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썸머 에디션) - 친구가 친구가 아니었음을 깨달은 당신을 위한 관계심리학
성유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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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경험한 여러 케이스를 기반으로 쓴 일종의 심리 치료서다.

문장이 비교적 고르게 잘 쓰여 있어 가독성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호구가 안 되려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 화가 누적되지 않게 하라.

타인과의 관계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 에너지를 나에게 돌려 내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자아를 단단하게 하는 게 훨씬 좋다고 한다.

관계의 핵심은 상호성이라고 한다.

한쪽만 감정의 이익을 보는 경우는 다른 한쪽이 상처를 받게 되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가 되어 결국 끝나고 만다.

또 상대를 그것으로 대하지 말고 너로 대하라고 한다.

이익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사물로 대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로 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책 편집이 감각적으로 잘 되어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인상 깊은 구절>

37p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 한다. 설사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라며 합리화를 한다. 그러니 잘못된 행동을 해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56p

"다른 사람은 괜찮지만 (만만한) 너만큼은 내 뜻대로 해야!"

 만약 당신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다른 주장을 펼치면 굉장한 분노로 제압하려는 '정서적 폭력'을 행사한다.

72p

내가 다른 사람에게 쓰는 비용이 아깝다면 상대도 마찬가지. 다른 사람이 내게 쓰는 비용이 아깝지 않게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있다. 만약 10미터에서 100미터로 성장하면 높아진 높이만큼 넓이도 확장하는데, 이 넓이 안에 '좋은 인연'이 들어온다. 그러고 보면 성장만큼 좋은 인연을 끌어들이는 자석도 없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내가 가치 있게 느끼는 대상에게 쓰는 돈은 괜찮지만, 애매하거나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 이에게 나가는 돈은 셈하게 된다. 그러니 타인이 자신에게 쓰는 비용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 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자. 충분히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135p

평소엔 안 그랬던 친구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면 친구는 그 목소리를 지지해줄 '좋은 그룹'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굳이 당신이 옆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나는 편했다는 이유로 친구를 마음대로 바꾸겠다는 욕심은 버리자. 대신 자신도 모르게 그 친구를 발판삼아 풀고 있던 자기 욕구나 필요를 혼자서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래야 지금 떠나보내고 나중에 받아들일 수 있다.

143p

본래 관계라는 것이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시키진 말자. 그건 목적과 목표를 잃어버린 관계 강박일지 모른다.

 현재 시기심에 휘말려 자신을 소진하는 중이라면 관계에 매몰되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길 바란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내가 여유있고 자신감이 있으면 친구가 어디를 가든 SNS 에서 무엇을 자랑하든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러니 비교하고 속상해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특화해 그 성과를 수면 위로 떠올리는 일에 집중하자. 

145p

소우주를 가진 사람은 자아가 충만하다. 남과 비교 불가능한 달란트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워지는 특권을 얻는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만의 것'이 있다는 생각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151p

진짜 관계는 유익을 논하지 않는다. 요구하지 않는다. '함께 존재하는 강한 유대 감정'을 바탕으로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소통한다. 진짜 감정들이 중요하다. 관계 유지에는 에너지가 든다. 그렇지만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 상대방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이 나를 무겁게 하거나 괴롭힐 수 없다. 가능한 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꺼이 협력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짐스럽고 골치가 지근지근 아프다면 가족이라 하더라도 진짜 관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256p

이별하는 순간에서만큼은 '먼저 결심한 쪽이 강자'다. 헤어짐을 먼저 결심한 사람이 관계의 방향을 주도하고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잘 헤어지는 것은 단호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너의 상태'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상대에게 선포하는 것, 그것이 브레이크다.

258p

누군가 내 손을 놓고자 할 때 그 뜻을 인정하고 같이 놓아주는 것이 최고의 배려라면, 먼저 손을 놓기로 한 사람 역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비록 지금은 함께하는 것이 힘들더 손을 놓을지라도, 언젠가는 다시 그 손을 잡겠다는 마음이다. 물론 상대가 건강한 관계 맺기가 가능한 때라는 전제가 붙는다. 이런 전제가 없으면 다시 만났을 때 '그때 네가 날 버렸었지'라는 심리만 발동해 보상만 받으려 들 테니 말이다.

