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경이로운 자연 내셔널지오그래피 청소년 글로벌 교양지리 5
내셔널지오그래피 편집위원회 지음, 정호운 옮김, 황은선 감수 / 느낌이있는책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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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과 올컬러 사진에 혹해서 신청한 책인데 기대치는 못 미쳤다.

너무 가벼운 느낌이랄까?

궁극적으로는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쉽게 와 닿지 않아서겠지만.

여행 프로그램을 봐도 TV 화면으로는 사실 그 웅장함이나 아름다움이 크게 와 닿지가 않는다.

마치 알함브라 궁전을 TV 로 볼 때는 그저 그런 느낌이고 오히려 그 유적지에 얽힌 여러 전설과 역사들 때문에 매혹적으로 다가 왔는데 직접 갔다 온 후에야 비로소 사진이나 화면이 마음에 와 닿는 것처럼 말이다.

이과수 폭포나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폭포 등은 정말 신비로웠다.

이 폭포도 제주도에 가서 바로 앞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아 보고서야 비로소 실감했던 것이다.

여행에 대한 욕구가 불끈 생긴다고 할까?

아프리카의 대평원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19세기 유럽의 식민주의가 한창일 때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모험을 떠났던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얼마나 신비로웠을까.

아프리카가 좀 더 발전한다면 관광업으로도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하면 뉴욕 같은 대도시 밖에 몰랐는데 자연환경도 대단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땅덩어리가 넓으니 자연유산도 엄청난 게 당연하다.

여행하면 서유럽 쪽의 미술관 투어 정도 밖에 생각을 못했는데 자연을 관람하러 떠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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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증거로 본 공자시대 중국사회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501
로타 본 팔켄하우젠 지음, 심재훈 엮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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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매우 어렵다.

제목이 너무나 매력적이라 기대를 엄청 했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접했을 때 두께에 먼저 놀랬다.

5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 일반인을 위한 개략적인 설명보다는 고고학 전공자를 위한 전문서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만큼 신뢰가 가긴 하지만 지루하고 어렵다...

얼마 전에 읽은 <왕릉의 고고학>과도 비슷한 느낌.

<왕릉의 고고학>은 문고판이라 분량이 작아 그나마 읽기가 쉬웠는데 이 책은 두께부터 만만치 않다.

역사서와 고고학적 발굴은 상호보완적이고 대동소이 하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접근 방법이나 결론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중국이나 한국 모두 최근까지는 기록문자에 의존해 역사를 재구성해 왔는데 고고학적 성과를 반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눈에 보이는 명확한 증거니 말이다.

 

간단히 주제를 요약하자면, 공자가 이상 사회라 정의했던 주나라의 예악 제도는 주공이 등장하는 서주 초기가 아니라 최소한 서주 후기 내지는 동주 시대로 넘어가는, 상당 부분은 당대적인 관점이었다는 것이다.

왕릉 발굴이 활성화 되면서 서주 시대의 예악 제도의 발전 과정이 드러나는데 문자 전승과는 다르게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체계가 잡히게 된다.

참 신기했던 게 클랜이니 민족집단이니 하는 원시 부족 같은 느낌의 단어들이 역사 시대라고 하는 주나라를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왕실은 희클랜이 세운 나라이고 분봉 과정에서 점차 분리가 됐다.

5대가 지나면 더 이상 조상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

마치 서구의 기독교처럼 중국의 조상 숭배도 사회를 규정하는 하나의 제도면서 종교 같다.

위만 조선 얘기도 나오는데 연나라에서 망명한 중국 세력으로 보고 있다.

무덤에 엄청난 양의 청동 예기들을 묻으면서 사회 질서를 구현하려고 했던 그 발상이 놀랍다.

나는 다만 부장품은 내세를 기원하는 영혼 불멸 사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회의 신분 질서를 구현하는 핵심 원리였다는 게 참 놀랍다.

그러니 진시황의 거대한 지하 궁전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 같다.

 

양서임은 분명하나 세부적인 사항이 너무 많아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 같기도 하고 한 때 고고학자가 되려고 했던 생각이 얼마나 순진했나 싶어 웃음이 났다.

고고학은 정말 어려운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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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뱅크 사진으로 보고 배우는 중국문화
김상균.신동윤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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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새로 나온 걸 보고 "사진"이라는 단어에 혹해서 신간 신청을 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직접 그 문화를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아무리 의식주를 사진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문화편 보다는 오히려 현대 중국사나 정치편이 훨씬 재밌었다.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정권을 잡게 됐는지에 대해 늘 모호한 느낌이었는데 정리가 된 느낌이다.

헷갈리던 중국의 여러 성들도 8개 권역으로 나눠서 설명하니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다.

두 사람이 나눠서 집필한 거라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의식주 부분은 중국에 거주하면서 책을 읽고 설명을 들어야 감이 좀 잡힐 것 같다.

