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뒷골목 풍경 -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
양태자 지음 / 이랑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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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자와 일반 필자의 깊이 차이는 항상 존재하는 것 같다.

저자의 약력만 얼핏 보고 독일 대학의 교수인가 했는데, 역사를 전공한 작가인 듯하다.

그래도 앞부분은 중세의 여러 하층민 직업군을 소개해 줘서 그럭저럭 흥미롭게 읽었는데 뒷부분 정치사는 그냥 서양 야사 정도의 수준이라 실망스럽다.

주제가 중세인데 왜 르네상스 이후의 근세 유럽 왕실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

주제가 중세면 중세 왕가의 정치사를 언급해야 하는 게 아닐까?

뒷쪽으로 갈수록 편집북 수준이라 책의 밀도가 아쉽다.

중세는 단순히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아니라 전근대와 근대 사회의 차이를 보여주는 시대 같다.

전근대 사회라면 인권이 경시되고 인간의 욕망보다는 종교나 도덕성 같은 이념이 인간을 구속하는 사회라고 할까?

서양의 선교사들이 19세기 말에 조선을 방문해 놀랐던 여러 현상들은 동서양의 문화차이가 아니라 전근대 사회와 현대 사회의 시각 차이였던 듯하다.

이 책에 소개된 중세의 여러 모습들은 전통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 같다.

공개처형이나 폭력주의, 고문, 경직된 이데올로기적 엄숙함, 가난, 전염병, 신분차별 등이 그러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은 맞는 얘기다.

앞서 읽은 책에서 계급투쟁이 우선이라는 모택동의 말에, 중국 농민들은 물질적 풍요를 원한다고 주장한 유소치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오류>

78p

프리드리히 3세(1831~1888)가 사신을 나폴리로 보냈을 때도 그들은 당연히 '여성의 집'에서 즐겼다.

-> 본문의 프리드리히 3세는 프로이센 제국이 아니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1415~1493 이 맞다.

92p

10세기 베네치아의 통치자는 자신이 마르쿠스 성인의 뼈를 북아프리카에서 빼내~

-> 마르쿠스가 아니라 성서의 기자인 마르코 성인를 뜻하는 것 같다.

99p

알브레히트 뒤러는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공작의 딸 아그네스와 결혼하였다.

-> 뒤러의 부인은 구리세공인이자 류트 장인의 딸이다. 위키를 찾아보면 patrician family Rummel 로 나오긴 하는데, 본문의 공작 가문을 뜻하지는 않는 것 같다.

209p

그녀와 가장 앙숙이었던 여자는 샤를 9세의 딸이자 남편의 정부였던 카트린 앙리에트였다.

-> 앙리 4세의 애첩인 카트린 앙리에트의 어머니가 샤를 9세의 정부였고 그녀는 발자크 당트라그 후작의 딸이다.

216p

어린 아들 루이를 14세의 오스트리아 공주 안느와 결혼시켰다.

-> 루이 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슈는 스페인의 펠리페 3세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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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 3 - 호남성편 중국 인문 기행 3
송재소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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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권이 나왔다.

항상 지대한 관심의 대상인 중국 인문 기행이라는 컨셉이 마음에 들어 1, 2권도 재밌게 읽었고 이번 3권도 도서관에 신간 신청해 읽었다.

유홍준씨의 답사기와는 또다른 매력의 책이다.

항상 부러운 것은 이런 답사 여행에 따라가는 회원들이다.

항상 부부가 자유여행을 가서 편하고 좋긴 하지만 패키지 여행 때 가이드 설명이 늘 아쉽다.

인문 기행팀을 꾸려 전공자의 설명을 듣고 직접 역사적 명소들을 관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에 나온 저자의 모습을 보니 꽤 연세가 드신 분 같은데, 글쓰는 솜씨가 지루하지 않고 편하게 술술 잘 읽힌다.

사진의 색감도 선명해서 좋았는데 다만 너무 밝고 환하게 나와 어설픈 관광지 엽서 같은 느낌도 있었다.

악록서원 조감도를 찍은 사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번 책의 주제는 호남성이다.

