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의 맛 - 한 컬렉터의 수집 철학과 민화 컬렉션
김세종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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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가벼운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흥미롭고 편안하게 읽을 만한 에세이다.

무엇보다 도판의 질이 너무 좋다!

명화나 유물 소개시 도판이 허접해 책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는데 비해, 컬렉션이라는 주제에 맞게 저자의 귀한 수집품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훌륭한 도판이 실려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다.

1부는 수집에 관하여, 2부는 저자가 평생 수집한 민화에 관한 이야기다.

1부는 동어 반복이 많아 다소 지루했고 2부의 민화 이야기는 흥미롭게 읽었다.

민화를 궁중장식화에 비해 하위 장르로 취급하고 단순히 공예품으로만 본다는 비판이 신선하다.

책에 나온 것처럼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진짜 고급 예술 장르 대신 서민들이나 즐기는 민화를 조선의 미학인양 찬양했다는 비판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민화 자체가 궁중화와는 전혀 다른 장르이고 오히려 현대적 미감과 추상성, 해학성이 돋보이는 한국 전통의 훌륭한 예술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고 보니 오방색의 강렬한 색감이나 단순하면서도 한 눈에 확 들어오는 구성 등이 복잡하고 세밀한 전근대 회화와는 다른 현대적 조형성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민화에 대한 책을 보면 저자의 비판대로 민화 자체의 예술성 측면에서 접근한다기 보다, 도상 설명만 늘어 놓아 민화를 회화로써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피카소가 아프리카 가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말이 과연 우리 민화에서도 통용될 듯 싶기도 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올 여름에 예술의 전당에서 저자의 민화 수집품을 전시했었는데 못 가봐서 아쉽다.

민화에 대해서는 좀더 관심을 가져 보기로 하고, 저자가 밝히는 수집 철학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횡적 수집, 즉 양에 집착하기 보다는, 종적 수집 그 질에 초점을 둔다는 철학이 독특하다.

예술품 수집은 많은 재원이 들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은 어쩔 수 없는 개인 수집가의 한계 같다.

가끔 TV에 일반인 수집가들이 소개되는데 멋있어 보이기 보다는, 저 많은 수집품을 제대로 진열도 못하고 나중에 죽게 되면 자식들이 어떻게 처분할까? 이런 걱정부터 든다.

나에게는 일생을 건 의미있는 수집이었을지 몰라도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기란 어려운 일이니 결국 내가 죽으면 한낱 고물에 불과한 게 아닐까?

나는 수집에 대한 욕구도 없지만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 때문에 내가 구입한 책을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

책을 버리는 것은 내 자신을 버리는 느낌이 들어 대학교 때부터 내 돈으로 구입한 책들은 지금까지 이고 지고 이사를 다닌다.

버리질 못해서 책을 함부로 사지도 못한다.

내가 죽으면 책을 땅 속에 묻어 달라고 하던가 아니면 불태워야겠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책에 대한 이런 부담감이 싫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마음이 편하다.

저자는 수집이 미적 감각, 즉 안목을 발전시키는 과정이라고 한다.

좋은 작품을 수집하기 위해 많은 명품들을 감상하고 비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박물관에 가서 유물들을 감상하고 도록들을 보면서 연구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수집을 하는 행위는 멋진 취미 같다.

자꾸 봐야 안목이 길러진다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도판에서 보는 것과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실물을 봤을 때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여행도 그렇다.

책에서 그 지역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와, 직접 다녀와서 읽을 때 와닿는 감동이 다르다.

외국은 자주 나갈 수 없으니 전시회를 좀더 열심히 다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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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재발견 - 현대를 비추어 보는 사상과 문화의 거울
박승찬 지음 / 길(도서출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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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제목과는 달리 분량도 250 페이지 정도로 작고, 중세 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평이한 서술로 풀어 써서 쉽게 잘 읽었다.

신학을 전공한 저자의 약력 탓인지 서양 중세 사상사를 기독교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중세는 절대 암흑기가 아니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신학과 철학이 합일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듯 하다.

책 설명에는 나와 있지 않은데, 혹시 신문 같은 곳에 연재했던 칼럼 모음은 아닌가 싶다.

전체적인 한 권의 완결성 보다는 한 챕터마다 교훈적인 이야기와 현재의 정치적 이슈를 무리하게 연결짓는 시도를 반복하여 읽기 불편했다.