263p

"무언가를 바꾸는 데에는 큰 에너지와 노력,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흔히 "사람은 원래 안 변해"라고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질, 성형, 습관 등 어느 것 하나 바꾸기 쉬운 게 없어요. 그런데 나쁜  쪽으로의 변화는 또 쉽게 진행돼요. 종합하면 '사람은 좋은 방향으로 그냥 변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겠어요."

265p

"일단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자신이나 상대를 향한 신뢰가 바탕에 있지 않으면 힘든 일입니다. 내가 나를 드러내도 아무것도 손해 보지 않을 거라는 믿음. 당신은 이 믿음을 뿌리깊게 가진 건강한 사람입니다."

267p

"이 과정에서 얻은 것과 착오에 대해 요약,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난 이번에도 관계 맺기에 실패했어"라며 좌절만 하고 지나치면 아무런 성장도 이룰 수 없어요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고 모임에 나가라고 하면 "나갔는데 얻은 게 없었어요" 라고들 이야기하는데 이건 만남을 자본화시킨 생각이에요. 자신이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얻는 것에 초점을 두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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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뒷골목을 읊다 - 당시唐詩에서 건져낸 고대 중국의 풍속과 물정
마오샤오원 지음, 김준연.하주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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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만 해도 완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다.

중국 번역서들은 한번에 잘 읽히지가 않는다.

특히 당나라 시를 주제로 한 책이라 그런지 형용사가 많고 실제적인 정보가 부족해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학술적으로 논증하기 보다는 피상적인 관찰이 많아 보였다.

당나라는 시로 세워진 제국이라는 저자의 평가가 이해될 만큼 서사보다는 세상을 비유로써 바라보니 21세기 현대인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다.

처음에는 몰입이 힘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저자가 그려낸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잡히는 듯하고, 특히 마지막 그리스 로마인들과의 비교를 통해 동서양 문화 토양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중국은 일찍부터 통일을 이루고 집단주의를 추구했는가, 왜 그리스 로마인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 개인의 영달을 꾀했는지 이해가 된다.

왜 서양에서 그리스 로마를 보편적 문화의 뿌리로 보는지도 알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중국 역시 동양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고 21세기가 서구식으로 세계화가 된 걸 보면, 저자도 그렇고 나 역시 개인을 중시하는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이 훨씬 와 닿는다.

당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인 중국 왕조와는 달리 승부욕이 강하고 탐미적이며 개방적이었다.

저자는 당나라 시문 모음집인 <전당시>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고대 유럽의 일상은 잘 복원이 되어 있는 반면 동양의 미시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서인지 이런 생활사가 흥미롭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전 사람들도 지금의 인간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욕구와 감정과 가치관을 갖고 살았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래서 역사서가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모양이다.

같이 실린 중국의 서화들이 참 아름답고 멋지다.

우리 옛 그림도 좋지만 중국의 수묵화를 접하면 클래스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 구절>

48p

높은 분께서 접대를 시작하길 기다리며, 자신의 작품과 간알의 서신을 올리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나 응시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남에게 부탁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기를 구한다' 일컬었다.

 당나라 사람들이 존경받을 만한 점이 여기에 있다. 간알할 때의 태도는 겸손하고 간알하는 대상을 공경하기는 했으나, 인격 면에서는 결코 한 수 아래가 아니었다. 추천의 여부는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다만 내 작품을 알아줄 지기를 찾는다는 마음가짐이었다.

49p

이 때문에 높은 분들은 행권자의 앞길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었다. 전자가 단지 재능이 뛰어난 자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거의 모든 응시자에 해당되었다.

 응시자들이 행권을 하기 위해 방문하면 문학적 재능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높은 분들은 모두 약간의 재물을 쥐어주었다. 재물이 많지 않더라도 응시자들의 빈곤한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청탁을 하는 사람은 흔히 약자이고 그 대상은 보통 강자이기 마련이다. 당나라 사회에는 분명 폐단이 없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훈훈하고 건강했던 행권 문화가 있었기에 그 시대를 동경하게 만든다. 약자가 강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고, 강자는 자신의 역량을 흔쾌히 내어주며 약자가 강자로 바뀌도록 도왔다.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것보다 더 대단한 점은 당나라에서 행권할 때  문인들이 서로 존중하던 풍조다. 

