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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ㅣ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평점 :
세 권이 완결됐구나.
1권 읽고 중국몽을 꿈꾸는 저자의 철학에 공감이 안 되는데도, 독특한 여행법이 흥미로워 다음 권을 기다렸었다.
두께가 상당해 미루다가 드디어 빌리게 됐다.
2권이 대출중이라 3권을 먼저 읽었다.
600 페이지가 넘어 긴장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평이한 문장들이라 속도감이 났다.
오히려 저자의 세계관에 거부감이 너무 커서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이 됐었는데 역시 어떤 책이든지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훨씬 좋은 것 같다.
특히 폴란드의 정치인 리샤르트 레구트코와의 대담 부분이 아주 유익했다.
상당히 긴 분량인데 축약하지 않고 전문을 실어 주어 많은 도움이 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계속 서구 민주주의의 독선에 대해 경계하고 그 대안으로 정치적 영성을 주장한다.
위의 폴란드 정치인도 역시 종교를 통한 영성의 회복 혹은 고대 그리스의 이상향인 교양있는 인간상을 추구한다.
정말 종교가 현재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계몽주의가 군주주의를 대신했듯이 과연 종교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독선적으로 변해버린 민주주의 대신 21세기를 끌고 갈 새로운 사상이 될 수 있을까?
무신론과 진리에 대한 과학의 가치를 확신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공감이 안 된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가변적이고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할 수 있어도 지구가 46억 년 전에 태어났고 인간도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에 의해 오래 전부터 진화해 온 존재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음을 확신하는 나로서는 정말로 기독교가, 이슬람이, 혹은 힌두교가 무슨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전혀 공감이 안 된다.
혹시 저자는 종교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마치 평화주의나 녹색당 같은 사변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에 대해서도 푸코를 인용하면서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종교의 도그마에 갇혀 신앙의 자유를 얻지 못하고 사상을 강요하는 폐쇄적인 신정 국가 체제를 바람직한 서구화의 대안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서구화에 의한 세계화의 반발, 혹은 민족주의의 발로인가?
냉전이 끝나면 국경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교류하고 열려 있는 보편적인 세계국가가 오지 않을까, 평화의 시대에 대한 희망은 국지적인 분쟁들로 그저 꿈이었음이 드러났다.
마치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이나 합스부르크 제국 밑의 신민들이 민족주의에 고취되어 독립해 나갔던 것처럼 EU 통합 혹은 미국 중심체제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로 가려 한다고 한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유고 연방의 해체만 봐도 이해는 되는데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동의를 못하겠다.
교조적 민주주의가 사실은 전체주의와 통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봤다.
저자는 촛불혁명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굉장한 가치 부여를 하고 있지만 혹시 지금 다시 글을 쓴다면 아직도 진정한 시민사회의 승리, 정당 대신 자유로운 시민들이 이룩해 낸 놀라운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민주주의 혹은 올바르다는 개념에 저촉되는 어떤 주장도 금지된다고 현재의 서구식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나라를 보면 그렇다.
5.18, 세월호, 일제시대, 페미니즘 등에 대해 약간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세우면 심지어 법적인 처벌을 받도록 하자는 분위기다.
전체주의는 확실히 한국 사회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위의 폴란드 정치인이 주장하는 영성의 회복, 혹은 교양있고 철학을 가진 인간상을 키우기 위해 그 대안이 전통적인 문화와 종교라는 것에는 회의감이 들지만, 적어도 그 이상에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현대는 대중문화, 소비주의의 시대이고 70억 명의 인구에게 가벼운 대중문화와 화려한 소비문화 대신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이 되라고 과연 권면할 수 있을까?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너무 변해 버려서 의미없는 주장으로 들린다.
저자의 독특한 여행법이 매력적이면서도 답답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