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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 유민 이야기
지배선 지음 / 혜안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주제는 눈에 확 띌 만한데, 전체적인 서술 방향은 좀 불만스럽다.
원래 평전을 쓰다 보면 주인공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 주변 상황을 크게 보기가 어렵고 주인공의 영향력을 크게 서술할 수밖에 없는 법이긴 하다.
이 책 역시 고구려와 백제 유민인 천남생과 흑치상지, 왕모중 등의 활약에 너무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찬양 일색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사료가 부족하고 망국의 유민들이라는 안타까움이 더해져 정황증거의 비율이 커져 마치 당나라의 흥망을 이들이 전부 좌지우지 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사마광 등의 중국 역사가들이 이민족인 이들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음은 인지상정일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국의 유민들을 실력에 맞게 기용해 역사서에 이름까지 남기게 한 것은 평가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천남생의 경우 저자도 마지막에 인정한 것처럼, 결국 당에 고구려를 팔아 먹은 셈이니 아무리 미화시켜도 매국노라는 불명예를 벗을 수 없을 것이고, 흑치상지 역시 임존성 등에서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켰으나 결과적으로 유인궤에게 매수당해 부흥군을 멸망시켰으니 개인적인 삶으로서는 불행한 역사 한가운데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겠으나 역사적 평가로서는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저자는 부흥군의 중심이었던 흑치상지가 끌려간 아버지나 의자왕의 항복 권유 때문에, 또 원군으로 온 왜군의 노략질이 싫어 당에 항복했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결국 내부 분열에 불과하다.
부흥군의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니 대의명분을 버리고 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천남생이나 흑치상지 등이 당으로 가 큰 공을 세우고 역사에까지 이름을 남겼으나 김부식의 평가처럼 결국 이들은 우리 역사로 보자면 반역자들임이 분명하다.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외세의 힘으로 민족을 멸망시켰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천남생과 흑치상지 같은 지배층을 비난하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수 양제나 당 태종도 정벌에 실패했던 위대한 고구려가 대체 왜 멸망했겠는가?
결국 연개소문의 반란 이후 국가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그 아들들의 내분 때문이 아닌가.
의자왕이 잡혀갔지만 백제 부흥군이 왜군까지 동원하여 반전을 꾀했으나 왜 망하고 말았는가?
흑치상지 같은 주요 인물이 당과 내통했기 때문이 아닌가.
안타까운 역사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저자는 고구려가 유목 부족 체제를 유지했다고 보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책을 참조해야 할 것 같다.
거란이나 돌궐처럼 부족 체제를 유지했을 가능성도, 고구려의 큰 영토를 생각하면 당연히 있을 듯 하다.
이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사회 구조는 농경민이 주축이 된 백제나 신라와는 상당히 다른 사회였을 듯 하다.
또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이 일부 지도층은 출세했을지라도 대부분은 노예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망국인들의 마지막이 어떠한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