55p

이상한 점은 왜 당나라가 진사과 시험에서 시부를 위주로 했을까 하는 것이다. 왜 한 나라에서 시 짓는 것을 인재 선발의 기준으로 삼았을까? 세계사를 보아도 이러한 기준은 특이하다고 할 만하다. 생각해보면 정말 진풍경이다. 방대하고 정밀한 국가 기구에서 위아래로 모두가 시인이다. 고위 관료들의 모음은 정치 모임이자 시 모임이며,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직무능력시험은 단지 당신에게 시를 읊으며 대구를 맞출 것을 요구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당나라는 시로 건설된 제국이다.

66p

남녀가 혼인을 하려면 반드시 '부모의 명령과 중매쟁이의 말'을 따라야 했는데, 이는 서주 때부터 시작된 불문율이었다. 당나라 때에 이르자 이것은 더 이상 모두가 속으로 알고 있는 규율이 아니라 확고부동한 법률 조항으로 돌변하여 이전에 비해 더욱 강제성을 띠게 되었다. 당시 중에도 도덕적 가르침이 법률 조항에 성원을 보냈다.

159p

당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다시 량치차오 선생의 말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도덕적인가 아닌가를 묻지 않고 재미가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다. 나는 도박이 부도덕하기 때문에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박이 본질적으로 재미없는 지경에 이르고 재미가 없어 내 재미주의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에 도박을 배척한다. 나는 결코 학문이 도덕적이기 때문에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 본질적으로 재미로 시작하여 재미로 끝날 수 있어 내 재미주의의 조건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에 학문을 옹호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 읽는 게 아니라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진진한 행위라 열심히 읽는다)

 설령 당나라 사람들의 어떤 전기와 공상적인 이야기가 내친김에 정의를 고취시킨다고 해도 윤리는 애초에 당나라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누가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재미있고 기괴한 것,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 관건이었다. 그들이 유독 사랑한 것은 가장 정채로운 공상을 가장 아름다운 말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미학적 의미만 맹목적으로 따르는 전통은 중국에서 후계자가 없었고 오히려 일본에서 이어졌다.

225p

육체적 쾌락은 다만 동물적인 쾌락이라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무미건조해서 아주 금방 지겨워지고, 정신적인 기쁨이 있어야 비로소 가장 순전하고 영속적이라는 것 말이다. 육체적인 만족은 영혼의 굶주림을 없앨 수 없지만, 영혼의 부유함은 사람들이 육체적 빈곤함을 무시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안회가 어떻게 몇 권의 책에 의지해 "한 주발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골목에서 지내는" 환경에서 기꺼이 만족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당나라 때 유곡의 고객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기녀의 용모가 아니라 오히려 기녀의 언행과 행동거지, 음악적 재능, 그리고 기루의 음식 수준이었다. 

231p

문화 예술 훈련은 내용은 아름답지만 방식은 잔혹했다. 그들은 불과 열 살 남짓한 풋풋한 나이로, 대부분이 막 부모와 이별하여 여전히 어린이의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문화 예술을 배우는 것은 또 길고 험난한 과정이고, 그러다보면 어쩌다 해이해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평강리와 교방의 선생님들은 인정이 후하지 않아 충분히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는 학생을 마주치면 곧장 손에 든 가죽 채찍을 휘둘렀다. 

257p

만약 스스로 타락할 생각이 없다면 하느님도 당신을 타락하게 만들 수 없다. 설령 신분이 낮다고 해도 절대 정신적 기개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당나라 가기들이 힘든 생활 속에서 필사적으로 아주 조금이나마 존엄과 즐거움을 얻는 데 도움이 된 것은 꽃과 같은 미모와 뛰어난 재주 외에 그들의 강인한 자존심이었다.

333p

'중국식 설명문'에서는 실질적인 소개나 기술적인 지침이 언제나 분명하지 않고 심지어는 아예 하나도 없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서정적인 묘사로 독자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정보량이 어휘량 만큼 많지 않고 실용성이 문학성만큼 강하지 않으니, 설명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시사가부의 변형이라고 하는 것이 낫다. 어떤 때는 이런 의심도 든다. 이런 설명문의 작자는 반듯하고 멋진 대구를 위해 사실과 진상을 희생시키는 것일까? 하느님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중국식 설명문'이 무엇을 가르쳐주지는 못하지만,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수사로 어떤 사물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가져다주기는 하니 말이다. 중국인에게 예로부터 치밀하게 사고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습관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어디에 내놓을 만한 철학 체계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느슨한 언어 구조 속에서 시의 생존 공간을 찾아냈다.