옛 초나라 땅이었던 만큼, 굴원이 주인공이고 이 곳에서 죽은 두보, 악양루, 악록서원, 호남제일사범학교 출신인 그 유명한 모택동, 유서기, 그리고 중국의 피카소라 불린다는 제백석 등이 소개된다.

앞서 읽었던 추근이라는 청말의 여성 혁명가도 다시 등장한다.

사실 두보에 대해서는 한시에 아무런 지식도 없어 관심이 없었는데 <호우시절>이라는 영화의 영상미에 반해 흥미가 생겼다.

<강남에서 이귀년을 만나고> 라는 28자의 7언 절구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기王의 저택에서 노상 만났고

최구의 안뜰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가, 그대 노래를

바로 이 강남땅 좋은 풍경 속에서

꽃 지는 시절에 또 만나는군"


이귀년은 현종 시절의 유명한 가인이었다고 한다.

잘 나갈 때는 기왕이나 실력자 최구 등의 사저에 자주 초대되어 두보 역시 그의 공연을 즐겼는데, 안록산의 난 등으로 전란에 휩싸여 두보와 이귀년 모두 강남을 떠도는 처지가 되어 40년 후에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만났음을 표현한 시라고 한다.

저자의 설명대로, 비참한 모습이 된 처지를 비관하는 것도 없이 어쩜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쓸쓸하게 재회를 그려내는지.

29세의 나이에 이혼 후 일본에 유학했다가 32세에 처형당한 혁명 여전사 추근의 시도 기억에 남는다.


"여자는 영웅이 아니라 함부로 말하기에

바람 타고 혼자서 만리길 동으로 가네"


일본으로 떠나던 배에서 쓴 시라고 한다.

이 정도 기개는 있어야 혁명 전사라고 불릴 자격이 있나 보다.

한시의 매력은 짧은 문구에 함축된 깊은 뜻과 정감인 것 같다.

전문가의 설명이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한 자 한 자 풀어 써보면 압축력과 표현력이 놀랍다.

한문학자인 저자가 명승지의 대련과 편액 등을 해석하여 소개해 주는데 내 수준에서 즐기기에는 여전히 어렵다.

중국 근대화단의 최고 화가라 칭할 만한 제백석의 고향이 호남성인 것은 처음 알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목공예 같은 일을 하다가 독학으로 그림과 글씨를 익혀 서비홍에 의해 북경대 교수가 된 입지전적인 화가다.

다른 책에서도 많이 봤었고 정말 개성있고 현대 수묵화의 매력이 한껏 뿜어져 나온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제백석 전시회에 못 가 본 게 아쉽다.

서예 위주인 줄 알고 어차피 감상할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아 안 갔는데 책을 읽고 나니 무척 아쉽다.

중국의 여러 명승지와 인물들을 소개한 재밌는 인문 기행문이었다.

4권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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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오브제 - 답삿길에서 옛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읽는다 知의 회랑 13
전호태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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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간 선택은 실패했다.

중국 박물관의 유물을 중심으로 중국의 역사를 짚어주는 컨셉이 신선하고 사진과 설명이 잘 어우러져 편집도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알맹이가 부족한 느낌이다.

저자가 고구려 벽화 전공하신 분 같은데, 전에 이 분이 쓴 다른 책들도 나와는 안 맞는 느낌이라 별 감흥이 없었던 생각이 난다.

"중국인의 오브제"라는 제목답게 중국사 자체보다는 유물이 주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 듯 하고 그래서 매 꼭지마다 감상을 담은 시도 첨부했지만 하여튼 전체적으로 내용이 부족한 느낌이다.

전달하는 지식의 밀도가 너무 얕은 것 것 같다.

일종의 에세이 느낌이라 역사학자의 식견을 기대한 독자로서는 다소 실망스럽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에세이를 잘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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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 Moving Reflection, Korean Art Since 1945
김영나 지음 / 미진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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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글을 참 쉽게 잘 쓰신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다소 어렵고 지루해 보이는 제목들과는 달리 도판의 질도 우수하고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그러면서도 깊이있는 정보를 잘 전달해 준다.

400 페이지 정도로 아주 두꺼운 책은 아닌데 도판 인쇄 때문에 그런지 종이가 두꺼워 꽤 두툼해서 지루할까 봐 마지막까지 미뤄뒀던 책이다.

