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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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에 내가 약한 것일까?

너무 힘들게 읽었다.

소설 형식이라 재밌게 읽을 줄 알았는데 역사서 보다 훨씬 더 힘들게 읽었다.

배경 지식이 없기도 하고 너무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가닥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니 복잡한 십자군 원정이 어느 정도 그려지는 소득이 있었다.

제목 그대로 유럽인의 관점이 아닌 침략을 당한 아랍인의 관점에서 전쟁 과정을 서술했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의 내분과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유럽인의 공세를 잘 막아내지 못했던 이유가 이슬람 세계 역시 셀주크 투르크와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 등이 내분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처럼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밀려오는 금발머리의 광신적인 전사들을 각개 격파해야 돼서 심지어 이 침략자들과 동맹을 맺어 같은 이슬람 측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복잡한 관계 때문에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 차례의 십자군 원정이 가능하고 그리스도교 왕국이 세워졌던 모양이다.

결국 이슬람은 침략자들을 몰아 냈지만 대항해 시대 이후에는 서구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으니 중세적 몰락이 안타깝다.

추천사에서 저자가 감히 다른 사람은 이슬람 내의 잘못을 언급하지 못하지만 내부인이기 때문에 용감하게 발언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좀 의아하다.

당대 역사도 아닌 무려 천 년 전의 역사를, 어떤 이유로 비판하지 못한단 말인가?

오리엔탈리즘으로 비난받을까 봐 몸을 사리는 것인가?

역사도 사회과학인데 왜 이런 어정쩡한 도덕주의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오류>

264p

구금에서 풀려나기는 했지만 르노 드 샤티용은 사위인 보에몽 3세가 통치하고 있던 안티오케이아의 국정을 장악할 수가 없었다.

-> 보에몽 3세가 왜 사위인가 찾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다. 사위가 아니라 의붓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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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녕왕과 무령왕릉
이도학 지음 / 학연문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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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 특히 공주 시기의 백제는 역사책에서 많이 안 나와서 정확히 모르는 시대였는데, 집중적으로 당시를 조명한 책이라 읽고 나니 대략적인 구도가 그려져서 좋았다.

다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1) 한성 백제의 마지막 왕인 개로왕이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한 후 문주왕이 공주로 피난하였는데, 우리 역사서에는 부자관계로 나온다.

저자는 일본 서기 등을 신뢰해 형제로 생각하고 나도 이 쪽에 마음이 간다.

그렇다면 비유왕의 아들이 개로왕, 문주왕, 곤지였던 셈이다.

당시 곤지는 일본에 파견되어 있었는데 저자는 개로왕이 자신의 임신한 처를 곤지에게 주고 일본에 가던 도중 섬에서 사마왕, 즉 무녕왕을 낳았다는 기록을 부인한다.

일단 형사취수제는 있어도 형제공처제는 찾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예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서 다른 책에서 봤던 것처럼 아마도 무녕왕이 방계로 왕위를 계승하면서 그 뿌리를 가장 권위있는 한성백제 왕실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설화라고 추정한다.

저자의 이 추론을 다른 책에서 인용한 것을 봤던 생각이 나고 일리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무녕왕은 곤지의 아들이고 다만 동성왕이 적자라 삼근왕 이후 왕위를 먼저 이었고, 아마도 무녕왕은 서자라 동성왕이 살해된 후 40세에 즉위한 것으로 본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무녕왕이 일본으로 가던 중 섬에서 출생했다는 기록을 부정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확실히 사료가 있는데 단지 추론만으로 섬에서 출생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본에 간 일도 없었다고 한 부분은 납득이 안 간다.

또 저자는 비유왕 역시 구이신왕의 아들이 아니라 형제, 즉 아버지 전지왕의 서자라는 설을 지지한다.


2) 저자는 근초고왕의 마한 정복설을 부정하고 노령산맥 이북까지 간접지배 했는데, 공주로 백제 왕실이 이전한 후 동성왕 때 무진주까지 세력을 넓혀 갔다고 주장한다.

근초고왕의 마한 경략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치열한 주장들을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이 부분도 흥미로웠다

저자의 주장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서진이 이민족에게 밀려 강남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남방까지 한족의 범위를 넓혀 갔던 것처럼, 백제 왕실도 고구려의 침략으로 쫓겨갔지만 한반도 남부로 그 세력을 넓혀 갔던 것 같다.

