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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 근대의 절정, 혁명의 시대를 산 사람들 ㅣ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평점 :
기다리던 3권이 나왔다.
역시 전문가가 쓰는 책은 질적으로 다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서양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깊이있게,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발랄한 문체로 쓰여져 너무너무 재밌고 유익하다.
표지 디자인도 예쁘게 잘 나왔고 많은 도판들이 실려 책 자체가 너무 예쁘다.
어설픈 아마추어 작가들의 사이비 같은 역사서 말고 학자들이 눈높이를 조금 낮춰 대중을 위한 교양서를 많이 내주면 참 좋겠다.
1,2권도 좋았지만 3권도 정말 재밌다!!
1) 17세기 바다를 누비던 해적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층민이 세상을 향해 싸울 때 유일한 무기가 용기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하다.
기득권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좀더 많은 권리와 이익을 누리려면 두려움을 무릅쓰고, 어쩌면 죽음을 감수하고서 용감하게 덤비는 수밖에 없는 듯 하다.
대부분의 해적들은 시대가 바뀌면서 국가권력에 의해 처형당하는 불행한 결말을 맺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 밑바닥층 삶을 거부하고 능동적으로 세상에 대항하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평범하고 겁많은 소시민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해적 이야기가 묘한 울림을 준다.
2) 집념이 있는 인간이 승리를 쟁취하는가.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역사적 인물들의 역사적 사건들을 읽노라면 범인과는 다른 강렬한 투지가 느껴지고, 좀더 일반화시키자면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끊임없이 투쟁하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르는 것 같다.
나르바 전투와 폴타바 전투를 치룬 스웨덴의 칼 12세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의 이야기는, 세계사적인 의미와는 별개로 인간의 투지가 느껴진다.
러시아를 전면 개혁한 표트르 대제도 그렇지만 겨우 15세에 왕위에 올라 군대와 함께 생활하며 최고의 사령관이 된 칼 12세도 놀랍다.
이런 경우만 봐도 확실히 유럽의 국왕은 조선의 왕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군주였던 듯 하다.
3) 권력욕도 타고나는 듯 하다.
모든 왕비들이 측천무후나 서태후, 혹은 명성황후처럼 정국을 쥐고 흔들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다.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불행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공적인 일에서 벗어나 사적인 삶을 살고 싶어했고 시대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정치력이 부족한 왕을 남편으로 둔 불행인가.
4) 시몬 볼리바르는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로 구대륙의 압제로부터 신대륙을 해방시킨 사람인데, 왜 남미는 미국처럼 자유민주주의 연방으로 발전하지 못했을까? 필그림 같은 이들이 아니라, 구대륙의 지배층들이 너무나 완고하게 남미를 지배하고 구체제와 똑같은 귀족층을 만들었기 때문인가? 혹은 미국이 인디언들을 완벽하게 몰아내고 전 대륙을 장악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몰랐던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 왜 두 대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는지 좀더 알아봐야겠다.
<인상깊은 구절>
36p
"즐겁고 짧은 삶이 내 모토다". 로버츠는 그렇게 선언하고 해적선에 올라탔다. 인생 뭐 있어, 한탕 멋지게 살다 가면 되는 거지!(흔히 이렇게 말하지만 대개는 망하는 길이다.)
44p
해적선에서는 '무질서'가 판치겠거니 하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기존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어 있었다. 해적들은 기존 사회의 법 밖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엄격한 규율이 필요했다. 만일 그들이 아무런 규율과 질서 없이 살아갔다면 망망대에서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47p
해적들이 최초의 이상적 혁명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는 과장이다. 일반 선원이나 해적들은 자기 한 몸 편안하게 지내면 그뿐이지 새로운 세상의 건설 같은 이념은 알 바 아니었다. ... 그들은 범죄자로 낙인찍혀 어딘가에 정착해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오늘 하루만 살다 갈 것처럼 돈을 썼다. 해적의 실제 삶은 그런 이상적 면모보다는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 해적들의 주된 심성은 기존 사회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일 것이다.
