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호리 갈대밭 속의 나라 (대도록) - 그 발굴과 기록,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가 봤다.
여길 방문한 까닭은, 바로 이런 도록을 보기 위해서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어쩐지 위압감이 들고 쉽게 방문하지 못했는데 막상 가 보니 시설이나 위치 모두 너무 편하게 되어 있고 무엇보다 국내 발행된 모든 책들이 다 있었다.
보고 싶었던 도록들이 전부 있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아쉬운 점은 너무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평일에는 이용하기 힘들고 주말에만 가야 하는데 주말에도 6시에 끝나서 오래 책을 보기는 어려웠다.
대출도 안 되는데 늦게까지 개방했으면 좋겠다.
(야간에 한 곳만 개방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없다) 

이 전시회는 중앙박물관에서 직접 봤다.
그 때도 도록을 무척 사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소도록으로 만족했는데 도서관에서 보고 너무 반가워 제일 먼저 읽었다.
유물 사진을 보니 그 때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중에 큐레이터와의 대화에서도 다호리에서 출토된 붓과 삭도에 대해서 설명했었다.
이 유물들은 문자 생활을 그 때부터 시작했다는 간접적 증거가 된다고 했다.
이 다호리는 습지라서 유물 훼손이 최소화 됐고 낙동강을 중심으로 외국과 활발하게 교역을 했으며 근처의 평야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다호리 유적은 전형적인 원삼국 시대, 즉 초기 철기 시대의 묘제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훌륭한 유적지다.
발굴이 무려 20여 년에 걸쳐 이뤄졌다고 하니, 도굴과 발굴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유물들은 대부분 무덤의 부장품들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귀했을 철기 제품이나 칠기 장식품들을 넣어 두는 걸 보면 내세에 대한 의식이 확실했고 죽은 이에 대한 애도와 종교심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인간의 종교심은 정말로 본성에 각인된 근본적인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無의 상태에서 농기구나 토기 등을 만들고 옻칠 장식을 하고 집을 짓던 인류 조상들의 위대함은 생각할수록 놀랍다.
어떻게 철광석에서 철 성분을 분리하고 다시 그것을 주조하여 철기구로 만들 수가 있었을까?
또 옻나무 수액을 발라 내구성과 미의식을 더할 수 있었을까? 
고대 유물들을 보다 보면 인류의 기원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갖기 않을 수 없다. 

원삼국 시대에 대한 좋은 고찰이었고 당시 전시를 떠올리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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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생각의 한계 - 당신이 뭘 아는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로버트 버튼 지음, 김미선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읽으려고 했던 책은 아니고, 희망도서 신청을 했는데 내 이름으로 잘못 기재되어 우연히 빌리게 됐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하고 덤볐는데 읽고 보니 상당한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나 칼 세이건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신론에 좀 더 확신을 갖게 됐다.
한동안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면서 특히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이 너무 커서 종교 자체를 부정했었다.
제일 이해가 안 갔던 게 바로 창조론을 믿는 과학자들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어떻게 그 말도 안 되는 창조론을 믿을 수 있으며, 또 그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과학과 종교는 결코 같은 맥락에서 대립할 주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분야라고 해야 하나?
결론적으로 보면 역시 과학은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나, 인간의 마음, 더 정확히 뇌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의미와 목적감을 얻기 위해 매달리게 되는 종교의 효용성을 인정해 주자, 이게 저자의 주장 같다.
넓은 마음으로 한 수 봐 주자는 거다.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궁극적인 결론은 그거다. 

안다는 것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기 보다는, 안다는 느낌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옳다거나 맞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냥 느낌일 뿐이다.
저자는 이것을 정신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그러므로 신념이든 확신이든 혹은 진리듯 어쩔 수 없이 다 궁극적으로는 주관적인 것이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화론에 대해 말할 때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진화론의 가치가 깎이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창조론이 힘을 얻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힘이 더 센 진화론자들의 절대적 확신을 공격하지만, 말하지 않은 이면에는 창조론자들에 대한 경고도 숨어 있다.
압도적인 증거를 가진 진화론이 이 정도로 겸손해야 한다면 실제적인 증거가 거의 없는 창조론은 더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는 종교의 효용성에 대해 인간에게 의미와 목적감을 준다고 했다.
