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 1606-1923 호구기록으로 본 조선의 문화사
손병규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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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정말 재밌는 책을 읽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만났던 노비제에 관한 책만큼 유익하고 조선시대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수준 높은 책이라고 해서 절대 어렵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조선시대라고 하면 흔히 여성의 권리가 억압되고 양반들에 의해 백성이 지배되는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를 연상하는데 의외로 신분적 유동성이 강한 시대였음을 알게 됐다.

중국이 일찌기 신분제가 폐지되어 개별적인 가문의 위상이 중요시 됐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족보가 편찬된 반면, 조선사회는 양천제를 유지하면서 호적에는 직역을 갖는 양인으로만 일률적인 파악을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족보가 편찬되었다.

사농공상의 분리는 일본식 연구 방법이라고 한다.

중국이 소작농 경영이 활발해지면서 병농일치제가 폐지된 후 신분제가 해체됐던 반면, 일본은 사가 백성을 다스리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고 그 직능에 따라 농공상이 분리되었다.

조선은 양천제로 신분을 나눴는데 양반이든 상민이든 노비가 아닌 이상 국가에 대해 역을 지는 똑같은 인민으로 파악했다.

대신 관습적으로 사대부를 우대했기 때문에 신분은 고려시대처럼 법적으로 보장되는 귀족이 아니라 늘 유동적이었다.

흔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양반이 늘어나 신분제가 해체되었다고 하는데, 양반이 늘어났다기 보다 호적에 양반식으로 직역을 기록한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해석한다.

직역란에 양반처럼 유학이라고 쓰고 부녀자에 대해서도 ~씨라고 존칭을 썼지만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양반으로 인정받은 것은 절대 아니다.

양반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조상을 증명하는 족보 편찬에 열을 올렸고 지역에서 오래 세거하지 않으면 양반으로 쉽게 인정해 주지도 않았다.

또 족보는 혼인 가능한 수준인지를 증명해 주는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이렇게 재밌고 유익한 책이, 너무나 밋밋한 제목으로 출간되어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조선 시대의 특징을 정확히 인식시켜 주는, 그러면서도 너무 재밌는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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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06-25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면서 유심히 본 책인데 역시 한번 읽어봐야되겠네요.ㅣ ㅋ
 
양반의 사생활
하영휘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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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예전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른바 하잘 것 없는 주제나 인물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연구를 하는 것 같다.

이런 미시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참 좋다.

이 책은, 황윤성의 이재난고나 무인이었던 노상추의 일기와도 비슷한 계통이다.

중앙 관직에서 멀어진, 지방 유림의 생활사를 밝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인공 조병덕은 19세기 충청도 지역의 양반으로서, 3대가 과거 급제에 실패해 몰락의 과정을 걷고 있었으나 나중에 문집을 간행할 만큼 지역에서는 학자로 존중받고 있었고 조두순이라는 당시 정승과도 연결이 되어 있고, 지역의 향반들과는 거리를 두고 노론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웠다.

그러나 집안은 양반으로서 체면을 차리기에는 곤궁했고 청백리 행세를 하려고 해도 관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 평생 빚 걱정에서 떠날 날이 없었던 사람이다.

둘째 아들은 장시 근처에서 살았는데 상민들에게 토호질을 하여 귀양가기까지 한다.

황윤성이나 노상추에 관한 책에서도 지역 양반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자세히 나오는데, 양반이 이 정도라면 (노상추는 관직까지 있었다) 당시 일반 백성들의 삶은 얼마나 피폐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양반으로서 체면을 차리기 위해 조병덕은 논밭을 계속 팔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곤궁해진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주변에 선물할 부채나 달력, 혹은 글을 쓸 때 필요한 육촉, 종이, 붓 등으로 일상 생활에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지만 양반으로 체면을 유지하려면 필수적인 일종의 위세품이었다.

그러고 보면 관직에 나가지 않으면 평생 글을 읽는 유학으로 산다는 양반의 모습이 너무 잘 나타난다.

평생 실제적인 노동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19세기라면 이양선이 출몰하고 개항을 눈앞에 두고 있을 시기인데도 여전히 유학의 가치를 붙잡고 있는 전형적인 유학자의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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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 영광과 좌절이 교차한 공부 귀재들의 과거 시험과 출세 이야기
정구선 지음 / 팬덤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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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재밌게 읽은 책.

요즘에는 한 분야를 파고드는 이런 미시사가 유행인가 보다.

큰 정치적 사건 말고도 이런 작은 분야를 자세히 파는 책이 많이 나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과거라고 하면 3년에 한 번씩 33명을 뽑는 제도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과거 시행 횟수가 많았다.

생원시와 진사시라는 소과가 있어 각각 100명씩 뽑았고 여기서 뽑힌 사람들이 성균관에 입학해 대과인 문과를 준비한다.

대과는 초시, 복시, 전시로 나뉘고 문장을 제출하는 필기시험 말고도 직접 경전을 암송하는 시험도 있었다.

과거 급제자 중에서도 특히 장원을 차지한 사람들 위주로 서술했는데 조선 최고의 엘리트라면 역시 9도 장원공인 이이를 들 수 있겠다.

시험 잘 보는 사람이 학문도 높다고 할 수는 없기 마련인데 율곡 이이는 보는 시험마다 장원을 차지하는 수재이면서도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기틀을 세운 사람이고 정치적으로도 이조판서에 제수되는 등 큰 역할을 했으니 과연 조선 최고의 스타라 할 만 하겠다.

