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난 (반양장) -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김수현.손병돈.이현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 빌릴 때 도서관 사서가 기존에 빌렸던 책인데 다시 빌리냐고 물어 봐서 한 번 봤던 책이란 걸 알았다.
알라딘 보니 구판에 내 리뷰도 있다.
왜 내용이 전혀 생각이 안 날까 싶었는데 읽다 보니, 영국의 동네 재생 프로그램이 있다는 부분을 읽으니까 그제서야 아, 하고 기억이 났다.
아마 그 부분이 아주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300 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이고 비교적 쉽고 친절하게 쓰여져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역시 재독은 또다른 가치있는 독서다. 
처음 알라딘에 리뷰를 쓰기 시작했을 때 많은 인터넷 서점 싸이트 중 우연히 여기를 고른 건데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서재가 이용되고 있어 개인적인 감상문 저장 창고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감사드린다.
비록 서점 보다는 도서관 주이용자라 실적이 높지는 않지만 말이다. 

요즘 무상급식 때문에 말도 많고 시끄러운데 2007년 책이 쓰여질 당시만 해도 무상급식은 논의에 오르지 못했던 것 같다.
무상급식 아동들이 사회적 낙인이 찍혀 상처를 받는다는 내용이 나왔는데 그 때만 해도 무상급식까지 거론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무상급식 정책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책 읽으면서 결국은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위해 시행되어야 하는 제도가 아닐까 싶어졌다.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향해 가고 있는데 비슷한 소득의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복지 정책에 투자하는 비용은 1/4 수준이라는 게 놀라웠다.
세금 많이 걷는다고 포퓰리즘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원성이 높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복지 시스템의 재원은 평균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또 시대적 변화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 전세 문제였다.
저자는 전세자금 마련에 목돈이 들기 때문에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월세나 쪽방 등을 전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최근 1년 사이에는 아예 전세 제도 자체가 무너지게 생겼을 만큼 전세난이 심각해졌고 엄청난 속도로 전세금이 오르고 있다.
아파트값이 안 오르니 누가 전세를 주겠냐, 서구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주거 비용이 싼 거다, 전세제도야 말로 집 장만할 수 있는 임대인 유리한 제도다 말이 많아 과연 복지 선진국에서는 주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했다.
자세한 기술은 부족하지만 대체적으로 복지 국가에서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임대 주택 비율이 매우 높았다.
평균 20% 정도이고 스웨덴 같은 북유럽 선진국은 40%에 달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책은 10% 정도에 불과했다.
주거비 비용을 줄이면 소득이 작아도 나가는 지출이 적기 때문에 빈곤층으로 떨어질 위험이 줄어든다.
교육비 역시 마찬가지다.
반값 등록금 투쟁하는 것처럼 대학 등록금이 줄어들면 가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줄어들 것이다.
무상급식이나 더 나아가 무상의료 등도 같은 맥락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겠으나 필수적으로 나가는 비용을 줄여야 오늘날과 같은 고용 불안정 시대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안정망의 확충이라는 맥락에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부분은 결국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늘려야 하는데 어떻게 그 부분을 해결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는 점이다.
사회적 합의 내지는 노사정 대타협 이 정도 선에서 끝나고 있어 갈등 해결의 원론적 이야기만 하고 있다.
복지 확대에는 필연적으로 돈이 필요하고 국가의 재정은 결국 세금에서 나오는 것인데 과연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여기에 얼마나 합의해 줄지 미지수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는 해묵은 질문도 별 의미가 없게 된 것이,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이미 기대할 수 없게 됐고 세계화 시대인 만큼 국가를 넘어선 거대 경제 구조가 자리잡아 고용없는 성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이상 복지 문제를 파이 키우기 명분에 미뤄둘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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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100선 (반양장) - 개정판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안그라픽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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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은 명품선집.
뒤에 명품에 대한 정의와 의의가 나와 더 유익했다.
요즘에는 비싼 상품에 쓰는 말이지만 원래는 1970년대에 보존해야 할 가치를 지닌 문화재에 처음 붙여졌다고 한다.
