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아시아.미국편 - Fly to the art, 예술과 문화사이에서 일상의 일탈을 꿈꾸는 시간산책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차문성 지음 / 성안당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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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편에 비해 <아시아,미국>편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미술관들이라 무척 신선하다.

특히 동남 아시아의 미술관들은 이 책에서 거의 처음 접했다.

지난 번 이란 관련 책들도 재밌게 읽어서 아시아 지역들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태국이나 발리, 하노이 등은 그저 휴양지로만 알았지 이렇게 멋진 문화와 긴 역사를 가진 줄은 미처 몰랐다.

아쉬운 점은 역시 도판.

아마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만 올리려다 보니 도판의 질이 매우 떨어져 아쉽다.

나오시마의 지추 미술관은 사진을 못 찍게 하는지라 스케치로 대신 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면 여러 사진들이 나오니 기왕이면 저작권을 해결하고 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킬링필드의 끔찍함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식민지 프랑스와 부패한 론놀 정권, 이를 비호한 미국에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부패하고 식민지배를 했다고 단 4년 동안, 그것도 자국민을 수만 명 학살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도 이를 좌시한 유럽 책임이고 인류 탓이다.


<인상깊은 구절>

363p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때 일정한 수입으로 안정된 생활이 필요한 만큼 이들이 작품을 구입함으로써 생계를 돕고자하는 개인적 후원과 컬렉터들의 수집활동은 이전에도 있어 왔다. 근본적으로 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독립된 전시의 공간이 필요하고 이러한 필요성은 미술관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이들의 지향점이었다.

 알프레드 바는 동시대 미술을 일반 대중이 쉽게 다가가도록 전시를 큐레이팅이하고 도록 발간, 포스터, 전시 해설문 등을 제작하여 관람자들의 관심을 유도하였다. 이러한 것은 오늘날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당시 전문적인 전시가 전무한 상태에서는 획기적인 기법으로 받아 들여졌다.

 영구소장품을 중심으로 미술관 전시품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라는 측면에서 창의성 있는 작가를 발굴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MoMA 의 이러한 생각은 기존의 거대 박물관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분명히 차별화된 것이었다. 



<오류>

61p

그림의 주제로 등장한 마리 앙리에트는 루이 15세와 레슈친스카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명의 딸 중 둘째였다. 이란성 쌍둥이였던 그녀의 언니 엘리자베스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에게 시집을 갔지만~

-> 마리 앙리에트의 쌍둥이 언니 엘리자베스는 펠리페 5세의 아들인 파르마의 공작 필리포 1세와 결혼했다. 즉 며느리인 것이다.

103p

금나라의 침략에 의해 수도를 임암으로 옮긴 후에도~

-> 임암이 아니라 임안이다.

186p

스페인 사람으로 필리핀에서 태어난 마리아 블랑코의 작품을 눈여겨 봐야한다. 현재까지 50여 년 동안 발리에 살고 있다.

-> 본문에 소개된 화가는 마리오 블랑코의 아버지인 안토니오 블랑코이고 1911년생으로 1999년에 타계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은 아들이다.

412p

이 그림은 622 방에 있는 티에블로의 작품 중 가장 크고 훌륭한 작품이다.

-> 아무리 봐도 티에블로가 아니라 티에폴로인 것 같다.

424p

이곳 전시실에서 허무를 자연과 결합하여 형상화한 루이스 달과 유쾌한 화가 프란스 할스 등~

-> 루이스 달이 도대체 누군가 봤더니, 야콥 반 루이스달(Rusidae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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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수도원 화첩 기행 - 이곳은 모든 것이 깊다
정미연 글.그림 / 성바오로출판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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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도서관에 없던 책이라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터에, 상호대차 시스템을 통해 빌리게 됐다.

저자가 직접 그린 표지 그림은 책의 분위기를 한번에 드러내 줄만큼 세련되고 멋지지만 아쉽게도 내용은 기대 이하다.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리스 수도원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는 기행문이었는데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에 포인트를 둔 에세이다.

글은 너무나 가볍고 감상적이라 큰 울림이 없었고 아쉽게도 그림 역시 큰 감흥이 없었다.

그리스 에게해에 관한 기행문이라면 다치바나 다카시의 <사색기행> 쪽이 훨씬 성실하다.

사진이 거의 없는 점도 너무 아쉽다.

다만 저자는 무척이나 긍정적이고 미소가 아름다운 분 같다.

잠깐 언급된 남편 박대성 화백과의 러브 스토리도 가슴 찡하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었을 때의 실망감이랄까...

밀도있는 기행문을 만나기란 참 어려운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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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이야기 - 이란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현지대사의 분석보고
박재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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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페르시아 이야기>라서 현대 이란보다는 고대 페르시아 역사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 생생한 21세기 이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히려 저자가 이란 대사로 머물던 2011년 전후의 국내 정세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시의성에 떨어지는 느낌마저 든다.

