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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
이덕일.김병기 지음 / 예스위캔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서점 신간 코너에 발견하고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덕일씨의 고조선 천자론이나 노론 독살설에 질리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곽답사라는 독특한 컨셉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요즘 인문답사가 유행이다 보니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 책도 재독하게 됐다.
다시 봐도 재밌다.
역시 전공한 학자들의 책은 다르구나 싶고, 이덕일씨 책이 왜 많이 팔리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글솜씨가 맛깔난다.
사진 작가가 산성 사진을 많이 실어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고 일러스트등도 산성의 구조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됐다.
아쉬운 점은 답사하면서 같이 언급된 유물이나 탑, 절 등은 거의 실려있지 않던가 매우 작은 도판으로 나와 아마도 저자들이 직접 촬영한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부분도 기왕이면 전문 작가가 촬영한 큰 도판으로 실어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책값이 너무 올라가려나?
주5일제에 맞춰 여행이 트렌드고 이제는 한발짝 더 나아가 주제가 있는 인문여행이 대세이니 오랜 역사의 산증인인 산성이나 명승, 사찰, 고택 등을 답사하는 것도 참 좋은 여가가 될 것 같다.
벌써 품절인 게 아쉽고 2탄, 3탄이 또 나오면 좋겠다.
이덕일씨는 논란많은 역사서 보다는 유홍준씨처럼 이런 답사기를 펴내면 참 좋을 것 같다.
한가지 기록해 두고 싶은 것.
안성의 유명한 남사당패의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 하며, 이런 예술이 전 국민적인 예술로 보편화되지 못한 까닭을 망국의 유산으로 보는데 동의하기 힘들다.
전에는 전통문화, 특히 판소리나 사당패 같은 서민문화가 사라진 것이 무조건 일제의 식민지배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서양의 역사를 읽어보면서 오페라나 클래식, 발레 같은 형식이 오늘날도 향유되는 것이 서구의 제국주의 덕분이라고 간단히 넘어가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있어야 그 문화 형식이 발전 유지될텐데 과연 조선 시대 서민층이 서구의 부르주아 계급처럼 시대를 이끌어 갈 역량이 있었을까?
서민문화의 평가는 어쩌면 오늘날 잘사는 후손들이 거꾸로 의미부여를 해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조선 후기의 자본주의의 맹아론도 지금은 폐기된 학설로 알고 있다.
실학 역시 근대 사회를 끌고 가기에는 너무나 상고주의적인 학문이 아닐까.
<인상깊은 구절>
63p
"이토록 많은 선정비가 있을 정도로 훌륭한 벼슬아치가 많았는데 백성들의 생활은 왜 도탄에 빠졌을까? 진짜 훌륭한 총융사라면 선정비 따위는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간단한 생각은 왜 못했을까? 북산산성 건축의 핵심 노동력을 제공했던 승군에 대한 조직체계 등을 새겨 놓은 승도절목도 있다. 수도하기 위해서 입산했다가 산성 역부로 전락했던 조선 후기 승려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66p
"중국 절강에 해적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행궁, 조선 후기 지배층은 연구하면 할수록 희한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해적들이 조선에 나타날 리는 만무했고, 한때 위용을 자랑했던 이 행궁도 한번 써먹지도 못하고 대홍수로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풀숲과 기단과 초석만 남아 있다."
107p
"남아 있는 고인돌은 무게가 자그마치 50톤이다. 평지도 아닌 구릉 정상까지 거대한 돌을 끌어올려야 했던 옛 사람들의 신심이 궁금하다."
138p
"자국의 농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서 자국 강토를 청일전쟁의 무대로 제공했던 고종을 훌륭한 군주였다고 칭찬하는 역사학자까지 있으니 녹두장군 전봉준이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144p
"필자는 사림들이 집권 후에는 왜 과거의 개혁성을 잃고 수구세력으로 전락했는지 궁금했다가 이곳 면앙정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찾기도 했다. 가끔 귀양도 가지만 서울로 올라가면 화려한 벼슬이 있고 내려오면 막대한 농토와 정자가 있었던 사대부들. 야당이었을 때는 모를까 이미 집권한 사림들에게 신분제 철폐나 농토 재분배처럼 시대가 요구하던 개혁정책은 자신들의 계급적 기득권을 버려야 한는 것이었다. 훈구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는 딱 거기까지가 사림의 역사적 순기능이었다. 조선의 비극은 이들을 대체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서 배가된다."
145p
"조광조는 중종이 훈구파인 남곤, 심정, 홍경주 등과 손잡고 버리는 바람에 능주고 귀양 갔다가 사사 당한다."
150p
"<고래로 아무리 천연 勝池라도 저명한 인물이 끼친 발자취가 없으면 그 땅의 참된 가치가 세간에서부터 闡揚되기 어려운 것이다>라는 구절이 새삼 와 닿는다. 그렇다. 아무리 천하 길지며 명승이라 해도 명승은 인물이 더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293p
"대웅보전을 내려와 돌다리를 지나면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백범 명상길이 나온다. 과연 현대의 젊은이들은 이 길을 지나며 조국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것은 월드컵이 개최될 때마다 터지는 '아! 필승 코리아!"의 외침과는 분명 다른 것이리라."
<오류>
164p
"후주의 무제가 요동으로 쳐들어오자 온달은 선봉에 선다."
->후주는 10세기 송나라의 전신이고, 평원왕 시절인 6세기의 나라는 선비족의 북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