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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속 현대 미술 읽기
존 톰슨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오래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현대 미술에 대해 겨우 이름만 알 때라 무척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본문에 나온 작품이나 화가들, 소장처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일일이 찾아보느라 한 시간에 겨우 20 페이지 정도 밖에 못 읽어 며칠 동안 붙잡고 있었던 책이다.
몇 년 만에 재독하니 처음보다는 훨씬 쉽고 무엇보다 모방과 재현을 벗어난 현대 미술의 개념과 철학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
그림이라고 하면 르네상스 시대의 라파엘로나 바로크의 루벤스처럼 정밀하고 똑같이 아름답게 그리는 게 명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 낙서 같은 현대 미술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회화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특히 사진기가 발명된 후 회화가 구성으로부터 벗어나 색채와 구도, 색조와 같은 본질적인 것들을 추구하게 된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전히 현대 미술은 어렵고 특히 20세기 이후의 개념미술이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같은 것들은 공감이 어렵다.
색면 추상주의도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최했던 로스코 전을 본 후로 거대한 색면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에 감동하여 호기심이 생기긴 했다.
또 덕수궁 미술관에서 주최한 조르디 모란디의 정물화 전을 우연히 본 후 묘한 감동을 받았었다.
이 책에도 소개됐는데 도판만 봤다면 전혀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추상 미술은 특히 직접 작품과의 대면이 중요한 것 같다.
책은 장점이 많다.
도판이 다소 어둡긴 하지만 본문에 나온 그림들을 가급적 전부 실어주고, 화가들의 생몰연대와 작품의 크기, 소장처, 제작년도 등도 소상히 밝히고 있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다만 현대미술의 개념 자체가 어려워서인지 문장이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번역서의 어쩔 수 없는 한계 같아 우리 저자들이 쓴 현대 미술서를 읽어 볼 생각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색조라는 개념이다.
와토의 <제르생의 상점 간판>이라는 그림의 해설에서 색조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현대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이 평면성과 색채인데 두 색채간의 대비 혹은 조화, 전체적인 분위기를 뜻하는 색조가 매우 중요한 요소 같다.
<인상깊은 구절>
22p
모로는 신비주의의 회귀를 부르짖었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오직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만을 믿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인상주의에 탄력이 붙고 있던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예술의 본질은 물론, 그 문화적인 목적의 측면에서도 과격하리만치 시류에 반하는 발언이었다. 새로운 상징주의 예술은 문화의 소양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그 첫 번째 기능이었다. 모로는 르네상스 전성기의 거장들은 물론 인도와 중국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인상파식 축소지향적인 언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식적인 디테일의 소멸보다는 '선, 아라베스크, 인위 예술에서 가능한 모든 장식적 장치를 통해 생각을 환기시키는' 그림으로의 회귀를 원했다.
29p
훗날 자신의 작품이 코로의 바로 옆에 걸려 있는 것을 본 모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기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완벽하게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슬픈 날이다."
31p
휘슬러는 그림을 통한 도덕적인 설교나 감상적인 내러티브에 기울어진 빅토리아 시대 미술에 반대했다. 그는 '모던'하고, 형식적으로 엄격하며, 음악처럼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다.
34p
모네는 빛의 특정한 분위기나 부수적인 효과, 그리고 색채를 띤 표시의 질서정연한 배열로서의 인지를 추구했다. 사실, 모네는 회화적 추상의 새로운 본질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런던에 있는 동안 제임스 애봇 맥닐 휘슬러의 <야상곡> 연작 중 초기작을 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과격한 이미지의 단순화까지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해도, 사진 기술의 지속적인 발달과 직면하면서 자주적인 시각 언어로서의 회화 진화의 중요성은 이해하고 있었다.
49p
마네는 특히 드가와 가까운 사이였는데, 드가처럼 마네도 모티프로부터 직접 작업하는 것의 효율성에 전적으로 납득하지는 못했다.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은 살롱 화가였던 마네는 프랑스 미술의 위대한 전통을 존중했으며, 여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더하면서 계속 그 연장선상에 머무르고 싶어 했다. 마네가 한 번도 다른 인상파와 함께 전시회를 연 적이 없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사실이다.
57p
"조화란, 지배색과 특정한 빛의 영향으로 인하여, 충돌하는 비슷한 색조, 색상, 그리고 선 요쇼들이 명랑하거나, 차분하거나, 혹은 슬픈 조합으로 일치하는 것이다." -조르주 쇠라
60p
폴 세르쥐에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고갱의 요구 -모방을 벗어버리고 그 내면의 논리와 상징의 함에 따라 순수한 색채를 사용하라는-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된다. 사실 한 점의 회화로서의 <부적>은 고갱이 시도했던 그 무엇보다 훨씬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회화 언어를 포용하고 있다. '평면성'이 고갱의 작품에서는 형태가 채색된 형상으로 강조되기 이전에 이미 선에서 생성되는 반면, 세뤼지에의 작품에서는 붓질의 분산만으로도 생겨나, 채색된 영역과 형태와 대비를 이루는 표현 위에 뭉치거나 퍼진다.