350p

사실 인류가 여러 사물에 갖다 붙인 의미를 나도 이해하기 어렵다. 높은 곳에 오르면 자신의 왜소함을 깨닫고 내면적 성찰과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고 고집스럽게 믿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천 미터가 넘는 고도에서 모든 것이 개미만 한 세상을 내려다보면 착각이 들기가 아주 쉽다. 자신이 마치 하느님처럼 세상을 움켜쥔 권력을 가졌다는 착각 말이다.

353p

"로마란 도시에는 상업이 없었고, 또 공업도 거의 없었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모든 사람은 약탈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 몽테스키외의 풍자가 상당히 매몰차지만 로마인들의 처지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외부와 힘껏 싸우지 않으면 재산, 토지, 그리고 영예가 없었다. 그래서 로마는 작은 성에서 시작할 때부터 오랜 세월의 전쟁에 익숙해졌다. 제국 밖의 세계에서 그들은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갑옷을 입고, 더욱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결심을 품고 정복에 나섰으며, 제국 안에서 그들은 각종 경기를 통해 분투와 투쟁에 대한 모든 이의 갈망을 충족시켰다.

359p

나는 언제나 이런 생각이 든다. 로마인들이 죽어야 끝나는 것으로 모든 경기를 설계한 이유가 완전히 피를 좋아하는 본성 때문은 아니라고. 더 큰 이유는 목숨을 걸어야 경기 참여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장려 수단이 모든 참가자를 전력투구하게 만들겠는가? 가장 좋은 장려책은 보물도 아니고 미인도 아니고 심지어 강산도 아니고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경기 참가자가 전력투구해야만 세상에서 사장 재미있고 강렬한 경기가 될 수 있다. 잔인하지만 로마인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과하게 전투와 영웅, 영예와 열혈을 갈망하고, 과하게 인간 역량의 극한을 찾아내기를 갈망했다

"그리스인은 연극, 도예, 연설, 시, 낭송, 조각 등 어떤 분야에서도 경쟁을 즐겼다. 그리스인은 불가피하고 그들이 가장 아끼는 여가활동 가운데 솜씨를 겨루었다. 그리스인으로 말하자면 어떤 일도 운동회를 개최해야 할 이유가 된다." 고대 중국은 전혀 달랐다. 중국에서는 조화를 귀히 여겨 공자의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다"는 말씀이 만대의 가르침이었다. 경쟁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체육활동도 중국 조상들이 할 때는 대부분 그저 심신을 수양하거나 장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치열하게 다투는 경기는 사회 엘리트 계층으로부터 외면받았고, 또 항상 국가가 나서서 각종 경기를 금지시켰다.

 중국은 예로부터 농업 국가로서 집집마다 자급자족하여 밖에 나다니지 않아도 너끈히 살 수 있었던 까닭에 대대로 좁은 땅을 지키고 살았다. 쌀밥이 눈앞의 땅에서 나오고 채소도 눈앞의 땅에서 나오니,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어디가 '먼 곳'인지 잊게 되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은 대부분 통일을 이루어 대다수 사람은 한평생 싸움을 해야 할 필요가 없고 창을 들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안정되고 착실하게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경쟁의식의 토양이 사라졌다. 장기간의 통일은 또 개인이 좋은 게 아니고 나라가 좋아야 비로소 진짜 좋은 것이라는 집단주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 개인의 가치보다 집단의 이익이 위였다.

 고대 그리스는 고대 중국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고, 넓고 푸른 에게해만이 고대 그리스인에게 유일한 출로로 펼쳐졌는데, 이는 곧 외부를 향한 투쟁과 개척을 의미했다. 경쟁은 대다수 국가의 혼란한 국내 정치투쟁으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거리낌 없는 개인주의로도 나타났다 .호머가 말한 대로 그리스인은 '경쟁을 해야 남을 앞선다'는 것을 자신의 개인적 사명으로 여겼다. 염황자손이 '동고동락'과 '영욕을 함께'를 행위의 준칙으로 삼을 때, 모든 그리스인의 목표는 '재주를 드러내는' '군계일학'이었다. 중국의 점잖은 체하는 이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라와 천지의 도리"라고 할 때 여러 계층의 그리스 사람들은 정정당당하게 완전히 개인에게 속한 영광과 이익을 추구했다.

