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다음 이야기 1 - 제2의 전국 시대, 중원을 지배한 오랑캐 황제들 삼국지 다음 이야기
신동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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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모호했던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

전체적으로는 흥미롭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이해할 수 있긴 한데 사서를 그대로 옮긴 탓에 너무너무 지루하다.

<삼국지연의>처럼 본격적인 소설도 아니고 역사서를 이렇게 자세히 풀어 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좀더 간략하게 대략적인 큰 틀만 언급하고 저자의 평가를 더 많이 실었으면 좋을 듯 하다.

<고려무인이야기> <혼혈왕 충선왕> 등을 쓴 이승한씨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서를 그대로 옮겨와 신뢰감이 있고 상세하게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좋은데 세부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 지루함을 피할 수가 없었다.

모르는 인물들이 많아 검색을 하다 보면 위키에 책에 나온 문장들이 그대로 실려 있다.

아마도 사서 번역본을 똑같이 인용한 탓이리라.

위진남북조 시대라면 4세기인데 이렇게도 자세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남조를 정통으로 보고 북조는 단순히 5호 16국 시대로 오랑캐가 군웅할거한 혼란기로만 치부한 점도 잘못된 관점임을 새삼 깨달았다.


<인상깊은 구절>

94p

"결과론이지만 사마염의 보위는 백치 같은 아들보다는 친동생인 사마유에게 넘겨주는 것이 옳았다. 그랬다면 풍부한 통치 경험을 바탕으로 서진은 크게 번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적장자가 황위를 잇는 제도 또한 가벼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역사적 인물은 그들 나름의 운명이 있기 마련인 모양이다."

300p

"주협은 집으로 돌아돈 뒤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매번 이같이 말했다. <인생을 살면 얼마나 살 것인가? 뜻을 호쾌히 하는 것밖에 더 있겠는가!>"

336p

"당초 왕돈과 소준, 조약이 이끄는 3개의 군대는 동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였다. 이때에 이르러 이들 3개 군대는 모두 궤멸되고말았다. 중원의 전조와 후조가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을 벌이지 않았다면 동진은 이때 일찍이 패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훗날 명대 말기의 왕부지는 <독통감론>에서 이같이 평했다. <이적끼리 서로 싸운 것이 중국에 이익이 되었다.> 왕부지의 지적처럼 동진이 이후에도 수십 년에 걸쳐 잔명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442p

"환현은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행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모든 일에 시시콜콜 끼어든 이유다. 아전의 행보였다. 처리해야 할 문건이 산더미처럼 쌓이니 법령이 제대로 시행될 리 없었다."


<오류>

453p

"423년 북위 도무제 탁발사가 병사하다"

->탁발사는 명원제이고 도무제 탁발규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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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 - 바다를 누빈 중세 최고의 상인들
서동인.김병근 지음 / 주류성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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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안해저선 특별전을 봤던 기억이 난다.

막연히 신문 기사에서만 접했다가 실제로 유물을 보니 새삼 관심이 생겨 읽게 됐다.

도록으로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 책은 마치 소설처럼 발굴 과정과 당시 사회상 등을 풀어 써 흥미롭다.

다만 신데렐라의 원형이 당나라 때 <유양잡조>라고 확신한다든가 동양의 인쇄술과 제지술이 서양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식의 비약이 가끔 보여 약간 불편한 부분도 있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는 구별해야 할 것 같다.

복건성의 취주에서 일본의 후쿠오카를 향해 가던 배가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해 1975년 발굴됐는데 수만 점의 도자기와 동전 등이 수습되어 당시 문화를 생생하게 전해 준다.

교역은 역시 필수품 보다는 이익이 많이 남는 귀족들의 사치품 위주였던 모양이다.

불상을 만들기 위한 자단목이나 동전들, 도자기 등이 수습되었는데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청자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도판이 훌륭해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교역로가 자세히 서술됐는데, 생각보다 중국과 고려, 일본 등의 교류가 활발했던 듯 하다.

수중 고고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인상 깊은 구절>

109p

명나라 진계유는 <미공비급>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창을 닫고 향을 피우면 좋은 복이 이미 갖춰진 셈이다. 복이 없는 자는 반드시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복이 있는 자는 독서로써 보충한다..."

향을 피워놓고 조용히 책을 읽는 삶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188p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가졌다 해도 거기에 문화를 입히지 않으면 생명력과 경쟁력을 가진 상품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류>

192p

"1128년(송 인종 6년) 사농경 황악은 고려무역을 금지시키자는 상소를 올렸고"

->1128년은 남송 고종 치세다. 북송 인종의 치세는 1022~1063년이다.

"그러다가 고려 상인들의 남송 무역은 인종 시대 후에 다시 시작되었다."

->인종은 북송의 황제로 문맥과 맞지 않다. 

294p

"이제현의 아버지 이진은 혜감국사 만항과 교유하였고, 이진의 형이 승려 체원으로, 그는 화엄종 승려였다."

