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미술 디테일로 보는 명작의 비밀 3
수지 호지 지음, 서남희 옮김 / 시공아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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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서 막상 책 실물을 보니 너무 얇아서 좀 놀랬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집트실이 신설되어 관람하러 갔는데 도록이 너무 소략된 것 같아 이집트 미술에 관한 책을 읽는 중이다.

앞서 읽은 <이집트의 예술>은 너무 어려웠던 데 반해 이 책은 일단 분량이 작고 20개의 대표적인 미술품을 디테일하게 소개하고 있어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유물의 작은 부분까지 클로즈업 해 자세히 설명해 주니 작품 감상에 훨씬 도움이 되는 듯하다.

도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서문에서도 밝힌 바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런 조각상과 벽화를 남긴 것은 현대인처럼 예술품으로 감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순전히 내세의 영원한 삶을 위한, 일종의 제사 의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개념으로 당시 장인들에게 예술가로서의 개성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미, 내세의 편안함, 영생을 추구했던 것이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이집트 미술이 변하지 않고 견고함을 유지한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맨 마지막에 실린 로마 속주 시절의 장례 초상화를 보면, 르네상스의 전통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다.

르네상스 시대 초상화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수준이라 깜짝 놀랬다.

확실히 그리스 로마의 자연주의적 미학 전통은 동양의 완고함과는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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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가르쳐주지 않은 성경의 역사
정기문 지음 / 아카넷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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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무신론자인데도 엄마 때문에 끊임없이 기독교에 관한 책을 계속 읽게 되는 것 같다.

신은 정말 있는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자, 혹시 있다 해도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이 아니라 계몽주의자들이 말한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 우주의 원리로써의 신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가 신이다는 교리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유일신을 믿던 유대인들이 예수가 신이라고 주장했을 때의 충격이 이해가 가고 오랜 시간 동안 예수가 곧 신이라는 삼위일체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심정이 충분히 공감된다.

이 책에 따르면 기독교를 세우다시피 한 사도 바울 역시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신성을 부여받은 자,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 생각했지 그가 곧 하나님, 신 자체라고 보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가급적 유대교 교리를 지키려고 애썼고, 사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고, 다만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구약이 경전은 될 수 있을지언정, 최소한 신약은 오늘날의 개념, 일획일점도 다르지 않다는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약 역시 끊임없이 개작되고 추가됐음을 밝히고 있는 마당에, 하물며 초기 기독교인들이 경전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신약을 한 구절도 고치거나 빼지 않은 신의 계시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초대 교회의 사본들이 발굴되면서 신약이 계속 수정되어 왔고 확립된 교리에 맞추기 위해 추가되어 왔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현재 기독교에서는 이를 외면한다고 비판한다.

최소한 성경을 근거로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이것이야말로 성경 무오류설, 기독교 근본주의자, 이단이라 생각이 되지만, 어쨌든 경전의 신성을 부정한다면 과연 종교가 성립이 될까 의심스럽긴 하다.

이슬람 교도들에게 코란의 역사적 진실을 파헤치게 한다면 이미 그 사람은 종교인이 아니지 않을까?

결국 성경의 역사와 진실을 밝히는 이러한 노력들은 기독교인의 범주에서는 불가능하고 또 불필요한 시도가 아닐까 싶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는 교회 내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겠으나 어쨌든 성경의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적은 계시라는 성경 무오류설, 근본주의자는 틀렸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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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 테마미술강의 003
알란 보우니스 지음, 하계훈 옮김 / 서울하우스(조형교육)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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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책이고 무려 1989년에 강의한 일종의 강연록인데 아주아주 유익하고 재밌다.

제목만 보면 약간 자극적이기도 하고 말을 위한 말, 관념적인 얘기가 될까 걱정했는데 예술이라는 창조 행위의 핵심에 대해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 줘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예술가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는, 골방에 갇혀 천재적인 창의력으로 위대한 작품을 남기지만 세상은 인정하지 않고 가난에 찌들려 오직 예술혼을 불태우다가 쓸쓸히 죽고 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반 고흐와 고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들도 오래 살았으면, 즉 모네나 피카소처럼 8,90대까지 장수했으면 충분히 세상의 열광과 부유함을 다 맛 볼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창작의 절정을 이루는 불꽃튀는 생산성 있는 10년 동안 평론가의 인정을 받고 컬렉터와 화상들이 작품을 사 모은다.