 그리스는 줄곧 강자를 치켜세우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리스인은 경기로 심신을 수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그들이 추구한 것은 월계관, 승리, 그리고 타인의 존경이었다. 페르시아인에게 무시당했던 그 올리브 관에 그리스인이 가장 바라는 영광이 담겨 있었다. 고대 중국인은 '화하의 자손'인 것을 영예로 여긴 반면, 고대 그리스인은 자신만을 영예로 여겼다. "그리스인은 경기를 중시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리스인은 개인의 영예를 무엇보다 높게 여긴다"는 말이 된다.

 로마인은 그리스인보다 조국이라는 개념을 더 중시했고, 로마제국을 영예로 여겼다. 로마의 경기는 그리스의 경기보다 잔혹해서 그들의 콜로세움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로마인은 개체 생명의 힘을 추구하고 마찬가지로 강자를 숭배했으니, 공히 '개인 영광 지상주의' 일파에 속한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공통의 좌우명을 수천 년 뒤의 니체가 이렇게 정리했다. "상관하지 말고 그들에게 가서 탄식하게 하라! 빼앗아라, 그저 빼앗기만 하면 된다!"

 한 지역의 물과 흙이 그 지역 사람을 기르는 법이라 중국에서는 군자가 나오기 쉽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영웅이 나오기 쉽다. 고대 중국은 집단의 영예를 추구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개인의 가치와 이익을 긍정했다. 그러나 고대 중국에는 또 다른 부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당나라 사람이다. 당나라 사람이 경기를 좋아한 것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에 뒤지지 않았다.

369p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현실이 아무리 냉담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아직 얼마간의 詩心 이 남아 있어서, 적어도 현실을 마주하고서도 여전히 그침 없이 시를 읽고 꿈을 꾸는 저 사람들을 비웃지 않기를. 운명이 우리에게서 그 무엇을 빼앗아가더라도 우리가 마지막에는 나보코프처럼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한마디 감탄을 남기기를. 그러나 요행히 시가 살아남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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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장식미술 기행
최지혜 지음 / 호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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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드디어 서구 도서관에서 빌렸다.

제목만 보고 막연히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탐방기인 줄 알았는데, 영국의 여러 고저택들을 방문하여 건축이나 인테리어 양식 등을 논한 책이었다.

역사적 배경이 있는 귀족들의 저택이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소쇄원 같은 느낌이랄까?

한국은 선비 문화 때문인지 장식이라는 문화 자체가 없는 것 같고 검박하고 단아한 멋을 추구하는데 서양은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으로 대변되는 화려함의 극치라 정말 두 문화가 다름을 느꼈다.

또 서양의 공예가들은 비록 순수 예술인 회화와 조각처럼 예술가로써 대접받지는 못한다 해도 제작자들의 이름이 남아 있는 반면 우리는 아무리 아름다운 청자 백자라 해도 그저 무명일 뿐이라는 게 안타깝다.

하다못해 일본만 해도 도공들의 이름이 면면히 전해져 오는데 과연 조선에서는 공예품이 사회적으로 전혀 대접받지 못한 천기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수백 년 된 저택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부럽다.

아쉬운 점은 도판!

황당할 정도로 도판의 질이 조악하다.

2013년에 책값 17000원이면 싼 가격도 아닌데, 출판사 측의 무성의가 아쉽다.


<오류>

155p

베스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자신의 딸을 메리 여왕의 남동생 찰스 스튜어트와 결혼시켰다.

->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태어난지 6일 만에 아버지가 죽었는데 왠 남동생인가 했다.

찰스 스튜어트는 메리의 남동생이 아니라 남편인 단리 경, 즉 헨리 스튜어트의 동생이다. 메리의 할머니 마거릿 튜더가 할아버지 제임스 4세와 사별한 후 재혼해서 낳은 손자가 헨리와 찰스이므로 할머니 쪽으로는 사촌이긴 하다.

305p

레드 하우스의 동쪽 정원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 이 아름다운 우물은 애초부터 장식용이었다고 한다. 과연 이 낭만의 성지에 어울리는 트릭이다.

-> 찾아보니 이 우물은 장식을 위해 디자인 한 것이라 오해를 받지만 이 집에서 오래전부터 써 온 유서 깊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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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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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에게 추천받아 읽은 책.

