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회사와 한국사 인식
김인걸 지음 / 경인문화사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책이 아니라 집중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비전공자인 나 같은 일반 독자가 보기에는 꽤 수준있는 내용이라 건너 뛰는 부분도 있었고 특히 맨 앞장의 연구 동향이라던가, 3부의 한국 사학의 발전 방향은 쉽게 와 닿지가 않아 대충 넘어갔다.

그렇지만 2부의 향촌 사회 연구는 정말 흥미롭게 읽었고 아주 유익했다.

한번도 조선 시대 지방 사회가 어떻게 다스려졌는지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었고 향촌 사회라는 용어 자체를 거의 처음 접한 듯하다.

막연히 중앙 정계로 진출하지 못하는 재지사족들이 지방에서 토지를 장악하고 평민들을 신분 질서 아래 거느리고 있었다고만 생각해 왔다.

향전이나 향족이라는 용어를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조선은 수령의 평균 재임 기간이 2년 남짓이었기 때문에 지방에 파견되어 마을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고 요즘 공무원들과는 달리 실제 행정 업무를 다뤄 본 경험이 없어 아전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들의 농간이 컸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 통치에 있어 지역 양반들의 협조가 필요했는데 재지사족들 중에서 관청 업무에 참여하는 이들의 조직을 유향소, 즉 향청이라 부르고 좌수나 별감 등의 직임을 부여했다.

처음에는 양반들이 향촌사회를 수령과 함께 성리학적 질서 아래에서 운영해 가는 분위기였으나, 점차 중앙 정계 진출이 좌절되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지면서, 특히 영조 때의 무신란을 계기로 중앙정부에서는 재지사족들을 수령권 아래 통제시키려는 시도가 커진다.

또 사족들은 정부 관리들의 일에 절대 의견을 내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여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으려는 명분론을 중시하면서 점차 향권 장악력이 떨어지게 된다.

16,17세기에는 중앙 관료로의 진출이나 연계점이 존재하여 어느 정도 위세가 가능했으나 18세기로 넘어오면서 실제적으로 향청의 임무를 맡은 향족, 즉 과거를 포기하고 실제적인 업무를 보는 이들의 권세가 커지다가, 19세기에는 더이상 명분론으로 향촌을 장악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다.

거향관, 즉 향촌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족의 자세가 19세기에는 거가관, 가정에서의 윤리로 변화한 것에서 재지사족의 몰락을 볼 수 있다.

결국 조선왕조는 마지막까지 지방을 철저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셈이고 외세에 의한 개방이 아니었다면 근대사회로의 변화는 어려웠을 것 같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중앙으로의 진출은 거의 불가능해지지만 지방의 양반들은 달리 선택할 직임이 없었다는 점이 국가의 불행이었던 것 같다.

농사 이외의 장사나 수공업에 종사하면 곧 체면을 잃어 양반으로서의 지위가 사라져 버리고 농사를 짓는다 해도 노비를 데리고 지어야 체통을 잃지 않으므로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람은 수령권의 강화와 함께 향촌에서의 명망을 잃고 점차 잔반으로 몰락할 수 밖에 없었을 듯하다.

장자에게 귀족의 지위와 재산이 상속되면 차자부터는 상공업에 뛰어든 서양의 사례와 매우 비교되는 대목이다.

유림과 향족의 분리도 실제 행정업무를 보느냐의 차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유향소에서 재지사족이 수령의 업무를 도왔으나 점차 이런 실제적인 일들이 체통을 상하게 한다 여겼던 것 같고 아전들처럼 수령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자 양반들은 이를 거부한다.

대신 향청에서 일을 하게 된 양반들은 향족이 되어 과거도 보지 않고 유림은 이들과 혼인을 맺지 않고 서원에 들이지도 않아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향전은 바로 이 유림과 향족의 향권 다툼이었던 셈이다.

