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이야기 이산의 책 20
린위탕 지음, 김정희 옮김 / 이산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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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광 안내 책자보다 훨씬 재밌다.

1950년대 정도 되는, 굉장히 오래 전 책인 것 같은데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어쩜 이렇게 한 도시의 매력을 잘 풀어 냈을까.

칼라 도판도 많아 책이 고급스럽다.

명청 자기는 정말 눈이 부시다.

지난 번 동유럽 도자기 책을 보면서 서양 자기에 감탄했지만, 명청 자기는 또다른 고급스러움과 격조높음이, 실용기로는 감히 못 쓰고 바라보기만 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베이징의 역사와 자금성, 주변 탑과 원림 등에 대해 자세히 배웠다.

다만 베이징의 풍속이나 기후, 생활상 등은 직접 겪어 보지 못해 많이 와 닿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저자의 매력적인 문장으로 지금까지 별 느낌이 없었던 이 거대 도시가 너무나 매혹적으로 다가 온다.

보통 도시 소개를 할 때는 역사적 유적지 정도로 그치는데, 회화와 종교, 공예 등의 예술적 측면까지 빠지지 않고 살펴 봐 풍성한 책이 됐다.

베이징 관광 전에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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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족을 멸하라 - 명청시대 형벌의 잔혹사
펑위쥔 지음, 김태경 옮김 / 에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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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형벌사를 논한 책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러 가지 사건을 개별적으로 분석한 책이었다.

오늘날의 형법과 고대의 형법이 어떻게 다른가, 어떤 관점에서 법이 적용됐는가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밝히고 있다.

명청대 이른바 기이한 사건이라는 7가지 경우가 나온다.

명나라 때의 네 가지 사건은, 개별적인 형사 사건이라기 보다는 황제에 의해 자행된 일종의 숙청이었고, 청나라 때의 세 가지 사건이 오늘날 같은 유명한 형사 사건들이다.

주원장에 의해 자행된 곽환이나 호유용 모반 사건, 아들 영락제에 의해 자행된 방효유의 이른바 10족을 몰살한 사건 등은 역사책에서 익히 바온 바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이가 죽었다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중국은 황제의 절대 권력이 강한 나라이고 인구가 많다 보니 숙청 규모도 상상을 초월해 수만 명에 이른다.

호유용 모반 사건 등은 무려 10여 년의 시간을 두고 진행되어 살해된 이가 3만에 이른다고 한다.

정말 주원장은 놀라운 독재자다.

아들 영락제 역시 자신의 즉위를 반대한 방효유를 죽이는 것으로 모자라, 친족 9족에 추가로 선생, 제자, 친구까지 포함시키는 10족을 죽이라는 전무후무한 연좌제를 적용한다.

이런 학살을 자행한 왕으로는 얼핏 연산군이 떠오르는데 그는 왕위를 뺏겼던 반면, 명 태조와 영락제는 굳건한 독재 정치를 굳혔으니 공포정치도 정치력이 출중해야 가능한 모양이다.

 

고대 형벌과 고문에 대해 자세히 나오는데 너무 끔찍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적어도 형법 문제에서는 인권이 확실히 놀라울 정도로 진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간은 왜 이렇게 잔인한 걸까?

그림이나 모형을 직접 보여주는 게 아닌데도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기본적으로 고문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합법적인 수사 방법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과학적 수사 기법이 전무했을 때이니 자백을 범죄의 증거로 삼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물증을 찾아낼 수 없는 이상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고문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랬다고 자백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봉건사회 형법은 오늘날과 같은 무죄추정의 원칙 대신,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됐다.

잡혀 오면 죄가 있다는 전제 하에 모든 수사는 그것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할 점은, 옛날이라고 해서 무조건 법관 마음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입증할 근거, 즉 범죄자의 자백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러니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은 필수적일 수밖에.

 

범죄의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누가 범인인지 의심하는 것은 사회적 관습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오이밭에서는 신발끈을 묶지도 말라고 했던가.

