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만나는 불교미술
동국불교미술인회 엮음 / 대한불교진흥원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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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부터 불교미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산회상도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본 후터인가?
나이가 먹는 건지 모르겠으나, 우리 문화, 전통 미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
서양의 화려한 건축물에 감탄하고, 르네상스 그림들의 정교함에 마음을 뺏기면서도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미의식, 내가 가장 완벽하게 감상할 수 있는 우리 문화가 너무 정겹고 가슴 절절하게 와 닿는다.
국력의 발전은 곧 문화의 보존이고 전통의 계승임을 요즘 들어 새삼스레 느낀다.
대체 지장 보살은 뭐고 문수 보살은 뭐고 약사여래는 또 뭐란 말인가?
아무리 요즘의 한국이 기독교 천지가 됐다 하더라도 불교 미술은 한민족의 2천년을 함께 한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문화임이 분명하다.
불교 미술을 뺀다면 한국인의 미의식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작은 책자이지만 평소에 궁금해 했던 불교 용어와 구조, 사찰의 건물과 탱화 등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너무 설명적이라 건조하긴 하지만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특히 박물관에서 봤던 영산회상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에 절에 가게 되면 좀 더 유심히 봐야겠다.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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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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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솔직히 썩 잘 쓰여진 책은 아니다.
시도는 유용했고 나름 재밌게 읽긴 했는데 저자의 번역 실력에 비하면 문장력이 썩 좋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문고판 판형에다가 가벼워서 지하철에 서서 편하게 읽기 좋았다.
그런데 어떤 개념을 설명하는 수준이 썩 높지는 않다.
고등학생들 혹은 대학 초년생이 읽을 만 하다.
글을 쉽게 쓰는 것과 글의 수준이 높고 낮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문장력이 좋지 않다고 하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그럼 무조건 어렵게 써야 좋은 글이란 말인가요?"
쉽게 쓰는 것과 글솜씨가 없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인데 본인의 작문 실력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는 글을 못 쓴 게 아니라 쉽게 썼다고 우기는 일부 저자들이 있으니, 좀 반성해야 할 것 같다.
남경태씨가 번역한 책은 몇 권 읽어 봤는데 꽤 성실하고 실력있는 번역자라고 생각했었다. 
<종횡무진 한국사, 세계사>도 재밌게 읽어서 기대를 했던 책인데 이번 책은 그냥 평범하고 의외로 번역 실력에 비해 글솜씨가 아주 좋지는 않아 의외였다. 

시도는 좋았다.
사전이라고 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주변에서 흔히 듣는 단어들에 대해 기원과 배경을 밝히고 가벼운 설명을 곁들이는 형식이다.
저자 역시 기독교에 대해 저항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반갑기도 했다.
그가 쓴 <역사>를 읽어 볼 생각인데 역사 쪽은 좀 더 탁월한 식견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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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난고로 보는 조선 지식인의 생활사
강신항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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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후 집어든 책이다.
학술적으로  여러 학자들이 꼼꼼히 분석한 점은 마음에 들지만, 한자가 너무 많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저자들 입장에서는 생활한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한글 전용화 세대이다 보니 솔직히 여기 나온 한자들, 정말 기초적인 거 아니면 못 읽겠다.
좀 더 대중적으로 읽히기 위해 한글로만 쓰던지, 아니면 한자 옆에 한글을 병행 표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이재난고처럼 덜 유명한 원저들은 대중들이 접하기 어려운 만큼, 학자들이 풀어서 설명한 이런 시도들이 참 유용하고 값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중 수준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하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대중을 위한 교양서가 아니라 전공자를 위한 책 같기도 하다.
내용의 2/3 정도를 이해한 것 같다.
그렇지만 구성도 탄탄하고 무엇보다 이재난고라는 방대한 책을 여러 명의 학자들이 매달려 찬찬히 뜯어 봤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런 신뢰할 수 있는 저자들의 학문적 접근이 보다 대중적인 차원에서 많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황윤석이라는 조선 후기 학자는 높은 벼슬을 한 사람도 아니고 시대적으로도 임진왜란 같은 격동기가 아니다 보니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재난고라는 방대한 분량의 문집을 남겨 후대인들로 하여금 영정조 시대를 꼼꼼히 복원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치 미암일기가 조선 전기 사회를 알려주듯 말이다.
다만 고위 벼슬을 역임한 유희춘과는 달리 황윤석은 제일 높히 올라간 벼슬이 종 6품의 하위직이다 보니 중앙 정계에 대한 식견이나 정보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승정원에서 발간되는 조보를 지방에 있을 때조차 매일 구해 보려고 애를 썼고, 호남제1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중앙 정계 인사들과 많이 교류했으며 본인 자신이 박학다식을 추구한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에 정진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정보를 후대인에게 제공한다.
재밌는 사실은, 황윤석의 아버지가 천석꾼의 부자였고 무엇보다 황윤석 자신이 학문에 있어서는 호남제일인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당대 최고의 학자였으나 정작 문과는 한 번도 급제를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관리는 곧 유학자를 뽑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대과에 합격한다는 것이 요즘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는지, 아니면 후기로 올수록 지방 유생이 정계에 진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만큼 폐쇄적으로 변질되었는지 궁금하다.
즉 황윤석이 대과에 급제할 만큼의 수준은 못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충분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제가 워낙 폐쇄적이라 급제를 못한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신숙주나 이이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긴 관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당대에는 엄청난 거물들이었던 것 같다.

