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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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에는 지루했는데 역시 집중하니까 재밌다

작가의 생각에 아주 많이 동의한다

책은 무상성의 즐거움을 준다

모든 예술과 교양과 문화는 무상성이라는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실재적인 것은 아무 것도 줄 수 없지만, 대신 보이지 않는 내밀한 기쁨을 준다

지극히 정신적인 기쁨 말이다

책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의 그 기쁨!!

현실에서 한 발을 뗀 듯한 느낌이 들 때!!

나는 책 속의 세계로 빠져 드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책만 읽고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명품도 필요없고 근사한 집이나 자동차가 없어도 심지어 연인이나 가족이 없다 할지라도 나는 조금도 외롭지 않고 행복할 거라는 엄청난 착각 속에 빠진다

미시마 유키오의 주인공이 금각사를 보고 느꼈던 그 절대미의 황홀경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몽상적이고 비실재적인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은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지겹기 짝이 없는 연구와 경제활동을 통해 인류 사회 전체가 발전해 나가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처럼 책만 읽는 바보들은 물질적인 혜택을 조금 덜 누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기여한 바가 적으니 적게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겸손해 마지 않는다

간혹 책만큼 고귀한 것이 어딨냐면서 세상이 책과 독자를 홀대한다고 분통터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독서인들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충분히 감사해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책 읽는 것 자체가 지극히 어려운 경제적 활동이었다

필사본으로 양피지 같은 데 적힌 책을 무슨 수로 하루에 한 권씩 읽겠는가?

책 한 권의 값이 집 한 채와 맞먹을 정도로 귀한 소비재였으니,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요즘 명품이나 비싼 외제차를 소유하듯 부의 과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축복으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래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노숙자에 불과할지라도 도서관에 가면 누구나 엄청난 양의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대출해서 집에서 편하게 읽을 수도 있고, 신청한 책을 사서 비치해 주기도 한다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환상의 책" 에 나오는 헥터만은 부둣가의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뉴욕시 공공도서관의 대출증 하나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될 수 있었다

글자와 인쇄술의 발명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한글처럼 이렇게도 쉬운 표음문자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세종대왕에게 엄청나게 감사해야 한다

 

저자는 국어 교사로써 학생들에게 억지로 읽는 책이 아니라, 진정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갖도록 노력한다

사실 책읽기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고도의 취미 생활인가?

이런 즐거움을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난 원래 멍청하다든가, 책은 고상한 사람들이나 읽는다는 식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아예 가까이 갈 엄두조차 못 내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읽으면 되는데 말이다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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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왕세자빈 - 영혼의 한중록
마거릿 드래블 지음, 전경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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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런 책을 무척 읽고 싶어했다

인현왕후나 혜경궁 홍씨처럼 한많은 조선 시대 여인들의 심리를 현대적 문체로 풀어 놓은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만큼 아주 재밌지는 않고 좀 지루하다

옛날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소설 한중록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기분과 비슷하다

영국인 작가가 심리 묘사를 꽤 꼼꼼하게 잘 하긴 했는데 심리묘사에 치중하다  보니 아무래도 좀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다

 

만약 사도세자가 왕이 됐다면 혜경궁 홍씨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영조가 조선 시대 왕 치고는 기이할 정도로 오래 살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도세자가 즉위했다면 조선 후반기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보나마나 노론과 왕의 기싸움으로 바람 잘날이 없었을 것이다

정조는 영리하게도 노론을 슬슬 구슬리고 위협하면서 자기 세력을 키워나갔던데 반해, 아버지 사도세자는 정치적 능력이 떨어졌던 것 같다

세자 시절부터 노론의 미움을 받아 모든 신하들을, 심지어 장인네 집안까지 적으로 돌릴 게 뭐란 말인가?