->체원은 이제현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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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
이덕일.김병기 지음 / 예스위캔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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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이 나왔을 때 서점 신간 코너에 발견하고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덕일씨의 고조선 천자론이나 노론 독살설에 질리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곽답사라는 독특한 컨셉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요즘 인문답사가 유행이다 보니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 책도 재독하게 됐다.

다시 봐도 재밌다.

역시 전공한 학자들의 책은 다르구나 싶고, 이덕일씨 책이 왜 많이 팔리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글솜씨가 맛깔난다.

사진 작가가 산성 사진을 많이 실어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고 일러스트등도 산성의 구조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됐다.

아쉬운 점은 답사하면서 같이 언급된 유물이나 탑, 절 등은 거의 실려있지 않던가 매우 작은 도판으로 나와 아마도 저자들이 직접 촬영한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부분도 기왕이면 전문 작가가 촬영한 큰 도판으로 실어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책값이 너무 올라가려나?

주5일제에 맞춰 여행이 트렌드고 이제는 한발짝 더 나아가 주제가 있는 인문여행이 대세이니 오랜 역사의 산증인인 산성이나 명승, 사찰, 고택 등을 답사하는 것도 참 좋은 여가가 될 것 같다.

벌써 품절인 게 아쉽고 2탄, 3탄이 또 나오면 좋겠다.

이덕일씨는 논란많은 역사서 보다는 유홍준씨처럼 이런 답사기를 펴내면 참 좋을 것 같다.


한가지 기록해 두고 싶은 것.

안성의 유명한 남사당패의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 하며, 이런 예술이 전 국민적인 예술로 보편화되지 못한 까닭을 망국의 유산으로 보는데 동의하기 힘들다.

전에는 전통문화, 특히 판소리나 사당패 같은 서민문화가 사라진 것이 무조건 일제의 식민지배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서양의 역사를 읽어보면서 오페라나 클래식, 발레 같은 형식이 오늘날도 향유되는 것이 서구의 제국주의 덕분이라고 간단히 넘어가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있어야 그 문화 형식이 발전 유지될텐데 과연 조선 시대 서민층이 서구의 부르주아 계급처럼 시대를 이끌어 갈 역량이 있었을까?

서민문화의 평가는 어쩌면 오늘날 잘사는 후손들이 거꾸로 의미부여를 해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조선 후기의 자본주의의 맹아론도 지금은 폐기된 학설로 알고 있다.

실학 역시 근대 사회를 끌고 가기에는 너무나 상고주의적인 학문이 아닐까.


<인상깊은 구절>

63p

"이토록 많은 선정비가 있을 정도로 훌륭한 벼슬아치가 많았는데 백성들의 생활은 왜 도탄에 빠졌을까? 진짜 훌륭한 총융사라면 선정비 따위는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간단한 생각은 왜 못했을까? 북산산성 건축의 핵심 노동력을 제공했던 승군에 대한 조직체계 등을 새겨 놓은 승도절목도 있다. 수도하기 위해서 입산했다가 산성 역부로 전락했던 조선 후기 승려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66p

"중국 절강에 해적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행궁, 조선 후기 지배층은 연구하면 할수록 희한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해적들이 조선에 나타날 리는 만무했고, 한때 위용을 자랑했던 이 행궁도 한번 써먹지도 못하고 대홍수로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풀숲과 기단과 초석만 남아 있다."

107p

"남아 있는 고인돌은 무게가 자그마치 50톤이다. 평지도 아닌 구릉 정상까지 거대한 돌을 끌어올려야 했던 옛 사람들의 신심이 궁금하다."

138p

"자국의 농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서 자국 강토를 청일전쟁의 무대로 제공했던 고종을 훌륭한 군주였다고 칭찬하는 역사학자까지 있으니 녹두장군 전봉준이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144p

"필자는 사림들이 집권 후에는 왜 과거의 개혁성을 잃고 수구세력으로 전락했는지 궁금했다가 이곳 면앙정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찾기도 했다. 가끔 귀양도 가지만 서울로 올라가면 화려한 벼슬이 있고 내려오면 막대한 농토와 정자가 있었던 사대부들. 야당이었을 때는 모를까 이미 집권한 사림들에게 신분제 철폐나 농토 재분배처럼 시대가 요구하던 개혁정책은 자신들의 계급적 기득권을 버려야 한는 것이었다. 훈구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는 딱 거기까지가 사림의 역사적 순기능이었다. 조선의 비극은 이들을 대체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서 배가된다."

145p

"조광조는 중종이 훈구파인 남곤, 심정, 홍경주 등과 손잡고 버리는 바람에 능주고 귀양 갔다가 사사 당한다."