이를테면 중앙박물관 명품선집, 이런 식으로 말이다.
명품이란 의미는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니고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가지며 인류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사물에 붙인다고 하는데 이렇게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단어가 오늘날 비싼 럭셔리 소비재를 지칭하는 말로 전락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외국인이 볼 수 있도록 한글 설명 아래 간략하게 영어 설명이 덧붙여져 선물하기도 좋을 것 같다.
국보와 보물이 많지만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다양한 유물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골고루 선별해서 실었다.
박물관이 무료화 된 후 마실 삼아 자주 다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물들이 눈에 익다.
재정적인 부분에서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용객의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운 정책이다.
사진 도판이 매우 선명하고 설명도 간략하지만 핵심을 짚고 있어 박물관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할 것 같다.
한국인이라 한글로 된 설명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유물 하나 하나에 대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니 이게 또 하늘과 땅 차이라,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느꼈었다.
내국인이 이 정도라면 외국인의 유물 관람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겠구나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 역시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가서도 눈으로 휙 보고 왔으니 결국 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 같다.
어쩔 수 없이 문화에 대해서는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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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무덤벽화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모사도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난 뭐랄까, 고구려 벽화의 의의와 체계를 정리해 주는 그런 책인 줄 알았는데 모사도의 가치에 대해 설명한,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책이었다.
사실 박물관에서 모사도 전시를 해도 너무 흐릿하고 선명하지가 않아 차라리 도판으로 세심하게 수정한 것이 낫지, 실제 벽화 상태 그대로의 모사도는 큰 감동이 없었다.
뭘 표현했는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고 할까?
그런데 이 책은, 일제 시대 문양 전문가인 오바 스네키치 등에 의한 실제 벽화 모사도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뤄 벽화에 대한 이해는 돕는데는 실패했다.
내 배경지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다만 이미 100 여년의 (최초 모사도는 1912년 그려짐) 역사를 가진 모사도가 벽화의 손상에 의해 단순히 그대로 그렸다는 수준을 넘어서 일종의 유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논고에는 적극 동의하는 바다.
2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외부와의 접근이 차단된 채 그 모습을 유지해온 벽화가 근세에 발굴되면서 급속하게 손상되고 있는 시점에서 처음 발굴 당시 벽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사도의 가치는 새삼 강조할 게 없을 정도로 귀한 것 같다.
뒤의 논고에 보면, 일본은 원래 모사도의 전통이 있고, 페리 제독에 의한 개항 이후 전통 파괴 바람이 불었으나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족이라는 개념을 정립시키기 위해 전통 복구에 열을 올리면서 모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오바 스네키치는 동경대 미대에 들어갔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실용 미술 쪽으로 진로를 돌렸고 교수로 임용됐으나 총독부에서 모사를 의뢰받은 후 교수직도 버리고 30여 년을 조선 고분 모사에 몰두한 특이한 이력의 미술가다.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것은, 수정이나 보완을 거치지 않고 가능한한 박리 상태까지 그대로 표현하려 애쓴 정확도에 있겠다.
얼마나 꼼꼼하게 모사를 했는지 현재 손상이 당시에 비해 얼마나 진행됐는지도 판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장인정신은 높게 사야겠다.
당시 일본의 조선 고적 조사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많으나 어쨌든 기록으로 꼼꼼히 남긴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고구려는 3세기부터 7세기까지 계속 무덤 벽화를 남겼는데 왜 신라나 백제에는 벽화가 없을까?
나라마다 장의 풍습이 달라서인가?
유독 고구려만 벽화가 있는 게 신기하다.
중국과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가?
처음 벽화가 나타나는 3세기 중반부터 5세기까지는 무용총처럼 생활 풍습을 많이 그렸고 5세기부터 6세기까지는 사신도와 장식도를 그렸고 마지막 시기에는 사신도만 그렸다는 걸 보면, 후반으로 갈수록 종교적 의미가 더해진 것 같다.
