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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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20여 년 만에 교토에 가보려고 한다.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던 때라 기억에 남는 건 나라 동대사의 사슴 밖에 없다.

일본 역사에 대해 나름 관심이 생기고 책도 열심히 읽은 터라 이번 여행은 일정은 짧지만 제대로 보고 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유홍준씨 답사기를 재독했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베스트셀러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다른 편도 다 좋지만 특히 일본 편은 편집이나 디자인이 참 잘 나왔다.

문장도 너무나 쉽게 잘 읽히고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흡입력 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대부분인 듯 한데 도판도 괜찮은 편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교토의 명소들을 답사하면서 자연스레 일본의 역사도 같이 익힐 수 있었다.


1) 헤이안 시대 불상 조각이 힘이 넘친다. 

일본의 놀라운 조각 전통. 육바라밀사의 공야 상인 입상.가마쿠라 시대의 초상조각. 

삼십삼간당의 천수관음상 등신대 불상 1000구. 설치미술 같은 느낌.

2) 마쓰리의 나라. 1500년 째 계속되는 축제. 진정한 전통의 나라.

3) 일본 정원의 아름다움. 석정의 독특함.


<인상깊은 구절>

35p

중용의 저자는 공자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알고, 어떤 사람은 배워서 알며, 어떤 사람은 노력해서 안다. 그러나 이루어지면 매한가지다."

72p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친절성이 아니었다. 운전사라는 직업이 생계를 위한 돈벌이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에서는 절대로 이런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일본인들의 강점 중 하나로 꼽는 것은,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철저히 자기 일에 충실한다는 확고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 점이다.

133p

역사는 유물과 함께 기억해야 명확한 이미지를 갖게 되고, 지리와 함게 익혀야 현장감을 갖게 된다.

186p

홍법대사 공해가 지은 노래라는 설이 있다.

"꽃은 화려해도 지고 마나니 우리의 인생살이 누구인들 영원하리. 덧없는 인생의 깊은 산을 오늘도 넘어가노니 헛된 꿈 꾸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으리라."

269p

'국가는 문화 창조의 가장 유력한 패트론'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알게 될 것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예산 배정 우선순위는 '복지'에 있다. '복지'자가 들어가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287p

라이샤워는 <동양문화사>에서 한국과 일본이 중국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자기 문화의 아이덴티티를 견지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각기 독자적인 언어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일본은 이미 10세기에 가나가 발명되어 소설이 나오고 일본인의 서정을 담은 와카라는 시 형식까지 갖추었다. 일본이 이처럼 일찍이 국풍문화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가나의 발명과 그것의 적극적 사용 덕분이었다.

327p

이 엄청난 규모의 절을 어떻게 유지하며 몇십년간 불상 보수를 이어갈 수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주지 스님이 말하기를 "관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참배"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했다. 즉 입장 수입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시라카와 상황은 분명 조상들로부터 용서를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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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들이 말해주는 그림 속 여성 이야기
김복래 지음 / J&jj(디지털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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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프랑스 왕과 왕비>를 재밌게 읽어 기대를 갖고 신간 신청한 책.

기대에 부응할 만큼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이야기과 당시 역사가 자세히 기록되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정말 아쉬운 것은 역시 도판이다.

이 출판사는 도판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이 출판사에서 최근에 나온 그림 관련 책들을 몇 권 봤는데 하나같이 도판이 형편없다.

미술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에서 도판이 이렇게 형편없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개인이 찍은 사진도 이렇게 조악하게 인쇄되지는 않을 듯 하다.

400 페이지에 유럽사에 대한 많은 정보가 들어 있어 있고 다양한 그림들을 접할 수 있어 좋은 독서였다.

특히 화가의 생몰연대와 소장처, 제목까지 원어로 모두 기재해 주어 큰 도움이 됐다.

필력도 무난해 지루하지 않고 한 번에 쭉 읽을 수 있다.

인물 소개를 할 때 가끔 위키백과에서 그대로 따온 문장들이 보인다.

출처 표시를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06p

우리의 정치제도는 다른 무력적인 제도들과 경쟁하지 않노라. 우리는 이웃국가들을 모방하지 않으며, 단 귀감이 되고자 노력할 뿐이다. 우리의 행정은 소수보다는 다수를 선호하노라. 그래서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이다.

161p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은 신체적 외모가 인간의 행동 양식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 당시 미의 기준은 어떤 것이었을까? 고대에서 중세 유럽에 이르기까지 미의 기준은 귀족적 기준에 의거하고 있었다. 즉 하얀 피부에 금발이 대체적으로 이상적인 미의 기준이었다. 