황윤석의 아버지는 천석꾼이었고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해하면서 황윤석은 5백꾼 지주가 되지만, 흉년에는 큰 타격을 받을 정도로 당시의 식량 사정은 열악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5백석 지주면 당시 상위 0.5% 내에 들 정도로 엄청난 부자인데도 말이 없어 서울 출타를 못하고 흉년이 들면 하루 두 끼로 연명했을 만큼 식량 걱정을 해야할 정도니, 하위층들은 흉년 때 말그대로 굶어 죽는 일이 속출했을 것이다.
역사의 진보가 과연 타당한 말인가 싶다가도 이런 부분을 읽을 때마다 적어도 생존 측면에서는 확실히 진보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황윤석은 전라도에 거주했기 때문에 한 번씩 서울로 갈 때마다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
특히 서울의 하위직에 근무할 때는 집을 구입하지 못해 오늘날로 치면 하숙을 했는데 주인에게 월급을 전부 주고도 늘 모자라 빚까지 진다.
드라마 허준에서 유도지가 내의원에 합격한 후 상경하여 집을 사고 하인을 부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굉장한 부자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방 현감으로 내려간 후는 흑자로 돌아선다.
수령의 횡령이나 포탈 행위가 요즘 인식보다 훨씬 느슨했으며 어느 정도는 관례화 됐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 역시 후대로 갈수록 제한이 더욱 엄격해져 지방 수령의 재정 유용 범위가 축소된다.
삼정의 문란이니 하면서 후기로 갈수록 행정체계가 무너진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왕조 말기 현상이었고 적어도 18세기에는 조선왕조는 더욱 법적인 탄탄함을 더해갔음을 보여준다.
문득 드는 생각이, 왜 조선 시대에는 관혼상제 같은 예절을 차리는데는 그렇게도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마치 그것을 인간성이나 도의 완성으로까지 생각했으면서, 정작 청렴결백이나 만인평등 같은 기본적인 불변의 도덕 진리에 대해서는 둔감했냐는 것이다.
실생활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예절을 잘 차리는 것이 성인의 기본 조건으로 인식되는 대신, 정말 사회를 아름답게 꾸려 나갈 수 있는 덕성들, 이를테면 이웃을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고 청렴결백 하게 공무를 처리해야 사회적 권위를 얻을 수 있는 진짜 성인으로 간주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인간은 정말로 이기적인 동물이고 결단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것 같다.
사회의 발전은 정말로 개인개인의 이기적인 욕구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아담 스미스의 견해는 참으로 탁월하다.

어려운 한자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고 재밌에 읽은 책이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소설책을 읽듯 한 번에 쭉쭉 읽을 수 있다.
더불어 정치 대신 조선 시대의 문화상에 대해 관심이 증폭됐다.
관련 서적들을 더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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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푸치니 : 라보엠
프란츠 벨저-뫼스트 외 / EMI 뮤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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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이 클래식> 모임에 가서 라 보엠을 처음 접했다.
이상하게 푸치니의 오페라는 선뜻 와 닿지가 않았고 라 보엠 역시 흥미가 별로 안 당기는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해설을 들으면서 관람을 하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솔직히 아직 수준이 안 되서 성악가의 기량이나 오페라단의 연주 솜씨 같은 건 감별을 못 하겠다.
다만 귀에 꽂히는 아리아, 멜로디, 마음을 끄는 극적 전개 이런 것들을 위주로 본다.
적어도 의무감으로 보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는지 그게 내 관전 포인트다.
어떤 사람은 클래식을 어설픈 교양주의 때문에 억지로 관람한다고, 심지어 사대주의까지 운운하지만 인터넷과 온갖 자극적인 영상물들이 난립하는 이 시대에 정말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지 않는다면 대체 뭣 때문에 사라져 가는 이 위대한 예술을 관람하겠는가?