오늘 반납일이라 어제 밤에 급하게 읽었는데 시간당 100 페이지 속도로 금방 완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본문에 나온 작품들이 거의 다 실려 있고, 그것도 편집을 아주 잘해 같은 페이지에서 볼 수 있을 정도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미술 전문 출판사답게 도판의 색감이나 인쇄 상태가 마음에 퍽 들어 저자의 글솜씨와 더불어 즐겁게 독서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1950년대의 추상 미술까지는 작품이 주는 시각적 미적 즐거움이 크고 감동도 있었는데 60년대 전위미술부터는 솔직히 공감이 잘 안 된다.

추상미술이나 단색화만 해도 아 그렇구나, 이해가 되고 작품을 볼 때 직관적인 감동이 생긴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작품 자체만으로 미적 쾌감이 저절로 생긴다.

그렇지만 아방가르드, 이를테면 해프닝이나 설치미술, 옵 아트, 개념미술, 팝 아트 등으로 넘어오면 비평가가 열심히 설명을 해 줘도 이해가 될까 말까이고 특별한 감흥이 안 생긴다.

내 미술 감상력의 한계인가 싶다.

90년대 이후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우리 작가들, 이를테면 양혜규, 김수자, 서도호, 이불 등은 리움 미술관이나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본 적이 있고 저자도 공들여 설명하지만 정말 별 감동이 생기지 않아 아쉽기 그지 없다.

현대 미술은 여전히 너무 어렵다.

다만 이우환의 모노하 이론, 작품과 자연의 관계, 혹은 작품을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이 간다.

더 많은 현대 미술을 접해서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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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년의 폭발 - 문명은 어떻게 인류 진화를 가속화시켰는가
그레고리 코크란.헨리 하펜딩 지음, 김명주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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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밌다.

보통 구석기인들, 즉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후로는 진화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고 알고 있지만 저자들은 우유를 소화시키는 락타아제 등의 분포 등을 근거로 지금도 인류는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동양인은 우유 소화율이 떨어지는데 서양인은 매우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한 종류의 인간이라면 이런 차이를 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화, 즉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수준의 진화가 아니라 다양한 형질의 발현, 즉 다양한 특징을 가진 여러 개의 품종을 떠올리면 될 듯 하다.

자칫하면 인종주의에 빠질 수 있는 주장이라 신중하게 읽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과학이란 어떤 사실에 대해 근거를 갖춘 합리적인 설명이므로 "정치적 올바름"이 끼어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저자들은 후기 구석기 시대에 동굴 벽화를 그린다던지 사냥 도구의 효율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바늘로 옷을 만들어 입는 등의 파격적인 문화적 변화가 네안데르탈인과의 이종교배를 통한 대립유전자 이입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일부가 남아 있다는 학설은 어디선가 본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단지 드물게 이종교배가 있었다고만 생각했지 그 유전자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폭발적인 문화적 성과를 이룩해냈다는 주장은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유전학적 지식이 부족해 얼마나 가능성 있는 주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흥미롭긴 하다.

보통 이종교배를 통해 이입된 대립유전자들은 중립적이라 세대를 거듭할수록 사라지게 되지만, 유리한 유전자라면 후대로 갈수록 살아 남아 자손에게 전달될 확률이 커진다고 한다.

단순히 돌연변이를 통한 유전자 변화와 달리 직접적인 교배를 통한 유전자 이입은 그 규모가 매우 크다고 한다.


맨 마지막 장에서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의 지능이 높은 것을 설명한다.

사실 나는 유대인이 머리가 좋다는 의견이 그저 속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종족적 단일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특정 직업을 계속 선택하다 보면 수학적으로 좀더 특화된 후손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머리가 좋은 대신 시냅스의 문제로 특별한 근육병에 잘 걸리기도 한다.

말라리아에 저항성을 가진 겸상적혈구가 있는 아프리카인들의 후손이 늘어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고 보니 어떤 과학 잡지에서 왜 유난히 동아프리카인들이 단거리 달리기에 뛰어난가, 혹은 흑인들이 농구를 잘하는 까닭 등에 대해 조심스럽게 인종적 차이를 언급했던 걸 본 적이 있다.

"문화"라는 선택압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이 흥미로웠고 생물학적 불평등을 어떻게 수용하고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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