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술 문화 - 중국문화의 이해
허만즈 지음, 김하림 외 옮김 / 에디터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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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지 하면서 신간에 계속 밀렸던 책인데, 숙제처럼 드디어 완독했다.

중국 번역서인데 첫 장부터 오타가 나와 신뢰도가 떨어져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책이다.

그렇지만 항상 느끼는 바대로, 어떤 책이든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훨씬 낫고, 이 책도 중국 문화에서 술이 차지하는 의미를 알게 해 준 좋은 시간이었다.

내용의 절반은 역사서에 나온 주당들 이야기라 좀 지루하긴 했다.

술의 역사와 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알고 싶은데 전공자들의 책이 아니면 보통은 역사서에 나온 예화 나열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전통사회에서 술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 주는 장점도 있다.


전에 읽었던 책에서 농부는 필연적으로 술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술이 곡류에서 발효시켜 만든 음료이기 때문에 농업이 처음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에서 벌써 맥주가 등장한다.

서양은 과일, 특히 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포도주가 주를 이루고, 동양은 곡류에서 술을 만들었다.

이런 발효주들은 모두 도수가 낮고 단맛이 있는 감주이다.

소주처럼 알콜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얻으려면 기술이 더 발달한 후대에서나 가능했다.

그러므로 저자는 역사서에 등장하는 술꾼들의 말술은 사실은 현대인이 맥주 수십 병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맥주처럼 알콜 도수가 낮은 술은 화장실만 여러 번 들락날락 한다면 충분히 많이 마실 수 있다.

물론 고대인들의 과장법도 있었을 것이다.

또 술을 담는 용기도 오늘날의 개념과 다르기도 했다.

현대의 증류주를 말술로 퍼마셨으면 아마 알콜 중독자가 되어 역사책에 위대한 작품들로 이름을 남기지도 못했을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딱히 문화적 유흥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술이 가장 흥겨운 자극제가 됐다는 분석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변방의 군인들은 가끔 위에서 내려주는 술이야 말로 최고의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문인들도 술 한 잔 걸쳐야 비로소 흥이 나고 시 한 수가 나왔다. 

술의 위상이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오늘날과는 매우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시경이 쓰여진 춘추전국 시대만 해도 하층민들은 술을 마시기가 어려워 민간의 가요를 모은 국풍에는 술 얘기가 별로 없다고 한다.

반면 사대부들의 노래인 소아, 대아 편에는 술 얘기가 대부분이라니 이런 곳에서도 신분차가 드러난다.

역사서에 기록된 어떤 위인은 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어서 도자기 굽는 흙이 되어 술주전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까지 했으니 과연 주당들의 술 사랑은 놀랍다.


<오류>

18p

중간에 낙소스 섬을 경과할 때 디오니소스는 미녀인 마리아드네와 결혼하여

-> 아리아드네이다.

19p

노아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다. 그들은 셈, 헴, 야훼이며

-> 야벳이다.

21p

두 아들 라마(서사시의 주인공)와 바크슈나마가 한 호숫가에서

-> 라크슈마나(Lakshmana)이다.

113p

명말의 황족 중에 주답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 주탑이다.

178p

환현의 부친인 환원의 이름자다.

-> 부친 이름은 환온이다.

290p

위기후 두영은 한의 제 4대 황제 문제의 황후인 두태후의 조카였다.

-> 2대 혜제 이후 두 명의 소제가 있었으므로 문제는 5대 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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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선악을 다룰 수 있는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9 Vol.17 스켑틱 SKEPTIC 17
스켑틱 협회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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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켑틱이라는 이 잡지는 종교와의 전쟁인 것 같다.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판단, 근거를 가지고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적 회의주의를 추구하는 이 잡지를 몇 권 읽어 본 결과 무신론이라는 공통점이 드러난다.

내가 종교를 버린 것도 여기에 자주 등장하는 리처드 도킨스 덕분이라 내 신념이 맞는지 확인하고 강화시키기 위해 자꾸 읽게 되는 것 같다.

신앙 문제를 제외하고는 더 바랄 게 없는 인격의 소유자인 근본주의자 엄마 때문에 더 그렇다.

이번 호에서도 잘못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교화시켜야 할 것인가에 관한 주제가 나온다.

사이코패스 같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을 선악과 도덕적 관점에서 단죄한다고 그들이 바뀌지 않는다.

연민을 가지고 왜 그들이 잘못된 신념 체계를 갖게 됐는지를 알아 보라고 한다.

범죄자들이 꼭 나빠서라기 보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생각의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종교 문제 뿐 아니라 정치적 신념에서도 극단적인 경우를 인터넷에서 많이 접한다.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음모론을 선호한다.

이 책에도 케네디 암살 음모론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자세히 논증하지만 아직도 인간이 달에 가지 않았다고 버젓이 방송에서 얘기하는 지식인이 있는 걸 보면, 인간의 비이성적인 신념 체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긴 하다.

