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 서해컬처북스 4
요시무라 사쿠지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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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 정말 나이가 들었음이 확실하다.
읽었나 안 읽었나 애매한 것들은 나중에 보면 알라딘에 내 리뷰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왜 이렇게 가물가물할까.
2004년도에 올린 리뷰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8년 전!
이런 점에서는 알라딘이 참 고맙다.

이집트 역사에 대한 정말 좋은 해설서다.
쉽고 재밌고 무엇보다 전문성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딱 하나 애매했던 점은, 모세를 람세스 2세 시대 인물로 단정지은 점인데, 내가 읽은 다른 책에서는 모세의 출애굽을 신화로 치부했기 때문에 성경을 반드시 실제 사건의 기록으로 봐야 하느냐가 의문이다.
성모 마리아의 처녀 수태는 이시스 여신이 페니스 없는 남편 오시리스 신의 아들 호루스를 낳은 신화를 차용했다고 한다.
유대인의 유일신 개념은 신왕국 파라오 아케나톤의 종교개혁인, 아텐 신을 차용한 것이고.
노아의 방주도 수메르 신화에 이미 나오는 걸 보면, 결국 인류 문화는 보편적인 것의 변용이 아닐까 싶다.
바와 카, 아크트라는 개념도 나중에 플라톤이 응용해 이데아라는 본질적 개념을 만들었다고 하니, 과연 5천년 전에 시작된 인류 최초의 문명다운 위용이다.

 

피라미드라면 당연히 왕묘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시신이 발굴된 경우는 딱 한 케이스에 불과하고 내부는 육중한 화강암 덩어리라 실제 묘지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고왕국 시대 무덤은 지상에 시신을 놓고 그 위네 장방형의 기념물을 올려 놓은 마스타바가 일반적이었다.
저자의 추측대로 장례 사원의 기념물이 아닐까 싶다.
보통 피라미드 만드는 방식을 간단하게 설명하는데 저자가 실제 모형을 축소해 만들어 봤더니 이론과 다른 부분이 많고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시연해 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피라미드 옆에서 발견된 태양선을 재조립하고 있다고 하는데 인터넷을 찾아 봐도 그 후에 어떻게 됐다는 내용이 없어 아쉽다.

 

항상 복잡했던 이집트 역사를 너무나 쉽고 재밌게 전문가의 견해로 잘 설명해서 이집트 역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
교양서로서 손색이 없는데 벌써 품절로 뜨는 게 너무 아쉽다.
이집트 역사에 대한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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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보다가 앙코르 외쳐도 되나요? - 당신이 오페라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101가지 궁금증
이장직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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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좀 산만하지만 공연계에 대해 비교적 성실하게 쓴 저작.
400 페이지 정도로 분량이 좀 되지만 짧은 챕터로 분리되어 읽기 편하다.
<무대 뒤의 오페라> 라는 책과 비슷한 형식인데 오페라의 역사나 초연 당시 에피소드 보다는 오페라 공연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티켓 판매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짤막한 오페라 뒷이야기와 섞어서 서술한다.
유명 오페라 내용들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나니 이제 이런 공연 뒷이야기 등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확실히 오페라는 기악곡 보다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인지 훨씬 쉽게 와 닿는다.
공연 예술이라 무대 장치 등의 볼거리도 풍부한 편이고.
오페라 가격이 늘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제작 과정을 보니 오히려 상당 부분 적자를 예상하고 만들 만큼 돈이 많이 든다.
앞으로는 비싸다는 생각 대신 질 좋은 공연을 관람한다고 생각을 바꿔야겠다.

오페라와 뮤지컬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말은 처음 알게 됐다.
오페라는 순수 예술, 뮤지컬은 상업 예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뮤지컬을 수준낮게 봤는데 이것도 편견이었던 것 같다.
오페라가 마이크를 쓰지 않는데 비해 뮤지컬은 마이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성법이 팝음악과 비슷하고 춤이 가미된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라 보엠이 렌트로 각색된 것처럼 브로드웨이에서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상호변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한 오페라 공연의 활성화는 참 중요할 것 같다.
서구의 유수 오페라단에서는 미래의 잠재 관객들을 위해 마술피리나 헨젤과 그레테 등의 어린이용 오페라를 많이 보급한다고 한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오페라를 접해 보지 않아 막연히 어렵고 지루하게 느꼈는데 커서 들어 보니 의외로 너무 재밌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관심을 가졌다.
지난 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마술피리에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아빠도 그런 심정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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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 사료와 함께 읽는 장애인사
정창권 지음 / 글항아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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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내용이 아니라 살짝 당황했다.
500 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놀랬는데 80% 이상이 사료 인용이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전근대 시대의 장애인 실태나 복지 정책 등이 어떻게 시행됐는지를 분석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사료 나열에 그쳐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다.
이런 사료들을 모아 본격적인 연구서가 나오는 거겠지만.