아무리 우주의 신비를 밝힌다 해도 그 과학적 사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나 목적의식을 주기는 어렵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이유와 확신을 주겠지만 매우 예외적인 경우임을 인정하자.
(그런 이유로 저자는 도킨스를 이성을 신봉하는 종교인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므로 플라시보 효과를 인정하듯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종교의 효용성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저자에게 묻고 싶다.
과학과 종교가 명백히 다른 관점에서 서로 다른 분야에 속해 있는데 그 과학의 영역까지 파고들려고 하는 근본주의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오늘날 인간에게 의미와 목적감을 주는 이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드는 종교인들의 이 어처구니 없는 실상에 좀 더 관심을 갖는다면 저자 역시 도킨스처럼 신은 없다고 좀 더 확실하게 주장하지 않을까? 

제일 인상깊었던 구절은 대체요법에 대한 저자의 태도였다.
정통 의학자인 저자는 이 대체요법이나 민간요법, 일부 기적이라 불리는 사례들에 대해서 좀 더 너그러운 관점을 취한다.
결코 이들을 틀렸다고 단정짓지 않고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도 있으니까) 다만 내가 이것을 다른 사람에 권할 때는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몇 개의 경우에 불과하며 다른 case 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음을 분명히 환자에게 알리라고 한다.
즉 나의 주관적인 신념과 확신임을 분명히 밝히라는 것이다.
내 관찰 결과가 필연적으로 의학적 성과를 이끌고 그것이 대부분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지 어떨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만약 대규모 실험을 통해 그렇다고 확인된다면 이미 그것은 대체요법이라는 말 대신 정통의학으로 포함될 것이다.
정말 이 정도의 양심을 지켜 준다면 대체요법에 대해서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편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지, 또 생각의 한계가 얼마나 분명한지 새롭게 깨달았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한 권을 읽고 삶의 태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성과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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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전의 역사 - 전쟁의 제1법칙, 보급이 전장을 좌우한다 KODEF 세계 전쟁사 29
마르틴 반 크레펠트 지음, 우보형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재밌으면서도 어렵게 읽었다.
기본적으로 유럽 전쟁사에 대해 무지한 탓에 지명이나 인물들이 너무 생소해 처음에는 몰입이 잘 안 됐다.
뒷쪽으로 가면서 1,2 차 세계대전이 나오니까 그제서야 좀 감이 잡히고 대충 넘어갔던 앞쪽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라든가 나폴레옹 전쟁 등을 다시 읽으면서 이해도를 높힐 수 있었다.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솔직히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전쟁은 전략과 전술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신무기나 지형 활용, 군대의 숫자 이런 게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보급이야 말로 전쟁의 양상과 승패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임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보급은 전면에 다뤄지지 않았을까?
책에도 나온 바지만 식량과 탄환 보급을 신경쓰는 건 전혀 멋있어 보이지가 않고, 더 결정적인 이유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모든 상황을 다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장군들이 수학자나 공학자가 아닌 이상 최적의 보급 상태를 제공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시대적 한계도 분명히 작용했을 것이다.
철도가 발명되기 전에는 말이 끄는 수레가 나르던지 배로 운송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근대 군대들은 가능하면 강을 끼고 진격하려고 했다.
수레에 비해 선박은 훨씬 많은 양을 수송할 수 있고 빠르게 운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송량은 비약적으로 커졌으나 문제는 철도의 종단점과 실제 전투지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1차 대전 때도 여전히 말이 끄는 수레가 보급을 담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은 차량 수송을 계획했는데 연료와 고무를 자국에서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히틀러의 야심찬 계획은 실패에 돌아갔다고 한다.
당시 경제력으로 전 보급을 차량에 맡길 수 있는 국가는 오직 미국 뿐이었다고 한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항상 분노했던 것이, 침략군의 민간인 약탈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는 남의 나라를 침략한 것보다는 거의 대부분 침략을 당한 쪽이라 왜군이나 몽골군, 청나라 군, 심지어 도와 주러 왔다는 명군까지 민간인 약탈에 열을 올렸다는 내용이 많아 군대 기강의 해이함과 침략군의 잔인함에 치를 떨곤 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전근대 군대에 있어 약탈이란 필수적인 보급 과정이란 걸 알게 됐다.