왕권 강화는 곧 수령권 강화로 이어져 19세기에 이르면 더이상 재지사족은 지방 수령과 함께 마을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지 않게 된다.

벌열 가문이 중앙 정계를 독차지 하는 구조가 수백 년 지속되다 보니 지방의 양반들은 서울 세도 가문과는 다른 계층의 사람이 됐던 것 같고 재지사족들의 지위가 전체적으로 하락됐던 듯하다.

그래서 정약용도 아들들에게 서울 근교에 머물라고 강조했던 모양이다.

어렵기도 했지만 재지사족의 향촌 지배 변천사라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넷 2020-05-0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 관련책을 살 때 구입하려던 책인데 다른 지출이 너무 많아서 못 샀던 책이네요 . 양반이란 존재양태가 흥미롭더군요 특히 재지양반들이요

marine 2020-05-06 11:04   좋아요 0 | URL
저도 가넷님 글 보고 관심이 생겨 도서관에 신간 신청하고 읽은 책이랍니다.
저에게는 좀 어려웠지만 향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어 무척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아버지 배좌수가 바로 이런 존재였구나 싶어요.
 
위대하고 찬란한 고대 로마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1
버지니아 L. 캠벨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시리즈는 각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을 소개하는 컨셉인가 보다.

작은 유물들을 크고 선명한 도판으로 보는 즐거움은 있지만 개별적인 유물에 대한 세세한 설명 뿐이라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고, 어쩔 수 없이 지루하다.

그래도 외국 박물관의 도록 번역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지난번 국립중앙박물관의 에트루리아 전에서도 느낀 바지만, 로마 이전의 이탈리아 도시국가가 이렇게 훌륭한 문화를 가진 줄 미처 몰랐다.

이 책에도 기원전 8세기 무렵에 건국된 에트루리아의 유물들이 많이 소개된다.

금세공도 그렇고 조각 전통도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화려하다.

이탈리아는 대리석이 많아서 그런지 조각 전통이 정말 유구한 듯하다.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무덤 앞에 세워진 석상이 전부인 걸 보면 재료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로마 시대로 넘어오면서 회화는 더욱 화려해진다.

오히려 중세 시대 때 종교적 목적에서인지 자연주의적 묘사력이 떨어졌고, 로마 시대 때 관에 그려진 묘주의 초상을 보면 르네상스 시대 그림이라 해도 믿어질 정도로 정말 아름답다.

안료가 풍부해서 이런 화려한 색채감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일까?

대상을 실물과 비슷하게 또 이상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하려는 전통이 고대로부터 있어 왔기에 르네상스 회화의 만개가 가능했던 것 같다.

아우구스투스가 지중해를 장악하고 왕정을 세운 것이 1세기 무렵이니 주몽과 동시대 사람인 셈이다.

주몽은 신화 속의 인물 같고 아우구스투스는 역사속의 인물로 수많은 행적을 남긴 걸 보면 확실히 로마의 문화가 굉장히 앞서갔던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세기의 한국미술 2 - 변화와 도전의 시기
김영나 지음 / 예경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김영나 교수는 글을 참 쉽게 잘 쓴다.

현대미술은 너무 사변적이라 어렵고 공감이 힘들 때가 많은데 저자의 책들은 수준있는 내용들을 평이한 문체로 쉽게 설명해 줘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1권은 더 옛날에 나온 책이라 흑백 도판이 많아 아쉬웠는데 2권은 전부 컬러라 그림 보는 즐거움도 크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1) 밀레는 농민화가인가?

사실은 부농 출신으로 가난한 화가가 아니었고 파리의 근대화에 거부감을 느끼고 바르비종으로 들어가 과거 회귀적으로 농민들의 삶을 이상화 시켜 그렸다는 점은 전에도 들었던 것 같다.

<만종>에 그려진 바구니에 죽은 아기가 있었다는 설도 있을 만큼 가난한 농민의 삶을 고발한 체제 전복적인 그림이다는 주장은 이제 한물 간 이론인 듯하다.