중국처럼 한반도가 대륙이었다면 또다른 역사가 펼쳐졌을까?


3) 맨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백제의 요서 경략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이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당시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고 확고한 지배권을 행사할 때인데 과연 남제서 등에 나온 바다 건너 백제의 요서 경략이 가능한 일일까?

물증 자료가 없다면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른 책에서 본 것처럼 고구려에 낙랑이 멸망하자 요동으로 낙랑인들이 이주하였고 그들을 받아들인 연나라에서 낙랑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거주하게 했고 이 낙랑군이 다시 옮겨 가다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백제의 요서 경략은 북위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남조 역사가들의 잘못된 기록이라는 학설에 마음이 간다.

백제가 후연과 협력하여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요서로 진출했다는 저자의 추론에 물적 증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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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자를 위한 고대 로마 안내서
필립 마티작 지음, 이지민 옮김 / 리얼부커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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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로마에서 24시간 살아보기>와 거의 비슷한 포맷이다.

작가도 같고 나온 시기도 똑같은데 출판사만 다르다.

내용이 아주 겹치지는 않아서 재밌게 읽었다.

로마 시대는 상대적으로 내가 취약한 분야라 약간 지루하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로마라고 하면 역시 2천 년 이상 보존되고 있는 놀라운 건축물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천 년 전에도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다주는 상수도 시설이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랍고, 콜로세움이나 판테온도 그 규모를 보면 고대 문명의 발달이 대단할 뿐이다.

하긴 그보다 2천 년이나 더 오래 전에 건설된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생각하면 인류의 문명은 그 초기부터 매우 찬란했음이 분명하다.

검투사나 전차경기, 연극 같은 로마인들의 놀이나 공연 문화 등이 흥미롭다.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의 선진 문명이었으니 도시와 상업의 발달로 문화 생활도 매우 활발했을 것이다.

도시의 빈민들이 좁은 거리에 아파트를 짓고 밀집되어 살다 보니 불이 자주 났는데, 소방대는 요즘처럼 소방차 동원해 불을 끌 수 있는 실력이 안 됐기 때문에 건물을 해체하는 것으로 진압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공적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로마의 감옥도 소개되는데, 조선 시대와 마찬가지로 전근대 사회는 감옥에서 죄수들을 먹여 살릴 경제적 여건이 안 됐기 때문에 죄수의 자유를 박탈하기 위해 가둬놓는 것이 아니라 판결 전의 대기소 개념이었다고 한다.

항생제가 없고 위생 시설이 부족한 시대이다 보니 감염병에 취약해 평균 수명이 짧을 뿐더러, 영아 사망률은 매우 높았는데 반대로 그 시기를 넘긴 사람들은 면역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래서 인류가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번식하면서 생존해 온 것 같다.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대부분의 치료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갈레노스는 깨끗한 물과 운동에 대해 강조하고 낫기 위함이 아니라 해가 되지 않는 치료를 강조했다고 하니 과연 의학사에 남는 의사답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후원자와 후원인 관계가 흥미롭다.

전통사회에서는 국가에서 모든 사회적 시스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표적인 예가 치안) 자체적인 마을 공동 질서에 따라 움직였던 것 같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적인 관계가 마치 공적인 원리처럼 유기적으로 잘 돌아감으로써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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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 상사원도 알고 싶은 이란의 속사정
유달승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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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란을 전공하신 분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책의 밀도가 떨어져서 아쉽다.

외교관인 류광철씨가 쓴 책 정도의 수준을 기대했던 터라 실망했다.

이란 유학기 정도라고 할까?

중간에 이란 현대 정치사에 대한 챕터는 이란의 현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개인적인 소회보다는 전공자이니 본격적인 분석을 해주는 책을 냈으면 독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란은 종교국가로 규정하고 있는데 서구에 대한 자주성과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 탈권위주의 등은 함께 갈 수 없는 것인가 생각해 봤다.

마치 우리가 일제 식민 역사에 대해 지금도 극렬하게 거부감을 갖고 있듯, 이슬람 국가들도 서구의 지배, 특히 미국의 영향력에 대해 근원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고 그것을 밖으로 표현할 때 민주우의나 자유, 탈권위 같은 보편적인 근대적 가치마저도 거부한다는 느낌이 든다.

