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전쟁들
마틴 J. 도헤티 외 지음, 전의우 옮김 / 포이에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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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이 많아서 만화책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그러나 내용은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성경 속에 나온 전쟁들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성과 같은 걸 기대했는데 단지 성경에 나온 전쟁들에 대한 해설 수준에 머무른다.
모세의 이집트 탈출이 일종의 단군신화 같은 사건으로 이해하는 게 고고학자들의 입장인 걸 생각하면, 전설로만 존재하는 전쟁들의 실체를 밝히는 게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로마 시대 이후에 벌어지는 전쟁들, 이를테면 마사다 요새 같은 경우는 당시 상황과 공성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성경을 이스라엘 역사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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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를 가다
국립중앙박물관 지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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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 전시실에 대한 도록.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같은데 따로 기록을 안 해 놨더니 헷갈린다.
역시 기록이 중요하다.
직접 전시를 보면 사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유물은 없는데 도록으로 엮인 한 권의 책으로 보니 의미있고 고려시대를 조명할 수 있는 것 같아 좋다.
표지고 예쁘고 도록 설명도 훌륭함.
특히 맨 뒷장에 실린 고려 왕실 세계표는 일목요연하게 왕위계승과 혼맥 관계를 살펴 볼 수 있어 정말 유용했다.
복사해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느낀 점과 궁금한 점 몇 가지.
1) 고려 시대 향리층의 존재.
흔히 관아의 이방이나 호방 같은 아전으로 인식되는 조선시대 향리와는 매우 다른 존재였던 듯.
일종의 지방 자치제가 실현되고 있어 지방을 방위하고 세금을 걷어서 중앙에 올리는 향리의 신분이 높았던 것일까?
과거제를 통해 중앙으로 진출하면서 명문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귀족 사회면서도 과거제가 약간의 숨통을 틔워준 것인가?

2) 원나라에 바치는 공녀 문제.
저자 말로는 정복자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공녀를 요구했다고 하는데 공녀는 일종의 여자 노예였을까?
청나라 때 끌려간 공녀를 되찾아 올 때도 돈을 지불했다고 하니 전쟁 후의 노예 매매 같기도 하고, 고관들의 첩이 된 걸 보면 반드시 노예 개념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이 공녀의 존재가 참 궁금하다.
나중에 충선왕의 장인이 되는 홍규도 딸을 공녀로 보냈을 정도니 신분의 높낮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모양.

 

3) 쌍절록의 주인공 김주.
지금 관점으로 보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고려가 망했다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압록강을 건너지 않고 임신한 아내를 두고 다시 중국 땅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충신불사이군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뱃속의 아이 이름만 지어 보냈다고 하니, 두문동에서 불타 죽은 고려 유학 72인이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

 

4) 고려 왕실의 근친혼.
세계표 정리하다 보니 신라 못지 않은 근친혼이 성행했던 것 같다.
갑자기 화랑세기가 궁금해질 정도로 고려 시대 근친혼도 대단했다.
이복남매끼리 혼인은 기본이고 인종의 경우 이모들과도 결혼해서 결혼이 일종의 집안 결속력을 다지는 행위가 아니었나 싶다.
후기로 갈수록 줄어든 걸 보면 확실히 유교의 영향이 큰 듯 하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왕실의 혼인은 촌수를 따지지 않아서 혈연관계는 아니라 할지라도 겹사돈 형식의 결혼은 매우 흔했던 걸 보면 높은 신분일수록 가문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혼인으로 중첩된 관계를 맺었음이 분명하다.

 

도록의 장점은 유물, 즉 확실한 증거를 통해 역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
잘 찍힌 사진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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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국립중앙박물관 편집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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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가 145년만에 프랑스에서 반환된 것을 기념하여 열린 특별전 도록.

가볼까 하다가 바쁘기도 하고 특별한 게 있을까 싶어 말았는데 가서 봤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분상용과는 확실히 다른, 예술적 가치가 느껴지는 훌륭한 모양새다.

어람용이라는 이름답게 채색도 화려하고 글씨도 반듯반듯하고 정성스러운 해서체라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한국 문화나 글자에 대해 전혀 몰랐을 프랑스 군인들 눈에도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문화재 약탈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야만적 행동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중요성을 알고 자신들의 나라로 훔쳐간 걸 보면 문화에 대한 기본 개념은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은 예를 숭상하는 유교 문화권으로 의궤는 각종 의식과 절차를 어떻게 구현할지 그 과정을 정리한 책자다.

일종의 기록 보고서라고 할까?

반차도가 가장 유명한데 그 외에도 절차를 정리한 각종 문서들이 많다.

조선 초기부터 작성했다고 하는데 제일 빠른 것이 인조 시대라고 하니 기록이 전해진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문화적 부흥기라고 일컫어지는 숙종, 영조, 정조 시기의 의궤 제작이 활발했고 가까운 시기인 19세기 무렵의 다양한 잔치, 가례, 상례 의궤도 많다.

존호를 올리는 상호도감의궤, 건물을 짓는 영건도감의궤, 묘를 이장하는 천봉도감의궤 등 다양하다.

어떤 행사가 있으면 의궤라는 형식을 통해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던 셈이다.

