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예술 - 3000년 고대사가 빚어낸 찬란한 문명
게이 로빈스 지음, 강승일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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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페이지도 안 되고 사진이 대부분인데 그럼에도 어렵다.

직관적으로 잘 와 닿지가 않는다.

역사 위주가 아니라 작품 위주의 설명이라 그런 것 같은데 이런 도록 같은 책은 일단 이집트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그래도 앞서 읽은 "품위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에서 나왔던 유물들이 몇 개 나와서 두 번째 보니 좀더 눈에 익기는 했다.

역시 반복해서 많이 접해보는 수밖에 없나 보다.

사실 이 책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집트 전시실을 돌아보고 더 알고 싶은 욕구에 고른 책이다.

이집트인들이 반복적인 스타일을 3000년 씩이나 고수한 것은 그들이 이런 유물들을 감상의 목적으로, 예술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제의적 목적, 즉 내세의 구원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르네상스 미술의 관점으로 이집트 유물들을 대해서는 제대로 감상이 어려운 셈이다.

그럼에도 내제된 미의식은 이런 유물들을 단순히 역사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오늘날 현대인들도 감상할 수 있는 예술품으로서의 감동을 주고 있다.

위대한 왕의 조각상들 보다는 일상을 표현한 벽화나 나무 조각상 등에 더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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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부름 -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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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신청해 놓고 2년 만에 읽게 됐다.

십자군 이야기는 항상 어렵고 진도가 잘 안 나간다.

너무 복잡하고 중세 인물들에 대한 개별적인 인상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이번 책도 힘들게 읽었지만 전체적으로 재밌고 이제는 정말 약간의 감이 잡힌다.

전체적인 십자군 전쟁사인 줄 알았는데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1차 전쟁의 경과까지만 서술됐다.

주인공이 프랑크 기사나 교황이 아니라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십자군 전쟁의 주역을 이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보고 있다.

전쟁의 시작이 비잔티움 제국의 요청에 서방 교회가 응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황제가 세심하게 일정을 조율하고 보급품을 지원하고 기사들이 황제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과정은 처음 알게 됐다.

서방 세계의 관점으로만 십자군 전쟁사를 봐 왔던 셈이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1차 전쟁에 뛰어든 기사들 특히 보에몬드를 최고의 악당이자 상찌질이로 그렸는데 이 책에서는 기사 세계에서 무공으로 이름을 날리고 안티오크를 점령하고 유럽으로 건너와 프랑스 왕 필리프 1세의 사위가 된 화려한 활약상을 보여 준다.

사실 이게 진실이었을 것 같다.

유럽 왕실이 바보가 아닌데 일개 인물의 거짓 선동에 놀아 났을 리가 없을 것이다.

처음에 보에몬드는 알렉시오스 황제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안티오크를 점령하면서 마음이 바뀌어 황제를 비난하고 유럽으로 건너가 비잔티움 제국의 만행을 고발하면서 2차 지원군을 모집하는 안티로 돌아선다.

니케와 안티오크를 점령할 때까지는 황제가 보급품을 지원하면서 동맹 관계가 잘 유지됐으나, 예루살렘 정복시 왕국의 반란을 염려해 황제가 지원군을 거부하자 관계가 깨지게 된다.

황제 입장에서는 투르크 세력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고 자신도 내부 반란 단속에 애를 먹던 차였으니 군대를 이끌고 멀리 변방으로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상세한 과정이 지루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 편의 이야기책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다.

무엇보다 십자군 전쟁을 도덕적인 관점으로 비난하거나 희화화 시키지 않고 역사적 의의를 살펴본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오류>

174p

노르망디의 로베르, 그의 처남 블루아의 스티븐, 툴루즈의 레몽 등의 지휘 아래

-> 블루아의 스티븐은 로베르의 처남이 아니라 매제이다. 즉 로베르의 여동생 아델라의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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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 왕국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89
다카라 구라요시 지음, 원정식 옮김 / 소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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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얇은 책이라 좀 놀랬다.

생소한 지역사라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내용은 비교적 평이하고 짧은 분량에 비해 알찬 느낌이다.

오키나와 여행을 계획했는데 어처구니 없이 여권을 안 가져와 공항에서 스케쥴을 취소한 적이 있어 아쉬운 느낌이 있는 곳이다.

저자는 류큐인으로 지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제주 같은 느낌이랄까?

제주보다는 좀더 독립적이고 저자 역시 17세기 사쓰마 번에 점령당하기 이전, 古류큐 왕국의 독자성에 초점을 맞췄다.

제주도는 류큐에 비해 한반도와 훨씬 가깝고 따로 독립적인 왕국의 존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 대만이나 제주와는 또다른 정체성을 가진 곳 같다.

류큐어가 일본어의 방언으로 여겨지는 걸 보면 동질한 정체성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고대 역사는 알려진 것이 없는 것 같고 문자 기록으로 보이는 시대는 12세기부터다.

14세기에 북부, 중부, 남부의 세 곳에 독자적인 정권이 들어섰는데 중국과의 조공 무역에서 앞선 중부 지역에서 통일 정권을 만들어 내고 슈리성을 쌓는다.