 

그래도 혜경궁은 복이 많은 여자다

궁에 들어가자 마자 겨우 열 여섯의 나이로 세손을 생산했고, 비록 그 아이가 세 살 때 죽고 말았으나 바로 임신을 해서 또 정조를 낳아 대통을 확실하게 이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또 두 딸을 낳았으니, 사도세자와 금슬이 비교적 좋았던 것 같다

하긴 항상 아버지 영조의 억압에 시달리다 보니, 부인과는 동지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사도세자가 정신병이 있었음은 확실하다

영조 역시 가까운 사람들에게 과도할 정도로 분노와 애정을 쏟은 걸 보면 정신병리학적 이상이 있었을 것 같다

아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봤던 것일까?

 

화평옹주나 화완옹주가 늘 예쁘다고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미인이었던 것 같다

사도세자나 정조의 초상화를 보면 과히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닌데, 선희궁이 영조와 금슬이 좋았던 모양이다

선희궁은 스스로 왕에게 아들을 죽여 달라고 편지를 보낸다

비정한 어머니지만, 당시 상황으로 보면 아들에 대한 마지막 희망까지 버리고 차라리 세손이라도 보전하자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사도세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장인인 홍봉한네 집안도 어지간 했으면 세자와 손을 잡고 다음 정권을 준비했을텐데, 홍봉한 스스로 뒤주를 갖다 대령할 정도 사위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버렸다

사위 편에 서다가는 자기 집안이 완전히 멸문지화 될 거라는 공포에 떨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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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8-0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님의 리뷰 보니 당장 읽고 싶어지네요~~~
닉네임이 분명 바뀌었는데 누구실까 한참을 생각했답니다. 헤헤. 별님 댓글보구 나나님인줄 알았어요~~~ 반갑습니다.

marine 2006-08-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
잘 지내고 계셨죠??
근데 좀 지루하긴 해요
시도가 새로워서 읽어 볼 만 합니다

미친여편네 2007-09-1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중록은요,, 혜경궁홍씨 그 미친 여편네가 자신의 가문을 복원시키려고 쓴 소설일뿐입니다!! 실제로 한중록과 영종기사를 비교해봤을때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뭐? 세손을 살리려고 희망을 버렸다? 노론계인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였겠지요!! 말도 되도 않는 헛소리 쓰레기인 한중록입니다!!

marine 2007-09-2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디와 똑같은 내용의 댓글이네요 역사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시길~~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 조선시대 생활사 3
한국고문서학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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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가 풍부한 자료들은 근거가 확실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즉 막연한 추론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이 가지만,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간단명료하게 정리된 주장을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고문서학회라는 저자명에서부터 벌써 전문적인 냄새가 풍긴다

첫부분인 옷에 관한 내용은 자세히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가독률이 떨어져 마지막 부분인 주거에 관한 내용은 대충 읽었다

너무 자세하고 모르는 내용이 많아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음식에 관한 부분도 한자가 많아서 읽기 힘들었다

임용한처럼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풀어 써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덕일이 잘 팔리는 이유도 자기 주장을 강력하게 그러나 쉬운 언어로 쓰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쉽게 어필이 되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다 아는 내용이긴 하다

옷에 관한 내용이 새롭다

도포는 양반, 중인은 철릭, 상민은 저고리나 창옷을 입었다고 하고 술은 중인 이상만 두르는 신분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맨살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기왕이면 사진이 많이 첨부되면 좋았을 것 같다

책값이 많이 올라가겠지만 말이다

 

온돌은 조선 후기에 완성된 난방양식이라고 한다

하긴 땔나무 때문에라도 쉽게 보급되기는 어려웠을 듯 하다

그러나 좌식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공기만 덥히는 서양식 난방은 어울리지 않으니 온돌의 발달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덕분에 온 나라의 산이 민둥산으로 변했지만 말이다

명종대까지도 임금이 침상에서 잤다니, 새로운 발견이다

 