궁극적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과학 교육 혹은 과학적 사고 방식의 함양에 있지 않을까 싶다.

맨 처음 기사에서는 음이온의 허실을 논파하면서 사이비 과학 마케팅을 폭로했다.

어쩌면 과학이 평범한 현대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여전히 음모론과 비이성적인 믿음이 판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만 해도 대학 교육을 받았지만 핵융합 반응을 설명하는 챕터는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적 상식들을 전부 소화할 수 없더라도 전문가들의 견해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더 필요할 수 있다.

전문가를 극도로 혐오하는 한국의 정치가들이 과연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보통 종교인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 따르면 도덕이라는 개념도 공동체를 잘 유지하기 위해 발전해 온 진화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생각해 보면 사회성을 갖고 있는 동물들은 상호호혜성을 체득해야 큰 집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이 반드시 종교의 전유물이라 할 수 없다.

종교는 책에서 비판하는 바대로, 내집단에서만 도덕적이고 양심적일 뿐, 외집단에 대해서는 매우 배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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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 이야기 - 우리 문화와 역사가 깃든 산사 순례
최종걸 지음 / 다우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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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참 좋은데 내용이 너무 너무 지루하다.

430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고 100여 곳에 달하는 수많은 사찰들을 소개하고 있는 점은 좋은데 내용은 마치 절 앞에 세워진 안내판 읽는 기분이다.

잡지에 짧게 연재된 기사들을 모은 것 같은데 그래도 한 권의 책으로 엮으려면 좀더 많은 지식을 포함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니면 자신의 소회를 추가해 에세이 읽는 맛이라도 나던지.

책 표지는 고풍스럽고 참 좋은데 내용은 많은 분량에 비하면 너무 부실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특히 설화나 야사가 너무 많아 신뢰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고대 설화야 역사책에 있는 얘기니 가치가 있다고 해도, 탑돌이 하다가 유방암이 나았다는 식의 20세기 이야기는 왜 싣는 건지 모르겠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시대라 신라와 고려 시대의 절들이 죄다 폐사되고 중은 천민 취급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이것도 편견이었던 것 같다.

유교가 이념화 되긴 했으나 그래도 종교는 아니었기 때문에 의지할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왕실의 불사는 조선 전기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정조가 아들 탄생을 기원해 송광사에 희사하고 용주사는 정조의 원찰로서 대우받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화엄사의 각황전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가 시주한 것이고, 편액도 왕위에 오른 영조가 내렸다고 한다.

정책적으로는 불교를 억압했으나 인간적인 심정으로는 불교에 대한 마음씀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무를 갯펄에 심는 매향의식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좋은 향이 나는 나무를 묻어 훗날 불상을 만든다고 한다.

완도에서 무려 백제시대,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에 묻어둔 녹나무가 발견되어 미륵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류>

82p

고려 헌덕왕은 조카인 40대 애장왕을 폐위시키고

-> 신라 헌덕왕이다.

87p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법흥왕의 두 어머니, 영제 부인과 기윤 부인이 불국사를 창건하고

-> 법흥왕의 어머니, 즉 지증왕의 부인인 연제 부인은 삼국유사에 영제 부인으로 기록됐다고 하는데, 기윤 부인은 누구일까?

검색해 보니 어머니 영제 부인과 왕비 기윤 부인으로 나온 곳도 있다.

지증왕의 왕비가 두 명이라는 기록은 못 봤으니, 아무래도 어머니와 왕비가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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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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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한 학자의 글이 아니라서 그런지 깊이있는 분석 보다는 에피소드들의 나열이 많아 지루하다.

주제는 신선하고 좋은데 내용은 잡다한 역사적 일화들 소개에 그친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들

1) 오늘날 중국인의 육류 소비 절반 이상은 돼지고기인데 이 역사가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원래 양고기 등을 더 높게 쳤으나 명나라 때 농민 출신 황제 주원장의 등극 후 서민적인 이미지의 돼지고기 인식이 바뀌게 되고, 특히 수렵인이었던 만주족은 돼지고기를 매우 중시했다.

몽골인이 양을 치는 유목민인 반면, 숲이 터전인 만주족은 돼지를 주식으로 삼았다고 한다.

앞서 읽는 <송나라 식탁 기행>에서도 남송은 양을 칠 만한 목초지가 부족한 반면 북방의 금나라는 양고기가 흔했다고 나온다.

게르만인, 특히 독일에서 소시지가 유행인 이유도 바로 울창한 숲에 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돼지치기가 가장 편했던 것이다.

쇠고기 소비는 6%에 불과하고 오리 등 가금류가 25%를 차지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2) 보통 두부의 발명을 회남왕 유안 시대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민족들이 몰려온 6세기의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쳐 송나라 때 널리 퍼졌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 두부는 유목민들이 양젖이나 소젖을 발효시켜 치즈나 버터로 만들자 유제품을 얻기 힘든 한족은 그 대용품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특이하다.