66p
동료 화가인 폴 고갱과 일상을 공유하는 실험은 감정의 재앙으로 막을 내렸다. 감수성 면에서는 두 사람이 막상막하였지만, 고갱의 지배적인 성격이나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에 고흐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71p
지기였던 반 고흐처럼 고갱도 점묘법을 시도하면서 독학으로 색채 이론을 공부했다. 그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고갱은 과학보다는 직감을, 광학적 진실보다는 상징적인 힘을 더 선호했다. 고갱은 마침내 색채를 단순한 표현에서 분리하게 되고 바로 이 때문에 19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하나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미래로 향한 길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81p
"나의 예술의 유일한 목표는 관객 안에서 불확정의 세계와의 산만한, 그러나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오딜론 르동
105p
놀데는 말했다. "원형이나 모델 없이... 명확한 정의 없이... 빛과 색채의 모호한 감각만으로도 충분하다... 혹은 그림은 혼자 힘으로 그 형태를 드러내기도 한다."
113p
채도가 높은 색채의 평평하면서도 서로 겹치는 채색면을 강조함으로써 마티스는 -폴 고갱의 발자취를 따르며- 유럽 회화의 색채에의 근대적 접근을 정의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마티스는 미국 추상화, 특히 채색면을 강조한 추상화의 탄생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24p
기성작은 뒤샹으로 하여금 '미적인 숙고가 더이상 손의 능력이나 재주가 아닌, 정신의 선택에 불과하게끔' 만들어주었다.
134p
칸딘스키의 추상 이론에서 핵심은 다른 어떤 것을 가리키지 않고도 예술 작품의 외형적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내적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란 우선 자신의 '내적 소리'를 확립하고 지속적인 접촉을 가짐으로써 그 시각적인 면을 형태와 색채로 캔버스 위에 풀어놓는 것이다. 간신히 인식할 수 있는 현상의 존재를 암식하는 자연 질서와 유사한 이미지들-파란 부분은 하늘처럼 보이고, 어떤 형상은 인간이나 물고기처럼 보이고-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화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160p
1920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세잔의 그림을 실제로 본 뒤 그는 형이상학파와 결별한다. 모란디는 예술계나 예술 시장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볼로냐 아카데미에서 조판을 강의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제1타 세계대전 이후 밀려온 볼셰비즘의 파도에 겁에 질린 많은 이탈리아 중산층 지성인들과 예술가들처럼 모란디 역시 정치적으로 우파에 섰다. 1920년대 초반, 즉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수년 전에 이미 무솔리니의 지지자였으며 파시스타당의 정식 당원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결국 파시즘에 환멸을 느끼고 무솔리니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돌아선 후, 모란디는 1930년대 초 이후로는 정치적 발언을 중단했으며 교사화 화가로서의 일상 이외에는 공적인 자리를 점점 피하게 되었다.
165p
"회화적인 표현이 변했다면 그것은 모던 라이프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고속 열차로 풍경을 가로지를 때, 그것은 조각조작나 묘사적인 가치를 잃어버리고 대신 합성적인 가치를 얻는다. 열차의 차칸 문이나 자동차의 차창을 통해 바라본 경관은 속도와 조화를 이루어 사물의 일반적인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페르낭 레제
191p
브라크는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작이란 모든 개념이 지워지고 오직 불안정한 느낌만이 남아있는 '지적 공허'에 도달한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물:그 날> 같은 작품을 보면 그에게 있어 느낌이란 색채의 상호작용과 보기드문 색상조합의 창조에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210p
<신부의 단장>은 매우 디테일하고 환상적인 에른스트 초현실주의의 산물인 동시에, 그가 전통적인 회화 기법 전반 -바탕 채색, 색채 조합, 색채에 광택 입히기 등-에 얼마나 능숙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214p
발튀스는 그 자신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조르지오 데 키리코처럼 기법상의 이유로 동시대 화가들에게 거부당했으며, 옛 거장들의 작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탄식했다. 무엇보다 발튀스는 당시 화가들이 회화 공간에 언어 -과도한 설명과 화려한 언변의 비평 논쟁-를 삽입하기 시작한 것에 깊은 불신을 품었다. 대신 그는 바꿀 수 없고, 옮길 수 없는 회화 이미지의 시각적 풍부함을 주장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반근대적'인 것은 아니다. 발튀스의 작품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다소 구식인 연극조-부르주아들의 예의범절-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야말로) 발튀스가 오늘날 사회적-성적 노이로제의 예라한 관찰자였음을 보여준다.
221p
1960년대 이후 날이 갈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쇠퇴하는 성적 능력에 신경을 쓰는 것이 회화와 에칭에 그대로 드러냈던 피카소와는 달리 보나르는 자화상에서 점점 내향적으로 변하는 자신의 성격을 표현한 듯하다.
271p
"기대한 것이 이루어지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기대하는 그 자체가 멋지다. 이것이 나의 친구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나눈 긴 대화의 주제였다." -앙드레 브르통
297p
그는 추상 표현주의의 감정적 과잉과 단절하여 '예술 그 자체로의 회귀'를 무엇보다 원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라인하트에게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라인하트는 그림이 한 덩어리의 벌거벗은 시각적 요소들로 줄어드는 것 역시 원하지 않았다.
301p
"예술가의 부름은 삶에 대한 태도이며,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끌어안는다. 동작 하나하나가 선해야 한다. 도덕주의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단 반 골덴
315p
뒤샹에게게는 아무리 열렬한 예술 애호가라 할지라도 들어갈 수 없는, 예술가만의 영역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 공간이 있다. 예술가들이 생각하는, 그리고 관객은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오직 소수의 예외적인 개인만이 공명할 수 있는 사물들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술의 경험은 '종교적 신앙 또는 성적인 매혹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미적인 반향이 그것이다.'
<오류>
46p
1860년대, 이제는 나폴레옹3세가 된 조르주-외젠 오스망 남작은 파리의 중심부를 바꾸어 놓기로 결심했다.
-> 나폴레옹 3세가 오스망 남작에게 지시했다는 표현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