이들은 서서히 대중들의 취향을 변화시켜 드디어 자신의 작품에 열광하도록 만든다.

저자는 그 시간을 대략 예술의 시작점으로부터 25년을 잡고 있다.

서양 사람인만큼 수치로 정확히 얘기한다.

반 고흐의 경우 27세의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했고 주변 작가들로부터 인정을 막 받기 시작할 때 죽어버렸고, 그의 작품을 알려야 할 테오 역시 죽는 바람에 평가를 받는 데 10년이나 늦어졌다.

대신 일정 시간이 지나자 세상이 반 고흐에게 열광하고 오늘날 최고의 화가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80대까지 살았다면 모네나 피카소 같은 대중의 열광과 부유함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골방에서 외로이 죽어간 천재 화가는 낭만주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동료 집단과 평론가와 컬렉터들, 그리도 마지막에는 대중들까지,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은 결코 천재를 불행하게 끝까지 놔두지 않고 그 진가를 알아본다고 할까?

결국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고갱의 경우는 본인의 우울한 기질상 파리에 전시하지 않고 타히티라는 먼 곳으로 떠나 있었기 때문에 빨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그가 유럽에 계속 살았다면 훨씬 더 일찍 평가를 받았을 거라고 한다.

사실 사후에라도 이들의 위대함을 예술계에서 인정했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았겠는가.

저자는 예술가의 성공을 저해하는 두 요소로 심리적인 것과 사회경제요인을 들었다.

조울증이나 알콜 중독, 불행한 결혼 생활 등등이 창의력을 저해할 것이고, 사회적 요인으로는 2차 대전으로 전쟁에 징집되거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예술가들을 들 수 있다.

여러 예술가들을 받아들인 미국은 현대 예술의 중심지로 우뚝 섰으나 정작 그 곳으로 이주한 예술가들의 창의력이 고갈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짐작이 된다.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예술가를 숙련공과 구분한다.

간단히 말해 숙련공은 기술자이고 중산층의 가정을 장식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예술가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미술관의 벽면을 채우고 예술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20대 때부터 먼저 주변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동료들은 질투심과 경쟁심 때문에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을 수 있으나 어쨌든 재능이 뛰어남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게 된다.

이런 경쟁심이 분발하게 만들고 창의력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저자는 그룹을 만드는 단체 활동도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평론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그들이 대가가 될 자질을 파악하면 이제는 컬렉터나 화상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된다.

창의력이 만발하는 이 시기를 대략 5~10년으로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대중이 갈채를 보내는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

생각보다 빨리 인정을 받는다는 것,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진짜 예술가는 결국에는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

범인과 다른 천재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냥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 끝에 만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천재가 열심히 노력한 것이 바로 위대한 예술의 본질인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92p

올더스 헉슬리는 "물론 대부분의 예술은 항상 부적당하거나 중요치 않은 것으로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술적 재능은 극히 드문 현상이다"라고 썼다. 계속해서 헉슬리는 개인의 재능을 대신할 유일한 것은 훌륭한 예술적 전통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이것을 "살아 있는 서투른 예술가들에게 지시하는 훌륭한 죽은 예술가의 망령들"이라고 정의하였다.

 나는 헉슬리의 판단과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훌륭한 예술은 아주 보기 드문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척하고 모든 예술을 똑같이 유효한 것으로 취급하며 어떤 선택이든 간에 그것은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 분명해지겠지만 나는 이러한 입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선택의 과정이 냉정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현대 미술품을 구입하거나 전시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하고 심지어 그것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은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매우 선택적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들 직업의 초기 단계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들이 성공할 기회가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특별한 재능은 보통 아주 초기 단계에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이고, 명성을 향한 그들의 진로는 내가 지적한 진행의 본보기를 따르게 될 것이다. 자신이 발탁되기를 기다리며 어딘가에 홀로 떨어져 작업을 하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천재들이 있다는 추측은 결코 신뢰할 수 없다. 위대한 예술은 그렇게 생겨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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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조각공원 macs RND ins. 뮤지엄건축 시리즈 9
서민우.서상우 지음 / 미세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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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흔히 알려져 있어도 조각공원에 대한 관심은 적어 모르던 차에, 흥미로운 주제가 나와 읽게 됐다.