238p

중세에 결혼은 계층을 막론하고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경제적인 비지니스의 영역에 속했다. 때문에 지참금이 없는 여성은 혼인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가난한 농가의 커플들은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고 그냥 '동거'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260p

최초의 평민 출신 왕비가 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영국 왕실에 아무런 지참금도, 국제적인 커넥션도, 유리한 영토 합병이나 외교적인 지원의 약속도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단 유일하게 놀라운 다산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초창기에는 별로 인기가 없었을지 몰라도 기존의 왕비들과는 차별되는, 즉 '중세 문학의 원형'에 부합하는 완벽한 왕비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즉 아름답고 복종적이며, 위대한 '다산의 여왕'이 되었던 것이다.

305p

하지만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카트린의 지참금으로 약속된 거액의 금액을 끝끝내 지불하지 않았고, 나중에 이에 크게 낙담한 시아버지 프랑수아 1세는 하늘을 우러르며 "한 소녀가 내게 알몸으로 왔다"며 탄식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382p

'르네상스의 퍼스트레이디'로 알려졌던 이사벨라 데스테처럼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소수의 엘리트 여성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하층민 여성들이 르네상스 운동과 거의 무관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386p

페트라르카도 역시 동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에 유행했던 궁정 귀부인들에 대한 우아한 기사도적 매너와 아내 구타의 관행에 대한 명백한 모순성을 별로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근대의 태동기, 즉 변화가 막 시작되면서 꿈틀대던 시기였다.

392p

적어도 상류층 여성들은 '르네상스를 가졌던' 것으로 사료된다. 남성의 권력과 능력에는 못 미치지만 여성들의 문화도 분명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이나 경제력을 지니지 못했던 하층민 여성의 경우에는 르네상스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중세시대의 여성들과 비슷한 조건에서 살았다. 물론 하층민 남성들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396p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의 유명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마따나, 과거에는 여왕 쯤 되는 아주 소수만이 누리고 생각하던 것을 현대에 와서는 평범한 사람들도 평범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역시 르네상스기 이후의 민주주의 발달과 여권신장의 커다란 수확물이 아닐까?


<오류>

121p

에트루리아의 6대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막내딸이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에트루리아계이나 에트루리아가 아닌 로마의 6대 왕이다.

264p

포르투갈의 왕족 출신인 어머니 이사벨라 태후는 서자인 엔리케 4세에 대한 공포와 배신감 때문에~

->엔리케 4세는 서자가 아니라 후안 2세의 적자이고, 계비인 이사벨라의 의붓아들이다.

267p

이사벨라의 큰 딸인 캐서린은 헨리 8세와 결혼을 했고~

->헨리 8세와 결혼한 캐서린은 넷째 딸로 이사벨 1세의 막내딸이다.

290p

밀라노의 군주인 조반니의 삼촌 루도비코 스포르차도 역시 강력한 보르자 캠프와 동맹을 맺을 심산으로~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루크레치아 보르자의 첫 남편 조반니 스포르차의 당숙이다. 즉, 조반니의 아버지 코스탄초 1세는 루도비코의 형제가 아니라 사촌이다.

296p

1510년 12월 30일에 루크레치아와 알폰소 1세의 대리결혼식이 바티칸에서 거행되었고~

->1510년이 아니라 1501년이다.

304p

카트린의 삼촌인 교황 클레멘스 7세는~

->클레멘스 7세는 카트린 드 메디치의 종조부다. 즉, 카트린의 아버지 로렌초 2세는 클레멘스 7세의 조카다.

329p

16세의 소녀 제인 그레이는 자신의 사촌인 에드워드 6세의 상속자로서 영국 여왕임을 선포한다. 그러나 또 다른 강력한 왕위 계승자인 이복언니 메리 튜더에게 단 9일 만에 폐위되어 런던탑에 반역죄로 참수당하고 말았다.

->제인 그레이의 어머니 프랜시스 브랜던이 에드워드 6세의 사촌이다. 그러므로 제인은 에드워드 6세의 당조카이다. 메리 1세는 제인의 이복언니가 아니라 당고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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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zone 2019-09-0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의 아버지와 단리 경의 어머니는 동복남매이니 메리와 단리 경은 4촌간이 맞는 것 아닌가요? 제임스4세의 왕비 마가렛 튜더는 메리에겐 친할머니가 되고, 단리 경에겐 외할머니가 되는 것이죠.

marine 2019-09-09 15:26   좋아요 0 | URL
네, 그러네요. 제가 착각했습니다.
 
영국 메이드의 일상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41
무라카미 리코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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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번역된 책을 보면 주제의 다양함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리고 서양에 대해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다.