보통 프레스코화처럼 벽에 회칠을 하고 마르기 전에 밑그림을 그린 후 채색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물감이 떨어져 나가는데 강서 대묘, 중묘, 소묘 등은 화강암으로 된 벽 자체에 연백을 발라 그린 일종의 석벽화라 물감이 오래 유지된다고 한다.
통일이 되면 고구려 벽화들도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지 않을까?
훼손 가능성 때문에 직접 들어가지는 못한다 해도 근처에 모형관 만들어서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측의 학술 성과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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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미술관展 :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 (대도록)
지엔씨미디어 편집부 지음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전시회 다녀와서 그 때의 감동을 되새기며 읽고 있다.
음, 너무 좋다.
도록은 정말 훌륭한 매개체다.
도판이 큼직해서 좋고 곁들인 설명과 논고들이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해 준다.
너무 고흐 팔아 먹는 거 아닌가 이런 거부감도 들었지만, 역시 전시회장에 가 보니 <별이 빛나는 밤> 처럼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 또 없다.
어쩌면 그렇게도 감상자의 마음을 훔쳐 내는 능력을 가졌을까.
그 색감, 강한 붓질, 구도,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눈물을 찔끔 흘릴 만큼 마음이 울컥해졌다.
저렇게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 화가가 살아 생전 환영받지 못하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시대의 미의식은 보편적이지 못한 것인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 

참 이상한 게, 실제 그림과 도판이나 엽서로 본 그림의 느낌이 다를 때가 많다.
이를테면 아케데믹한 화풍으로 살롱전에서 나폴레옹 3세에게 선택당한 카바넬의 비너스 그림 같은 경우, 실제 보면 크기가 사람을 압도하고 도자기 피부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엽서나 도판으로 보면 축소돼서 그런지 어쩐지 키치 그림 같다.
밀레의 <봄> 같은 경우도 꽤나 큰 작품인데 난 밀레가 농부들이 그리는 좀 고리타분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봄날 소나기가 내린 정원을 그린 이 풍경화를 보고 정말 감탄하고 왜 고흐가 자신의 회화적 아버지라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그렇지만 도판이나 엽서로 보면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뻔한 풍경화처럼 보인다.
반면에 휘슬러의 <보라와 녹색의 변주> 같은 경우 실제로 보면 크기가 매우 작고 그리다 만 것처럼 미완성의 느낌이 강하고 형태도 불분명해서 감동이 전혀 없는데 도판이나 엽서로 보니 어스륵한 저녁 무렵 달빛이 강에 비치는 차가운 기운을 옅은 보라색으로 너무나 감각적으로 잘 표현해내 제목과도 매우 잘 어울리고 아주 현대적인 느낌을 받았다.
상징주의 화가인 모로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도판에서 볼 때는 정말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이 들어 눈길이 가는데, 실제 가서 보니 어찌나 작은지 그 작은 화면에 온갖 상징물들을 배열해 놔서 조잡한 느낌마저 받았다.
압축과 확대의 차이일까?
이래서 실제 감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셰 미술관의 작품 수는 8천여 점에 이른다고 하니 전부 다 볼 수도 없고 이런 전시회를 통해 선별된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완성품 대신 습작이나 초벌화가 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데생 작품들도 나름 의의가 있겠으나 굳이 원화를 놔두고 밑그림 작품을 보내는 이유는 뭔지. 

이번 전시회에서 새롭게 발견한 화가라면 단연 모네를 꼽겠다.
수련 연작이나 루앙 대성당 같은 추상화 분위기가 나는 작품만 접해서 그런지 모네에 큰 애정이 없었는데 <고디베르 부인> 의 초상화를 보고 정말 반했다.
옆으로 살짝 비틀어 얼굴이 거의 안 보이는, 그러나 비튼 몸이 중심이 되는 기막힌 구도를 취한 것도 그렇고, 부르주아 저택의 화려한 장식과 드레스를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그의 부인인 카미유의 초상화도 몸을 비틀어 얼굴이 안 보이는 구도를 취했는데 정말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역시 피카소의 말처럼 대가들의 묘사 능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는데도 똑같이 모사하는 것을 거부하고 화가만의 주관적 감성으로 사물을 접근했다고 할까?
