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김재영 지음 / 더팩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집이 없는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 값이 더이상 오르지 않을 거란 예측은 참 다행스럽다.
그러나 매매 실종으로 전세는 계속 올라가고 월세로 전환된다면 임대료 부담이 더 커지는 게 아닐까?
재건축 부분은 워낙 문외한이기 때문에 대충 넘겨 읽었는데 뒤에 실린 건축가의 이야기는 와 닿았다.
재건축을 해서 전용면적을 늘린다면 늘어난 공간을 기존의 세입자가 전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한다.
늘어난 면적은 사회 공동의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해도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있어야 재산권 행사가 가능하고 그래서 사회가 정교하게 굴러 가고 있는 모양이다.
집이 없으니 하우스 푸어는 아니지만, 전세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올라버린 전세금이 매우 부담스럽다.
어떤 싸이트에서 대한민국처럼 집값 싼 곳이 없다고 역설하는 분들 많던데 다들 집 주인들이었나?
얼마 전 분양을 받아볼까 하고 모델 하우스에 가봤는데 35평이 6억에 달하는 걸 알고 포기했다.
저자는 선분양은 한국만 있는 제도라며 건설회사가 먼저 아파트를 지어 놓고 시장 가격에 맞춰 판매하는 후분양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일견 이해된다.
이제 아파트도 가격경쟁을 벌여야 하는 시대인가?
집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이 없어 답답하다.
이 책은 작년에 나온 거니까 요즘 같은 전세난을 예측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집값이 안 오른다고 하지만 여전히 위안을 삼기에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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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완성 - 하버드대학교 ‘인생성장 보고서’ 그 두 번째 이야기
조지 베일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전작인 <행복의 조건> 을 인상깊게 읽어서 신간 나오자마자 바로 신청을 해서 읽었는데 음... 역시 구관이 명관.
<행복의 조건> 이 일종의 생애연구 보고서였다면 이 책은 오랜 연구 끝에 저자가 내린 결론을 정리한 건데 그래서인지 자료나 구체적 예시보다는 당위적인 주장이 많아 약간은 지루했다.
긍정의 힘, 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해야 하나?
희망은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론에 너무 마음쓰지 말고 진화의 산물인 긍정적 감정들을 잘 유지하면 행복한 인생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다, 이게 요지.
그런데 어떻게 긍정적 감정들을 발전시키지?
거기까지 세세하게 알려 줄 수는 없는 걸까? 
나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암도 낫는다, 뭐 이런 식의 주장을 일견 비웃어 왔고 플라시보 효과나 일시적 감정 해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엄청난 데이터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긍정의 힘을 입증해 주니, 앞으로 생각의 방향을 바꾸긴 해야 할 것 같다. 

인상깊었던 대목을 좀 살펴 보면, 희망과 소원은 다르다는 것.
희망이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품는 것이라면, 그래서 현재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진정한 힘이라면 소원은 현실을 부정하고 막연하게 바라는 감정에 불과하다.
사고로 장애인이 됐는데 정상인처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 소원인데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또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노력하는 것은 희망이다.
투사와 공감의 차이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제일 마음에 들었던 대목이 종교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구분이었다.
생애연구에서도 노년에 행복한 사람이 반드시 종교적인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기독교적인 신을 믿지 않더라도 내면의 영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훨씬 행복했다. 
오히려 배타적으로 기독교적 신을 찾는 사람이 편협하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은 투사의 감정으로, 즉 내 감정을 남에게 투영시켜 보기 때문에 타인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반면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타인과 진심어린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기독교도들이 바로 이 투사의 기법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용서를 하면 복수보다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진다고 했지만 이론으로는 알아도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그 이유는 가해자로부터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내 자율권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처지를 바꾸어 가해자가 종속적인 입장이 되어 벌을 받게 되길 원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주도권의 회복이다.
그래서 저자는, 강간범를 화학적으로 거세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분노의 밤과 같은 강간범 규탄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을 받아들여 양자로 삼은 어머니가 나오는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다.
이 정도의 고통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야 진정한 용서니, 용서란 참으로 어려운 감정이다.
나는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가족 중 한 명과 감정적으로 매우 얽혀 있는 상태이고 책을 읽으면서도 도저히 그 사람과는 화해할 수 없다,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고 있는 나는 마음이 몹시 괴롭다.
정말로 용서는, 즉 마음에 완전히 지워 버리는 것은 당사자 보다 내 자신을 위해 유익한 일임에도 감정의 문제가 얽혀 있어 쉽지 않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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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 신이 허락한 음식만 먹는다 (양장) - 아랍음식과 문화코드 탐험
엄익란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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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쉽게 읽히면서도 어쩐지 2% 부족한 듯한 깊이의 아쉬움이 느껴졌던 책.
저자의 약력을 보니, <이슬람의 결혼문화와 젠더> 를 집필한 분이다.
그제서야 무릎을 쳤다.
그 때도 제목만 보고 뭔가 깊이있는 분석적 글쓰기를 원했는데 맛만 보고 끝나 버린 것 같아 아쉬웠는데 이번에도 딱 그런 느낌이다.
읽기가 편하기는 하다.
그런데 전문적인 연구서라고 보기엔 너무 미흡하다.
중동학을 전공하신 것 같던데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는, 그러나 좀 더 깊이있는 분석이 담긴 책을 내 줬으면 좋겠다.
중동에서 몇 년 생활한 사람이 낸, 일종의 아랍 세계 둘러보기, 이런 수준의 깊이라 상당히 아쉽다. 
맛보기로 끝난 느낌이랄까? 