내가 본 작품은 <하이 클래식>에서 소개해 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물이었다.
남녀 주인공들이 꽤나 잘생기고 예뻐서 극이 매력에 빠져들이 쉬웠다.
파바로티가 이 라 보엠 전문이라고 하니 나중에 파바로티 작품도 볼 생각이다.
제목이 예뻐서 전혀 짐작을 못했는데 알고 보니 정말 불쌍한 내용이다.
돈 없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만나서 잠깐 함께 살다가 결국은 돈 때문에 헤어지고 여자는 폐병으로 죽는다는 슬픈 얘기.
그렇지만 1막에서 네 명의 젊은이들이 가난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이 패기가 느껴져 보기 좋았다.
푸치니 오페라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고 다음에는 토스카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도서관에 DVD가 많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도 과천도서관은 DVD를 대여해 줘서 다행이지만 영상물을 책처럼 자유롭게 고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워낙 비싸기 때문에 선뜻 이것저것 살 수도 없고 솔직히 영상물 두 번 볼 거면 그 돈으로 직접 공연을 보겠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쉽게 사지지가 않는다.
사실 아직 음악에 대한 식견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반을 고르지도 못한다.
도서관에 음악 영상물을 좀 더 다양하게 갖춰지길 바라고, 대여점이 활성화 되서 쉽게 빌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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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기술과 사회변화 - 등자와 쟁기가 바꾼 유럽역사
린 화이트 주니어 지음, 강일휴 옮김 / 지식의풍경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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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인데 이제서야 손이 갔다.
겨우 200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책이지만, 역자가 고백하듯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필독서로 잘 팔리는 훌륭한 책이다.
중세 사회의 변화를 이끈 원동력에 대한 분석이 탁월하고 무엇보다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풀어 쓴 솜씨가 놀랍다.
어려운 내용과 읽기 어려움은 별개라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어려운 내용도 저자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쉽게 쓰일 수 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중세는 르네상스 시대에 비해 뒤쳐지고 종교에 함몰되어 있으며 중세 천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정지된 사회다.
세계사 시간에 중세는 고대에 비해 아무 발전이 없었고 르네상스를 맞아 비로소 서양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중세는 기사가 성에 갇힌 공주님을 구하러 길을 떠나고 용과 싸우고 성배를 찾아 헤매는 낭만적인 전설로 기억된다.
그러나 실은 중세가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근대의 발전이 가능했다.
말을 농업에 이용하고 무거운 쟁기로 밭을 갈고 삼포제를 도입하고 물레방아 등을 동력원으로 이용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으로써 비로소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도시인이 생겼으며 상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
농업 발전을 이룬 핵심이 바로 무거운 쟁기라는 게 놀랍다.
이 쟁기를 사람 대신 여덟 마리의 소가 끌었는데 소를 이렇게 많이 보유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협동을 하게 되고 이것이 장원제의 기원이다.
재밌는 건 말도 농업에 이용됐고 소보다 더 큰 견인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왜 한반도에서는 말을 농사에 이용하지 못했을까?
목초지가 부족해서일까?
말 사육이 활발해지고 대형마가 생기면서 전투 뿐 아니라 농업에도 이용됐고 마차 이용도 활발해져 비로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중심지, 도시가 형성됐다고 한다.

등자의 개발도 빠질 수 없다.
안장만 가지고는 기사 계급이 생길 수 없다.
등자가 발명된 후 비로소 말과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완벽한 전투력을 자랑하게 된다.
카를 마르텔은 교회의 영지를 몰수해서 기사들에게 나눠주고 이것이 봉건제도의 시작이 된다.
등자라는 단순한 발명품 때문에 중세 봉건제도가 성립됐다니, 너무 재밌지 않은가?
무거운 쟁기의 발명 덕분에 충적토를 개간할 수 있게 되고 생산력이 높아져 잉여 생산물로 사치품을 구입하게 되니 상업도 성행하고 도시도 발달했다고 한다.
역사의 발전이란 유기적이고 복잡 다단함을 새롭게 느꼈다.

굉장히 쉽고 재밌게 쓰여진 책이고 중세 사회의 기원에 대해 논리적으로 훌륭하게 설명한 책이다.
중세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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