견당사를 보내서 중국 문화를 흡수하던 역사가 생각난다.

한국도 서구 지향적이긴 하지만 이런 미시사를 보면 역시 비교가 안 된다.

앞서 발간된 <영국 귀족의 생활> 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주고 내용도 알차다.

제목이 좀 자극적이라 가벼운 내용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다.

빅토리아 시대의 최하층 노동 계급이라 할 수 있는 하녀들, 이른바 메이드에 대한 드문 고찰이라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보면 호텔 접시닦기의 끔찍한 생활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접시닦기라는 직업은 없어져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극소수의 우아하고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운 일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노동 조건 속에서 장시간 일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공산주의가 실패하긴 했지만 당시 상류층과 노동계층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공산주의 이론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한국도 60,70년대 배경 드라마를 보면 가정부가 흔하게 등장한다.

인건비가 싸고 젊은 여자들이 달리 일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메이드로 일했을 것이다.

요즘도 워킹맘이 베이비시터와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긴 하지만 인건비가 너무 올라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하고 있다.

확실히 19세기와 20세기 초를 지금 시대의 눈으로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인상깊은 구절>

16p

상류계급은 원칙적으로는 노동과 돈과 관련된 일에는 손을 대지 않고, 토지에서 나오는 수입이나 이자를 받으면서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사교나 스포츠나 자선, 국회의원이나 치안 판사 등, 공공을 위한 무상의 명예직에서 시간을 소비했다.

55p

<자기가 먹을 건 자기가 벌자> <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리자> 이것이 소녀들이 메이드가 되는 최대의 목적이었다. 노동자계급의 가정은 항시적으로 간신히 생활을 이어가는 삶을 강요한 데다가 아이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직장은 불안정했으며, 가족 모두가 조금이라도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곧바로 일을 하는 게 당연했다.

58p

공장, 가게, 오피스 등 새로운 직업은 돈으로 맺어진 근대적인 계약관계다. 명확한 근로시간, 행동의 자유도 보장되었다. 메이드도 고용 관계와 금전을 바탕에 두고 있긴 했지만, 옛 시대의 주종관계 인식이 사라지지 않아 심신이 같이 구속되는 일이었다.

79p

나는 스컬러리 메이드가 어떤 일을 하는 잘 알고 있었다. 인종 중에서 최하층의 존재 -모든 사용인의 찌꺼기, 사용인의 사용인. 그리고 영원한 scapegoat인 것이다.

95p

특히 자주 인용한 구절은 불공평하게 보이는 이 세상도 신이 정한 질서 안에 있다며, 주인의 권위를 강화하고 아랫사람들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105p

레이디들은 소녀 시절부터 <비천한 노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자란 탓에 요리의 기초도 몰랐다. 그러한 그녀들이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 만약 <신의 질서>에서는 자신이 위에 있다고 믿는다 해도, 몸뚱이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기술을 가진, 가족의 식생활을 쥐고 있는 요리사에게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권력 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113p

자신은 가족의 일원이며, 마님의 일부이자, 그리고 인생이라는 표현의 공동제작자이다. 불합리한 중노동을 불평하지 않고 생애를 바친 상급 사용인들은 이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170p

<90년대 초에 생활 형편이 조금 나아질 일이 생겼다. 주급이 15실링으로 오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물가도 오르고 가지고 싶은 것도 늘어서 약간 오른 수입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 이 시기에는 물가가 상당히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실생활은 여전히 어려웠을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아이들이 많았고, 유아사망률도 높았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무사하게 자란다면 아이들이 일손을 도아주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때문에 메이드들이 얼마 되지 않는 급료를 처음으로 손에 넣으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본가로 용돈을 보내는 일이었다. 특히 돈을 벌어야 하는 아버지가 실업을 반복하는 경우, 일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본가의 가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에 강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175p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중류계급의 여주인은 경험이 없는 여성을 일정 기간 고용하고는 해고하는 식으로 지출을 억제했지만, 유복한 고용주들은 경험이 풍부한 성인 사용인을 높은 연봉으로 붙잡아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234p

활자 문학의 세계에서는  <사용인을 유혹하는 주인님>을 그린 작품들이 다수 존재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는가 하면, 총체적으로 봤을 때 메이드들이 교제했던 상대는 같은 계급인 남성이 많았다. 따라서 문학에 쓰인 것처럼 어느 집에서든 당연한 듯 만연한 <악덕>은 아니었던 것 같다. ... 현실은 로맨스 소설처럼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 시골의 메이드가 백작부인이 되거나 사냥터지기의 딸이 공작과 맺어지는 일은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246p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관대하게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었다며 받아들였다고 한다. 즉 대다수 메이드들이 나고 자란 전원지대에서는 정해진 상대와 결혼을 전제로 충분한 교제기간을 거친 다음, 아이가 생긴 것을 계기로 결혼을 결심하는 것이 전통적인 관습이었던 듯하다.