52p
근대 초 선상작업은 기계화되지 않아 강도 높은 육체노동으로 이루어졌던 터라 여성에게는 무리였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근육질의 여성이 상당히 많았던 게 분명하다. 최근 사회사 연구는 상당수의 하층민 여성들이 힘이 세고 성격이 거칠며, 겁이 없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지략으로 생존했다고 밝힌다. ... "겁쟁이들은 법의 보호 아래 가난한 자를 털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용기를 방패삼아 부자들을 약탈한다오" ... 폭력적 억압 체제를 몸소 견뎌내야 했던 힘없고 가난한 선원들은 자신들만의 해상 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자산은 용기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유토피아는 섬광처럼 잠시 빛을 내다 순식간에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 국가권력과 법질서가 바다 위에 펼쳐지자 해적들의 가상한 용기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66p
우리나라에서도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상투를 자르려면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며 반발했는데, 러시아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다간 진짜 목이 잘릴 수도 있었다.
76p
침략자들은 러시아가 그 자체로 엄청난 장애물이라는 점을 뒤늦게야 깨닫곤 한다. 눈 덮인 광대한 동토는 점령이 불가능했다. 여기에 더해 표트르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자국민도 희생시킬 태세여서, 거의 무한정으로 농노들을 징병했다.
83p
표트르는 말년에 자신이 이룬 성취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후계자인 아들 알렉세이가 자신의 과업을 이어 더 발전시킬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13p
앙투아네트는 정치를 비롯한 공적인 일에서 벗어나 사적인 삶을 살고 싶어 했고, 루이 16세가 선물한 프리 트리아농에서 그 즐거움을 찾았다.
138p
자코뱅 정부 시기라 불리는 이때 평범한 시민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 프랑스의 제1공화정 시기는 동시에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공포정치의 시대였다.
144p
미라보 의원은 로베스피에로를 이렇게 평했다. "저자는 멀리 갈 것이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을 모두 믿고 있소." 신념에 따라 말하고, 신념을 실천하려 한 것이다. 그러려면 권력을 잡아야 했다.
혁명은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무엇보다 종교와 재산 소유 문제를 건드리면 일이 커진다(일찍이 마키아벨리가 말하지 않았던가. 부모를 죽인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재산을 빼앗아간 자는 용서하지 못한다고). ... 뭐가 두려워 주저하느냐는 태도였다. "혁명이 혼란 없이 이루어지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 로베스피에르는 목수의 집에 방 하나를 얻어 하숙 생활을 했다. 궁전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며 왕처럼 살았던 영웅 나폴레옹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의원 세비로만 생활하며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던 로베스피에르에게는 '부패할 수 없는'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 그러나 혁명이 밥 먹여주지는 않는 법.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파리 민중들은 혁명 정부에 경제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자주 봉기했고, 지롱드 내각은 이들을 체포했다. ... 많은 프랑스인에게 혁명은 보급품 징발, 징병, 전통적 생활방식에 대한 위협을 의미했다. 착취 제도입네 뭐입네 해도 어쨌든 사람들이 오래도록 소중히 여기던 신앙 체계를 공격하거나, 혁명력이라는 이름으로 시간관념까지 바꾸어놓은 혁명 세력을 순순히 지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여전히 소수파이고 정당성 면에서 취약한 그들로서는 폭력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고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 당통이 말한 대로 "민중이 폭력적이 되지 못하도록 우리가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87p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의 궁정 음악가로 재직할 기회를 엿보았던 듯하나, 마리아 테레지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어린 시절 모차르트에게 입을 맞추고 옷도 하사했던 여제가 이제는 자기 아들에게 "거지처럼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쓸모없는 사람들"을 고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귀족들은 취향이나 사랑이 아니라 오직 이해관계를 따지고 다른 많은 고려할 사유로 인해 결혼합니다. ... 하지만 우리처럼 가난한 이들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여자를 취할 뿐 아니라 그 일에 의미를 둡니다. ... 우리의 富는 우리와 더불어 죽습니다. 부는 오직 우리 머릿속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근대적인 결혼관이 뚜렷하다. 그러나 아버지 레오폴트는 부가 오직 머릿속에만 있는 거라는 아들의 개똥철학에 동의하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는데 어찌된 일일까?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최종 결론은 도박이었다! 도박 빚은 곧바로 갚아야 했다. 빚을 떼먹으면 영화 <타짜>에서처럼 손목을 자르지는 않지만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222p