역사적 평가가 아직 끝나지 않은 당대의 시사 문제를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빗대어 설명하려고 하니 결국은 책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래서 학자와 평론가는 달라야 하는 모양이다.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주장한 오컴이 사실은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더 높은 차원의 계시만으로 신학을 설명하려는 것이었고 그 후에 루터의 종교개혁, 오직 신앙만으로!가 나왔다는 발전 과정이 흥미롭다.

가톨릭은 부패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저자가 가톨릭대 교수라 그런지, 중세 가톨릭 사상사를 이성과 신앙의 조화로 설명하는 점이 매우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21세기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폐해가 훨씬 큰 시대이다 보니 신앙와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가톨릭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보다 진보적인 듯 하다.


<인상깊은 구절>

20p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자유인이든 종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남자든 여자든 간에 관계없이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는 가르침은 억압받던 많은 이에게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부활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자신이 선포하던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이 보여준 의연함은 점차 로마 상류층의 여성들을 감화시켰고, 그녀들의 영향을 받은 귀족 남성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교를 믿는 이가 늘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핵심층에까지 파고들자, 로마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사이비 종교'를 막아내기 위해서 이론적으로 반박하지 시작했다. 예를 들어 로마 문명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켈수스는 '그리스도가 사기꾼이고 마술가'였으며, 그리스도의 부활 신화는 사도들이 단지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욱이 사회적으로 가난한 하층민들을 신자로 포섭하는 그리스도교를 경멸했다. 

"이처럼 어리석고 무식한 자만이 하느님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들이 어리석고 멍청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들은 바보와 무식쟁이, 노예와 여자와 어린이들만을 유혹한다."

 더욱이 켈수스는 몇몇 그리스도교인들이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조롱했다.

"몇 사람은 그들이 믿는 것에 관해 해명하려고도 않고 해명을 요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42p

어릴 때부터 주체의식이 강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부정적 체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하나의 인격체이며 자신의 학습을 주도해야 하는 주체"라고 인정했다.

212p

이러한 일반적인 도덕의 원리가 구체적인 경우들에 적용될 때 양심이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양심을 통해 개인의 의지가 객관적인 자연법과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은 윤리적으로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이 모든 기준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행동할 수가 없다. 따라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라 언제든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습관, 즉 '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덕 있는 습성은 선량한 행위들로써 형성되고 같은 목적을 위한 계속적인 행위의 수행을 용이하게 한다. ... 더 나아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실제로 윤리적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 다양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만일 그럴 경우에는 "가장 작은 악을 선택하는 것"도 윤리적인 행위라고 위로했다.

223p

에크하르트는 자신의 사유를 일정한 사고체계의 틀에 담으려 하지 않고, 특정한 종교적 전통과 의식을 뛰어넘어 절대자 신에게 도달하는 길을 찾으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다원론 시대에 더욱 많이 연구되어야 할 학자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을 통해 신과 일치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삶과 지식의 일치를 강조했던 동양의 다양한 전통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251p

현대인들은 인간 이성이 중심을 이루었던 근대정신의 강력한 영향 때문에 신앙이란 개인적인 정감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이란 인간 이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 또는 관계되어서도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이런 발상은 사이비 종교들의 범람, 기성 종교 안에서도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만연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러나 중세, 특히 스콜라 철학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내건 바 있다. ... 중세 후기에 들어서면서 오컴은 신앙의 권위를 보존하기 위해서 어설픈 이성적 논변의 개입을 거부했다. 이것은 루터의 '오직 신앙만으로'라는 주장으로 이어짐으로써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근본적인 신학관의 차이로 남아 있다. 많은 철학자는 오컴으로부터 시작된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근대를 촉발한 것으로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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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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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른 책도 그렇지만 이 책 역시 본격적인 클림트에 관한 미학서라기 보다는 가벼운 에세이 정도라 아쉽다.

대신 쉽고 빠르게 읽힌다.

아쉬운 점은 도판의 선명도가 떨어진다.

요즘 책들은 명화의 도판이 정말 선명한데 출판사의 노력이 아쉽다.

19세기 몰락해 가는 합스부크르 왕가의 마지막을 불꽃처럼 장식했던 클림트.