19세기 자본주의화 되어 가면서 농민들은 소외되어 갔고 사실은 근대화에 발맞춰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싶었으나 밀레 등의 도시민은 옛날 농민의 삶을 예찬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인 느낌도 든다.

마치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이 근대화 된 것을 어쩌다 한 번 시골에 와서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비난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밀레의 농촌 지향성은 청교도 정신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1920년대에 일본과 한국으로 건너와 크게 유행을 한다.

오죽하면 이발소 그림으로 불려졌을까 싶다.

계급 투쟁이 벌어졌던 19세기 파리에서는 위험한 그림일 수 있었으나 미국에서는 있는 그대로 농촌의 건강함을 표현하는 그림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재밌는 것은 미국에서도 그렇고 훗날 일본이나 한국, 중국에서도 산업화가 활발해진 시점에 농촌에 대한 향수 때문에 밀레의 그림이 유행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밀레의 농민들은 마치 로랭이나 푸생의 풍경화처럼 성스러운 분위기로 이상화 되어 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 쿠르베의 사실주의와는 차이가 난다.


2) 평양의 거대 기념물과 김일성 동상에 대한 고찰이 신선했다.

더불어 레닌과 스탈린, 모택동, 히틀러 등을 함께 비교하는데 개인 숭배라는 점에서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매우 닮아 보인다.

히틀러의 파시즘은 전 세계가 비난을 하면서 정작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체제 안에서 개인을 한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공산주의의 비판은 왜 주저하는 것일까?

공산주의는 독재자를 숭배하고 개인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미술도 개인의 창작 욕구를 억압하고 수단으로 전락해 프로파간다화 돼버린다.


3) 김세중이라는 유명 조각가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하고 행정직을 독차지 해서 관권지향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예술적 성취를 이루지 못한 회환이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광화문 한 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상을 건립한 그는 20대의 나이에 서울대학교 교수에 임용되고 천여 개에 달하는 공공조각에 참여한 유명 인사였지만 5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기 전, 행정적인 일 말고 내 예술적 작업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해방 직후 조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많은 작품을 의뢰받고 높은 행정적 지위를 누리기도 했지만 한 예술가로써의 야심을 실현하기에는 시대적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을 것 같다.

전에 읽은 큐레이터의 자선전에서도, 이미 당대에 매우 유명해진 작가들이라 해도 여전히 역사에 길이 남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야심을 불태우면서 작업 현장을 떠나질 않는다고 했다.

해방 직후 불모지에서 예술하던 사람이 갖는 딜레마가 이해되는 부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스만 제국 시대의 무슬림-기독교인 관계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9
이은정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이슬람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고 이어서 읽게 됐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나라라 재밌게 읽었다.

15세기에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 반도까지 진출하여 기독교인들을 수용할 때는 개방적이었으나 제국이 넓어지면서 점점 지방 태수들에게 정권을 위임하는 분권화가 진행되자 강력한 국민국가로 성장한 유럽 열강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민족주의 물결을 타고 쪼개지면서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는 느낌이다.

17~18세기의 분권화 과정을 거친 후 19세기에는 러시아 등의 공격에 밀려 그리스와 발칸 반도들이 독립하고 근대화에 실패하면서 1차 대전 패배 이후 모든 영토를 잃고 오직 아나톨리아 반도만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엘리트들은 세속주의를 추구했으나 국민들의 정서는 기독교인인 서구 열강에 대적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을 정체성으로 인식하게 됐다.

오늘날 터기가 이란이나 사우디 등과는 다른 세속주의적 국가이면서도 여전히 나라 전체는 이슬람적 분위기가 강한 역사적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신정국가를 추구하는 다른 이슬람 나라들도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 역사에 대한 반동으로 종교를 민족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세속화가 늦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슬람이 서구의 기독교처럼 나라와 민족을 넘어서는 보편 종교라 서구 세력에 대한 안티 테제로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오스만 제국의 탄지마트 개혁 과정을 보면서 마치 개항 이후 구한말의 혼란스러운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오스만은 지중해 일대에 제국을 형성할 정도의 강력한 국가였기에 서구의 강제 근대화 세력에 대한 반발과 자괴감이 훨씬 컸을 것 같다.