호위대는 실제 군사 훈련을 하기보다는 번쩍이는 멋진 군복을 입고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식민지 귀족 청년들의 사교 모임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볼리바르는 이곳에서 자신이 진정 군인 체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교 활동보다도 군사 문제를 열심히 공부한 예외적인 학생이었을 것이다. 남은 생을 전장에서 보내게 되는 볼리바르에게 호위대에서 받은 군사 교육은 큰 도움이 되었다. ... 그의 강인한 체력은 늘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하루 종일 행군한 날 저녁에 대여섯 시간을 더 일하거나 무도회에서 춤을 추곤 했다. ... 볼리바르는 이 강력한 집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파에스를 찾아갔다. 이때 파에스와 부하들은 독립의 대의를 설명하는 볼리바르의 설명은 뒷전이고 그가 말을 어떻게 타는지, 그의 말은 어떤 상태인지 유심히 관찰한 후 승낙했다고 한다. 말을 저토록 보살펴줄 정도라면 물으나마나 같은 편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 비해 라틴아메리카 독립 혁명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역시 근대적 자유를 확대시킨 결정적 사건 중 하나였다. 1808년 이후 라틴아메키라에서는 12개 국이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이 나라들에서는 자유주의적 정치와 위계적 사회 질서 사이의 긴장과 모순으로 인해 혁명이 일어난 다른 지역들과는 매우 다른 역사가 진행되었다.
260p
원리를 알아냈다고 바로 사용 가능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현하는 데 지대한 공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 기업의 역사를 보면 사업가가 발명가를 착취하는 경우가 비빌비재한데, 그와 달리 와트와 볼턴은 서로 보완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 와트는 새로 고안해낸 밸브, 실린더 등을 계속 실험하면서 증기기관을 개선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자기 아이디어를 표절했던 윌킨슨을 비롯한 많은 특허 침해자보다 한 걸음 더 앞서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287p
아크라이트의 공장에서는 아이들로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아동 착취라고 하겠지만. 당시 형편없이 낮은 임금으로 생계를 꾸리기 힘들었던 노동자 가족 입장에서는 누구든 일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302p
나폴레옹은 오스만 제국 쪽으로 공격 목표를 바꾸어 1799년 시리아 정복에 나섰다. 그러나 정복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총알을 아낀다며 총검으로 찔러 죽이거나 익사시키는 등 적군을 잔인무도하게 살해해 악명만 떨쳤다. 병에 걸린 병사들을 끌고 이집트로 귀환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황제와의 회담에 늦은 캉바세르가 "죄송합니다, 폐하. 숙녀분과 함께 있느라 늦었습니다"라고 변명하자,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황제와 약속이 있으면 부인들에게 지팡이와 모자 챙겨서 꺼지라고 말하시오."
독재는 한 사람만으로 충분하니 작은 폭군들은 필요 없다. 즉, 나폴레옹 자신은 마음대로 할 수 있되 다른 사람들은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독재는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선전과 여론몰이도 잘 해야 한다.
324p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모든 독재자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국을 운영하는 과정은 합리적 전략, 전술이 아닌 개인적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 점에서 나폴레옹은 여느 독재자와 다름없었다. 체제 유지의 관건은 군사력이다. ... 나폴레옹의 전술은 사실 단순했다. 가능한 한 최대의 전력을 집중해 적의 중심을 깨트려 저항 의지를 꺾어놓는 것이다. ... 이런 전술의 실상은 무엇일까? 엄청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주 재앙에 가까운 희생을 치렀다. ... 나폴레옹은 천재라기보다는 단지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뿐이다. 한 군사사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폴레옹은 천재가 아니다. 결국 그가 패배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류>
317p
새 신부 마리 루이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조카이니,
->나폴레옹의 황후 마리 루이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조카인 프란츠 2세의 딸이다. 그러므로 조카가 아니라 조카 손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