보급 수단은 한계가 있고 군사들이 이고 지고 오는 양도 정해져 있다.
그나마 행군이 길어지면 식량을 버리는 일도 속출한다.
본격적인 수송부대가 생긴 것도 나폴레옹 전쟁부터라고 한다.
그러니 그 전에는 대부분의 보급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말 같은 경우 인간에 비해 무려 열 배를 먹기 때문에 사료 공급도 큰 문제였다.
왜 한국에서 말을 육성할 수 없었는지 이해가 되고, 대체 몽골군은 그 넓은 땅을 어떻게 누빌 수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현지징발은 전근대 군대의 보급에 필수적이었다.
그러니 도망칠 때 식량을 다 태워 버리는 청야전술이 먹힐 수 밖에.
심지어 유럽에서는 끊임없이 이동하지 않으면 현지에서 징발할 수 있는 식량이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움직였다고 한다.
이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길어지는 포위전이다.
18세기까지 요새는 매우 철저하게 방어되어 점령하려면 일곱 배 이상의 병력이 있어야 하고, 수 개월간 포위전이 지속되면 공격하는 쪽에서 식량 부족으로 지치는 일이 태반이라 쉽게 이기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런 전쟁 양상을 단번에 바꾼 이가 바로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전쟁은 포위전에서 전면전으로 바뀐다.
한꺼번에 적을 섬멸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폴레옹이 모든 성을 방치해 둔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대육군은 징병제로 포위전에 군사를 남겨 두고도 전면전을 벌일 만큼 충분한 병력이 있었던 것이다.
또 나폴레옹은 체계적인 보급을 위해 진격하는 루트에 보급창을 세워 먼저 보급 물자들을 채워 넣고, 수송부대를 만들어 공급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준비가 완벽했던 러시아 침략이 실패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전선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에 당시 수송 능력으로는 도저히 보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도로는 엉망이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는 마을들은 유럽의 풍부한 곡창지대와는 달리 현지징발할 물자가 없다.
이것은 2차 대전 당시 히틀러도 마찬가지로, 러시아 철도 궤도는 독일 철도와 맞지도 않아 이용하기 힘들었고 차량은 계속 진흙탕에 빠져 원활한 보급이 이뤄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1차 대전 이후 탄약은 엄청나게 소비되어 현지에서 도저히 충당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이런 이유로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은 히틀러의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고 그 역시 길어진 보급선 문제로 이집트 공격에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유럽 전쟁사에 무지해서 읽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전쟁의 진짜 양상을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1, 2차 세계대전에 관심이 생긴다.
결국 이런저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두려면 압도적으로 우세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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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세계사 2 - 세계 질서의 재편과 아프리카의 도전 르몽드 세계사 2
이주영.최서연 옮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 휴머니스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1권을 재밌게 읽어서 2권 출간 소식이 반가웠다.
어쩌면 이것도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책을 출간하는 걸 보면 프랑스는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좀 더 사회주의적으로 보인다.
서문에 실린 편집자의 말대로 르몽드가 아니면 누가 아프리카와 3세계 국가들의 이야기를 이만큼의 비중으로 다뤄 주겠는가?
독립언론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특별히 반감도 없고 광우병 사태도 대중심리를 이용한 일종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이 신자유주의 물결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가 회의가 들기도 한다.
명분만 내세우고 말뿐인 그런 원론주의자들은 딱 질색이지만, 과연 오늘날의 이런 세계적 흐름은 잘 되어 가는 것일까, 우려가 된다.
신자유주의, 금융 자본의 이동에 규제를 없애고 무역 장벽을 철폐하고 보조금 없애고 노동시장 유연하게 한다고 정리해고 막하고 있는 놈이 다 갖는 이런 시스템, 대다수의 평범한 대중에게는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닐 것 같다.