아무리 봐도 풍미가 있는 치즈와 거의 무맛에 가까운 두부는 비슷하지가 않는데 유래가 비슷하다는 게 신기하다.

3) 저자는 영락제 때 정화 원정의 목적을 단순한 조공 무역의 확대가 아닌 경제적 이유였다고 본다.

따로 근거를 밝히지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

후추 등 향신료를 수입해 무리한 궁궐 공사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으려 했다는 데 납득이 안 된다.

정말 경제적 동기가 있었다면 서양처럼 적극적으로 대항해 시대가 열렸을 것이다.

국가가 무역을 독점하려 들자 민간 상인들과 결탁한 관료들이 반발해서 영락제 사후 중지됐다고 하는데 폐쇄적인 해금 정책을 고수한 명나라의 기본 정치 체제를 생각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단조 히로시가 쓴 <영락제>에 나온 바대로, 조공 국가를 넓히고 화이질서를 과시하기 위한 매우 비경제적인 활동이었기 때문에 영락제 사후 비용 문제로 중지됐다는 게 맞는 것 같다.

4) 중국이 명나라 때부터 회를 먹지 않는 이유로 흑사병에 대한 공포를 든 점은 주목할 만하다.

14세기에 유럽이 흑사병으로 1/3이 사망한 것에 비해 중국사에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으나 산발적으로 일어나 눈에 띄지 않을 뿐 실제로는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고 한다.

김호동 교수의 책에서도 원나라의 멸망 원인 중 하나로 흑사병 가능성을 든 적이 있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오류>

255p

초대 황제였던 사마염이 죽자 내분이 일어났고 어린 혜제가 뒤를 이었는데

->혜제는 32세의 나이로 즉위한다. 혜제가 어려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지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외척 세력이 득세했다.

301년 혜제의 당숙뻘인 조왕 사마륜이 군사를 일으켜

-> 조왕 사마륜은 사마의의 아들로 혜제의 아버지 사마염의 당숙이다. 혜제에게는 할아버지 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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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처럼 살다 - 사랑과 배신의 작곡가들, 2018 아침독서 청소년 추천 도서
나카노 교코 지음, 모선우 옮김 / 큰벗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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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에서 번역된 책들을 보면 서양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느껴지고 주제도 아주 세분화 된 듯 하다.

이 책의 저자가 쓴 <무서운 그림> 이나 <명화로 보는 남자의 패션>도 서양화를 통해 당시 시대 풍속을 살펴보는 흥미로운 책이었던 터라, 다소 뻔해 보이는 제목이지만 고르게 됐다.

제목을 좀 더 인상적으로 바꾸면 책의 매력을 발산하지 않았을까 아쉽다.

여덟 명의 오페라 작곡가들의 삶을 그들의 대표작과 연관지어 소개하는 형식인데 천재들도 창작의 고통과 더불어 고단한 삶에 힘들어 했음을 잘 보여 준다.

모차르트의 궁핍함과 요절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어린 나이에 유럽 전역을 순회공연 할 때 마차 여행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잘 몰랐다.

어찌 보면 마차로라도 유럽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긴 한데 오늘날의 안락한 연주 여행과는 전혀 다른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단지 명예욕으로 아들을 끌고 다닌 것이 아니라 귀족들의 후원이 점점 줄어드는 시민사회 도입기의 변화에 생존하기 위해 천재 아들을 여기저기 소개했던 것이다.

다음 세대인 베토벤만 해도 예술가로써 명성을 유지하고 자립이 가능했지만 모차르트 시대에는 여전히 시민 계급이 완벽한 후원자가 될 수 없었다.

<마탄의 사수>를 작곡한 독일의 음악가 베버 역시 결핵에 걸렸으면서도 가족들에게 유산을 남겨 주기 위해 영국에서 몸을 혹사시키다가 그만 타지에서 죽고 만다.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 벨리니 역시 로시니의 뒤를 이은 작곡가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자인 도니체티에게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30대의 젊은 나이에 아메바성 장염으로 사망한다.

빚쟁이에게 쫓기던 바그너의 젊은 시절도 소개된다.

너무나 매력적인 오페라 <카르멘>의 작곡가인 비제도 초연에 실패한 후 비관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급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작곡가들도 모두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창작의 고통에 시달렸으며 명성에 걸맞는 대우를 생전에 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내가 중년의 나이에 접어 들어서인지 너무나 인간적인 위인들의 애환에 격하게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고 훌륭한 작품들을 후대에 남겼으니 정말로 그들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모양이다.


"예술은 지긋지긋하오. 재단사로 일하면서 일요일에는 쉬고, 건강한 위장과 쾌활하고 편안한 기분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겠지."

베버가 죽기 직전 아내에게 보낸 편지이다.

위대한 예술가들도 창작의 고통과 삶의 무게에 짓눌리며 살아가는 생활인이었던 것이다.


<오류>

22p

로마대상은 1666년 루이 4세가 제정

-> 루이 14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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