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와 궁녀들 - 청 황실의 마지막 궁녀가 직접 들려주는 걸작 논픽션 2
룽얼 구술, 진이.선이링 지음, 주수련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상보다 두꺼운 분량에 놀랬던 기억이 난다.

처음 읽을 때는 청나라 역사에 대해 무지해 궁녀들의 관습 등에 흥미를 느끼면서 읽었다.

청나라 황제들에 대해 조금씩 지식이 쌓여 가면서 미진했던 부분을 다시 읽게 됐다.

대충 넘어갔던 인물들, 이를테면 서태후를 모신 영수공주가 누구인지, 서태후의 조카인 융유황후나 우물에 빠져 죽은 진비는 누구인지 등에 대해 사전지식이 생기니 훨씬 재밌다.

또 서태후가 살던 저수궁이나 이화원, 동치제의 후궁들이 살던 자녕궁 등 앞서 읽은 <자금성 이야기> 덕분에 책에 나온 지명들이 확실히 인지가 됐다.

자금성을 다시 한 번 가봐야 할 듯.

역사책 속의 서태후는 청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간 사람인데, 곁에서 모신 인간적인 서태후는 상벌이 분명하고 위엄있으며 자기절제가 뛰어난 사람으로 보여진다.

상전으로서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듯 하다.

청나라 최고 권력자가 누린 온갖 종류의 화려한 예법을 보면, 한 존귀한 인간을 수많은 노비들이 얼마나 극진하게 떠받들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개인적인 의미의 사치와는 또다른, 예법으로 규정된 온갖 복잡하고 화려한 절차들이 신분의 높고 낮음을 일상 생활에서 매일 재현하고 있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후의 황제들 - 청 황실의 사회사
이블린 S. 로스키 지음, 구범진 옮김 / 까치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읽었나 안 읽었나 긴가 민가 했는데 알라딘 찾아보니 2011년에 쓴 리뷰가 있다.

샤먼 의례 부분을 읽으니 확실히 기억이 난다.

<자금성 이야기> 읽으면서 청 황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 재독했는데 역시 재밌고 유익했다.

한화되지 않고 만주족의 아이덴티티를 지킨 청 황제들이 책의 주제라고 하겠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만주족은 지배 계층이면서도 한족화 되어 문화를 잃어버린 대표적인 소수 민족으로 배웠다

교과서에 그렇게 나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요즘의 경향인 신청사에 따르면 이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한다.

만주족은 한족, 여진족, 위구르, 몽골, 티벳 등 다민족을 지배하던 거대한 제국이었기 때문에 각각의 민족에 맞는 방식대로 통치했을 뿐이다.

오늘날 중국이 주장하는 다원주의가 목표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맥락이 됐다.

한족은 유교적 관습과 관료제, 효 사상 등의 덕목으로 다스렸고 몽골과 티벳은 티벳 불교를 이용해 지배했으며 여진족은 샤먼 의례를 통해 복속시켰다.

건륭제가 왜 문수보살의 현신으로 그려졌는지 이해가 된다.

환관이 황실을 좌지우지 했던 명의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청나라는 태감들을 주도면밀하게 다스렸다.

청나라 환관의 자서전을 통해 그들이 황제의 철저한 개인 노비였음을 생생하게 느꼈다.

궁녀들은 한 번 들어오면 평생 못 나가는 조선이나 명과는 달리, 만주족 중에서 뽑아 수 년간 근무 후 은퇴하여 결혼을 했다.

좀더 인간적인 느낌이랄까.

서태후의 권력 행사가 여태후나 측천무후처럼 친정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세력이었다기 보다는, 황제의 형제들과 연대한 철저한 황실 기반이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 하다.

청의 황위 계승은 황후나 후궁 모두에게 기회가 있고, 비빈들은 친정과 격리되어 황실의 일원으로만 살았다.

조선 후기와 같은 외척을 중심으로 한 세도 정치와는 사뭇 다른 양상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딸의 딸
최인호 지음, 최다혜 그림 / 여백(여백미디어)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랜만에 읽는 에세이.

작가들의 에세이는 문장력이 좋아 읽는 맛이 있다.

너무나 쉽게 편안하게 쓰여진 수필.

이제 겨우 네 돌이 된 딸이 있어서인지, 또 작가만큼이나 그 손녀딸을 사랑하는 아빠를 봐서인지 100% 공감하면서 때로는 눈물도 글썽이면서 읽었다.

나도 내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죽고 싶어도 이제는 죽을 수도 없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울 때가 많다.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면 '나는 내가 낳은 딸이 있다'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잃지 않았다. 다혜만 생각하면 힘이 솟고 투지를 느끼곤 했었다."

