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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최후의 환관들 - 청 황실이 빚어낸 영광과 치욕의 증언자 ㅣ 걸작 논픽션 6
신슈밍 지음, 쭤위안보 엮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1월
평점 :
얼마 전에 읽은 <서태후와 궁녀들>과 비슷한 맥락의 책.
앞의 책은 서태후를 지근에서 모신 궁녀의 구술로 이루어졌고 이 책은 역시 서태후를 비롯한 광서제의 황후와 후궁인 융유태후와 단강태비를 모신 환관, 중국 용어로는 태감이 쓴 유고다.
473페이지의 비교적 많은 분량이지만 구술 형태라 그런지 어렵지 않고 쉽게 잘 읽힌다.
대한제국의 궁중 비사 같은 것도 궁인들에 의해 쓰여져 널리 읽혔다면 우리 역사가 훨씬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서태후와 궁녀들>을 읽으면서 역사적으로는 매우 냉혹한 권력욕에 넘치는 승부사로 알려진 서태후가 일상적인 면에서는 희노애락을 가진 여성임을 느꼈고 이 책에서도 가까이 모신 이의 눈으로 본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
사람 사는 것은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다 비슷한가 보다.
청 황실은 궁녀가 적은 대신 환관들이 그 역할을 대신 했다.
심지어 후궁들의 머리를 빗는 것마저도 태감이 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내시들이 주로 왕의 시중을 든 반면 청에서는 황제와 황후, 후궁 모두가 남자들의 시중을 받았던 셈.
또 조선은 한 번 궁녀로 입궁하면 평생 수절해야 하고 대궐 밖을 못 나간 반면, 청은 만주족 기하인의 딸들이 의무적으로 궁녀 선발에 참여해야 하고, 10년 이상 일하면 주인의 은을 받은 후 나가서 결혼을 하고 살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고 보면 궁녀의 혼인을 평생 금지시키고 출궁도 허락하지 않았던 조선의 법도가 훨씬 완고했던 것 같다.
태감 역시 궁에서 재물을 모으면 고향에 땅을 사서 일반 백성으로 살았다고 한다.
공석이 생겨야 그 자리를 물러 받기 때문에 주변에서 다들 부추겼다고 하니, 한 번 궁에 들어오면 죽어서 나간다는 조선의 궁인들과는 매우 다른 문화 같다.
조선에 사신으로 보내는 태감들이 번국에 와서 온갖 행패를 부렸다고 하는데 실제 이 태감들은 책에서 고백하기를, 황제의 개인 노비였다고 한다.
주인이 기분이 좋으면 친하게 대해주고 기분이 나쁘면 이유없이 얻어맞고 심지어 맞다가 죽어도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고 하니, 생식기를 거세한 것은 물런이려니와 이 환관 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잔인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존귀한 분 옆에 있기 때문에 가난을 이기기 위해 부모들은 자식을 거세한 후 궁으로 들여 보내려고 안달을 했고 심지어 아버지가 직접 아들을 거세한 경우도 나온다.
본인이 직접 증언한 것이니 사실일 것이다.
한나라나 명나라 때와는 달리 청은 환관을 매우 강력하게 통제해서 대부분의 환관은 시골 무지렁이 출신이라 글을 읽지도 못해 권력을 장악하기는 커녕 전적으로 황제의 개인 노비에 불과했다고 한다.
청 황실의 총 궁인 수는 3600명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서태후는 극을 좋아해 건륭제가 친히 남긴 희곡을 바탕으로 황실 내 극단을 만들어 매일 연극을 올리고 감상했다고 한다.
루이 14세가 직접 발레를 연출했다는 일화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만약 중국식으로 세계화가 됐다면 오늘날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발레 등이 성행하는 것처럼 동양의 이러한 전통문화들도 현대화 되어 계속 감상되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