미술의 관념화, 주관성이 현대 미술의 시작이고 그것이 바로 인상주의가 미술사에서 갖는 의의 같다.
에바 곤잘레스라는 여류 화가를 알게 된 것도 큰 소득.
딱 보는 순간 마네가 생각났는데 역시나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베르트 모리조 보다 더 마음에 드는 화가다. 

전시회도 너무 좋았지만 도록으로 다시 보니 감동이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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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 젊은 인문학자 27인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정민.김동준 외 지음 / 태학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은근히 재밌게 본 책.
이황이 선조에게 바친 태극도나 성학십도 이런 거 설명할 때는 좀 졸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일단 도판이 훌륭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쓴 글인데도 중구난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한국화라는 하나의 주제로 통합되는 것 같아 읽기 편했다.
요즘 책 나오는 거 보면 어쩜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예쁜 디자인과 훌륭한 사진으로 잘 만들어 내는지 참 감탄스럽다.
많이 알려진 내용들이 많긴 하지만 다시 보니 또 반갑고 좋다. 

심정주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누상위기도> 라는 그림이 있다.
말 그대로 루 위에서 바둑 두는 그림인데 거기에 딸린 사연이 안타깝다.
아들 심사정이 유명한 화가였지만 그 명망이야 나중에 얻은 것이고, 할아버지 심익창이 역모에 연루되어 출사길이 막힌 후 당시 사대부들이 천시했던 그림으로 일평생의 울분을 삭힌 불운한 화가다.
그런데 심사정 대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 후에도 가문의 전과가 계속 발목을 잡아 후대 자손들까지 벼슬길에 못 올랐던 모양이다.
<누상위기도>에 글을 쓴 심익운은 심사정의 손자인데 그 역시 세자를 모해했다는 사건에 휘말려 벼슬을 못하고 과거에 장원 급제한 형도 가문이 문제가 되서 중요한 벼슬직에 못 나가 결국 그 후손은 걸인 생활을 했다고 하니 효종의 부마였던 청송 송씨 명문가의 몰락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도 현대에 와서 우리 그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렇게라도 조명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랄까?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의 현금이 전해진 사연도 재밌다.
박제가가 연경에 갔을 때 선물로 받은 것인데 이것을 소유하게 된 윤집의 후손인 윤행임은 자신은 명나라 유민이라고까지 하면서 집안의 보배로 고이 모셨다고 한다.
당시 사대부들이 명나라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 같다.
오늘날 사대주의는 실리외교니 어쩌고 하지만 적어도 조선 후기 때의 중국에 대한 사대는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과 합해져 따르고 싶은 모범 내지는 상당 부분 동일시 하는 정체성을 갖지 않았나 싶다. 

정조 임금의 귤 사랑과 선비들의 매화 사랑도 참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이황이 그렇게도 매화를 사랑하여 군자로 대우하고 죽기 직전에도 매화 걱정을 했다는 고사를 들은 적이 있고, 문종이 세자 시절 귤을 내리면서 쟁반에 글을 써 집현전 학사들을 감동시켰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가치도 없을 것 같은 과일이나 꽃에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의미를 부여했는지 신기했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늘날처럼 물자가 넘쳐 나는 시대도 아니고 모든 것이 귀할 때니 사물 하나하나에 참 많은 정성과 사랑을 쏟아 부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늘에 떠 있는 달 하나에도 그렇게도 많은 감성과 애정을 투영시켜 수많은 시를 남기고, 한낱 귤과 매화 등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여 시를 주고 받으며 예찬했던 것 같다.
볼 거리 먹을 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 나는 오늘날 같은 소비시대에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소박하고 고귀한 아름다운 감수성 같아 코끝이 찡하다.
애민군주로 유명한 정조는 귤 하나를 드시면서도 내가 이 귤을 재배한 제주 백성의 고생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말 마음 한 켠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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