이 문장을 읽다가 커피숖에서 청승맞게 혼자 울고 말았다.

너무나 격하게 공감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무한한 책임감과 기쁨과 삶의 용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탓이다.

결혼 전에는 아이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자식이라고 하면 의무감만 느껴졌는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나를 짓누르는 그런 불행한 의무감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없이 소중하고 충만한, 가슴벅찬 고결한 의무감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들을, 부모라면 누구나 느낄 그런 보편적인 충만하면서도 가슴벅찬 감정들을 너무나 편안하고 일상적인 문체로 잘 풀어낸다.

<길 없는 길>이라는 아주 오래 전 소설을 한 번 읽었을 뿐인데 역시 작가답다.

뒷부분의 손녀딸에 관한 에세이는 아직 그 위치에 있지 않아서인지 100%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내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은, 하루 종일 손녀 생각을 하면서 너무나 기뻐하는 우리 아빠의 마음을 빗대어 생각해 봤다.

아빠와 나는, 작가와 딸처럼 꽤나 애틋한 관계다.

아빠와 나는 성향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책을 너무 좋아한다) 가치관이나 스타일의 싱크로율이 아주 높아 다른 자식들 보다 훨씬 더 특별한 관계고 이런 애정을 느끼게 해 주는 아빠에게 늘 감사하다.

저자의 딸 다혜씨도 이렇게 훌륭한 글을 써주는 최인호님을 아버지로 뒀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첫 자식인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첫 손주인 내 딸을 또 끔찍하게 예뻐하고 귀애하는 우리 아빠.

내 딸도 시간이 지나 책 속의 손녀딸처럼 할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편지를 쓸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읽는 강준만씨 책.

뭔가 도발적인 제목에 마음이 혹해 읽었는데 타협과 공존, 정치가의 품위 등에 공감했다.

마지막에 대안으로 나온 풀뿌리 민주주의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스럽지만.

민주당 최고의 선거 전략, 정권 심판론, 대안이 아닌 당위성, 비판을 중심 구호로 삼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율적인지, 책에 지적한 바대로 세월호 사건 이후 치뤄진 보궐 선거에서 참패로 드러났으니, 이제 더이상 부자를 위해 표를 찍는 어리석은 유권자 탓만 하지 말아야 할 듯 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 굉장히 무책임하고 민주 시민의 의무를 방기한 것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요즘, 왜 나는 이렇게 무관심해졌나 살펴 보면, 이른바 진보라고 지칭되는 인터넷 싸이트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자신들의 이슈에 다른 의견을 내놓는 것은 곧 보수 꼴통, 기득권주의자, 심지어 요즘에는 국정원 알바라는 소리까지 듣는 걸 보고 "진보 논객"이라는 사람들의 파시즘적 성향이 의심스러워졌다.

사실 이렇게 집단적 댓글로 공격하는 것 자체가 내가 알고 있는 그 나쁜 파시즘인가? 라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이른바 광신적 친노 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읽으면서 바로 이러한 공격적 성향이 파시즘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치의 종교화, 혹은 정치인 숭배주의가 갖는 무시무시한 광신적 행위라고 해야 할까?

학벌 자본을 가지고 있는 지식 엘리트 계층이 바로 강남 좌파인데, 이들은 자칭 진보가 집권하지 못하는 이유를 박정희 망령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하위 계급 유권자 탓이라고 한다.

저자의 지적에 공감하는 바다.

반대가 아닌 정책끼리의 대결은 어려운 일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서 그리고 역사 - 고고학과 유물, 사진과 지도로 복원해낸 성서의 세계
장-피에르 이즈부츠 지음, 이상원 옮김 / 황소자리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표, 지도, 사진, 설명 다 훌륭하다.

재밌게 읽었는데 아쉽게도 절반 정도 밖에 못 읽었다.

이럴 땐 빌린 책이라는 게 아쉽다.

빌린 책이 아니면 그나마도 못 읽었을 가능성이 크겠지만서도.

성서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는 항상 최소주의자 입장, 즉 고고학적 증거로 입증되는 것만 취한다는 쪽인데 이 책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람세스 2세 때 이집트 탈출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성 보다는 람세스 2세 치하를 설명하는 쪽에 분량을 할당하는 식이다.

덕분에 중동 지역과 이집트 역사에 대해 많이 배웠다.

신약 시대는 못 읽고 반납해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요즘 정말 별로인데, 역사로서의 기독교는 고고학과 어우러져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