는 공정하게 평가해 준다.

반대하는 신하들은 同文同軌, 즉 중국과 같은 글과 법도를 쓰는 한 문화권이기 때문에 중화 문명의 밖에 있는 오랑캐처럼 따로 글자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성리학과 사대주의를 국시로 삼은 신생국가 조선의 엘리트층으로서는 주장할 만한 논리였다.

이런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 창제를 강행했다는 점도 세종 친제설의 간접 증거이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한글 창제를 위해 요동에 여러 차례 갔다는 것도 한글 창제 이후의 일로, 한자음의 정확한 정비를 위함이었다.

한글 창제 당시 집현전 학자들의 나이가 겨우 20대 초반이었다는 점도 협찬설 보다는 친제설 쪽에 무게가 실린다.

과연 세종은 대단한 언어학자였던 것 같다.

파스파 문자와의 유사성 등이 지적되는데, 기본적으로 한글은 네모난 형상을 지닌 문자이므로 자형이 비슷한 것은 당연하지만 발성기관을 본땄다는 점에서 창제 원리가 다르고, 중성의 모음표기 아이디어가 비슷할 수 있는데 당시 존재하던 모든 문자에 대한 연구 성과가 더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한다.

한글의 위대함을 역설하는데 그치지 않고 창제 당시의 상황과 다른 여러 표음문자와의 관계 등을 함께 설명해 줘서 새롭게 한글의 창제 과정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동물 소리도 다 표기할 수 있다는 정인지의 서문에 대해, 이는 모든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는 완벽한 문자라는 뜻이 아니라, 표의문자와는 다르게 아무 뜻이 없는 소리도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표음문자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고 정확히 지적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자연의 소리는 '음향'이기 때문에 각 나라마다 비슷하게 글자로 표현하는 것이니 특별히 어떤 문자만 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류>

196p

세조가 북경에 사은사로 가면서 동생인 임응대군에게 보낸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임응대군이 아니라 임영대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 - 역사학자 4인의 문명 비교 탐사기
박한제 외 지음 / 사계절 / 200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에 나온 책인데 재독하게 됐다.

2012년도에 쓴 리뷰가 있는 걸 보니 벌써 8년이 지났고 거의 기억이 안 난다.

한국일보에 답사기 식으로 네 명의 전공이 다른 분야 교수들이 주제별로 짧은 글을 쓰는 방식이 독특하다.

대표 저자가 서문에 밝힌대로 네 사람의 의견이나 관점이 조금씩 다른 것 같아 신선하면서도 통일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특히 서양사를 전공한 최갑수 교수의 유럽 상대주의 관점은 관념적이고 당위적인 느낌이라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서양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거기에 대항하는 동양 사관을 인위적으로 만든 느낌이랄까?

몽골의 초원에 아무렇게 서 있는 톤육쿡 비석을 보고 자유로움을 느꼈는데 프랑스의 유적지에 루이 9세의 십자군 출정 경로가 상세히 써있는 안내판을 보니 국가의 억압이 느껴져 불편했다는 식의 기술에 거부감이 들었다.

역사적 유적은 후손들이 가꾸고 의미 부여를 하고 열심히 알려야 존재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저자는 또 유럽이 대항해에 나설 수 있었던 까닭은 단순히 항해술이 발달하고 모험심이 커서가 아니라 부족한 게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갔다고 한다.

어제 읽은 박지향 교수의 책에 의하면 항해술이 발달하고 배를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 되야 비로소 해양 진출이 가능한 것이고, 또 사회가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분위기인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과학혁명과 시민사회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자는 간과하는 것 같다.

동양이나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은 물자가 풍부해서 전통 사회에 만족했고 서양이 자기들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무역을 시작한 것인가?

너무 도식적인 설명이라 공감이 어려웠다.

다만 왜 서양이 근대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느냐의 원인으로 만성적인 춘추전국 시대 상태로 서로 경쟁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에는 공감이 간다.

중국이 거대한 정치체를 너무 일찍 이룬 것은 지나친 안정성으로 자극이 적어 성장의 기회를 놓친 것인가?

이 책에서는 팍스 몽골리카를 굉장히 강조하는데 150여 년 만에 사라진 것은 그만큼 체제의 안정성이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의 정화 원정이 서양의 대항해와는 달리 단순히 조공국을 늘리고 중화주의를 널리 알리기 위한 비경제적 목적이었다는 박한제 교수의 분석에 동의한다.