 

제일 흔한 장애는 사료에 자주 나와서 그런지 몰라도 시각장애였던 것 같다.
심지어 세종과 숙종마저 노년에 거의 시력을 상실했을 정도니 상당히 흔했다고 볼 수 있는데, 재밌는 것은 이를 장애라 생각하지 않고 안질, 즉 눈의 병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는 신체의 기능적 문제이니 장애로 봐야 할 것 같은데 당시의 인식이 흥미롭다.
세종은 당뇨 때문에 35세부터 눈이 침침하기 시작해 말년에는 거의 보이지 않아 문종이 대리청정을 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숙종의 실명은 처음 알았다.
단순한 노안이 아닌가 싶었는데 자세히 읽어 보니 한쪽 눈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다른 쪽 눈도 잔글씨는 못 볼 정도로 시력이 떨어져 숙종 역시 말년에는 세자가 대리청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조선 시대 왕들은 대체적으로 40대 전후로 사망해서 시력상실과 같은 노년기 병은 드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80대까지도 작은 글씨를 막힘없이 보던 영조의 건강은 참으로 대단하다.

 

제일 흥미로웠던 내용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장애인을 위해 부양자, 즉 옆에서 도와 주는 이를 관청에서 지원했다는 것이다.
가족이 부양할 경우는 그 역을 면제해 줬다고 한다.
심청이처럼 아버지가 맹인인데 딸이 하나 밖에 없을 경우도 부역에서 제외됐다.
맹인들은 주로 점복이나 악기, 혹은 독경 등으로 살아갔는데 조선 후기로 올수록 점복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조선 초기에 국가 주도로 맹인들의 독경이 시행된 반면, 후기에는 성리학이 강화되어 궐내에서 사라져 맹인들에 대한 대우도 악화됐다고 한다.
궁궐의 내연이 있을 때는 남녀유별 때문에 남자 악공 대신 맹인악공들이 연주를 했다.
저자는 조선 시대만 해도 장애인들이 큰 편견 없이 일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지금보다 오히려 편견이 적지 않았을까 싶다.

