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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기원 ㅣ 너머의 역사담론 3
존 B. 던컨 지음, 김범 옮김 / 너머북스 / 2013년 3월
평점 :
번역투의 어색한 문체가 간간히 보이지만 비교적 매끄럽게 잘 읽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역시 양서다.
내용이 꽤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400 페이지 정도의 아담한 분량이다.
중요한 내용을 옮겨 적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저자는 해외 한국사를 이끌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학자라고 한다.
외국인이 보는 자국 역사는 깊이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굉장한 착각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민족주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대외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객관적이고 입체적인 분석이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기본적으로 고려와 조선은 철저한 농업 중심 사회로, 저자의 표현대로 분화도가 매우 낮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얼마 전에 읽은 레이 황의 책에서는, 중국이 농업을 위주로 한 소규모 자작농 체제라고 했는데 고려와 조선에 비하면 오히려 상업이 발달한 사회로 본다.
고려와 조선은 양반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귀족 관료제 사회였기 때문에 위진남북조 시대나 당나라의 귀족제와 비슷했고, 그 이후 송대에는 신사층과 도시 상공업자들의 발달로 황제가 귀족 관료 이외의 연합 세력을 얻을 수 있었으나, 조선의 경우는 오직 농업 외에는 생산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토지를 장악한 귀족 관료인 양반 이외의 지지 세력을 획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중국 황제가 대단한 독재 권력을 가진 데 비해, 고려와 조선의 왕들은 귀족에 의해 그 권한이 매우 제한되었고, 양반들의 협조가 없이는 통치가 불가능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한반도에서는 후삼국 이후에 지방 정권이 들어서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것을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 때문으로 본다.
국토가 작기 때문에 지방 호족이 성장하려고 해도 왕의 감시를 피하기 어려운 거리에 있고, 또 양반들의 농장이 전국 곳곳에 퍼져 있었으므로 세력을 규합하기 어려웠다.
또 만주에는 항상 여진족과 거란, 몽골 같은 외세가 침략의 위협을 가하고 있었으므로 내부적인 단결도 중요시 된 까닭에 왕조는 양반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수장으로서 존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주 세력이 한반도를 완전히 점령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중원이었기 때문에 한반도는 복종하는 선에서 수위를 조절했고, 무엇보다 전혀 다른 계열의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중화를 추종하면서도 전적으로 동화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제일 중요한 분석은, 고려 개국이래로 지속된 양반 관료제가 확대된 것이 바로 조선의 건국이었다는 점이다.
흔히 조선은 신흥 사대부층이 권문세족을 물리치고 세운 나라라고 하지만, 실제 신흥 사대부라는 계층은 중앙에서 거의 힘을 쓰지 못했고, 고려 전기부터 지속해 온 귀족 가문들이 동북면 군사연합의 수장인 이성계를 택해 세운 나라가 바로 조선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 증거로 조선 개국을 주도한 가문들의 기원과 과거 급제자의 가계를 분석한다.
고려 때는 지방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신라 호족들의 후예인 향리들이 세금을 걷고 치안을 유지하는 대신, 반대 급부로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뒀는데, 조선이 건국된 이후로는 향리들의 중앙 진출이 막히고 이들은 서리로 전락해 중앙에서 파견하는 양반들의 행정적 실무를 보좌하는 신분으로 떨어지게 된다.
저자는 이것을 귀족적 관료 집단인 양반층의 승리라고 표현한다.
13~14세기 왜구와 원의 침입 등으로 지방이 황폐화 되면서 향리들이 중앙으로 대거 이동하는데 조선이 건국되면서 양반들은 관직에 대한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향리들을 지방에 묶어 놓고 신분 상승의 길을 막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방 향리에서 과거를 통해 중앙 귀족으로 신분이 바뀌는 이른바 신흥 사대부 계층은 실제 현실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조선 개국에 참여한 가문과 과거 급제자 가문 20여개를 분석했는데 이들은 모두 고려 시대 후반기부터 이미 지방 향리에서 중앙 귀족으로 변모한 상태였고, 몇몇 가문은 고려 전기부터 대대로 명성을 쌓아 온 귀족 가문이었음을 밝힌다.
조선이 고려의 연속이라는 발견은 놀라운 사실이다.
왕이 바뀌었으나 기본적인 지배층은 그대로라는 얘기.
중국과 달리 왕은 환관이나 상인 계층 등의 지지 세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양반 이외에는 협조자를 얻기가 불가능했다.
국사 교과서는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텄다는, 이른바 내제적 발전론이 등장하는데 레이 황의 책에서도 읽은 바지만 이 이론은 현실과 맞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농업주의적 안정체제에 적합한 사상이 바로 정주학이었으니, 조선 후기로 오면서 교조주의적인 주자학자들이 이념적 통제를 가한 것도 이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