조선시대 미인도를 보면 짧은 저고리가 꽤 관능적임을 알 수 있다

섹시함의 표시로 아마 요즘의 미니스커트처럼 저고리가 짧아진 듯 하다

다리를 드러낼 수는 없고, 대신 저고리를 짧게 해 상반신을 노출시킨 것 같다

서양에서도 가슴이 파인 드레스가 나왔듯 조선 후기에도 가슴을 노출시킨 것 같다

가체도 유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복식의 규정이 워낙 까다롭고 노출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나마 머리 장식으로라도 개성을 표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연산군은 사치를 조장한 유일한 임금이라고 하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미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을 것 같다

 

밥을 중요시 한 이유가 밥 말고는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소 충격적이다

요즘은 쌀 소비가 적어서 걱정일 정도로 흰쌀밥만 먹는 경우가 드문데 불과 몇 십년 전까지는 밥 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니, 녹색혁명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알 만 하다

조선 사람은 대식가라고 하는데 서양 사람처럼 비만은 드물었던 걸 보면 쭉 잘 먹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탄수화물에 비해 지방 섭취가 적기 때문이었을까?

참외가 점심으로 쓰일 정도로 일반적으로 많이 소비됐던 것도 새롭다

 

양반의 일상사에 국한되지 않고 상민층에까지 연구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만 하다

다만 근거를 밝히느라 연구 과정을 세세하게 소개하다 보니 쉽게 읽히지 않는 단점도 있다

이런 책은 절대 많이 팔릴 수가 없다

아마 독자층도 전공 학생들로 잡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시대 왕자나 공주들의 일상사를 연구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조선 왕들의 가계도를 분석한 책이 나와 있긴 한데 사료만 쭉 나열한 것이라 재미가 없다

대중적으로 시도해 보면 어떨까?

특히 공주들의 삶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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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8-0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그렇습니다^^
책은 좀 지루하긴 하지만 다른 글의 원전으로 인용해도 좋을 만큼 꼼꼼하게 사료를 잘 챙기고 있어요
 
유럽음악축제 순례기
박종호 지음 / 한길아트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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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인 박종호씨의 두번째 책

역시 수준이 있다

재밌게 잘 읽었다

매년 유럽으로 축제를 구경갈 수 있는 그 재력과 열정, 그리고 여유가 부럽다

사람이 태어나서 뭔가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매진하고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면 정말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남들 눈에는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내가 만족한다면 더 바랄 게 있을까...

물론 다른 사람의 인정도 받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남들이 인정해 주는 일은 경쟁이 치열한 법이고, 그래서 쉽게 얻을 수 없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다

박종호씨는 굉장히 교양있고 우아하고 차분한 성격일 것 같다

아내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단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책 좋아하는 사람과는 또다른 종류의 인간일 것 같다

 

유럽의 축제 문화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지방 축제 수준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언제쯤 우리도 그런 수준있는 축제를 열 수 있을까!

클래식을 테마로 삼아 축제를 열 정도라면 유럽의 클래식 수준이 얼마나 높고 또 일반화 되어 있는지 알 만 하다

기껏해야 우리나라는 홍길동이네 나비네 대나무네 하면서 급조한 것들 뿐인데, 역사의 면면에 흐르는 클래식을 테마로 잡아 외국인들을 끌어 들일 정도로 수준있는 축제를 개최하는 그들이 정말 부럽다

역시 대한민국은 문화 면에서는 아직도 한참 먼 것인가...

클래식을 처음 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것도 콘서트처럼 직접 가서 보면 감동이 더욱 커진다는 걸 알았다

동영상으로만 봐도 흥분되는데, 직접 현장에 있다면 얼마나 가슴 떨릴까!

축제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하다못해 클래식 연주회라도 다니고 싶다

언제나 시간이 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제대로 가 본 적이 없다

데이트를 연주회장에서 할 수 있는 커플은 얼마나 행복할까!