근대화 정신이 결여된 겉모습의 근대화는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사회 전반의 변화가 뒤따랐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오스만 제국도 잘 나갈 때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다 포용했으나 민족주의 유행에 따라 그들이 독립을 추구하고 힘으로 누르기 어려워지자 점점 불관용의 태도를 보이다가 급기야 아르메니아 학살에 이른다.

이 부분의 정확한 학문적 평가는 여러 정치 세력의 입장 때문에 여전히 어려운 듯하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는 또다른 문제인 것 같다.

저자는 중동 지역의 이슬람 정체성이 외부의 시선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기독교도의 무분별한 선교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단순히 종교를 전파하는 차원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국 금지인 곳까지 기어이 선교를 하겠다고 찾아가 외교 문제를 일으키는기독교인들의 무분별한 행태를 생각하면 과연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 제국 - 무함마드와 살라딘
류광철 지음 / 말글빛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류광철씨 책은 대체적으로 재밌다.

아프리카 독재자 이야기와 십자군 전쟁에 대한 책을 흥미롭게 읽었고, 이슬람 제국이라는 아주 관심있는 제목에 기대감을 갖고 읽었는데 부제인 무함마드와 살라딘 두 사람의 평전 같다.

너무 상세하게 전투 과정들이 묘사되어 좀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무함마드가 어떻게 종교 지도자가 되어 아랍 세계를 통일했는지, 또 살라딘은 십자군을 어떻게 몰아냈는지 상사하게 알 수 있었다.

이슬람인이 아닌 제3자의 눈으로 평가해서인지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아 코란을 작성한 걸 측두엽 간질 가능성으로 언급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문맹이었고 성직자도 아니었던 상인이 어느날 느닷없이 천사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아 경전을 읊조려 신도들을 모았던 것을 보면 오늘날 정신과적 관점으로 보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신내림 받은 무녀들도 비슷한 케이스였을 듯하다.

유대교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당시 아랍에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널리 퍼져 있었고 무함메드 역시 이들로부터 기본 교리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지난번 성경에 관한 책에서도 구약이 당시 중동이나 이집트 신화를 얼마나 차용했는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모양이다.

확실히 무함메드는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아랍인들을 하나로 모아 종교로써 이슬람 공동체를 우뚝 세운 놀라운 열정과 언변의 소유자 같다.

신흥종교가 이렇게 보편적인 전세계적 종교로 발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참으로 놀랍다.

무함메드가 하루에 다섯 번씩 정결의식을 거치면서 기도를 바치는 것에 대해 불안장애를 해소하기 위함으로 해석한 부분이 재밌다.

비신도의 눈으로 보자면 확실히 강박증적 요소가 있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것이야 유대인들도 지키는 의식이니 전통이라 할 수 있는데, 술을 금지했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사막에서 살아 남기 위해 신앙의 힘으로 뭉쳐서 규율을 엄격하게 유지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주변을 정복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저자는 무함메드가 당시 기준으로는 페미니스트였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공식 부인만 13명이고 특히 9세의 아이샤와 혼인한 점은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슬람의 문제는 당시로서는 아랍 지역을 통일할 수 있는 진보적이고 보편적인 종교였을지 모르나 7세기의 가치관을 21세기 사회에도 적용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무함마드가 신으로 받들어진 예수와 같은 선지자가 아니라 사막에서 동료들을 이끄는 생활인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2부의 살라딘 평전도 재밌게 읽었다.

그의 제국이 100년도 못 되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잊혀졌지만 십자군을 몰아내고 이슬람 세계를 지킨 고결한 인격을 갖춘 이슬람 영웅의 이야기도 재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