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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의 한글편지
순원왕후 지음, 이승희 옮김 / 푸른역사 / 2010년 12월
평점 :
제목만 듣고 세상에, 이렇게 흥미로운 편지가 남아 있었다니, 왜 이걸 몰랐을까 가슴 설레며 읽었는데 기대에는 못 미친다.
한중록처럼 굉장히 재밌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학문적이고 현대어 번역도 어렵고 중세 국어에 대한 음운론적인 설명이 많아 대중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한중록 같은 이야기체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겪은 비극을 환갑이 넘어 한 편의 글로 정리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그래서 더 위대해 보인다.
순원왕후라고 하면 조선 후기 헌종과 철종에 걸쳐 수렴청정을 했던 대단한 여인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가 쓴 편지를 읽어 보니 본인은 왕권이 잘 이어지길 바랄 따름이었고 권세는 친정에서 누렸다는 느낌이 든다.
순원왕후는 저자가 평가한 대로 권세가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 하고 주변의 시기를 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매우 유교적인 여인이었던 것 같다.
조선왕조 자체로만 본다면 역모를 허용하지 않고 왕실을 지켰으니 순원왕후는 자기 몫을 해낸 셈.
물론 시대적인 사명으로 본다면 국가를 후퇴시키고 개인 가문의 영광만을 지킨 실패자이지만.
한문도 모르던 왕실 여인으로서 갑자기 국정을 담당하라고 하니 대비로서는 당연히 친정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직접 권력을 쥐고 흔든 중국의 여태후나 측천무후, 서태후 등은 참으로 대단한 여걸들이다.
나는 막연히 순원왕후의 수렴청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상황이었던 것 같다.
순원왕후는 아들의 이른 죽음이 아니었다면 결코 정치 일선에 나설 이유가 없이 편안하게 궁에서 왕실의 안녕을 빌며 노후를 보냈을 인물 같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갑작스런 권력에 당황해 하며 친정 오라버니들에게 의존하는 힘든 시간을 보낸 듯 하다.
결국 왕위 계승자의 이른 죽음이 조선 왕조를 몰락으로 재촉한 셈인가.
순원왕후는 순조와 사이가 좋았는지 1남 3녀를 낳지만, 남편도 먼저 가고, 자식들과 심지어 손자마저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는다.
자손 번창을 제일로 치는 전근대 사회에서 그녀의 개인적인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어려서 죽은 것은 아니고 다들 성장해 혼례까지 치뤘으나 20대 때 죽고 만다.
네 자녀가 전부 다 말이다.
본인은 69세라는 당시로서는 천수를 누렸다.
어떤 책에서 순원왕후가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가 일가가 아닌 홍씨임을 싫어해 억지로 김씨인 후궁을 들였다고 했는데 편지를 보니 전혀 근거없는 얘기였다.
오히려 순원왕후는 손자 며느리가 득남하기를 축원하고 헌종과 사이가 나쁜 것을 매우 걱정했다.
이러니 역사는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철종을 선택한 것도 당시로서는 그나마 가장 가까운 혈족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 같고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국정을 잘 운영하길 몹시 바랬다.
왕실 어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권력욕 때문에 무지한 철종을 앉힌 것은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