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
이덕일.김병기 지음 / 예스위캔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이덕일씨 책은 너무 편협한 주장이 많아 안 보려고 하는데도 이렇게 재밌는 주제를 콕 집어 책을 내니, 안 볼 수가 없다.
올레길 걷기나 답사 열풍이 한창인 이 때 이 분위기를 타서 우리에게 잊혀진 산성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책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산성이 남아 있는지 처음 알았고, 문화재라고 하면 막연히 박물관에 가거나 기껏해야 궁궐, 혹은 절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내 지식이 얼마나 얕은지 확인했다.
확실히 국력과 문화는 비례하는 것 같다.
전에는 궁궐도 전혀 관심이 없고 잘 몰랐는데 요즘 궁궐 답사가 유행이고 문화해설사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데 산성 답사도 활성화 되어 가족끼리 산책가는 코스로 조성되면 좋겠다.
답사에 관한 책은 아니고 산성을 중심으로 돌아본 한국사 정도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 궁궐의 그림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4
박정혜 외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책을 읽기도 어렵지만 읽고 나서 감상문을 쓰기도 어려운 것 같다.
너무 바빠서 그런가?
도판이 정말 화려하다.
궁궐을 장식하고 존엄과 신분 등을 과시하기 위해 그려지다 보니 진채화 위주로 거대한 병풍 그림 등이 대부분이다.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알려진 모란도가 궁중에서 유래됐다는 건 처음 알았다.
책가도와 십장생도, 백동자도, 곽분양행락도, 요지연도 등도 모두 궁궐 그림이 사가로 나오면서 민가에 유행했던 것이다.
최상류층이었던 왕가의 예술이 상류층 사대부들에게 흘러 나가고 19세기에는 광통교 지전 등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대형 병풍 위주지만, 1920년대 화재로 창덕궁을 새로 지을 때 김은호와 김규진 등 당대 유명 화가들이 그린 대조전과 희정당의 벽화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희정당에 금강산을 그린 김규진은 50대의 중진이었지만, 대조전에 십장생도를 그린 김은호 등은 이제 겨우 약관의 젊은 청년들이었다니 그 기세가 참으로 놀랍다.
확실히 궁중에서 소용된 병풍들은 규모도 놀랍거니와, 그 세밀한 필력은 감히 일반 화원들이 흉내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중국에서 비롯된 이러한 그림들이 어떻게 조선에서 변용되었는지도 잘 설명되어 있다.
도판 감상만으로도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원근법과 화려한 채색, 입체감 등을 강조한 서양화에 비해 동양화는 먹으로 그린 평면적인 산수화나 사군자 뿐이라 생각해 몹시 단조롭다고 느꼈는데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짧은 소견이었음을 확인했다.
결국 국력 상승이 전통 문화의 보존과 향유임이 틀림없다.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에 배운 것이라곤 죄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이나 인상파 같은 것 뿐이었으니 우리 전통 궁중화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일 수밖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시대 사행기록화 - 옛 그림으로 읽는 한중관계사
정은주 지음 / 사회평론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새로운 미술 분야, 사행기록화.
예술적 관점 보다는 역사적 의의에 더 중점을 둔 책.
사행기록화는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아서 호기심에 읽게 됐는데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 상당히 학술적이지만 대신 고증과 설명이 상세하여 조선 시대 사행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명나라가 세워진 후 홍무제는 3년 1공을 주장했으나 조선에서는 예의를 내세워 1년 3공을 주장하여 조선을 우대하는 뜻에서 여러 차례 사은사를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익히 알려진 유명한 인물들도 자주 사행에 참가했는데 의주와 산해관을 거친 육로보다 산동 지방의 등주를 통해 가는 해로가 훨씬 위험하여 사행 도중 배가 난파되어 사망한 이들도 있었을 만큼 위험한 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정몽주가 사행길에 올라 조난당했다는 얘기도 읽었던 생각이 난다.
그동안 알고 있기로는 이방원이 왕자 시절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던 중 황자로 있던 영락제를 만나 번왕으로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그의 특출함을 간파했다고 하는데, 책에서는 그 주인공이 이방원이 아니라 조준으로 되어 있다.
그 고사는 조선 후기에 과거 시제로 제시될 만큼 매우 유명했다고 하니 내가 본 책이 잘못된 기록이었던 모양이다.

 

명나라가 후금에게 쫓기어 만주를 차단당하자 명은 조선이 후금과 내통할 것을 우려하여 안전한 육로 대신 위험한 바닷길을 고집해서 명청 교체기에 해로를 이용하다가 난파당한 사신들이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명에 대한 사대를 지킨 조선의 소중화주의자들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로 보이나, 당시로서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의리를 지킨 훌륭한 도덕주의자들로 봐야 할까?
그러나 18세기부터는 청이 명의 문화를 계승하고 국력이 커지면서 조선에서도 연행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로 인식되어 북학이 유행할 만큼 세계관이 변했다고 한다.

서양인 선교사들이 유입되어 천주교 성당의 서양화나 천체 관측 등이 조선 사신들에게 자극을 주어 서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600 페이지가 넘지만, 150여 페이지는 각주와 참고문헌 목록이라 실제로는 450여 페이지 정도 돼서 많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아쉬운 점은 도판이 작아서 본문에 나온 설명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던 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 - 조선의 역사를 만든 병, 균, 약
방성혜 지음 / 시대의창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제가 재미있어 기대를 했는데 그럭저럭~
저자가 한의사다 보니 질병에 관한 관점이 약간 걱정스러웠는데 오히려 실록의 표현들을 잘 해석한 장점이 있다.
경희대학교에서 의학사를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국왕의 질병에 관한 실록의 기록들을 성실하게 분석했다.

왜 조선 왕들은 종기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을까?
생각해 보면 종기라는 게 피부 감염일텐데 항생제가 없었던 당시로서는 면역력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는데 격무에 시달리고 운동 부족에 몸이 약해서 일찍 세상을 뜬 걸까?
저자가 쓴 글을 읽어 보면, 아마도 피부 감염 후 상태가 악화되면서 패혈증으로 사망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성종이 38세, 현종이 34세에 종기 발병 후 수일 내로 사망한 걸 보면 지병이 있었던 것일까?
항생제로 인해 감염성 질환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된 오늘날과는 확실히 사인이 매우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의 얼굴 - 한.중.일 군주 초상화를 말하다 화정미술사강연 2
조선미 지음 / 사회평론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한중일 3국의 군주 초상화를 분석한 책.
아마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집 모음인 것 같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왕의 초상화를 왕 자체로 인식했기 때문에 고려 시대 초상화는 모두 묻어 버려 전해지지 않고 조선 시대 초상화 제작이 활발했음에도 6.25 전란 당시 화재로 거의 소실되어 현재 남아 있는 어진은 몇 점 되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왜란 때 전주 유생들이 피난 도중에 사고에 있는 실록들을 이고 지고 산으로 옮긴 것은 얼마나 천운인지!)
또 조선 초까지만 해도 왕후의 초상화가 활발하게 그려진 반면 후기로 갈수록 유교의 내외법이 강화되어 숙종이 인현왕후의 초상을 남기고자 했을 때 강한 반발에 부딪쳐 포기한 사례가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황제 뿐 아니라 황후 초상화도 활발하게 제작되었고, 일본에서는 천황 초상화는 많이 제작된 반면 여자 천황이나 왕비의 초상은 그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왕들의 초상화는 몇 점 되지 않고 관련된 서적을 읽어서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일본과 중국의 군주 초상화는 처음 접해 신선했다.
도판이 선명하고 설명도 친절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