나는 그저 막연히 자유무역협정이라고 하면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보호관세가 철폐되야 궁극적으로 효율성이 높아져 생산성도 향산되리라 생각했는데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결국은 금융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실제로 미국은 여전히 면화 등에 대해서 엄청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미군 22만 명이 주둔하고 있는 것도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라틴 아메리카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하고 자기들까지 공동 시장과 공동 방위를 추구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결국은 다자중심주의로 가지 않을까, 또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국을 보면 세계 최고의 경제 성장률과 함께 국민총생산이 미국에 이어 2위이고 가장 중요한 경쟁 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원료 수입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 등과도 좋은 외교 관계를 맺고 있고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프랑스 보다 국제 원조가 많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한국 역시 미국에만 올인할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외교 관계 수립에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옆 나라의 패권주의를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로 느껴진다. 

세계화 시대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여러 국가들이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에서는 이런 국제 정세에 대한 관심이 너무 부족하다.
세계화가 곧 미국화가 아님은 너무 당연한데 세계화 하면 영어, 이런 식의 공식이 여전히 통용된다는 게 참 한숨이 나온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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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 The Man from Nowher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원빈을 위한 영화라는 말이 딱 맞는다.
<우리 형>의 귀엽고 착한 이미지의 미소년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정말 남자가 된 듯 하다.
크고 깊은 눈망울은 킬러로 변신해도 여전히 사슴 같아 보인다.
이 순수해 보이는 남자와 결혼할 행운녀는 누가 될지 궁금하다.
내용은 그저 그랬다.
임산부가 보면 안 된다고 하길래 대체 얼마나 무서운가 약간 긴장했는데 지난 번 <이끼>처럼 역시 별 건 없었다.
나이가 들어 감수성이 무뎌진 건지 요즘은 뭘 봐도 별로 슬프지가 않고, 왠만큼 잔인해서는 겨우, 저거? 이런 식이다.
잔인한 묘사는 바로 직전까지만 보여 주고 다음은 상상에 맡기는 식으로 넘어간 게 오히려 덜 자극적이고 괜찮은 방법 같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레옹을 본뜬 느낌이 많이 났다.
화분에 물 주는 것도 그렇고 전당포 주인이라는 설정도 어쩐지 비슷해 보이고.
제일 결정적인 건 바로 수미라는 소녀인데, 마틸다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너무 어리고 애기라서 도저히 아저씨와의 로맨스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
나쁜 놈들한테 임신한 아내를 잃은 분노가 수미를 지켜야 한다는 보호본능으로 이어졌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목숨을 걸고 저렇게까지 악을 물리치나 싶은 의아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김새론이라는 아역 배우가 뜬다고 하길래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키 역할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건 뭐, 그냥 말 그대로 옆집 꼬마일 뿐이다.
킬러로서의 원빈을 보여 주는 매개체 정도?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장기매매였다.
인도나 러시아에서 성행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로 저런 식으로 진행되는지 좀 섬뜩하긴 했다.
거기에 외과 의사가 관여한다는 점도 단순 깡패나 마피아 조직이 아닌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무서웠다.
동남아 킬러에게 결국은 수미 대신 양눈을 뽑히고 만 장면은 설정은 끔찍하지만 솔직히 코미디 같다.
눈알 굴러 다닌는데 이건 뭐,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하여튼 장기매매가 영화의 소재로 쓰인다는 점이 상당히 무서웠다.
이건 의학과 범죄의 결합이라고 해야 하나? 

아편 밀수와 폭력, 납치, 장기매매 등을 일삼는 조직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결국 돈.
돈을 벌기 위해 반인륜적인 일을 태연히 저지른다.
나는 항상 영화를 볼 때 핀트가 어긋나는데 이번에도 대체 저 사람들은 단지 돈을 위해 저렇게 잔인하고 끔찍한 삶을 산단 말인가, 한탄했다.
결국 죽고 나면 다 끝인 것을, 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걸까?
마지막에 아저씨가 경찰에 잡혀 가는 장면은 갑자기 법치국가 느낌이 나서 약간 당황스러웠다.
아저씨와 수미가 먼 곳으로 떠나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바른 생활 사나이 느낌대로 경찰에 자수하다니.
어쩐지 약간은 맥이 빠진다.
한 10 여 년 후 아저씨가 출소할 때쯤 숙녀가 된 수미가 두부 사들고 교도소 앞에서 기다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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