명분을 중요시 하는 국가인 만큼 시호나 존호 올리는 것도 매우 중요시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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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도자 명품전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통천문화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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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봐야지 하다가 못 본 책.

결국 서고로 들어가 버려서 이번에 맘먹고 박물관 도서관에서 읽었다.

2000년 전시로 김한길이 문화부 장관으로서 인사말 한 게 실려 있어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도자기 하면 중국과 한국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베트남 전시회에서 코끼리 모형등의 베트남 도자기를 보고 신선했고 유럽의 자기를 보니 정말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것들은 많다는 걸 실감한다.

유럽 자기라고 하면 중국 자기의 아류 정도로만 여겼는데 도록에 실린 자기들을 보니 감히 그런 말을 못하겠다.

17세기 무렵의 도기는 낮은 온도에서 소성한 도기였기 때문에 중국이나 한국의 청자처럼 단단하고 청명한 푸른색의 자기가 보여주는 위엄이나 우아함은 없었다.

약간 조악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18세기로 넘어오면서 경질 자기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그릇에 새겨진 문양의 디자인이나 그림의 색감 등이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서양의 미적 감각은 색에 있는 것 같다.

선 중심의 동양적인 여백미 대신 공간을 화려한 색과 디자인으로 가득 채우는 걸 좋아하는 느낌이다.

강희제나 건륭제 당시 만들어진 중국 자기들도 너무나 수려하고 아름답지만, 프랑스에서 만들어지는 세브르 자기들의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은 정말 황홀하다.

세브르 자기는 지금까지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관요라고 한다.

조선에서는 전쟁 이후 청화 안료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하던데 대체 이런 화려한 색의 안료들은 어디서 구하는 것인지 감탄할 일이다.

투명한 유리와는 다른 매력의 자기들은 예술과 생활이 결합한 공예품으로서 최고의 매력을 지닌다.

이제는 도예도 하나의 예술 분야가 되어 집단 작업 대신 도예가의 창의성을 뿜어내고 있다.

마치 얼마 전에 읽은 다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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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의 한글편지
순원왕후 지음, 이승희 옮김 / 푸른역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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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듣고 세상에, 이렇게 흥미로운 편지가 남아 있었다니, 왜 이걸 몰랐을까 가슴 설레며 읽었는데 기대에는 못 미친다. 

한중록처럼 굉장히 재밌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학문적이고 현대어 번역도 어렵고 중세 국어에 대한 음운론적인 설명이 많아 대중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한중록 같은 이야기체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겪은 비극을 환갑이 넘어 한 편의 글로 정리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그래서 더 위대해 보인다.

 

순원왕후라고 하면 조선 후기 헌종과 철종에 걸쳐 수렴청정을 했던 대단한 여인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가 쓴 편지를 읽어 보니 본인은 왕권이 잘 이어지길 바랄 따름이었고 권세는 친정에서 누렸다는 느낌이 든다.

순원왕후는 저자가 평가한 대로 권세가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 하고 주변의 시기를 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매우 유교적인 여인이었던 것 같다.

조선왕조 자체로만 본다면 역모를 허용하지 않고 왕실을 지켰으니 순원왕후는 자기 몫을 해낸 셈.

물론 시대적인 사명으로 본다면 국가를 후퇴시키고 개인 가문의 영광만을 지킨 실패자이지만.

한문도 모르던 왕실 여인으로서 갑자기 국정을 담당하라고 하니 대비로서는 당연히 친정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직접 권력을 쥐고 흔든 중국의 여태후나 측천무후, 서태후 등은 참으로 대단한 여걸들이다.

나는 막연히 순원왕후의 수렴청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상황이었던 것 같다.

순원왕후는 아들의 이른 죽음이 아니었다면 결코 정치 일선에 나설 이유가 없이 편안하게 궁에서 왕실의 안녕을 빌며 노후를 보냈을 인물 같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갑작스런 권력에 당황해 하며 친정 오라버니들에게 의존하는 힘든 시간을 보낸 듯 하다.

결국 왕위 계승자의 이른 죽음이 조선 왕조를 몰락으로 재촉한 셈인가.

 

순원왕후는 순조와 사이가 좋았는지 1남 3녀를 낳지만, 남편도 먼저 가고, 자식들과 심지어 손자마저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는다.

자손 번창을 제일로 치는 전근대 사회에서 그녀의 개인적인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어려서 죽은 것은 아니고 다들 성장해 혼례까지 치뤘으나 20대 때 죽고 만다.

네 자녀가 전부 다 말이다.

본인은 69세라는 당시로서는 천수를 누렸다.

어떤 책에서 순원왕후가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가 일가가 아닌 홍씨임을 싫어해 억지로 김씨인 후궁을 들였다고 했는데 편지를 보니 전혀  근거없는 얘기였다.

오히려 순원왕후는 손자 며느리가 득남하기를 축원하고 헌종과 사이가 나쁜 것을 매우 걱정했다.

이러니 역사는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철종을 선택한 것도 당시로서는 그나마 가장 가까운 혈족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 같고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국정을 잘 운영하길 몹시 바랬다.

왕실 어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권력욕 때문에 무지한 철종을 앉힌 것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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