관습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행동을 하면 주변에서 의심을 하게 되고, 어떤 사건이 터지면 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

거인에 합격했던 양내무와 평민 소백채의 남편 살해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실 너무 황당하고 기막힌 경우라 읽는 내내 어이가 없었다.

소백채는 집주인 양내무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남편으로부터 구타당하고 자주 싸운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며칠 앓더니 사망하게 된다.

고열에 시달리다 죽었다.

평소 며느리 행동을 못마땅해 하던 시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이 독살당한 것 같다면서 소백채를 남편 살해범으로 고발한다.

그런데 독살당했다는 근거가 너무나 희박하다.

몸에 부어 올랐다는데 더운 날씨 때문에 시신은 충분히 부패할 수 있다.

독살 여부를 대체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더군다나 며칠간 열이 나서 죽은 걸 보면 병력이 분명하고 당시에는 항생제가 없었으니 감염질환으로 며칠 앓다 죽는 경우도 흔했을 것이다.

여인의 행실에 대해 완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관리는 마을의 소문을 믿고 양내무를 잡아들여 사건을 짜 맞춘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고문이 행해진다.

소백채는 남편 살해범으로 능지형에 처해질 뻔 했으나 거인까지 합격한 양내무 집안의 노력으로 자희태후에게까지 탄원서가 들어가 3년의 소송 끝에 혐의가 벗겨지고 방면된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 과정에서 벌어진 고문과 옥살이에 대한 보상은 커녕, 의심을 살 만한 정황들에 대한 처벌로 장형이 각기 수십 대 부과됐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국가가 옥살이 한 날을 전부 금전으로 보상해 줘야 할텐데 오히려 매을 때리다니!

 

고대 형법은 법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황제권을 유지하고 관료제가 잘 돌아가기 위한 안전장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요즘의 관점으로 당시의 판결들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무척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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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그림 속의 여인 100 - 영감을 불어넣는 여인들
롤프 스네이더르 외 지음, 김완균 옮김 / 서강출판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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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이 정말 훌륭하다.

대출 불가 도서관이 대부분인데 다행히 과천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었다.

외국에서 번역된 책은, 관습적으로 잘 알려진 내용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기술되는 경우가 많아 내용을 한번에 이해하기가 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 내용들을 일일이 찾다 보면 독서 시간이 길어지고 집중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생긴다.

특히 이런 그림 관련 책들은, 원래 설명하려는 그림 외에도 비슷한 주제의 그림들을 제목만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 더군다나 제목이 다양하게 번역된 경우는 단번에 무슨 그림을 지칭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주헌씨 책을 보면 본문에 언급된 그림들은 가급적 도판을 모두 실어주기 때문에 읽기가 참 수월한데 번역서에서는 이런 부분이 아쉽다.

역자나 편집자의 센스가 필요한 부분이다.

 

발트 3국이나 동유럽, 북유럽 등 덜 알려진 화가들을 소개한 점도 인상적이다.

맨날 보는 익숙한 작품들 외에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렇지만 너무나 매혹적인 다양한 작품들이 실려 있어 아주 흥미로웠다.

아쉬운 점은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찾기도 어려웠다는 점.

특히 작품을 부분적으로 확대시켜 얼마나 세밀하게 정성스럽게 공들여 그렸는지를 보여주는데, 눈이 황홀했다.

세상에는 훌륭한 능력을 가진 예술가들이 이렇게도 많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인간의 예술적 재능은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니, 인간이라는 종의 예술적 특성은 매우 독특하고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대충 멀리서 볼 때는 그저 형태만 봤을 뿐인데 얼굴과 손 등을 클로즈업 해서 보니 대가들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 뿐 아니라 대충 쓱쓱 그린 듯한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그림들까지 하나같이 형태의 묘사나 질감 표현 등이 놀라울 뿐이다.

작품의 소재를 따로 표시해 주고 영문 제목도 표기해 준 점이 읽는데 큰 도움이 됐다.

작품 크기와 제작년도가 빠진 점은 아쉽다.