그래서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시베리아 유형지에 관한 책을 쓴 한정숙 교수의 러시아와 몽골 관련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러시아는 유럽에 속하면서도 우랄 산맥 너머로 동진하면서 시베리아를 영토에 넣고 몽골 타타르의 압제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동양 문화와 동양식 전제정을 함께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 속의 동양 느낌이 남아있는 듯하고 표트르 1세의 개혁으로 친서구화 정책이 강해졌지만 근대정신 보다는 기술 쪽에 중점을 둔 실용적 변화였으므로 여전히 서양과는 구별되는 역사를 가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국의 품격 -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박지향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국의 품격, 제목에서부터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이 풍긴다.

좋아하는 필자였는데 어느새 은퇴를 하신 모양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320 페이지의 적당한 분량에 주제의식도 선명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문장으로 쓰여져 금방 읽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학문을 하고 연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옳고 그름을 따지고 도덕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위함일까?

윤리학이나 철학은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역사학의 목적은 결코 포폄에 있지 않고 정말로 그 사회를 발전시키거나 퇴보시켰던 진짜 이유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는 본질이 아닌 것 같다.

식민지 피지배 경험이 있는 나라인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국 제국주의의 긍정성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심적으로 힘들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21세기의 국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저자는 영제국이 스페인 등과는 다른 상업주의 제국이었음을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영국은 무역을 통해 부를 획득하고 자신들의 제품을 팔기 위해 대양으로 나섰고 상인들의 무역활동을 보호해 준 것이 강력한 해군이었다.

섬나라라는 특성상 대륙을 지배하기 보다는 대륙들의 세력 다툼시 균형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국가를 방어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교과서에 영국 하면 고립주의 외교정책이라고 배울 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기본적으로 이들이 영토 획득보다는 무역할 수 있는 시장을 찾았기 때문에 굳이 대륙의 세력 판도에 끼어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편전쟁도 그렇고 인도의 지배도 무역을 원했으나 현지에서 거부하자 지배 개념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지배가 목적이 아니었고 고대의 로마 제국처럼 영토를 넓히고자 했으면 해군이 아닌 육군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유무역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넓히길 원했던 그들이 전 세계 영토의 1/4를 가진 제국을 거듭나게 된 것은 책에 의하면 산업혁명 덕분에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술과 생산량이 최고조에 이르러 압도적인 차이로 주변국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국의 유지에는 돈과 인력이 많이 든다.

특히 인도처럼 거대한 땅덩어리를 영국의 인구로 직접 통치하기란 불가능했으므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현지인들의 협조를 얻은 간접통치 형태를 띠었다.

이 제국의 비효율성이 커지자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은 2차 대전 후 미련없이 떠나 버린다.

저자는 영국이 세계 역사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바로, 의회민주주의, 개인의 자유, 근면성실한 기독교적 윤리관, 노예제 폐지, 법치주의, 과학 기술을 중시하는 실용적인 지적 풍토, 사유재산권 보장 등을 든다.

이것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식민지가 바로 미국이다.

항상 궁금했던 점이 왜 같은 유럽의 식민지였는데 미국과 캐나다는 잘 살고 남미는 못 사는 것일까였다.

다른 책에서 영국과 스페인의 통치 스타일 차이였다고 하는데 확실히 공감이 간다.

스페인이 지배하는 남미 대륙에는 본국과 똑같은 소수 지주 계층이 지배자로 건너가 구대륙과 같은 불평등하고 구태의연한 사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했느냐는 중요한 문제 같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상인들의 무역을 지지하고 사유재산권과 특허권을 보장해 주고 무엇보다 과학 이론을 실용기술로 바꾸는 지적 풍토가 확립되어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가능해졌다.

저자는 줄곧 자유무역주의가 인류 전체를 부유하게 만든다는 분위기를 띄우는데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반대되는 개념이라 좀더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무역은 소비자들에 더 많은 생활 속의 편리함을 주는 건 맞다.

자본주의 사회의 풍족함은 너무 당연한 현실이니 말이다.

정규재씨가 어떤 토론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누가 가장 이익을 보는가? 대기업인가?

그렇지 않다,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바로 소비자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대기업 체제에서 살아남기가 참 힘든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좋은 품질이 물건을 더 싼 가격에서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맨 마지막 부분에 인종주의와 다문화주의의 갈등에 대해 언급한다.

같은 아시아인도 거부하는 한국인이고 보면 영국의 인종주의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같긴 하다.

손해를 감수하고 도덕적 이상에 부합하게끔 노예제 폐지 운동을 했던 나라도 일상 수준에서 유색인종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문제인 모양이다.

단순히 인종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은 아예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이니 국가의 통합을 위한 정책자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 같긴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