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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형선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또 한 권의 리뷰를 올린다
사실 끝까지 다 읽지는 않았다
책을 읽을 때 제일 난감한 경우는 과연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다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야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지만) 쉽게 던져 버리지만, 같은 얘기를 계속 동어반복 하는 책을 대할 때는 참 고민스럽다
앞에 다 나온 얘긴데,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시 또 다른 얘기도 있을지 모르니까 성실하게 읽어야 하는데, 뭐 이런 식의 고민들
책을 열심히 읽는가, 혹은 그렇지 않는가는 내가 저자의 생각에 얼마나 동의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어려운 책은 읽기 힘들어서 대충 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저자의 생각에 일단 거부감이 들면 그 때부터 글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미셸 푸코에 관한 책을 읽을 때 굉장히 어려웠지만, 워낙 감동스러워 (여기서 감동이란 소설 읽고 느끼는 그런 감동이 아니라, 저자의 날카로운 관계 분석에 경의를 표하는 것) 자를 들고 밑줄 그어 가며 열심히 읽었다
연습장에다 책 내용 기록해 가며 교과서 읽듯 여러 번 읽었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책은 어쩔 수 없이 대충 읽게 된다
끝까지 읽는 건 대부분 저자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리뷰에서처럼 이 책의 주제는 1장에 압축되어 있다
1장은 퍽 훌륭하다
보보가 어떤 개념인지 쉽지만 정확하게 밝혀낸다
어떤 책인지 궁금한데 시간이 없는 분은 1장만 읽어도 충분하겠다
그렇지만 저자의 서술 능력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워낙 같은 얘기를 반복하다 보니 좀 지루하다는 것 뿐
아마도 보보라는 게 어떤 개념인지를 여러 예를 통해 제시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저자 역시 통계보다는 주로 자신이 수집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술한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책들은 근거 대기에 어쩜 그렇게 철저한지, 단순히 자기 주장만 대충 늘어 놓는 책임없는 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약간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주장을 펼칠 때는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그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를 분명히 대야 한다 과학적으로는 밝힐 수 없는 신비한 것이다는 식의 말뿐인 현학적인 논리들, 적어도 의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간단히 말하면 보보란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로, 세속적인 성공을 지향하면서도 드러내 놓고 즐기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부르주아의 특징인 물질적인 성공과 보헤미안의 특징인 자유로움, 혹은 정신적인 가치의 추구가 합해져 오늘날 보보를 탄생시켰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데로 보보스란 바로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를 지칭한다
요즘 유행하는 웰빙도 바로 보보스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다
유기농만 먹고 요가를 즐기고 오지 체험을 하는 식의 라이프 스타일 말이다
저자의 미덕은 본인이 보보이면서 오늘날의 지배 이념이라고 정의하면서도, 그 속물적인 근성까지 함께 밝힘으로써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속물적인 근성"이란 이런 것이다
휴가를 떠나도 리조트 이런 데로 가면 부르주아다
보보스는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혹은 인도 등의 오지로 떠나야 한다
단순히 여행 자체를 즐기면 안 되고, 극한 체험을 통해 뭔가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얻으려고 해야 보보답다
물건을 사도 너무 새 것을 사면 부르주아처럼 보이니까, 적당히 낡은 느낌을 주는 걸 골라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새 것을 헌 것처럼 보이게 파손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생긴다)
과거 부르주아 시대에 권력은 가문에서 나왔다
집안이 좋으면 대부분 출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교육의 시대다
아이비 리그의 대학들은 이제 좋은 가문의 자제들을 받아 들이는 대신, SAT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우수한 학생을 선호한다
(저자는 이 변화야 말로 미국을 보다 강하게 만든 핵심이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학벌 지상주의 내지는 엄청난 교육열도 반드시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과거 미국을 이끈 WASP 계층의 힘이 혈통, 재산, 군사적 힘 등에서 나왔다면 현제 미국의 지배 계층을 결정하는 요소는 대학, 학위, 사회적 경력, 부모의 직업 등이라고 한다
(강남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시대적 대세인 모양이다)
재밌는 일화 하나
어떤 이가 영국 작은 마을의 대학을 나왔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가 보보스일 경우 그 대학은 이튼 스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영국으로 쫒겨 가서 대학 생활을 했다면, 그가 보보스일 경우 로즈 장학생이라는 걸 은근히 암시하는 말 (클린턴처럼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면 옥스퍼드에 유학 갈 수 있다)
이처럼 보보스는 자기가 성취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나, 남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신적 가치를 높힌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인지는 모르겠는데, 배낭 여행 갔을 때 두 여학생이 자기들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닌다고 소개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 다 서울대 법대생이었음)
미국에서 혼전임신이 늘고 마약이 판을 치는 등, 어찌보면 자유롭고 어찌보면 타락한 문화가 난무했던 까닭은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보헤미안 문화 탓이었다고 한다
이제 보보들은 과거 보헤미안의 무절제한 자유를 거부한다
대신 그들은 부르주아처럼 종교적, 혹은 도덕적 규범으로 자신들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위해서 절제한다
혼외정사를 안 하는 건 교회에서 가정에 충실하라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에이즈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고, 담배를 안 피우는 것도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에 나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도덕적, 종교적 규제가 수반되면 무조건 거부하고, 아무리 나쁜 일도 정신적 영적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반드시 한다
그들을 규제하는 게 사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미국은 다른 어느 세대 보다도 금욕적이고 청교도적이라고 한다
한 때 자유로움, 창의성, 모험 정신 등이 도덕, 종교, 근면함 등 과거 덕목들 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과거란 무조건 고리타분하고 잘못된 것이고, 특히 전통이란 거부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세대가 내세우는 가치나 이념 역시 하나의 트렌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게 요즘은 말 자체의 격이 떨어져 버린 바로 그 웰빙 아니겠는가!!
(광고에 넘쳐 나는 그 놈의 웰빙 홍수를 보면 자본주의 시대는 이념도 판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사람이 쓴 미국 문화 탐방기 등을 읽지 않게 됐다
사실 나는 미국 문화에 대해 동경이 강한 편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인권이나 사회적인 분위기 등이 우리보다 성숙했다고 생각했다) 그 까닭은 미국을 소개하는 책자들 때문이었다
미국 사회를 분석하는 책들은 대체적으로 감탄하고 그 우월성을 우리에게 훈계하는 식이다
비판하는 책들은 너무나 도덕적인 기준을 들이대며, 미국은 사실 타락한 자본주의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웃는지라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미국인이 직접 쓴 미국 사회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보다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요즘 나의 결론은 민족성이 나빠서, 혹은 훌륭해서라는 식의 관점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의 축적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시민 의식의 성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미국 역시 우리와 비슷한 시행 절차를 먼저 겪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미국은 이러지 않는데 우리는 이게 뭐냐, 혹은 미국 같으면 안 그런다 식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