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순왕후, 수렴청정으로 영조의 뜻을 잇다 ㅣ 영조 시대의 조선 13
임혜련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4년 6월
평점 :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정순왕후에 대한 이야기.
특별한 게 있을까,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역사적으로 덜 알려진, 그러나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학자들에 의해 좀더 많이 발굴되면 좋겠다.
영조 시대를 집중 조명한 이 시리즈가 무척 알차다.
150 페이지 정도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드라마 <이산>의 영향인지, 정순왕후라고 하면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정조의 왕위 계승을 방해한 인물로 이해되는데 혜경궁 집안과 반목하긴 했으나 수렴청정 전까지는, 즉 왕권이 강력할 때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수렴청정 기간에도 문정왕후처럼 오랜 기간 동안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지도 못했다.
오히려 11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순조를 위해 정국을 안정시키고 무사히 손자에게 대권을 물려 준 공을 치하해야 할 것 같다.
그 점에서는 세도정치로 얼룩지긴 하였으나 8세에 즉위한 헌종의 왕권을 보호한 순원왕후의 수렴청정도 의의가 있다고 본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임오화변이 있을 당시 정순왕후의 나이는 겨우 18세, 궁에 들어온지 3년 밖에 안 되었을 때이고, 친정에서 아직 조정에 제대로 출사도 못한 상황이라 특정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정조 즉위 후에도 외척을 배척한 왕 때문에 오빠인 김귀주가 귀양가 죽는 등, 경주 김씨는 어려움에 처했고 왕실 웃어른으로써 정조의 후사를 잇기 위해 적극적으로 후궁 간택을 서둘러 무사히 순조가 왕위를 이었으니 큰 공을 세웠다.
숙부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생각해 보면 정순왕후나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이 어린 왕에게 얼마나 큰 바람막이였을지 이해가 된다.
다만 4년의 수렴 기간 동안 신유박해 등으로 남인을 몰락시키고 친정인 벽파를 후원한 점 등을 보면 정치적으로 딱히 훌륭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저자는 이것을 선왕인 정조가 아닌, 남편인 영조에 대한 의리에 입각한 행동으로 이해한다.
정순왕후 입장에서는 나름 명분이 있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그녀의 죽음 이후 벽파가 몰락하는 바람에 더더욱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은 측면이 크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