장원이 꼭 시험을 제일 잘 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가문이나 임금의 총애에 의해서도 크게 좌지우지 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장원이라는 영광은 그 사람 일생에 평생의 자랑거리가 됐던 것 같다.

간신의 대명사라고 알려진 임사홍은 부자가 모두 장원을 했으니 학문과 정치적 행적이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역사서에 흔히 알려진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장원을 많이 차지했다.

신숙주나 성삼문, 박팽년 등도 모두 장원급제자 출신이라고 한다.

당대의 엘리트들이었던 모양이다.

 

제일 인상깊게 읽은 대목은, 서얼들에게 과거가 철저하게 제한됐다는 점이다.

유자광의 경우 서얼이지만 세조에게 특별히 총애를 받아 무령군에 봉해지고 세 번이나 공신의 자리에 올라 그 어머니가 정부인에 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친동생들의 과거는 철저하게 제한되었다.

유자광 한 사람이 특별히 임금의 은혜를 입은 것이지, 동생들은 여전히 서얼이라는 뜻이다.

적서차별은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원칙으로 여겨져 서얼허통 등이 대두되는 조선 후반기에도 여전히 철저하게 지켜졌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시에 붙으면 학교와 지역의 자랑으로 여기는데 양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과거에 합격해 관직에 나가는 일 뿐이었던 조선 시대에 그 영광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직이 간다.

과거 급제자의 위신을 높혀 주기 위해 부모에게도 품계를 지급했고, 지역 수령은 잔치를 열어 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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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양반의 생활세계 - 義城金氏 川前派 고문서 자료를 중심으로
문옥표,박병호,김광억,은기수,이충구 지음 / 백산서당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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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책 표지는 지루하게 생겼지만 내용은 알차다.

학자들이 쓴 책이라 어렵고 따분할 줄 알았는데 조선 후기 양반들이 갖는 특성에 대하여 쉽게 잘 설명하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늘 느끼는 거지만, 좋은 책은 문장이 훌륭해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 할지라도 독자에게 전달이 잘 되는 것 같다.

안동의 명문 세족인 학봉 김성일의 의성 김씨 문중 고문서들을 이용해 17세기 양반들의 생활사를 잘 구현해 놓은 책이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외손봉사나 재산균분제, 처거제 등이 잘 시행되었는데 왜란과 호란을 겪고 나서 오히려 종법 질서가 강화되어 유학 일변도의 닫힌 사회가 된 점은 특이할만 하다.

변란을 잘 이겨냈기 때문에 체제가 안으로 단단해진 것인가?

보통 조선 후기를 정체된 사회라 일컫고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양반들을 무능하고 수구적인 존재로 묘사하기 쉬운데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도 자신들의 권한을 잘 지켜낸 걸 보면 근대 사회에는 맞지 않을지라도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큰 역량을 발휘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도 잘 묘사되지만 단지 양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특권이 보장됐던 것은 절대 아니고, 의성 김씨 일문처럼 문중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또 지역 유지로써 기반을 다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수대에 걸쳐 기울였다.

퇴계 이황의 학파였던 의성 김씨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남인들이 정권에서 소외됨에 따라 영남 지역에서 세족으로서 권위를 지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한다.

조선 후반기로 갈수록 왠 서원들이 그렇게 많이 생겼나 했더니, 서원 건립이야 말로 대외적으로 문중이 인정받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었다고 한다.

서원 건립은 남설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제한을 했던 만큼 문중의 어른을 서원에 모시려면 주변 유림들의 지지를 끌어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학봉 김성일만 해도 진주성에서 순사한 후 바로 서원에 배향된 게 아니라 문중에서 60여 년을 공을 들인 끝에 비로소 서원에 모셔질 수가 있었다.

오늘날 제사가 단지 여성들을 억압하는 기제로만 인식되고 있으나 제사야 말로 문중의 결속력을 내세우는 가장 대표적인 의례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남자 친족 위주의 여러 관습들은 사회가 변함에 따라 점점 힘을 잃어 가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단지 전통이라는 이름만으로 계속 고수할 수는 없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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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식문화박물지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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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아마도 신문에서 봤던 것 같다.

연재물 모음은 통일성이 부족해 중구난방이기 쉬운데 한국의 음식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글들이 그런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도 내용이 흩어지지 않아서 좋다.

주간조선인가에서 저자가 쓴 맛 칼럼을 읽었는데 푸아그레라는 프랑스 거위간 요리가, 신선함이 생명인데도 우리나라 요리사들은 겉멋만 들어 통조림에 들어 있는 푸아그레를 가지고 아는 척을 한다고 비판했던 기사가 있었다.

이런 삐딱한 비판 정신이 이번 책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전두환 정권의 양민 학살을 음식과 연결하는 등 약간은 어색한 부분도 없지 않으나 20여 년을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저자의 내공이 돋보이는 글들이 많다.

무엇보다 한국 음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세계화나 민족의 자부심 이런 당위성과 연결짓지 않아 읽기가 편하다.

와인이니 스파게티니 하는 서양 음식을 가지고 잘난 척 하는 이들에 대한 일침도 수긍하는 바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도 조선 시대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를 통해 근대화 되면서 비롯됐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그러고 보면 음식이란 굳이 전통의 것, 원산지 것 이런 걸 따지지 않아도 맛 그 자체만으로 평가해도 충분히 의미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 넘어오면 스시도 한국식으로 변형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굳이 일본에서 공수한 재료만을 고집하고 일본식 용어를 써야 훌륭한 조리사인가 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의문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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