현대 중국사 부분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포토 다큐 세계사> 의 중국편을 읽어 볼 생각이다.

러시아편도 무척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고 땅덩어리가 넓기 때문에 13억 인민이 다같이 잘 살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보다 경작지 비율이 더 적어 인구 대비 경작 면적은 오히려 한국이 넓을 정도라 하니 중국의 식량 문제는 수천년을 두고 골치거리였을 것 같다.

미국처럼 드넓은 평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전제 군주제의 역사를 갖고 그나마 통일성을 지키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온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개혁개방 이후 GNP가 4000 달러까지 늘었다고 하지만 부가 일부 계층에 국한되다 보니 도농 소득 격차나 불균형 문제는 매우 심각해 보인다.

정치적 민주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이고 그러나 8%의 성장세를 이어가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한 나라이니 앞으로의 중국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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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전쟁사 1 - 전쟁의 파도 한국고대전쟁사 1
임용한 지음 / 혜안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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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임용한씨 책은 재밌다.

글을 참 잘 쓰고 내용의 비약이 없어 읽기 편하다.

아마도 <전쟁과 역사> 를 손봐서 쓴 책 같은데 컬러 사진과 지도가 풍부해 재밌게 읽었다.

고대사는 늘 모호하고 안개 속에 가려진 느낌이었는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도 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알고 내심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건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모양이다.

삼국 시대 역시 교과서에 나오는 신라, 백제, 고구려가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이른바 원삼국시대라고 하는, 국가 정립기 이전에는 많은 소국들이 존재했고 이 세 나라가 주변국들을 병합하면서 비로소 국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왜와의 관계도 자주 언급되는데 확실히 삼국시대에는 일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가야에 대해서도 읽어 볼 생각이다.

혜안 출판사의 책들이 흥미로운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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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2-02-1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역사 1권을 시대를 더 앞으로 끌어다가 3권으로 만든다고 하십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
 
왕릉의 고고학
쯔데 히로시 지음, 고분문화연구회 옮김 / 진인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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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 보고 문고판이라 놀랬다.

일본에서는 이런 크기의 책이 많이 출간되는 것 같다.

분량이 작아 부담없어 좋긴 했는데 전방후원분이나 유럽의 매장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대충 넘어간 부분도 있었다.

여전히 무덤 양식은 나에게는 어려운 주제 같다.

이제서야 겨우 적석목곽분이니 전실분이니 하는 용어를 이해하고 있다.

그나마 박물관에 가서 모형을 많이 본 결과다.

나는 확실히 입체적인 이해에 약한 것 같다.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기념물 성격의 거대 왕릉은 국가 형성 초기에 민중을 지배하기 위한 과시용 수단으로써 축조되었고 관료제로 바뀌면서 굳이 이런 큰 기념물을 세우지 않아도 인민의 지배가 확실해졌기 때문에 점점 규모가 축소되고 지하로 내려갔다고 본다.

황남대총 특별전시회 때 국립중앙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신라 금관의 변천사에 대해 설명했던 게 생각난다.

왜 신라 금관은 특정 시기에만 큰 고분 속에 매장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초기에는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금관을 썼다가 정치력이 완숙해지고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과시용 금관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 때는 끼워 맞추기식 설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거대 왕릉 역시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구나 싶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전방후원분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들 수 있다.

왜 특정 시기에만 피라미드가 건설됐을까?

그것도 고왕국 시대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건설됐을까?

신왕국으로 오면서 도굴이 흔해져 왕의 계곡 같은 곳에 몰래 매장했다고 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암굴묘 역시 도난에 노출되기 쉬웠다고 한다.

그보다는 중앙집권제가 완성되어 피라미드 같은 거대 왕릉이 아니라 할지라도 충분히 통치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덤은 지하로 들어갔다고 본다.

일리 있는 설명 같다.

신라 역시 4~6세기까지는 적석목곽총의 거대 고분을 조성하다가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화장 등으로 묘제 형식이 바뀌었다.

왕릉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아닐 수 없다.

 

영산강 유역에 집중된 전방후원분과 왜의 관계가 늘 궁금했는데 저자에 따르면 당시 가야 지역과 왜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보고 왜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묘로 본다고 한다.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느니 하는 주장은 엉터리인 게 분명한 모양이다.

그런 주장이면 번역도 안 됐겠지만.

기독교를 받아들인 서유럽에서도 거대 왕릉 조성은 보이지 않는데 초기 제정 시대인 아우구스투스와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거대묘가 조성되었고, 북유럽의 바이킹 역시 기독교를 받아 들이기 전에는 배까지 함께 묻는 선장묘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티벳 등은 원래 조장 등의 풍습을 지녀 봉분 자체를 만들지 않는데 7~9세기 무렵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왕권 과시용으로 거대 무덤을 조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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