이란이라는 나라는 한반도의 8배에 이르는 거대한 국토를 갖고 있고 기원전 3천년 전부터 엘람 왕국이 성립되어 유구한 역사를 일궈온 75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동의 대국임에도 이슬람 신정국가체제 때문인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현지에서 외교관을 지낸 분이 쓴 책이라 기대를 많이 하고 정보도 많이 얻었지만 신문 기사 스크랩이라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안타깝다.

책을 읽으면서 단편적인 신문 기사 읽는 느낌이 나서 한 권의 책으로써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는데 구글에서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보니 역시나! 연합뉴스의 기사들이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99% 그대로 한 챕터들을 이루고 있었다.

현대 이란 사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서 좋긴 하지만 이런 식의 책은 편집북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전문 연구자가 아닌 이상 어딘가에서 정보를 습득하고 자기 나름의 언어로 풀어쓸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똑같이 기사를 베껴서 출간해도 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같은 외교관 출신 저자인 류광철씨의 저서들과 너무나 비교된다.



<인상깊은 구절>

45p

마샤이 비서실장은 무슬림들은 성직자들을 통할 필요가 없이 알라와 직접 닿을 수 있다고 발언해 많은 보수 성직자들의 분노를 산 바 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란의 국수주의를 정권의 핵심으로 삼고 이를 위해 이슬람 이전의 이란의 위대함을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찬양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의 이란 내에서 이슬람 이전의 찬란한 페르시아 문화에 대한 공공연하고 대대적인 칭송은 자칫 이슬람의 정신과 신앙을 훼손하는 대립 개념으로 간주되어 탄압이나 주시를 받는 일을 자주 발생시키며, 더 나아가 보수층 사이에서 주도권 다툼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68p

쿠란에  따르면 "판단, 형벌과 보상은 어떠한 경우에도 신의 권능에 속하며, 신은 자기의 권능을 어느 누구와도 나누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만 살인, 반역과 같은 중대한 죄는 전체 사회의 해가 되므로 사법당국에서 다루어야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196p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중동 북아프리카 민주화 시위 이후 인터넷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전해들은 외부 세계의 사이버 정보를 바탕으로 해당 국가의 내부에서 '민주화 레지스탕스'가 자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어느 정부다 단체도 마찬가지겠지만 단순한 통신수단과 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인간의 욕구가 존재하는 한 정보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본다. 따라서 이란이 국내 인트라넷 설치를 통해 '온라인 쇄국'에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든다.

212p

쟈스민 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서방세계와 이란이 크게 달랐다. 서방세계는 그동안 장기집권 세력이 국민의 민주화열망을 억눌러왔으나, 더 이상 국민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고 거대한 민주화 회복운동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란은 이를 그동안 서방세력에 억눌린 '이슬람이 새롭게 깨어나는 운동'이라고 해석했다. 이란은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이 운동을 계기로 은근히 이슬람세력, 특히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 이슬람이 다시 한 번 세력을 뻗칠 수 잇는 호기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

215p

민주화 요구 시위는 커다란 동력을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이렇듯 이란에서 소위 '아랍의 봄' 훈풍이 불지 못한 이유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우선 종교적으로 최고지도자들을 정점으로 하는 신정정치체제를 갖고 있고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인 이란은 최고지도자에게 절대 복종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4년마다 대통령선거에 의해 지도자가 교체되는 관계로 북아프리카 국가에서와 같은 1인 장기집권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지도자가 교체되더라도 유력한 야당 후보나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시위의 동기가 미약한 것이 현 실정이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감안할 때 이란에서는 특별히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신정정치 체제는 상당 기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55p

결혼, 가족관계, 직업과 압도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이란 여성들의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인 자유가 가정 내에서 여성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주부가 가정을 버리면 굶어죽는다. 그러나 요즈음은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이어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은 여성들로 하여금 과거와 같이 남편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이혼을 쉽게 선택하는 경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270p

이란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교육제도가 서양사상에 오염되어가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인문학의 여러 학문들이 이슬람 가르침을 부정하는 서구식 물질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며 "그런 과목들은 이슬람 종교에 대한 의심을 키울 것" 이라고 하면서 이란학계에 서양의 학문 침투를 강하게 비판했다.


<오류>

50p

아부 바크르가 2년 동안 칼리프 직을 수행하고 죽자, 그의 아들인 우마르가 2대 칼리프로 등장한다.

-> 2대 칼리프 우마르는 아부 바크르와 혈연 관계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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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 타산지석 20
최창근 지음 / 리수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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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대만 관련 책을 읽고 타이베이라는 도시에도 관심이 생겨 따로 읽게 됐다.