어찌 보면 퇴폐적이고 지나친 탐미주의 같기도 해 현대미술 보다는 과거의 느낌도 있는 화가인데 금세공업이라는 독특한 가풍 때문인지 자신만의 개성있는 미학을 완성한 것 같다.

평생 에밀리 플뢰케와 결혼하지 않고 연인 관계를 유지한 것도 신기하고 그녀가 당시 귀부인들과는 달리 유명 의상실을 운영한 디자이너였다는 점도 독특하다.

자신에 관한 글이나 인터뷰가 거의 없어 클림트의 연애관과 사생활을 엿볼 수 없어 아쉽다.


<인상깊은 구절>

210p

알마는 클림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그처럼 놀라운 재능으로 넘치는 사람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본 그는 남자로도, 또 화가로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사람이었다."

227p

클림트는 휴양지에서도, 그리고 빈에서도 일찍 일어나기 위해 저녁을 일찍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클림트는 성실한 화가였다.

264p

실레의 드로잉을 본 클림트는 이 소년의 넘치는 재능에 압도되고 말았다. 

"제가 재능이 있다고 보시나요?" 라는 실레의 물음에 클림트가 "재능이 너무 많아, 너무 많아"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295p

클림트는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화려한 삶을 살지 않았다. 물론 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긴 했지만 그것은 당시 빈의 부르주아들에게 유난한 사건은 아니었다. 여자에 대한 집착을 제외하면 클림트는 오직 그림을 위해, 그림을 그리면서 간소한 삶을 살았다.


<오류>

43p

엘리자베트 황후는 아들의 자살 이후 1899년 스위스에서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죽었다.

->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 엘리자베트는 1899년이 아니라 1898년에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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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1888~1897
제임스 S. 게일 지음, 최재형 옮김 / 책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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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세기 말,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의 여행기를 몇 권 읽었는데 이 책도 시대적 차이 때문인지 문장이 확 들어오질 않고 흡입력이 다소 부족해 천천히 읽힌다.

미국인 기독교 선교사, 즉 근대화된 사회의 계몽인이 전통 사회인 극동 지역을 방문해 그들을 관찰하는 수필은 당시 사회를 알려주는 귀한 자료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루하다.

전에는 서양인이 동양인을 본다는, 문화상대주의 관점에서 생각했는데 비슷한 포맷의 책을 몇 권 읽다 보니 오히려 근대인이 전통 사회를 보는 시대적 관점이 더 핵심인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근대화가 덜 된 아프리카의 전통 부족 지역을 방문해서 의료 선교 등을 펼치고 여행기를 쓴다면 이 책의 저자처럼 가치관이 전혀 다른 전통사회를 신기하게 한편으로는 미개함을 안타까워 하지 않을까?

예컨대 저자는 계몽주의 교육을 받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근대인이고, 그가 방문한 조선은 비록 시대는 같지만 사실은 훨씬 오래 전의 고대 사회와 비슷한, 전통주의 가치관을 가진 나라였으니 단순히 문화적 차이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매우 달랐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저자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당시 조상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사극에 나온 것보다 훨씬 더 우리 조상들은 중국을 지성으로 섬겼고,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생산력이 매우 낮았으며, 조상숭배는 서구의 기독교와 같은 위상을 갖는 종교였으며, 미신은 일상화 되었고, 여성과 농민들은 남성과 양반들을 섬기는 것이 당연한 철저한 신분제의 나라였던 듯 하다.

19세기 말의 조선과 21세기 대한민국은 전혀 같은 사회라 할 수 없는 매우 이질적인 나라인데, 아직도 우리가 조상들과 공유하고 있는 특성들도 보인다.

밥 한 번 먹자는 빈말이나, 실리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체면 위주 문화, 차린 게 없다면서 한 상 푸짐하게 내오는 겸양의 말, 의례절차나 겉모습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보다는 남의 이목을 훨씬 중시하는 점은 너무나 똑같다.

이런 점은 정말 한국인의 특성 같다.


<인상깊은 구절>

45p

조선의 고질병은 바로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앉아서 시간을 허비하고만 있는 이 나라. 그러므로 곽씨처럼 일로 굳은 살이 박인 손을 가진 사람을 본다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55p

포졸 한 명이 돌아와서는 나리께서 준비가 되셨다며 우레와 같이 큰 소리로 고했는데, 서양식 사고를 하는 내게 동양의 이와 같은 예의 격식은 참으로 위압적인 것이었다. 아아! 애잔하도록 낡은 동방이여! 이러한 광경은 내게 타고난 재능으로 미래가 창창하던 사람이 음주와 불운 속에서 결국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마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게 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포졸의 균형 잡힌 자세와 행동에 배어 있는 무언가가 그를 여전히 신사답게 느끼도록 하였다.