그런데 이 성은 미군의 오키나와 침공 때 사라지고 최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1972년에서야 비로소 미 군정에서 해방되었다니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줄 미처 몰랐다.

오키나와인들만의 애환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중국과의 조공 무역을 통해 많은 상품들을 구입한 후 다시 동남아시아와 조선 일본 등과의 중계무역을 통해 성장했는데 이것의 주체가 놀랍게도 민간이 아닌 정부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류큐는 상업 왕국이었던 셈인가?

네덜란드처럼 해양국가로 성장하기에는 영토나 국력이 너무 약한 탓일까?

16세기 이후 중국의 해금정책이 유명무실해지고 중국과 일본 상인들이 직접 무역에 뛰어들자 결국 류큐는 쇠퇴하고 만다.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상품 공급지이자 소비처였을 명나라가 해금 정책을 고수한 까닭이 궁금하다.

엄청난 국력을 가졌지만 결국은 폐쇄된 국가였기 때문에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류큐왕국의 독자성에 대해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고 늘 그렇지만 좀더 많은 책을 읽어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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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유서 - 석굴 속 실크로드 문헌
하오춘원 지음, 정광훈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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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상한 컨셉의 책이라 뭘 읽었는지 모르겠다.

책 디자인이나 편집은 아주 좋다.

산뜻한 느낌이고 돈황 문서들을 보여주는 도판도 아주 선명하고 좋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이상하다.

분류학이라고 해야 하나?

돈황 문서가 주는 의미, 당시 시대상 등에 관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돈황 문서들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고 분류해서 알려주는 목차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돈황유서"라고 제목을 지은 건가?

돈황유서를 통한 당시 사회상의 구성이 아니라, 돈황유서 자체가 주제인 셈이다.

돈황문서들은 4세기부터 10세기까지 600년에 걸쳐 소장되었다.

보통 베껴 쓰다 보니 잘못 옮겨지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흐를수록 원뜻을 잃어버리게 되기 마련인데 송대 이전 판본이 보전되어 원전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불교 경전이 90% 이상이지만 행정문서나 유교 경전, 도교 경전, 계약서, 의학서 등도 남아 있다.

사진으로 여러 문서들을 보여주는데 글씨체가 아주 선명하고 바르다.

불교 경전의 경우 베껴 쓸 때 고승들이 수행하듯 한 자씩 정성을 들이고 종이질이나 장정 상태도 양호하다.

궁정에서 돈황까지 전해진 관방 경전들은 당대 최고의 고승들이 교정을 거쳐 좋은 종이에 해서체로 반듯하게 쓴 것들이라 문서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시대가 앞서니 보다 원전에 가깝다는 장점이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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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이평래 외 지음, 중앙아시아학회 엮음 / 사계절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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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라 쉬울 줄 알았는데 중앙아시학회에 발표된 여덟 편의 논문 모음으로 내 수준에서는 다소 어려웠다.

중앙아시아사는 항상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그렇지만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주제들도 있어 전체적으로는 유익한 독서 시간이었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들


1) 흔히 胡 라고 하면 흉노로 알려졌는데 당나라 시대에 와서는 소그드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논증했다.

맨 마지막 해설자의 논평에서는 胡 가 사산조 페르시아까지 포함하는 의미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둘 다 맞는 얘기 같다.

2) 이주형 교수의 글에서는 간다라 미술에서 붓다의 고행상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것을 감상하면서 초기 경전들이 만들어졌음을 추측한다.

즉 이미지가 먼저이고 텍스트가 다음에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해설자의 논평에서는 겸재 정선의 회화를 통해 18세기 조선 후기 사회를 돌아본다는 예시를 들었다.

흥미로운 추론이다.

3) 투르판 문서를 통해 구성해 본 당시 중앙아시아인들의 일상 생활.

영국 학자의 글인데 이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현대인들의 생각처럼 비단 교류가 주였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중국 정부의 통제를 강하게 받는 일상의 삶도 인상적이었다.

4) 맨 마지막에 실린 16세기 몽골의 불교화 과정이 가장 재밌었다.

솔직히 다른 글들은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이 주제는 관심을 확 끌었다.

막연하게 차가타이 칸국이나 일 한국, 킵차크 칸국의 이미지만 생각해 원나라 이후의 몽골은 이슬람화 됐다고 생각했었다.

정작 몽골 초원에 남아 있던 유목민들은 티벳 불교를 받아들여 21세기 현재까지도 민족의 종교로서 자리매김 했다고 한다.

13세기 쿠빌라이가 티벳 승려들을 받아들인 이래 16세기 동몽궐 수장 알단 칸이 소남갸쵸를 달라이 라마로 칭하면서 왕공들이 위로부터 법제화를 통해 불교를 강제화 한다.

이 과정에서 샤머니즘의 저항을 분쇄키시키도 하고 일부 수용하기도 하면서 기층민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알탄 칸이 왜 불교를 국교화 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몽골 지역을 이념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쿠빌라이의 정치 철학을 모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승려들이 의학적으로 학문적으로 몽골 사회의 고급 문화를 선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게르만인들의 가톨릭 수용과도 같은 개념이랄까?

위로부터 종교법 제정을 통한 강제적 개종과 또 일반 민중들의 생활을 파고드는 토착화가 함께 일어나는 과정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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