249p

동화에서라도 나올 것 같은 <신데렐라 결혼>처럼 보이지만, 옛날 이야기와 달리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참한 데어리 메이드였던 과거를 가진 <레이디 페더스턴하우>는 풋맨에게 조소를 당했는데, 해리 경은 그를 해고했다. 하지만 집안에서라면 몰라도 사교계의 구석구석까지 그의 위광이 미치지는 못했다. 사냥터지기에게 <내가 어리석은 짓을 한 걸까?>라며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 레이디스 메이드인 내니트 호킨스를 애인으로 삼아 동거하다가 이윽고 1792년에 결혼한다. 사교계는 계급사회의 질서를 깨부순 준남작 부부를 거절했고 그 또한 세상을 거부했다.

265p

<만약 한 번 코스가 결정되면, 그 곳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러면 안 돼.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야 해>

269p

하급 메이드는 결혼함과 동시에 퇴직했으나, 상급 사용인의 대다수는 독신으로 남아 일에 전념했다. ... 특권이 늘어나면서 만족도가 높아져, 결혼보다 일을 우선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심리. ... 이 가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노후의 안정을 위해 저금하고, 작은 집을 사는 것이 커리어를 선택한 그녀들의 유일한 목표였다. ... 대다수가 오래 일하면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는 내용으로, 여주인을 험담하는 내용은 아주 적었다고 한다. 신경을 써주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지탱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74p

특히, 사용인계급의 최상층으로, 귀족이나 지주의 대저택에서 일하던 상급 사용인들은 주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계급사회 구조를 자신들에게도 적용하여, 주인과 일체화된 시선으로 주변을 보고 있었다. 

<좋은 의미로 보수적이었던 잉글랜드 귀족은 사용인을 보석처럼 다루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들이 마치 '쁘띠' 상류층(snob) 행세를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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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럽의 작은 미술관 -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숨은 미술관 기행
최상운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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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미술관을 주제로 한 가벼운 책들이 너무 많이 나와 스킵할까 싶다가도 혹시라도 놓치는 곳이 있을까 봐 지나치지 못하고 챙겨 읽게 된다.

저자의 전작들이 너무 가벼워 다소 우려가 됐으나 컨셉을 잘 잡았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럽 미술관들을 소개하고 도판도 그럭저럭 괜찮다.

갈수록 필력이 느는지 전작들 보다 문장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

책을 읽으면서 가보고 싶은 미술관들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 런던의 월리스 컬렉션, 생 폴 드 방스의 매그 재단 미술관


<오류>

185p

고흐는 룰랭을 모델로 총 여섯 점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중 다섯 점이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니~

->우체부 룰랭의 초상화는 총 여섯 점인데 소장처는 보스턴 미술관, MoMA, 디트로이트 미술관, 반스 파운데이션, 빈터투어 미술관,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다.

336p

엄마의 정부 가운데 한 명이었던 나폴레옹 3세의 이복동생 모르니 공작이 그녀를 배우로 키우게 된다.

->모르니 공작은 나폴레옹 3세의 어머니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가 루이 나폴레옹과 이혼한 후 샤를 드 플라오 백작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異腹동생이 아닌 異父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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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정유경 지음 / 시공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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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왕조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게 바로 엘님의 블로그다.

자료가 방대하고 복잡다단한 유럽 왕조의 혈연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런 분이 책을 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과연 두 권째 출간이 돼서 반가운 마음에 도서관에 신청을 했다.

1권은 블로그 글보다 밀도 면에서 떨어지는 듯 하여 아쉬웠는데 두 번째 책은 훨씬 잘 만들었다.

잘 몰랐던 중세 시대 유럽 왕조사에 대해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도판도 많이 실려 보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덴마크와 독일의 영토 싸움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이나 티롤이 합스부크르 가문으로 귀속되는 과정, 시칠리아 왕국 등에 대해 새롭게 알게 돼서 기쁘다.

프랑스인으로서 느닷없이 스웨덴의 군주가 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왕가의 조상이 된 나폴레옹의 군인이었던 베르나도트, 즉 칼 14세 요한의 이야기도 정말 흥미롭다.

헨리 7세의 딸이자 헨리 8세의 누이인 마거렛 튜더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에게 시집가 제임스 5세를 낳고 손녀인 메리 튜더가 태어난다.