서구식으로 세계화가 됐기 때문에 좋든 싫든 그런 것들은 현대 사회의 보편적 가치인데 민족주의 혹은 종교와 맞물려 대립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래도 여기는 사우디 아라비아처럼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차도르를 쓰고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차도르를 쓰고 사회 활동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책에서는 이란 사회가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하고, 또 어떤 책에서는 이탈리아 남자들을 조정하는 게 바로 여자라고 했지만, 여성은 어머니라는 또다른 지위를 얻지 않아도 인간 그 자체로서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을 원한다.

누구의 어머니라서 사회적 권리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고 여성이라는 규정에 갖춰 특별히 약자로서 대우받기도 원하지 않으며 그냥 한 개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요즘 같은 여성주의도 반대한다.

이란은 여전히 개인 보다는 가정, 친족과 같은 혈연 공동체를 중시하는 동양의 풍속과 비슷해 보인다.

손님을 환대하고 체면을 중시하고 가부장적인 느낌을 준다.

이슬람혁명을 일으킨 호메이니에 이어 하메네이가 이란 최고 지도자라는 위치를 갖고 있다고 한다.

정치인 혹은 이런 종교 지도자의 절대권 권위 인정도 공산국가나 신정국가들의 특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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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 위진남북조 중국의 역사
가와카쓰 요시오 지음, 임대희 옮김 / 혜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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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이상한 역사책만 읽었었나 보다.

서양에서 발간된 역사서들은 사회구조 분석인 경우가 많아 수준이 높다고 느낀 반면, 동양에서 나온 역사서는 주로 인물사, 일화 중심이라 너무 평면적이라 생각했었다.

이제 보니 좋은 책들을 접하지 못해서 편견이 있었나 보다.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된 책 같은데 이렇게 유익하고 재밌을 수가!

감탄하면서 읽었다.

늘 모호하기만 하던 위진남북조 시대의 400년 혼란기 사회 구조를 입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아주 재밌게 읽었다.

이민족들의 중원 침입은 로마 제국이 게르만 용병들에게 먹히는 것과 비슷한 패턴인 것 같다.

북방에는 이민족들이 많은 나라를 만들어 명멸해 갔으나 남방에서는 무인 황제와 더불어 무가 정권이 수립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려한 귀족 문화가 꽃피우는 아이러니.

왜 중국이 서양처럼 봉건 영주제로 진화하지 않고 다시 중앙집권 관료제 국가가 되었는지 그 과도기의 귀족사회 형성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화북이 일찍부터 통일될 수밖에 없었던 지리적 요건도 잘 짚어준다.

관개와 강우량에 따른 풍흉의 폭이 컸고 중원은 지리적 장벽이 없는 넓은 평원이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지역적 차이를 조절할 힘이 있는 전제적 정권이 쉽게 들어설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반면 강수량이 풍부했던 남방은 자급자족이 쉽게 가능했기 때문에 오히려 원시 농업 사회를 오래 유지했다.

추운 곳에서 선진 문화가 발생하는 지리적 배경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북방에서 양자강 이남으로 밀려 내려오는 한족의 이동을, 미국의 서부 개척지와 비교하고 내부 식민지 개발이라 설명하니 쉽게 이해가 됐다.

선진 문화를 지닌 북방인들이 이민족들에게 쫓겨 농업 생산성이 높은 강남을 장악하고 한족 정권을 세운 것이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한 민족 대이동이 오히려 한족의 판도를 넓힌 역할을 한 셈이다.


<오류>

105p

후한 황제 계보에서 7대 소제는 장제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이다. 

351p

409년 도무제가 그의 아들에게 살해당하자 국내는 일시 동요했으나 북위제국의 창업 공신들은 후사로 지정되어 있던 여덟 살 난 탁발사를 옹립하고~

-> 탁발사, 즉 명원제는 391년 생으로, 409년 즉위 당시 열 여덟 살이었다.

353p

도무제 사후, 겨우 여덟 살 난 유약한 후계자가 옹립되어

-> 위키에 따르면 명원제는 391년생이고 409년에 즉위했는데 이 책에서는 계속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고 하니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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