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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성 이야기 - 페미니즘과 교태 사이에서
김복래 지음 / 새문사 / 2016년 11월
평점 :
저자의 약력을 보니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은 여성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책을 많이 내는 듯 하다.
앞서 읽은 <프랑스 왕과 왕비>라는 책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프랑스 왕실 이야기라 재밌게 읽었고 이 책 역시 주제가 프랑스 여성으로 한정되어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오류가 종종 보여 편집자가 좀더 꼼꼼하게 교정을 봐야 할 듯 하다.
앞서 읽은 책에서도 단순 사실관계의 오류들이 종종 보였다.
그리고 다양성과 남성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이른바 프렌치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는 새롭지만 중구난방 식으로 생각을 나열하여 글이 명료하지가 않다.
일곱 명의 유명 프랑스 여성들을 소개하는 본문은 참신하고 좋은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응집성이 없고 난삽해 아쉽다.
역사를 좋아하는 만큼, 알리에노르 다키텐과 카트린 드 메디치 편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고 조르주 상드와 카미유 클로델, 마리 퀴리 부분도 재밌었다.
특히 마리 퀴리는 여성으로서 학계에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고난이 따랐는지 새삼 알게 됐고, 업적과는 별개로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무조건적인 찬양이 아니라 더 인상적이었던 듯 하다.
<인상깊은 구절>
342p
남편의 사망 후 바로 직장에 복귀한 이 유명한 과부는 남편의 자리를 이어받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지성의 전당인 소르본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저는 너무도 충격이 커서 미래를 바라볼 기력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늘 생전에 하던 이야기, '내가 없더라도 연구는 절대로 계속 되어야한다'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리 퀴리는 과학이 인간사회의 가장 가치로운 정신적 유산이라고 굳게 믿었고, 자신의 연구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쓰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인생은 누구에게도 편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인내와 특히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무엇이든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도달해야 될 목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꿈과 희망, 이상과 같은 정신적인 힘을 찾아야 한다. 정신적인 힘은 우리를 오만하게 만들지 않고 삶의 가치를 드높인다. 삶의 의미를 연애 같이 격렬하고 자극적인 데서 찾는 것은 환멸을 부를 뿐이다."
-마리 퀴리
430p
이처럼 워킹맘에 대한 관대한 국가적 지원은 프랑스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출산 장려정책에서 나온 것이지 양성평등이나 사회적 평등의 산물은 아니다.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들의 영역으로 남아있으며 탁아소의 접근성도 역시 도시의 부유한 중산층 여성들에게 훨씬 유리하다.
<오류>
20p
마리 앙투아네트(1794-1792년)
->1755-1793년이다.
47p
이미 반세기 전에 남부 프로방스에서 시집을 온 콩스탕스 왕비 역시 알리에노르가 야한 언어를 사용하고, 또한 지나치게 화려하고 야한 의상을 즐겨 입는다며 같이 비난에 가세했다.(1033년에 콩스탕스는 경건한 로베르 2세의 세 번째 배우자가 되었다. 그러나 알리에노를 향한 비난에 가세한 콩스탕스는~)
->로베르 2세의 세 번째 배우자인 프로방스의 콩스탕스는 986~1032년 생이고 루이 7세의 배우자인 알리에노르는 1102~1204년생이다. 그러므로 둘은 만날 수가 없는 사이다. 콩스탕스는 1001년에 왕비가 되었다.
57p
알리에노르 다키텐의 초상화라고 실린 도판은, 오스트리아의 엘리노어로 펠리페 1세의 딸이자 카를 5세의 누이이다.
140p
그나마 카트린 드 메디치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삼촌이 사망한 후에~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카트린의 삼촌이 아니라 작은 할아버지다.
157p
카트린 드 메디치가 주도한 1561년에 종교 토론회에 참석한 페라라의 추기경 이폴리토 데스테는, 도판에 실린 이폴리토 1세가 아니라 그의 조카인 이폴리토 2세 데스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