음식 문화사는 특히 직접 접해 보지 않으면 말로만 설명하기는 참 힘든 문제 같다.
그나마 터키는 작년 여름에 1주일 정도 다녀와서 바스락거리면서 커다랗게 부푼 빵 같은 걸 먹어 봐서 이해에 도움이 됐다.
사진이 많이 실리긴 했지만 직접 현지에 가서 먹어보지 않는다면, 즉 체험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이해하기는 참 힘들 것 같다.
마치 김치를 한 번도 안 먹어 본 외국인이 배추를 소금에 절여 고춧가루 양념을 한 요리다, 뭐 이런 식의 글만 읽고 상상하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아랍의 음식은 더운 지방이라 짜고 맵고 달다고 한다.
상당히 자극적인 셈.
쌀만 해도 우리처럼 증기로 찌는 것보다는 버터로 볶는 요리를 선호하고 육식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심장병이나 고혈압 유병률도 매우 높다고 한다.
양을 가장 신성시 하여 양 한 마리를 구우면 최고의 손님 접대라고 하는데, 터키에서 먹은 양요리는 정말 고역이었다.
냄새가 너무 강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수프는 유럽 식당에서 흔히 먹는 양송이 수프 같은 게 아니라 콩죽 같은 텁텁한 맛이었는데 책에 보니 콩은 오래 전부터 단백질 보급원으로 요리에 많이 이용됐다고 한다.
쿠스쿠스 같은 경우는 <누들로드>에서 직접 찌는 모양과 시식하는 것을 봐서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 

