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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녕왕과 무령왕릉
이도학 지음 / 학연문화사 / 2020년 6월
평점 :
백제사, 특히 공주 시기의 백제는 역사책에서 많이 안 나와서 정확히 모르는 시대였는데, 집중적으로 당시를 조명한 책이라 읽고 나니 대략적인 구도가 그려져서 좋았다.
다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1) 한성 백제의 마지막 왕인 개로왕이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한 후 문주왕이 공주로 피난하였는데, 우리 역사서에는 부자관계로 나온다.
저자는 일본 서기 등을 신뢰해 형제로 생각하고 나도 이 쪽에 마음이 간다.
그렇다면 비유왕의 아들이 개로왕, 문주왕, 곤지였던 셈이다.
당시 곤지는 일본에 파견되어 있었는데 저자는 개로왕이 자신의 임신한 처를 곤지에게 주고 일본에 가던 도중 섬에서 사마왕, 즉 무녕왕을 낳았다는 기록을 부인한다.
일단 형사취수제는 있어도 형제공처제는 찾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예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서 다른 책에서 봤던 것처럼 아마도 무녕왕이 방계로 왕위를 계승하면서 그 뿌리를 가장 권위있는 한성백제 왕실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설화라고 추정한다.
저자의 이 추론을 다른 책에서 인용한 것을 봤던 생각이 나고 일리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무녕왕은 곤지의 아들이고 다만 동성왕이 적자라 삼근왕 이후 왕위를 먼저 이었고, 아마도 무녕왕은 서자라 동성왕이 살해된 후 40세에 즉위한 것으로 본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무녕왕이 일본으로 가던 중 섬에서 출생했다는 기록을 부정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확실히 사료가 있는데 단지 추론만으로 섬에서 출생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본에 간 일도 없었다고 한 부분은 납득이 안 간다.
또 저자는 비유왕 역시 구이신왕의 아들이 아니라 형제, 즉 아버지 전지왕의 서자라는 설을 지지한다.
2) 저자는 근초고왕의 마한 정복설을 부정하고 노령산맥 이북까지 간접지배 했는데, 공주로 백제 왕실이 이전한 후 동성왕 때 무진주까지 세력을 넓혀 갔다고 주장한다.
근초고왕의 마한 경략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치열한 주장들을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이 부분도 흥미로웠다
저자의 주장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서진이 이민족에게 밀려 강남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남방까지 한족의 범위를 넓혀 갔던 것처럼, 백제 왕실도 고구려의 침략으로 쫓겨갔지만 한반도 남부로 그 세력을 넓혀 갔던 것 같다.
중국처럼 한반도가 대륙이었다면 또다른 역사가 펼쳐졌을까?
3) 맨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백제의 요서 경략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이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당시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고 확고한 지배권을 행사할 때인데 과연 남제서 등에 나온 바다 건너 백제의 요서 경략이 가능한 일일까?
물증 자료가 없다면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책에서 본 것처럼 고구려에 낙랑이 멸망하자 요동으로 낙랑인들이 이주하였고 그들을 받아들인 연나라에서 낙랑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거주하게 했고 이 낙랑군이 다시 옮겨 가다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백제의 요서 경략은 북위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남조 역사가들의 잘못된 기록이라는 학설에 마음이 간다.
백제가 후연과 협력하여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요서로 진출했다는 저자의 추론에 물적 증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