76p

조선에서는 짐수레같이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가축조차 짐을 지고 갈 수 없는 길이 많아서 결국 나라의 모든 힘쓰는 일은 상놈의 두 어깨가 담당했다. 

80p

일생 동안 우리가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직접 듣는 것은 이보다도 훨씬 적다. 결국 이것은 앎이라는 삶의 기능을 얻기 위해 우리가 무엇보다 훨씬 더 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81p

조선에서 '독립'이란 말은 새로운 개념이다. 단어 또한 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한 번도 다른 존재로부터 분리된 오롯한 자신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서양 세계에선 넓은 국토에 집이 한 채 그렇게 서 있듯 개인도 자신의 책임 하에 홀로 살아가는 반면, 동방의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집도 마을을 이루면서 반드시 함께 들어선다. 또한 서양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확장과 분화 작용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뻗어가는 큰 힘인 데 반해, 동양에선 삶을 한정하고 응축하면서 그 중심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이 과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상놈들이 차지했다. 사실 이들 상놈들의 능력 또한 너무나 쪼그라들어 있어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절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친한 사람 하나 더 붙여주지 않는 한 아무리 간단한 걸 시켜도 절망한 채 넋 놓고 있을 뿐이었다. 

87p

벼슬아치들에게 이러한 증오를 표출하는 가운데, 임금을 향해 품고 있는 이들의 충성심은 대단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설사 실제로는 아주 사악한 폭군일지라도, 상놈들은 왕을 현명함과 자애로움의 결정체이자 절대 죄를 범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신의 아들 혹은 절대 선, 옥황상제 등으로 불렀다. 다만 대궐의 신하에서부터 지방 관리까지, 전하를 가까이서 모시고 있는 모든 벼슬아치들이 나라를 축내고 있는 날강도이며 무법자일뿐.

 상놈이 같은 인간을 두려워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들의 적은 '작은 악마'라고 번역될 수 있는 도깨비나 귀신이었다. 이들은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안 좋은 상황을 이 '작은 악마'들 때문이라 여겼기 때문에, 도깨비나 귀신을 잡아 가두거나 깊은 땅속에 묻는 방법을 찾느라 얼마나 진지하고 열심인지 몰랐다.

89p

어떤 일에도 안절부절못하는 법 없이 삶을 저렇게 평온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에 파인 저 깊은 주름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궁금하곤 했다. 나는 그것이 이 상놈들을 평생 따라다니며 그들의 삶을 속박하는 그것, 바로 귀신에 대한 공포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놈이 돌아가신 조상님과 맺고 있는 관계는 내가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독실하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과연 그 행위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들이 4대조까지의 모든 무덤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이복형제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조할아버지의 육촌형제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이들이 조상님을 얼마나 극진히 모시는지 알 수 있었다. 대체 그 조상님이 뭘 남겨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년 돌아오는 제삿날엔 어떤 조상님도 빠뜨리는 법이 없었다.

125p

장교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만주의 무슬림들이 코란에 대해 거의 혹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요지는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식이라면 내가 만주에 살았으면 나도 무슬림이었다.

203p

나는 이 동방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이 어떤 것이든 너무 영적인 것에 집착하면 반드시 재앙으로 귀결된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물질적 번영뿐 아니라 영적 풍요도 필요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이를 들먹이거나 여기에 의존해선 안 된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각자 제자리를 지킬 때 가정은 번창하고 이름은 빛날 것이다. 

