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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 - 화이질서의 완성 ㅣ 아이필드 히스토리 History
단죠 히로시 지음, 한종수 옮김 / 아이필드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학자의 본격적인 역사서는 역시 다르다.
간만에 너무 좋은 책을 읽었다.
300 페이지 정도로 작은 분량이면서도 정말 알차다.
일본 번역서들은 가끔 조잡한 느낌이 들어 약간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적어도 중국사는 항상 만족스럽다.
영락제 개인의 평전이라기 보다는, 명 초의 국가관과 통제적 전제국가 형성의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간략하게 배웠던 원말명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왜 명나라는 해금을 하고 영락제 이후 정화의 원정이 끊겼으며 황제독재의 전제 국가로 바뀌었을까?
저자는 명나라가 원과 분리된 국가가 아니라 비슷한 구조를 이어온 연속된 사회로 이해한다.
보통 근대라고 하면 유럽식 근대 모델을 채택하여 중세 이후 신적 권위에서 해방되어 인문과 개인주의의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로 대표되는 팽창주의를 생각하는데, 저자는 화이질서를 내세운 중국식 근대론을 제시한다.
4이조공, 즉 주변 이적들이 조공을 바치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확립시키기 위해 주원장과 영락제는 강력한 통제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정화의 원정 역시 좀더 많은 이적들로부터 조공을 받기 위해서였지 서양처럼 교역을 위해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다.
즉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함이 아니므로 일견 평화로운 원정이었고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곧 폐지될 수 밖에 없었다.
큰 이득이 없었던 영락제의 몽골 원정도 마찬가지다.
중국 역사에 전무하게도 영락제는 직접 만리장성을 넘어 사막으로 몽골을 치러 무려 다섯 차례나 나갔고 결국 돌아오는 길에 사망하고 만다.
베트남의 내지화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의 아시카가 막부도 스스로 조공무역을 청해 와 쿠빌라이도 성공하지 못한 업적을 이룬 것으로 자부심을 갖게 된다.
즉위 과정에서 정통성을 얻고 화이질서를 완성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 바로 영락제인 것이다.
한가지 특이했던 점이, 영락제가 효자황후의 적자가 아니라 조선 출신으로 생각되는 공비의 서자라는 것이다.
친모가 조선 출신 여인이라는 것은 역자의 생각인 것 같다.
어쨌든 다섯 왕자를 낳았다는 효자황후는 실은 불임이었고 정통성 확보를 위해 영락제의 이복형들과 친동생까지 다섯을 적자로 기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영락제와 동복아우만 적자로 했다가, 너무 티가 나니 위 형들도 모두 적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세 번이나 실록을 개수했다.
공식적인 학설인지 궁금하다.
영락제의 건강 이상설도 흥미로웠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뇌전증, 즉 간질을 앓지 않았나 추측한다.
가끔씩 발작적 증세를 보인 모양이다.
그는 자녀를 모두 서황후에게 얻었는데 즉위 후에는 한 명도 낳지 못한다.
병으로 인한 불임이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미녀를 탐해 조선에 공녀까지 바치라고 요구하고, 이 때 뽑혀 간 여인 중 한 명이 바로 인수대비의 고모다.
그녀는 불행히도 영락제 사후 순장당한다.
후궁들을 뽑아 놓고 제대로 찾아보지 못해서인지 궁녀들이 환관과 사통한 사건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영락제 살해 모의가 밝혀져 궁인 2800여 명이 처형당한 일대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국은 스케일이 정말 큰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