 

글도 참 잘 쓰고 오버하지 않고 감정을 절제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읽기가 참 편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 좋아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열려 있고 매력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편협하고 외凉痔隔?꽉 막히고 자기 주장이 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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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 - 개정증보판
신병주.노대환 지음 / 돌베개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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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 보다 한참 못미친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의 반복이 주류다

혹시 작가가 기자나 아마추어 작가 아닌지 의심스러워 저자 약력까지 살펴봤다

왜 이렇게 밖에 못 쓸까?

성의 부족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던 박씨전이나 임경업전, 전우치전 같은 소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심청전을 조선시대 맹인들의 삶과 연결한다거나, 흥부전을 장자상속제와 연결시킨 부분은 참신했다

사회보장제도가 전무했을 조선시대에 장애인, 특히 앞을 못 보는 소경들이 얼마나 살기가 팍팍했을지 짐작이 간다

다행히 동네 사람들이 자체 공동체를 이루어 상부상조 했던 것 같다

국가가 안 해 주니 자기들끼리 돕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의 내부 규약이나 제재도 심했던 것 같다

 

의병이 실제로 별 도움이 안 됐는 점은 상당히 의외다

하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조선은 문인의 나라고 양반들은 아마 의병 모집하면서 처음으로 칼을 잡아 봤을 것이다

백성들 역시 군사 훈련이 전혀 안 된 상태니, 민병대라고 하지만 총도 없는 상황에서 퍽이나 고생스러웠을 것 같다

의병이 상징적인 의미만 크고 실전에서 전투력은 떨어졌기 때문에 선조 역시 그들을 전후에 제압할 수 있었으리라

조선이 임진왜란을 겪고도 무너지지 않은 걸 보면 상당히 통치체제가 튼튼했던 걸 알 수 있다

 

효가 조선의 권력 이데올로기였음을 다시 확인했다

단순한 명분론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복종이 생사여탈에 관여될 정도로 중요하게 치부됐으니 도덕 따위의 관념론을 들이대지 않아도 누구나 당연히 법을 지키듯 효를 실천했던 것 같다

정조는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 예교와 법치의 적용을 놓고 고민하다가 예교의 손을 들어 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것 같지만 확실히 조선은 현대의 법치국가와는 개념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역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물은 혜경궁 홍씨다

당시 격변하는 정치적 상황도 제대로 꿰뚫고 친정을 옹호하는 글을 임금에게 바칠 정도로 정치에도 해박했던 것 같다

81세에 죽었으니 천수를 다 누린 셈이다

사도세자가 죽지 않고 임금이 됐다면, 혹은 정조가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지 않고 그대로 사도세자의 아들로 남아 있었다면 그녀는 대비가 되서 비록 친정이 몰락했더라도 왕실에서 최고 어른으로 위엄을 지킬 수 있었을텐데 참 안타깝다

열 살이나 어린 시어머니, 더구나 자신의 남편과 친정을 죽인 정순왕후를 모시고 수렴청정까지 받아야 했으니 그 고초가 얼마나 심했을까!!
정순왕후가 죽은 후 순조의 할머니로 왕실 최고의 어른이긴 하나, 대비가 아니라 혜경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처지가 많이 어려웠을 것 같다

붉은 왕세자빈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허균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아마 조선시대 최고의 자유인이었을 것 같다

광해군 말년에 사형당한 것이 참 안타깝다

그러나 성향으로 봤을 때 인조반정이 났어도 목숨 부지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자유분방한 지식인이긴 하나 역시 허균도 체재 안의 유학자라는 사실이다

홍길동전을 보면 아버지가 죽자 3년상을 치른 후 거사를 도모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교적 가치관을 부정한다는 것은 아마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정조 때 윤지충이 부모의 신주를 태운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겠는가?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매점매석에 대해 나오는데, 아마 박지원이 상업에 대해 실제적인 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막연히 관념적으로 쓴 글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당시는 이미 청이나 일본과의 무역이 성행했고 국내 상업도 상당히 번성해 거부가 나올 정도였으니 허생 같은 백면서생이 함부로 매점매석을 하려 들면 기존 상인들이 가만이 안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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