그러나...

너무 내용이 소략되고 사진도 도저히 감상이 어려울 정도로 작아 실망스럽다.

기왕이면 좀더 큰 판형으로 더 성실하게 본문을 추가하면 어땠을까 싶다.

앞서 읽은 저자의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이 책도 유명 조각공원들 이름 나열에 그친 것 같아 아쉽다.

표지에 나온 저 멋진 조각품은 미네아폴리스 조각공원에 있는 클랜스 올덴버그의 'Spoonbridge & Cherry' 라고 한다.

이런 새로운 작품들과 유명 조각 공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소득이다.

작년 일본 여행 때 별 생각없이 들렸던 하코네의 조각공원도 꽤 유명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또 이번 여름 휴가 때 우연히 지나가다 들르게 된 바우지엄 미술관도 나와 반가웠다.

확실히 가본 곳은 책에서 다시 만나면 좀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아직까지 조각 자체만으로는 큰 감동이 쉽사리 안 느껴지지만, 자연과 어울어진 야외조각은 산책과 풍경의 의미로써 훨씬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조각공원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는데 한번쯤 방문해 보고 싶다.


<오류>

122p

힐쉬호른 조각공원 (Hirshhorn Museum & Sculpture Garden)

-> 힐쉬호른이라니, 허쉬혼 조각공원이다.

144p

마이트재단 조각공원 (Maeght Foundation Sculpture Garden)

-> 원어 표시가 안 되어 있으면 어딘지 모를 뻔 했다. 매그 재단이라고 번역하지 않나? 마이트 재단은 처음 들어본다.

157p

마크 디 슈베르(Mark di Suvero)

-> 마크 디 수베로라고 번역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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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5 -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5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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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정주영 회장의 방북 후 금강산 관광길이 열렸을 때 첫 답사기를 썼던 모양이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방문해 중앙일보 등에 연재했던 글인 듯하다.

무려 20년 전이라 최근에 인상깊게 읽었던 일본 답사기와는 조금 다른 날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4권이 평양 방문이고 이번에 읽은 5권은 순수하게 금강산 답사에 관한 글이다.

금강산이라고 하면 백두산처럼 아주 멀리 있는 곳 같은데 사실 철원 바로 위에 있는 강원도 지역이라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조선 후기 소중화와 진경문화가 싹트면서 선비들 사이에서 금강상 탐승이 유행이었고, 일제 시대 들어와 철도가 개통되면서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는데 6.25를 거치면서 오직 표훈사 하나만을 남기고 다 폭격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남한 영토 내에 있었다면 관광지로서 크게 개발이 됐을텐데 자연 그대로의 멋진 모습은 살아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풍경을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요즘처럼 조선 후기 진경문화에 대한 관심이 드높은 때라면 직접 답사해서 정선이나 김홍도 등이 남긴 금강산과 비교해 볼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그림의 제목으로만 외금강이 내금강이니 해금강이니 했던 곳을, 책을 읽으니 하나씩 구분이 된다.

유홍준 교수 답사기의 특장점은 글이 참 편안해 읽기가 좋고, 무엇보다 직접 그 곳에 가 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는 점이다.

기암절벽과 그 사이사이의 깊은 계곡, 폭포들을 실감나게 묘사해 흥미롭게 읽었다.

원나라 간섭기 때 기황후 등이 금강산에 시주해 절이 크게 융성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아내와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책에도 그 에피소드가 나와 재밌게 읽었다.

정선의 그림이 맺어준 인연이라니, 정말 로맨틱하다.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하지만 인간이 그곳을 유람하고 글을 남겨 그 가치를 더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결국 우리가 꽃이라고 부를 때 그 꽃이 의미가 있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선시대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금강산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에 금강산이 더욱 우리에게 애틋하고 의미있는 곳이 되는 것 같다.


<오류>

151p

해강은 창덕궁의 외국사절 접견실인 희정당에 <외금강 만물상>과 <해금강 총석정>이라는 대폭의 벽화를 제작하였는데, 이 그림은 1923년 화재로 불타버리고 말았다.

-> 1917년의 화재로 1920년에 새로 그린 게 이 작품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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