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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 탐구의 시대 현대의 발명
이지은 지음 / 지안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전작 <귀족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읽은 김에 이 책도 다시 읽었다.
안 읽은 책인가 했더니, 다시 보니 오리엔탈 특급 열차나 플랫폼으로 돌진한 기차 이야기, 맥닐 휘슬러의 공작새의 방 등이 기억난다.
귀족편은 내가 관심있는 왕조사와 연관되어 더 재밌고 부르주아 편도 현대의 문화를 있게 한 19세기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스만 남작이 건설한 파리 이야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래 전에 열렸던 <오르세 미술관 展>에서 사진으로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때만 해도 그림은 별로 없고 왠 뜬금없는 흑백사진들인가 싶었는데 얼마나 중요한 자료들이었는지 이제서야 알겠다.
책을 읽으면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이런 순간이 삶의 기쁨이 아닐까 싶다.
19세기 파리의 도시계획으로 공공미술과 환경미화에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되고, 파리 예술계를 휩쓴 자포니즘이 아르누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세기의 대표적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증기 기관차의 발명은 여행이라는 새로운 문화와 삶의 반경을 극적으로 넓혀 준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것들의 시원이랄까, 19세기 프랑스 문화가 현대에 끼친 놀라운 영향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인상깊은 구절>
12p
이 책에서도 부르주아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풍속과 유행을 주도하는 중,상류층으로, 그 출신 여부가 어떠하든 먹고 살 만한 사람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66p
이런 교양과 지식이야말로 경제적 여유 말고도 우아한 교양과 문화적 안목까지 골고루 겸비한 고급 중산층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표식이었다.
165p
우리는 종종 일본보다 나은 도자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일본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표한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수출용 자기를 제작하고 19세기에 들어 적극적으로 도자기 산업을 장려했던 일본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오늘날 도자 시장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위상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308p
법관, 변호사, 의사 등 건실한 직업인으로 구성된 18세기의 부르주아들이 19세기 접어들어 정치, 사회,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로 떠오르면서 직업은 한 개인의 사회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다. ... 귀족 자제로 태어나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사회적인 능력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18세기의 남성들과는 달리 설사 귀족 신분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외적 매력을 가꾸고 능력을 증명해야만 대접받으며 살 수 있는 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전문적인 기술과 일반적인 교양을 두루 익혀야 했다.
327p
모리스는 기계를 배제하자는 러스킨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지만 그가 만들어낸 생활용품들은 사실상 누구나 쓸 수 있는 생활용품이 아니라 고급 공예 예술품이었던 셈이다.
337p
갈레의 냉철한 지적처럼 "자연 그 자체 속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 꽃과 나무, 나비와 잠자리, 바다와 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우리의 정서와 경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369p
다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스스로를 유대인이기 이전에 프랑스인으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냐 아니냐는 핏줄과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것을 알아보는 감식안과 예술을 애호하는 감성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이 풍성하게 자라는 프랑스는 남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조국이었던 것이다.
375p
오말 공작의 예처럼 19세기의 컬렉터들은 지금처럼 작품을 사고팔아서 금전적 이득을 보려는 직업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작품을 모았다. 그들은 대개 동시대의 미술보다는 중세 시대나 17~18세기 등 지나간 시절의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구시대의 예술품을 수집해 자신의 정체성과 미적 취향을 널리 알림으로써 사회적 인정을 받고자 했다.
<오류>
64p
"1837년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루이 필립의 장남, 오를레앙 공작의 결혼식이 퐁텐블로 성에서 거행되었다. 이 결혼에 중매를 선 사람은 후에 프레데릭 기욤 4세가 되는 러시아의 황제였다."
->프레데릭 기욤 4세는 러시아가 아니라 프로이센의 황태자이고, 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로 등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