이 책도 다니던 도서관에 없어 다른 도서관에 맘 먹고 가서 빌린 책이다.

본격적인 도시 이야기라기 보다는, 타이베이라는 도시 관광 전에 읽어볼 만한 가벼운 수준이라 다소 아쉽다.

타이베이에서 유학하는 동안 도시 곳곳에 애정어린 저자의 관심사가 녹아 있어 흥미롭다.

대학 졸업하는 해 2월에 가족들과 대만 여행을 간 적 있는데 그 때는 대만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고 큰 감흥이 없었다.

책에 보니 그 때 갔던 온천이나 원주민 마을, 중정기념관 등이 나와 반가웠다.

도판 사진이 다소 어두워 아쉽지만 과도한 감상을 자제하고 도시의 구석구석을 애정어린 필체로 소개해서 읽기 편했다.

인구가 무려 2300만 명이라니 생각보다 경제 규모가 클 것 같다.

24시간 오픈 서점이 제일 인상적이었는데 요즘에도 운영이 되는지 궁금하다.

찻집도 24시간 운영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밤의 유흥 문화가 많은 한국과는 또다른 느낌의 도시일 것 같다.

유명 영화의 촬영 장소가 많이 나왔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영화들이라 아쉽다.

1947년 2.28 사건을 보면 무려 2만 8천 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어느날 느닷없이 몰려온 본토인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원망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일본의 지배가 무려 50년이나 이뤄졌는데도 일본에 친근한 감정을 갖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밀고 들어와 기득권을 차지해 버린 외성인들에 대한 반발심도 있어서일 듯하다.



<오류>

147p

장제스는 쑹메이링보다 14살이나 많았고

-> 장제스는 1887년 생이고, 쑹메이링은 1897년생이라 14세가 아니라 10세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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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0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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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1 16: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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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경의 역사
전덕재 지음 / 새문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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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경이었던 경주의 도시 구조를 밝히는 앞부분이 너무 어려워 끝까지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책이다.

중간 부분부터 제대로 읽었는데 생각보다 소득이 크다.


1) 저자는 신라의 수도인 경주가 당나라의 장안성처럼 방으로 구획되어 있었다고 본다.

처음 듣는 얘기라 정말 신기했다.

큰 담으로 둘러 싸여 대략 30여 채의 가옥이 살았고 방문을 방장이 관리했다.

당나라나 북위 등 중국의 방은 2000여 가옥이 살았다고 한다.

경주에 1300여 개의 방이 있었는데 경주 인구를, 戶가 아닌 口로 해석하여 17만 9천 여명으로 본다.

지방민의 무분별한 이주를 막고 수도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한마디로 주민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 방을 설치해서 관리했다.

전근대인들이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해진 구역에 갇혀 살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


2) 신라인의 조상은 한 무제에게 고조선이 멸망당한 후 경주 분지로 내려온 유민들이라고 한다.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한반도로 넘어온 진나라 유민들이 세운 나라가 진한이고 고조선 유민이 세운 나라는 마한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찌 됐든 중국과 한반도 북부에서 삼한 땅으로 내려와 지역민들과 합해져 고대 국가를 형성했던 것 같다.

저자는 신라 6촌의 명칭이, 고조선 유민들이 정착했던 경주의 여러 들판 이름이었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왜 고조선 유민들을 진한인으로 여기는지에 대한 논증은 없어 아쉽다.

6부 중 훼부와 사훼부, 그리고 모량부의 박씨 왕실 후예들만 진골 귀족이 되고 나머지 3부인들은 6두품까지 골품을 받는다.

그 외 지방민들은 골품제에 편입되지 않고 공민이 되어 외위를 받았다.

사로국이 주변의 소국들을 점령해 가면서 땅을 넓힐 때 이들은 지방민으로 편재되어 왕경 6부인에게 공납을 바치고 奴人 으로 명명된다.

저자는 신라가 망할 때까지 한 번도 천도하지 않았음에 주목한다.

처음 신라가 세워질 당시의 왕경 거주민들이었던 6부인들이 진골 귀족화 되면서 마지막까지 그 외 지방민들을 다스렸다.

간단히 말해 신라는 국가가 처음 세워졌을 때의 중심세력이었던 왕경 6부인들이 그 후로 주변국들을 점령하면서 한반도를 통일한 후에도 지방민들을 피지배층으로 통제했다는 것이다.

진골 귀족들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하대에 이르러 지방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고구려,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난 것도 이러한 페쇄적인 통치 체제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지방에 세력 기반을 둔 고려를 훨씬 개방적인 사회로 평가한다.

지난 번 안동김문 책에서도 읽은 바지만 역시 서울에 세거해야 권력층이 되는 모양이다.

지방 차별은 비단 21세기 현대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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