229p

서양에서 중요한 가치가 부여되는 개인의 독립성 또한 조선 사람들에게는 전혀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우리 미국의 영광스런 표어 '여럿이 모여 이루어내는 하나'는 이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완전히 정신 나간 생각일 뿐이었다. 왜 인간이 서로 경쟁하며 치열하게 생존해나가야 하는가? 이들은 그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조선 사람들에게 삶이만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개인의 독립성이라는 것은 불신이며 의심이고 인간의 기본 도리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치 아이들이 꼭 모여서 노는 것처럼, 이들은 혼자 있으면 두 배로 편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불편한 것을 감내해가며 반드시 함께 어우러졌다. 그것 때문에 일이 두 배로 어렵게 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그들이 혼자 있음을 두려워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들 사고방식 자체가 서양인들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230p

아무리 생각 없는 미국인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 깊은 곳에는 노동이란 존귀한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교육을 할 때도 어린으들은 어떤 식으로든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다. 조선말로 노동을 뜻하는 말은 일인데, 이 단어는 손실, 손상, 나쁜, 불길한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 쓴다. 게다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가 의심의 여지없이 고대로부터 귀한 신분이라는 것의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어떤 인터넷 게시판에서 딸을 고생시키지 않고 월세받는 건물 물려주고 전업주부로 살게 하고 싶다는 글에 대한 댓글들이 죄다 찬양 일색이었다. 맞벌이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 의식 보다는 남편의 부족한 월급을 메꾸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고, 맞벌이 강요한다고 분노하는 댓들들을 보면서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노동은 곧 하기 싫은 일이다는 걸 느꼈다)

244p

양반 생의 제일 큰 목적은 자신이 죽고 나면 제사를 지내줄 아들을 가지는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그 아버지 말씀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다. 아들이 이렇게 아버지를 전적으로 따르도록 키워지고 나면 결국 그도 아버지만큼이나 쓸모없거나 못난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주변의 귀감이 되는 아들이라 할 수 있었다. 

246p

양반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는 조상님들께 제사를 올리고 모시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르고, 그보다 조금 먼 어른이 돌아가시면 조금 짧은 기간 동안 상을 치르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계속되는 단식과 제사는 그에 맞는 복장과 금전 지출을 요구했는데, 살아있는 가족 전체가 먹을 양식을 마련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이러한 예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종교를 저버린 타락한 무슬림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260p

도망치던 청군은 평양으로 향하는 동안 지나갔던 모든 곳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조선의 여인들은 산으로 도망쳤고, 천상의 제국에서 왔다는 이 무뢰한들에게 약탈과 강도를 당한 노인들은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확실히 두 나라의 병사들이 평양까지 진군한 모습은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는데, 만약 일본이 조선에서 한 번이라도 점수를 딴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들이 반도를 가로질러 진군하는 동안 지난 곳마다 돈을 냈고, 현지 주민의 삶과 재산을 침해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청군은 평양으로 뒤죽박죽 몰려들었고, 이때 부대를 먹이기 위해 매일 이백 마리의 돼지를 잡았다고 한다.

267p

조선은 이제 확실히 일본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갔다. 고종은 하는 수 없이 조선의 독립을 천명했다. 고종을 포함해서, 중국을 아주 높이 받들어 온 선대 모든 왕들의 그 조선 문명을 들여다보면 사실 왕은 독립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게 중국은 '대국'으로 위대한 중심이 되는 왕국이었다. 반면 일본은 난쟁이들이 사는 허접한 땅, 왜국이었다.

289p

공자의 가르침의 목적은 효를 다 하면 은혜를 입어 이승에서의 번영이 있을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직도 조선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숭상하긴 하지만, 이러한 사상 체계가 실패했다는 것이 요즘처럼 완벽하게 증명된 적은 없었다. 제사를 올리고 예를 그렇게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사람들의 조상은 자손들을 결국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다. 

307p

예배당은 지금 지어지고 있지만 김씨는 이것을 보지 못했다. 부활을 기다리던 그의 몸이 이미 땅속에 잠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충실했고, 삶이 거의 끝나 힘이 빠져나가던 순간까지도 그 힘과 용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죽음과 부활! 가장 똑똑한 자들이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헛되이 찾아 헤매다가 결국 포기하고 망각한 채 죽어갔던 그것. 아무 것도 모르는 가난하고 늙은 이교도 하나가 그 비밀을 찾았고, 승리 속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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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의 성장
이내옥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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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약력만 보고 미술에 대한 에세이인 줄 알았다.

도서관에 신간 신청하고 받아 보니 수필집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어 보는 수필이다.

270여 페이지의 작은 분량이고 수필의 특성대로 두어 장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휴식 같은 느낌이다.

표지 디자인도 편안하고 글 역시 감정의 과잉이 적어 깔끔하다.