정말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다.

뭔 얘긴지 모르겠는 제목과는 달리, 책 주장에 깊이 공감하고 진실과 통계에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 인간은 얼마나 극단적이고 감상적인 존재인가 실감했다.

책에 나온 13가지 질문들 중 단 하나만 맞출 수 있었다.

나도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이 세상은 실제보다 훨씬 불행하고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맞춘 문제는 세계의 빈곤이 지난 세기보다 얼마나 줄었는가이다.

이 부분은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 교정이 되어 있었다.

그 외 여성의 교육이라던가, 예방접종률, 기대 수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나는 아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저자의 지적처럼 이른바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의 오만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고 서구권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나간다고 말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놀라울 정도로 발전시켰고 절대 빈곤층은 전 세계의 9% 정도이다.

10억 인구가 적은 수는 아니지만 이 전 세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감소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 소득에 분포하고 있고 이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인구는 중산층이 되어 엄청난 소비자가 될 것이다.

정말 인구가 힘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전 세계를 4단계로 분류한다.

1단계는 절대 빈곤 상태, 4단계는 풍족한 상태.

물론 우리는 4단계이고, 1단계에서 4단계로 올라선 극적인 예시로 등장한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 동일하지 않다는 예로 나온다.

세상은 더디게 발전하고 있지만 누적이 되면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극단적인 빈곤층을 없애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국제적인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평화가 없이는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다.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가 전쟁을 막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도 지구 번영의 중요한 힘일 것 같다.

저자는 스웨덴의 공중보건학자인데 초고를 완성하고 췌장암으로 타계했다고 한다.

안타깝다.

기후변화 부분만 빼고는 모두 공감했다.

감성보다는 이성에 기반하여 문제를 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통계와 숫자를 잘 살펴보자.



<인상깊은 구절>

27p

세상은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다. 모든 면에서 해마다 나아지는 게 아니라, 대체로 그렇다. 더러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지만, 이제까지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다. 이것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이다.

52P

중간 소득 국가와 고소득 국가를 합치면 인류의 91%에 해당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세계시장에 편입되었으며 상당한 발전을 이뤄 그런대로 괜찮은 삶을 산다. 인도주의자에게는 기쁜 일이고, 세계적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중간층에 사는 50억 인구가 잠재적 소비자로서 삶의 질을 높이며, 삼푸, 오토바이, 생리대, 스마트폰을 소비한다. 그런 사람들을 그저 '가난한' 사람으로 치부한다면 큰 시장을 쉽게 놓쳐 버리는 꼴이다.

59p

한 가족이 1단계에서 4단계로 올라가기까지 대개 여러 세대가 걸린다. 어쨌거나 각 단계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독자의 머릿속에 명확한 그림이 그려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이든 국가든 단계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는 삶이 두 종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면 좋겠다.

 인간의 역사는 1단계에서 출발했다. 10만 년이 넘도록 누구도 1단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아이들은 부모가 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200년 전만 해도 세계 인구의 85%가 여전히 극도로 빈곤한 1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97p

언론의 자유가 더욱 커지고 첨단 기술이 발달한 덕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소식을, 많은 재난 이야기를 접한다. 수백 년 전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원주민을 대량 학살했을 때 그 일은 당시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중국에서 중앙 계획이 실패하는 바람에 대량 기근이 발생해 시골 사람 수백만 명이 기아로 죽었을 때 유럽에서 붉은 공산주의 깃발을 흔들던 젊은이들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과거 어떤 종 전체 또는 생태계가 파괴되었을 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거나 관심을 갖기 않았다. 그러다가 인류의 다양한 발전과 더불어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도 놀랍도록 개선됐다. 이처럼 좋아진 언론 보도 자체가 인류 발전의 표시이지만, 그 덕에 사람들은 정반대의 느낌을 받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활동가와 로비스트는 일정한 추세에 일시적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전반적으로는 분명히 발전하고 있는데도 마치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교묘히 포장해, 과장된 우려와 예측으로 사람들을 겁준다.

152p

'위험한 세계'라는 이미지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효과적으로 방송을 타지만, 실제 세계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덜 폭력적이고 더 안전하다. 

 한때 우리 조상의 생존을 도왔던 공포가 오늘날에는 언론인을 먹여 살리는 데 일조한다. 