메리 튜더의 할머니인 마거렛은 남편 사후 아처볼드 더글러스와 결혼하고 여기서 낳은 딸이 마거렛 더글러스인데, 그녀가 시집가서 낳은 아들이 바로 메리 튜더의 남편인 단리경이다.

이 부부의 아들이 바로 제임스 1세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군주가 되니 이들 모두는 헨리 7세의 자손인 셈이다.

엘리자베스 1세가 왜 뜬금없이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잉글랜드의 왕으로 지명했나 했더니 헨리 7세의 딸인 마거렛 튜더의 결혼에 의해 모두 한 자손이 됐던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내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내공과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104p

당시 친족 간 결혼이 많았던 이유로는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여성 계승자를 인정하는 관습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이베리아 반도는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남성 위주의 상속법인 '살리카법'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지역이었으며, 오랜 기간 이슬람 세력과 투쟁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여성 후계자들에게도 왕위 계승권을 인정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세 시대에는 여성의 권리가 남성 보호자에게 귀속된다고 생각했으므로 여성이 상속을 받더라도 실질적인 지위는 여성 상속자의 남편에게 돌아갔다.

120p

이사벨은 카스티애와 레온의 여왕이었으며, 중세 시대 많은 여성들과 달리 스스로 국가를 통치했다. 페르난도 2세도 그녀의 남편으로서 카스티야와 레온의 국왕이었지만, 이사벨은 남편과 동등한 군주로서 통치했다는 점이 이전의 여왕들과는 달랐다.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는 숙원 사업을 이룬 두 사람에게 교황은 '가톨릭 공동 군주'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194p

베르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 계승자가 된 것은 나폴레옹 시대에서 가장 경이로운 일이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유능한 임눌들이 엄청난 위치에 올랐으며, 많은 군인들이 나폴레옹의 의지로 군주나 귀족이 되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 계승자가 된 것은 나폴레옹의 의지가 아니라 스웨덴인들의 선택에 의한 일이었다. 모두 베르나도트 자신의 경력과 운 덕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 시대에 가장 출세한 인물은 바로 나폴레옹과 마찰을 빚은 베르나도트였다. ... 하지만 칼 요한은 철저히 스웨덴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 그는 나폴레왕과의 관계를 끊었으며 동맹군의 일원으로 행동했다. 이 벅분에 스웨덴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에 어느 정도 확고한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칼 요한은 스웨덴의 군대를 이끌고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켰던 모국 프랑스의 영토로 진격했다. 당대 많은 프랑스인들은 베르나도트가 그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여기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배신감도 느꼈다. 하지만 옛 영광을 회복하고 싶어 하던 스웨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열광할 만한 일이었다.

257p

하지만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크나큰 대가가 필요했다. 주변 국가의 분쟁에 장기적으로 개입하게 되면서, 전쟁을 자주 치르려니 군비가 엄청나게 들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세금의 상당 비율을 늘 군비로 사용했다. ... 게다가 왕권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 이를테면 거대한 기념비나 건축물을 짓는 사업이나 권위를 과시하는 목적으로 벌이는 호화로운 파티 같은 것들은 군비보다 낮은 비율이긴 했으나 훨씬 더 직접적으로 국민의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344p

러시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상을 가진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하지만 레닌 등이 꿈꾸었던 이상적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들이 그렇게나 혁명으로 바꾸려 했던 차르의 국가와 매우 닮아 있었다. 특히 일당 독재 체제를 근간으로 하기에 제정 러시아와 크게 유사했으며, 권력을 위해 자유를 억압했던 정황조차도 닮아 있었다.


<오류>

36p

로베르 1세의 적자들, 사실상 윌리엄보다 더 강한 계승 권리가 있다고 여겨진 숙부들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문맥상 로베르 1세의 형제들, 혹은 리샤르 2세의 적자들이 맞을 것 같다. 정복왕 윌리엄은 로베르 1세의 외아들이다.

123p

포르투갈에서는 이사벨의 시아버지였던 주앙2세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마누엘이 마누엘 1세로 즉위했다.

->마누엘 1세는 주앙 2세의 동생이 아니라 매제이자 사촌이다.

173p

티롤의 마르가레테가 쫓아낸 남편 요한 하인리히는 프랑스 국왕의 조카였고~

->요한 하인리히의 누나 본 드 룩셈부르크는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왕비였다. 그러므로 프랑스 국왕의 외숙이던지, 프랑스 국왕의 매제가 맞다.

416p

아흐메드 1세의 손자였던 술탄 이브라힘이 후의 시대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브라힘 1세는 아흐메드 1세의 손자가 아니라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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