오랜 기간 동안 박물관에 재직한 저자의 품격이 느껴지는 수필집이다.

안목, 특히 예술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이란 많은 미적 체험을 통해 얻어짐을 새삼 깨달았다.

나 역시 처음으로 미술에 관심이 생긴 계기가 대학교 때 유럽 여행을 가서였다.

그 전에는 미술 시간에 지겹게 외운 미술 사조와 유명 화가 이름이 전부라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림을 실제로 접할 기회가 없었고 당시만 해도 도판으로 보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다.

런던에 있던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실제로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접했을 때 가슴이 터질 것 같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미적 체험이란 많이 보면서 느끼는 가운데 생기는 것이고 그 후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좋은 취미가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자주 가는 곳이다.

작년에 갔던 교토 여행도 일본의 미의식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글 중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첫번째는 김대중에 대한 평가다.

정치적 견해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저자의 긍정적 평가에 반대한다.

나도 전라도 사람이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그 후 노무현까지 당선됐을 때 너무 감격해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외지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투표를 하기 위해 광주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그렇지만 오늘날 북한 핵 위기에 대해 가장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이 바로 김대중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새마을 운동이 농촌을 파괴시켰다는 것이다.

역사적 평가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박정희의 근대화 업적을 단순한 감상으로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앞머리에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과 예산 투자에 대해 강조했는데, 경제력이 우선 향상된 다음에 문화도 가능한 것이다.

박정희에 의한 근대화가 없었다면 오늘날 풍요로운 문화 정책도 불가능 했으리라 생각한다.

새마을 운동을 천민자본주의, 농촌 파괴라고 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인상깊은 구절>

69p

이런 명품 업체의 전시를 보면서 뭔가 허전함이 남는다. 상품을 아무리 작품으로 포장한다고 할지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역사성과 품격에 비추어 본다면 세상의 진정한 명품들은 모두 박물관, 미술관에 있다.

92p

최고 수준의 유물이기에 이를 소재로 세계 최고의 도록을 만들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해졌다.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의 안개는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언급을 되새겼다.

136p

선승과 무사 계급이 결합하여 이룩한 중세의 미의식은 이후 일본인들의 미적 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뭔가 알 수 없지만 그로부터 일본적인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료안지 방장에서 바라보는 정원이다.

(나도 이 곳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우아했다. 아침 일찍 방문했는데 겨울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더불어 잊혀지지 않는 감상을 남긴 곳이다)

166p

담백, 의취, 청일, 평담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逸氣의 전형이 <용슬재도>이다. 중국 회화는 궁극에 문인의 정신, 즉 흉중일기를 표현하는 추상의 단계까지 나아갔다. 예찬은 문인 정신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렸고, 그것을 <용슬재도>에 담았다. 먼 훗날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를 그려 그에 핍진했을 뿐이다.

179p

그 곳 방파제에 뜻밖에도 왕유의 시를 새겨 놓았는데, 자못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 옮겨 적었다.

"그대에게 술을 따라 권하노니, 마음 편히 지내시게

세상 인정 뒤집어지는 것, 출렁이는 파도와 같지

오래도록 사귀어 온 사이에도 경계심 여전하고

먼저 출세한 이는 그러지 못한 자 비웃는다네

풀잎의 푸른색 가랑비에 젖어 더욱 짙어지는데

꽃가지 움을 트려 하나 봄바람이 아직 차갑구나

세상사 뜬구름과 같거늘 물어 무엇하겠는가

조용히 지내며 맛있는 것 마음껏 먹느니만 못하다네"

201p

르네상스 시대 당시 기독교 내부에는 모든 물질에 영성이 편재한다는 사상적 흐름이 존재했다. 신플라톤주의의 범신론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인간의 육체 가운데 신성이 존재한다는 관념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의 육체에 존재하는 신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렇게 보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신성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양이라 할 수 있다. ... 프로테스탄트는 은총에 의한 타력 구원을 강조하면서 가톨릭의 이단 포용을 공격했다. 그러자 가톨릭에서도 자구 수단으로 이단을 배격하기에 이르렀다. ... 세력을 얻은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 미사나 고해성사와 같은 성전례까지 배격했다. 청교도의 도덕적 엄격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로 인해 육체적 가치가 부정되면서, 육체에 신성이 존재한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관념이 이제 이단으로 치부되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측 모두로부터 탄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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