복지제도는 미흡하겠지만 다같이 못살고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격리시킨다기 보다는 약간 불편한 정도로 생각하고 어울려 살았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단순히 삶을 편하게 해 준다는 것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편견없이 봐 주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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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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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괜찮은 책이었다.
제목이 너무 뻔해서 그저 그런 기행문인가 했는데, 역사학을 전공하고 아프리카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는 저자의 약력답게 기대 이상의 분석력이 돋보였다.
본격적인 학술교양서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을 좀 더 멋지게 지었으면 훨씬 매력적인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 편했던 점은, 아프리카의 문제점에 대해 서구 제국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아프리카인 당사자의 책임 또한 도외시 하지 않은 점이다.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 땅에 발을 내딛으면서 시작된 불행한 역사는, 수백 년에 걸친 노예 무역으로 대변될 만큼 그 뿌리가 깊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제프리 삭스의 책을 읽으면서 잘 사는 나라에서 더 많은 원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했는데, 반대 의견의 책을 보고 반드시 원조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원조를 통해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일본과 독일이고 한국 역시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독일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세계대전을 일으킬 만큼 강력한 국력을 가진 나라였으니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들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한국은 근대화가 늦었을 뿐 수 천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므로 오랫동안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아프리카와는 또다른 상황인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한국이 원조를 통해 오늘날의 눈부신 성과를 이룩한 것은 평가받아야 마땅한 것이고, 그런 의미로 보자면 박정희의 근대화는 독재라는 불행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아프리카의 내전은 기본적으로 민족국가의 역사가 짧고 부족 중심 사회가 오래 됐고 식민지 경험을 통해 그 분열이 더욱 강화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원을 무기로 바꾸고 독재를 지속하면서 국민들의 기본 생활은 원조에 의지하는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비판받아 마땅한다.
그렇게 따지면 북한의 세습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조건 퍼주기식 원조는 결코 그 사회의 자립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프리카는 큰 대륙인데 과연 이들은 아프리카인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유럽이 EU 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이룩했지만, 반면 한국인은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하다.
아프리카는 그들을 하나의 문화적 범주로 여기는지 궁금하다.
단지 외부의 눈으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탄자니아에서 백반증에 걸린 불쌍한 알비노 아이들이 만병 통치약으로 거래된다는 해외 토픽을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사례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여성 할례도 근절되지 못하고 많은 여성들에게 마치 중국의 전족처럼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미신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인데 그러려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이다.
소말리아에 해적이 기승하는 이유가, 국가가 해군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 원양어선들이 마음대로 경계수역에 침범하여 어민들이 굶주리게 됐고 먹고 살기 어려워 해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사연은 참으로 안타깝다.
저자는 북아프리카에서만 재스민 혁명이 가능하 이유가, 그래도 이 나라들은 중산층이 형성되어 교육을 받아 시민의식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수 십년 독재로부터 해방되려면 중산층 형성이 필수인데 어떻게 이 단계까지 도달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아프리카의 발전을 주시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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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속의 고구려인 발자취
권영필 외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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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 찾다가 우연히 눈에 띈 책.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라 읽게 됐다.
생각만큼 아주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아프라시압 벽화에 대한 다양한 고찰과, 고구려와 서역의 관계라는 새로운 분야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스페셜>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의 우즈베키스탄 유물전에서는 벽화에 나온 조우관을 쓴 두 명의 남자를 당연히 고구려인으로 생각했고, 심지어 <역사스페셜>에서는 당시 수&당과 대립하던 연개소문이 보낸 사신이라고 단정지어 방송했는데, 이 책의 여러 필자들에 의하면 고구려인인지 발해인인지 신라인인지 불분명하고 심지어 어떤 필자는 한반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까지 말한다.
역시 방송은 너무나 자극적이인 매체다.
확실하게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가, 고구려인이라고 따로 표기된 게 아니고 관 모양과 칼, 복식 등으로 추정한 것이니 당연히 여러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벽화 아래 새겨진 명문에서 당시 재위하던 왕 이름이 나와 대략적으로 7세기 후반 정도에 그려진 것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설명이 있어 그런가 보다 하고 보니까 그렇지 워낙 박락이 심해 대충 보면 뭔 그림인지도 모르겠다.
한반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한 필자 말로는 새 깃털을 관에 꽂는 풍습은 당시 유목민들에게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현지 학자들은 고대 한반도인이라고 추정하고, 우리 학계에서는 고구려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새롭게 발견한 인물은 바로 고선지다.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저자의 편파적인 견해에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가 탈라스 전투에 패배한 것을 두고 유능한 고선지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밑의 부장이 문제가 있었고 또 용병 무리인 케루크부중이 배반해서라고 하는데, 실질적인 책임은 당연히 대장이 지는 것이고 자꾸 사료의 이면을 읽는다, 당시 정황을 추론해 보면 이랬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신뢰할 만한 역사적 기록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고선지가 고구려 유민임이 분명하고 그 덕분에 후세 한국인들의 조명을 받아 발굴된 점은 무척 다행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미화시키거나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서에 고선지가 탐욕스러워 재물을 긁어 모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구려 유민이다 보니 부하 장수들을 재물로 통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느니, 중국적인 시각에서 본 악의적인 평가라느니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건 다른 인물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 보인다.
당나라가 이민족에게도 기회를 준 것은 세계제국으로서의 큰 포용력을 가졌다는 것도 충분히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그렇다고 해서 민족적 차별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탈라스 전투의 의의가 종이의 서전이라는 정수일씨의 글도 흥미롭게 봤다.
비단길, 도자기길 못지 않게 이 종이길도 중요하다고 학계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하는데 역사란 있는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저자는 신라에서 최초 목판 인쇄술이 발명됐다고 하는데,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 한국에서 나왔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최초의 인쇄술 발명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조들의 업적과 역사를 발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현재의 자부심과 연결시키는 건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어찌 됐든 고구려를 한반도 넘어 서역의 관점에서 본 점은 무척 흥미로웠고 동북아 역사재단의 다른 책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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