163p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후쿠시마를 탈출했지만 이후 1600명이 더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방사능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방사능을 피해 도망쳤지만, 방사능 때문에 사망했다고 보고된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다. 1600명은 탈출 과정 또는 탈출 후에 사망했다. 이들은 대개 노인이었고, 피난 그 자체나 대피소의 삶에서 오는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가 사망 원인이었다. 한마디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방사능이 아니라 방사능 공포였다.(1986년 체르노빌에서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사람들은 사망률이 크게 증가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예상을 확신할 근거는 없었다)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안전 규정을 만들었다. 많은 나라가 DDT 사용을 금지하고, 원조 단체도 DDT 사용을 중단했다. 그러나! 대중이 화학물질 오염에 느끼는 공포가 거의 과대망상 수준에 이르는 부작용이 생겼다. '화학물질 공포증'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광우병 파동을 생각해 보라!)

174P

위험성=실제 위험*노출 

어떤 대상의 위험성은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 위험과 그것에 노출되는 정도를 합쳐 결정된다.

220p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는 종교나 문화, 국가가 아니라 소득이라는 점이다.

226p

누군가가 예를 달랑 하나만 내놓고 집단 전체에 대해 결론을 내리려 한다면, 그게 해당하는 예를 더 제시하라고 말해야 한다. 아니면 상황을 뒤집어서 반대 사례 하나가 나오면 정반대 결론을 내리겠느냐고 물어봐야 한다. 안전하지 않은 화학물질 하나를 기준으로 모든 화학물질이 안전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겠다면, 안전한 화학물질 하나를 기준으로 모든 화학물질이 안전하다고도 결론 내릴 수 있겠는가?

244p

나는 극빈층에서 가장 늦게 벗어날 사람은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지역과 가까운 곳에 붙박여 살며 척박한 땅에서 농사짓는 아주 가난한 농부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이런 사람들은 아마도 2억 명 정도로, 그중 절반을 약간 넘는 수가 아프리카에 산다. 물론 이들 앞에는 대단히 힘든 시기가 놓여 있다. 변치 않거나 변할 수 없는 문화 때문이 아니라, 척박한 토양과 무력 충돌 때문이다.

252p

나는 아시아를 여행할 때면 늘 구스타브 할아버지 같은 완고한 노인의 가치와 마주한다. 한 예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많은 여성이 자녀 돌보는 일을 전적으로 책임질 뿐 아니라 시부모도 부양한다. 이런 상황을 자랑스러워하는 남자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이것을 '아시아의 가치'라고 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는 많은 여성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런 문화를 참을 수 없어 하고, 그런 가치 때문에 결혼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말한다.

262p

점진적 개선을 추적하라. 매년 일어나는 작은 변화가 수십 년 쌓이면 거대한 변화가 될 수 있다.

274p

경제성장의 최종 목표는 개인의 자유와 문화 발전이며, 그런 가치는 수치로 포착하기 어렵다. 

286p

경제와 사회가 크게 발전한 나라라고 해서 다 민주국가는 아니다. (산유국도 아닌)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빨리 1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갔고, 그 시기는 줄곧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 2012~2016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열 곳 중 아홉 곳은 민주주의 수준이 낮았다.

 경제성장과 보건 의료 발전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와 모순되는 현실에 부딪치기 쉽다. 따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민주주의가 우월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기보다 민주주의 자체를 목적으로 지지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340p

우리는 올림픽, 국제무역, 교육 교류 프로그램, 자유로운 인터넷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안전망을 강화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세계 평화 없이는 우리의 지속 가능성 목표 중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다

(남한은 일단 김정은의 핵위협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343p

도움을 주기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정부의 힘이 약한 나라에서 폭력적이고 무질서한 무장 범죄 조직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가난에서 탈출하려면 안정된 군대가 필요하다. 무장한 경찰관은 죄 없는 시민들을 폭력에서 보호해야 하고, 정부 당국은 교사들이 평화롭게 다음 세대를 교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가능성 옹호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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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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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 나왔을 때 신청해 놓고 이제서야 읽게 됐다.

책 판형이 한 손에 들고 읽기 딱 좋은 사이즈고 디자인도 괜찮다.

한 쪽은 사진만 한 쪽에만 글이 실려 내용은 적은 편이다.