아랍 세계라고 하면 대체 어디를 가르키는지 늘 모호한 느낌이었는데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 감이 좀 온다.
대략적으로 아라비아 반도와 팔레스타인, 이라크와 이란, 북아프리카 정도를 일컫는 것 같다.
무슬림의 10%를 차지하는 시아파는 이란에 주로 분포하는데 90% 인 다수의 수니파와는 달리 아랍 민족이 아니라 페르시아 민족으로서 이란과 이라크 관계는 마치 한국과 일본처럼 같은 무슬림인데도 매우 적대적이라고 한다.
이미 기독교는 국가적인 힘을 잃고 개인적인 부분으로 축소되었는데 여전히 한 나라를 움직이는 공식적인 정책이 되는 이슬람의 강렬한 힘은 생각할수록 신비하다.
서구 선진국에 비해 경제적으로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이슬람교가 등한시 되어 온 면도 없지 않겠으나 마치 중세의 기독교처럼 국가를 좌지우지 않다는 것은 참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다른 일종의 관습과 전통, 정체성인 것 같기도 해 평가를 내린다는 게 참 어렵다.
할랄 같은 경우 먹어도 되는 음식, 안 되는 음식을 종교적 이유로 여전히 가리고 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처음에는 종교가 인간의 생활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매우 억압적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마치 내가 개고기나 각종 보양식을 혐오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싶었다.
따지고 보면 사슴피니 곰발바닥이니 원숭이 두개골이니 하는 것도 자칭 문명인의 입장에서 매우 혐오하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을 수준 이하로 치부하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고 도덕 같은 감정의 잣대를 치운다면 먹을 수 있는 건 다 음식 아닌가?
문명이니 야만이니 진보니 하는 평가를 어떤 문화권에 내린다는 건 이래서 참 위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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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읽는 성서
베르너 켈러 지음, 장병조 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재밌게 읽은 책.
700 페이지라는 두께에 놀라 긴장을 좀 했는데 의외로 쉽게 술술 읽었다.
성경과 고고학적 발굴 사실을 잘 엮어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힌다.
어려운 학문적 성과 나열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독자들의 눈높이를 잘 맞춘 책이랄까?
1950년대라는 출판 시점이 참 오래되긴 했지만 시의적으로 크게 뒤쳐지지는 않는 것 같다.
80년대 초반에 다시 한 번 개정판을 냈는데 원저자 대신 다른 사람이 교정을 했다.
토리노의 수의에 대해 실제 고통받는 남자의 얼굴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던데 이미 그 수의에 대해서는 13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판명이 났다.
아쉽지만 말이다.
결국 고고학이나 과학이 더 발전하면 할수록 모호한 것들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고, 리처드 도킨스의 예언처럼 종교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지 몰라도 점점 더 힘은 약해질 것 같다.
사실 나는 출애굽 자체가 전설이라는 쪽을 믿는 최소주의자라 어디 한 번 증거를 들이대 보시지, 이런 자세로 책을 읽었는데 저자의 결론대로 성서 자체가 완전 허구나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성서는 어쨌든 경전의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유대인의 역사를 기록한 일종의 역사서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완전 날조,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렇게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다만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자신들이 믿는 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예수가 과연 실재했는지, 예수가 메시아로 숭배받았는지 등에 관한 역사적 진실마저 의심된다는 것에는 좀 놀랬다.
역사서에는 유명인물로 기록되지 않았을테니 당연히 인물에 관한 기록을 찾기 힘들 것인데,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따르면 이미 1세기 무렵무터 박해받는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
오히려 저자가 이런 당연해 보이는 기록들에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베들레헴의 별이라는 토성과 목성의 합 현상은 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더 놀랍다.
헤로데 왕 치하에서 학정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문 현상이 일어나자 거기에 기대어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전반적 분위기가 확산됐다, 뭐 이런 얘기다.
나는 동방 박사들이 별빛을 보고 아기 예수를 만나러 왔다는 것 자체가 신화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런 천문 현상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다가 예수 탄생을 첨가시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고대의 역사를 밝힌다는 건 참 놀랍고 신비로운 일임은 분명하다.
노아의 방주로 불리우는 터키의 아라랏 산에 관한 얘기는, 고고학적 관점에서 보면 떠도는 전설에 불과하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
세계적인 논란에 휩싸였는데 왜 학계에서는 조사를 안 하나, 여기에 대해 저자는, 조사대를 꾸려 산에 가서 발굴을 하는 것은 엄청난 돈이 필요한 것인데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일에 대해 누가 투자를 하겠냐고 반문한다.
소문이 무성하다고 해서 무조건 발굴에 착수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어야 뛰어든다는 것이다. 

현재 나는, 기독교인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역사서로서의 성서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를 하는, 꼭 그게 기독교의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절대자에게 의지하고픈 종교성이 강한 인간이고 보면 성서에 대한 내 관심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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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wwzd 2014-04-0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역사로읽는성서책을구합니다 01048406862연락부탁드립니다
 
갤럭시S2 Using Bible - 스마트 라이프를 위한 갤럭시S2의 모든 것 Using Bible 시리즈 7
강현주 지음 / 황금부엉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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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산 기념으로 뭔가 새로운 기능이 있지 않을까, 스마트한 라이프 스타일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로 읽은 책.
역시 별 건 없었다.
이런 책의 독자는 누구일까?
우리 아빠 정도의 60대를 위한 책인가?
나도 아직 버벅대긴 하지만 책에 나온 정도는 책 없이도 대충 몇 번 만지작거리고 나니 금방 익숙해졌다.
그만큼 조작하지 쉽게 만든 탓도 있겠지만.
윈도우 처음 나왔을 때 드래그란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눌러 당기는 것이다, 뭐 이런 식의 설명까지 나온 책도 보긴 했지만 하여튼 책 내용은 참 별 게 없네.
내가 바라는 건 스마트폰을 이용해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뭔가 특별하고 개성있는 방식으로 사는 그런 색다른 라이프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이런 건 블로그에서 찾아야 하려나?
하여튼 스마트폰 자체는 IT 혁명이고 앞으로 일상을 지배할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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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7-1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일이지만 사과를 드립니다.
http://blog.aladin.co.kr/cjsak/4923662
marine님께 한 이야기가 아니라 알라디너 불특정 다수에게 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