기왕이면 본문에 들어가는 참조 작품들도 영문 제목을 표기해 주면 따로 찾아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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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조선 5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
한정주 지음, 권태균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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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페이지라는 분량에 놀랬는데 생각보다는 평이하고 쉽게 읽힌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고 조선시대 선비들의 간단한 약력과 호를 갖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여전히 한시나 경전에 나오는 어려운 한자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한자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제일 헷갈렸던 게 字가 도대체 뭔지, 號와 어떻게 다른지였는데 나처럼 무지한 독자를 위해 부록으로 자와 호를 구분해 놓았다.

동양에서는 이름을 매우 중시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자리 외에는 함부로 부르지 못해 따로 부를 명칭을 만들어 주는데, 어렸을 때는 아명, 관례를 치루고 나서는 자, 그 외 편하게 부를 때는 호를 썼다.

자는 스스로 짓는 경우는 드물고 이름처럼 부모나 윗사람이 지어준다.

호는 보통 직접 짓는다.

그런데 자는 동년배나 윗사람이 부를 수 있어도 아랫사람은 부를 수 없다.

반면 호는 누구나 편하게 부를 수 있다.

요즘은 관례에 해당하는 성년식이 선물 주고받는 행사에 불과하니 字의 개념이 사라졌지만, 號 정도는 지어보면 좋을 것 같다.

부록으로 유명 정치인, 경제인들의 호가 소개된다.

가끔 책의 서문에도 저자들이 호를 쓸 때가 있어 아취가 느껴진다.

나도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럴 듯한 호를 한 번 지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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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록과 친구들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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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너무 좋아 꼭 읽고 싶던 책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정말 힘들게 읽었다.

번역서도 아닌데, 어쩜 이렇게도 문장이 안 읽힐까.

저자의 다른 책은 비교적 쉽고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은 정말 가독성이 많이 떨어진다.

문장이 한 눈에 들어오고 앞으로 쭉쭉 나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뭔 소리를 하는지 몰라 두 번 세 번씩 읽었다.

한 사람의 개인 전기를 쓴 책이니 어려운 이론 나열도 아닌데!

잘은 모르지만 저자가 외국의 여러 책을 조합해서 쓰다 보니 자기 목소리가 안 나오고 툭툭 끊어지는 식으로 쓰인 게 아닐까?

예술가와 친구들, 시리즈는 전부 읽어 보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보류해야겠다.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솔직히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큰 감동은 없었다.

그렇지만 거대한 화면에서 나오는 운동감, 흩뿌려진 색채의 아름다움, 무엇보다 다른 그림과 확연히 구분되는 개성적인 스타일이 좋아 관심을 갖게 됐다.

화가의 그림은 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분명한 양식이 인상깊다.

44세의 너무나 젊은 나이에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폴록의 일생도 흥미롭다.

예술적 조언자가 되어 준 부인 리 크래스너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그녀 자신도 예술가였고 폴록이 죽은 후 재단을 관리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니 훌륭한 동반자였지만 죽기 몇 달 전에는 남편의 외도로 괴로워 했다.

폴록은 알콜에 의존하고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이 있어 매우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었다고 한다.

이성보다는 직관이 발달한, 전형적인 예술가형이랄까.

구글 검색을 해 봤더니 bipolar disorder로 나온다.

광기와 예술, 흥미로운 주제다.

반 고흐의 미국식 버전이랄까.

물론 폴록은 살아 생전에 영광을 얻었지만 말이다.

죽기 몇 달 전에 아내 리와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이혼을 생각하는 와중에 열 네 살이나 어린 화가 지망생과 만나 동거하고 아내가 남편의 폭력과 주사를 피해 유럽으로 피신을 간 사이 뻔뻔하게도 애인을 집에 데리고 와 동거를 하다 결국은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죽고 만 폴록.

드라마틱 하다.

같이 탔던 애인은 멀쩡한데 어처구니 없이 그녀의 친구가 황천길에 동행한다.

이 여자는 나중에 윌렘 드 쿠닝과도 잠깐 연인 사이가 됐다고 한다.

폴록의 일생에 대해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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