저자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책 전체에 흐르는 굴절있는 삶에 대한 애환이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막연한 동경과 긍정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독재와 파시즘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찬은 있으면서 왜 스탈린과 마오쩌둥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는 드문 걸까?

왜 공산주의는 평등을 말하면서 1인 독재와 1당 독재를 이어가는 걸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비판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 같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스탈린과 마오쩌둥과 어떻게 다른가?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과연 다른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개최한 조르디 모란디 전시회를 우연히 보고 나서 이 화가의 정물화에 완전히 빠졌다.

모란디는 미술사에서 별로 언급도 안 되는 화가라 그 때 처음 알게 됐다.

이 책에도 모란디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다.

미학적으로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화가가 평생 추구했던 본질을 느낌으로는 이해할 것 같다.

이탈리아 인문 기행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인상깊은 구절>

43p

반종교개혁의 시대, 로마라는 위험한 도시의 공기가 "기질적으로는 반역자였지만, 종교적 신조에서는 열광적인 정통파"였던 이 젊은 화가 카라바조를 혁명가로 키워낸 셈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을, 그 잔학함과 어리석음까지 놓치지 않고 그려낼 수 있었던 혁명가로. 

124p

얀 판 에이크,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한스 멤링, 로베르 캉팽 등 플랑드르파 회화의 명품은 단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놀랄 만큼 생생하다. 어째서 14~15세기라는 시대에 이러한 명화가 집중적으로 탄생했던 걸까?

 하위장아의 <중세의 가을>에 따르면, 그것은 페스트의 대유행, 유대인 학살, 백년전쟁, 십자군, 끊임없이 반복되던 기근처럼 혹독하고 무참한 사건으로 뒤덮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재앙과 빈곤이 누그러질 날이 없었다. 역겨우리만큼 가혹했다. 영예와 부를 열심히 바라며 탐욕에 사로잡혔던 것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참혹하기 그지없던 가난으로 인해 그 차이가 명예와 불명예의 대조처럼 너무나도 극명했기 때문이다. 처형을 비롯한 법의 집행, 큰 소리로 떠드는 행상들,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을 알리는 행렬 뒤로 고함소리, 애도하는 울음, 그리고 음악이 따라왔다."

 이런 혼란한 시대가 역설적이게도 보석과도 같은 플랑드르파의 그림을 낳았던 셈이다. 하위징아의 저 묘사도,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르네상스 시대의 '극단적이기까지 한 양면성'은 아니었을까.

293p

미술은 태생 자체가 권력에 휩쓸리기 쉬운 성격이 있기 때문에 권력과는 항상 위태로운 관계를 맺어왔다. 피카소 같은 예외적인 사례가 있다고는 하지만 권력으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지켜내는 일은 예술가에게 숙명적 난제다. 최대의 패트런인 권력자는 힘과 재력을 무기 삼아 예술가에게 기념할 만한 대작을 제작해달라고 요구한다. 어떤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경우는 기뻐하며 예술가는 그 요구에 응한다.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만들고 싶다'는 제작 욕구처럼 제어하기 힘든 욕망을 충족해야만 하는 예술 행위 특유의 함정이 늘 도사리고 있는 까닭이다.

325p

하지만 미켈란젤로에 대한 하니 고로의 관점은 오늘날 '이상화, 단순화'된 의견으로 여겨진다. 원래 당시 '시민'이란 오늘날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시민'과는 달리 "옛 귀족층으로부터 도시 권력을 탈취한 부유한 상인이나 은행가를 중심으로 한 신흥 시민 계층"이었다.

<그들은 자신보다 아래 계급인 중소시민 상공업자나 하층 노동자에 대해서는 명확한 우월감과 차별의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주장했던 공화주의 체제는 한정된 귀족적 공화제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근대적인 민주 공화제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334p

미켈란젤로가 눈앞의 수입이나 영달을 위해 일했다면 이 같은 삶을 완수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강인하고 대적할 자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적인 연약함을 지닌 채 소심하게 자기보신을 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 속에서 끓어오르는 창조의 욕구에 충실했다. 언제나 더 멀리 내다보고 더 높은 곳을 우러렀다. 미켈란젤로가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은 권력자가 원했던 바를 훌쩍 뛰어넘는 곳에 있었다. 그가 펼쳐난 창조의 힘은 500년 후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이다. 마리오 시로니나 후지타 쓰구하루와는 역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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