150p

"<고래로 아무리 천연 勝池라도 저명한 인물이 끼친 발자취가 없으면 그 땅의 참된 가치가 세간에서부터 闡揚되기 어려운 것이다>라는 구절이 새삼 와 닿는다. 그렇다. 아무리 천하 길지며 명승이라 해도 명승은 인물이 더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293p

"대웅보전을 내려와 돌다리를 지나면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백범 명상길이 나온다. 과연 현대의 젊은이들은 이 길을 지나며 조국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것은 월드컵이 개최될 때마다 터지는 '아! 필승 코리아!"의 외침과는 분명 다른 것이리라."


<오류>

164p

"후주의 무제가 요동으로 쳐들어오자 온달은 선봉에 선다."

->후주는 10세기 송나라의 전신이고, 평원왕 시절인 6세기의 나라는 선비족의 북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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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김희은 지음 / 써네스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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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러시아 미술에 대한 책이라 반갑게 신청했다.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가이드북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도판도 훌륭하고 흔히 접하지 못하는 많은 19세기 러시아 명화들을 감상하는 것은 좋으나 본격적인 러시아 미술에 대한 이해서로 보기는 힘들 것 같고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면 되겠다.

그림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상과 그림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가볍게 설명한다.

저자가 전공자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일 듯 하다.

각주로 꼼꼼하게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실은 것은 좋으나, 출처 표기가 안 된 점이 매우 아쉽다.

혹시나 하고 검색해 보니 100% 네이버 지식백과에 실린 내용이다.

자기만의 언어로 요약하기 힘들다면 출처라도 분명히 밝혀야 할 듯 하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문장을 따오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요즘 나온 책으로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이반 4세에 대한 부분은 네이버 연재물 중 황성우씨가 쓴 내용 그대로다.

인용에 대한 보다 엄격한 잣대가 필요할 듯 하다.

어쩐지 키치 같은 느낌의 러시아 풍속화들 보다는, 이삭 레비탄이나 쉬쉬킨 등의 풍경화가 개성적이라 마음이 끌리고, 언제나 감동에 마지 않는 일리랴 레핀의 역사화가 가장 러시아답다.

서유럽이 미술을 주도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러시아도 변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화가는 초상화가로 유명한 발렌틴 세로프다.

이 책에는 안나 파블로바와 이다 루빈슈테인의 매혹적이고 도발적인 누드 초상화가 실려 있는데 다른 그림도 찾아보니 스타일이 매우 다양하다.

인상주의 같은 그림도 있고 마티스 같은 야수파 느낌의 그림도 있고 본격적인 초상화풍도 있어 설명대로 한 화가의 화풍인가 의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초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우울한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올 것임을 믿어라.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의 우울함은, 순간적이며 지나갈 것이다.

지나간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푸쉬킨-


너무나 유명한, 그래서 뻔한 싯구인데도 러시아 그림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고 어쩐지 내 마음에도 작은 위로가 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빛 용모, 앵두 같은 입술, 나긋나긋한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

"불쌍한 청년들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숭배도 믿고 따르지도 않는다면 바로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 되고 말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겁쟁이들 사이에서 바보가 사는 방법이다." -이반 투르게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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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그림으로 읽는 세상 '근대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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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된 책은 읽지 말아야겠다고 새삼 느낀 책.

2004년도에 출간된 책이라 그런지 진부하다는 생각이 많아 든다.

도판은 무척 마음에 든다.

미학에 관한 책들이 보통 그렇지만 사변적이고 말장난 같고 의미부여가 지나쳐 그림 자체가 갖는 본질이 훼손되는 느낌마저 든다.

인상주의와 프랑스 근대 사회 변화를 추적한 내용인 줄 알았다

나는 인상파 그림들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하는 이른바 미학론에는 별 관심이 없고 얼마 전에 봤던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같은 보다 실제적인 내용을 원했다.

모네가 공화주의자였다고 해서 모네의 그림에 등장한 공화국기가 얼마나 큰 관련이 있을까.

오스만의 도시계획을 프랑스판 새마을운동이란 식으로 가볍게 비판하고 넘어가는 것부터가 도시화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에 대한 깊이있는 고찰이 전혀 보이지 않아 공감이 어려웠다.

사회현상을 비판하려면 좀더 깊이있는 "실증적인" 분석이 필요할 듯 하다.

인상주의는 기존의 그림과 무엇이 다를까?

형식적으로는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았던 강렬한 원색 사용과 대담한 구성, 색을 전면에 내세운 평면화일 것이고 내용적으로는 책에 무수히 언급된 바대로 중산층의 여가생활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비슷한 시기의 라파엘전파는 모더니즘을 대표하기 힘들 것 같고 오히려 저자의 말대로 러스킨의 사상은 오늘날의 생태주의와 맥이 닿을 듯 하다.


<인상 깊은 구절>

269p

"남성은 이런 '타락한' 여성과 성매매를 해도 결코 타락한 존재로 비난받지 않았다."

283p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낭만주의의 내용 같은 건 별반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그림에 내재된 '혁신이라 할 만한 형식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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