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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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

그 거대한 영역을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집어 넣을지, 저자의 능력을 호기심 있게 지켜 보기로 했다

5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 때문에 일단 독서 계획을 세운 후 책을 펼쳤다

 

첫 이야기는 스케일 크게 우주의 출발부터 시작한다

우주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가장 훌륭한 장소인 것 같다

사는 데 별 도움도 안 되는 일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다는 불평도 많지만, 일상과 동떨어진 저 먼 곳의 세계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은, 인간의 놀라운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특히 물리학자야 말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왕성한, 제일 감수성 풍부한 족속이란 생각이 든다

원자를 넘어서 쿼크라는 단위까지 파고드는 그들의 집념과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과학에 흥미가 없던 내가 그나마 생물학을 택한 이유는, 그래도 생물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원자나 물질들은 상상력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나는 호기심이 썩 많지 않은 모양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제목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주의 출발부터 시작해 마지막은 인류의 탄생을 끝이 난다

과학 에세이들은 어려운 것 같지만, 실상은 재밌는 얘기들이다

왜냐면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질을 밝혀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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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이승환 옮김 / 김영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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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경제학 까페"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경제 에세이다

오래 전에 추천받은 책인데 이제서야 읽는다

그 때가 대학 막 입학했을 때니까, 벌써 10여년 가까이 된 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서점 한 구석을 차지하는 걸 보면, 아직도 빛이 바래지 않는 좋은 책인 것 같다

원저는 1989년에 나온 것이라, 러시아 대신 소련이 나오고 공산주의의 미래에 대한 예측도 들어 있으며 주로 레이건 시대 얘기다

(아버지 부시도 부통령으로 등장한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지만, 애덤 스미스부터 시작해 훌륭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여전히 우리 생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제목처럼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흔히 경제학은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저자도 지적했지만 경제에 대해 그렇게 잘 안다면 돈을 한 번 벌어보라는 비웃음을 당하기 십상이다

불행히도 웃음거리를 모면할 수 있는 경제학자는 리카도와 케인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학문적으로는 뛰어난 업적을 쌓은 학자들도 실제 경제 행위에 있어서는 이윤을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이란 돈 벌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 정책을 세우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부동산 투기를 연구하는 게 빠를 것이다

경제와 경영은 다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되는 학문이라 비웃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주위의 모든 정책들은 바로 이 석학들의 이론을 도입한 것이다

그들의 위대한 이론에도 불구하고 늘 경제가 휘청거리는 원인을, 경제학자들은 정치가에게서 찾는다

정치가들이 경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내가 빵을 먹는 것은 농부의 자비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그의 이기심 때문이므로 나는 농부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다"일 것이다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부터 식사하기 전 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고생한 농부 아저씨들에게 감사하라는 말을 듣고 자란 나로서는, 스미스의 주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렸을 때는 역시 서양 사람들은 개인주의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좀 커서 살펴 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스미스의 주장대로 농부는 자기 이익을 위해 곡식을 제배하고, 또 나는 내 이익을 위해 값을 지불하고 그것을 살 뿐이다

여기에 자비나 선행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생산 활동을 열심히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조절해 줄 거라 믿었다

지금이야 완전 시장 경제의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적어도 보호 무역으로 일관하던 18세기 영국에서는 센세이션한 얘기였을 것이다

 

사실 수입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정책은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당한 손해를 보는 셈이다

국산품을 애용하라는 애국심에 기댄 구호들을 지키다 보면, 소비자들은 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비싼 값에 사야 한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한 나라 경제 수준은 금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재화가 얼마나 되느냐로 측정된다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국산품이든 외제품이든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은 제품을 구입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관세 장벽이 허물어지고 재화의 유통이 자유로운 시대가 소비자에게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경제학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돈이 유동되면 될수록 모두가 부유해진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이런 예를 든다

링컨 대통령이 영국제 버버리 코트와 미국 코트 중 애국심을 생각해 미국 것을 산다

그러면 그 돈은 단지 미국 상인에게만 지불될 뿐이고, 링컨은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입게 된다

그런데 영국 코트를 사면 미국 달러를 지불하므로 영국 상인이 돈을 벌고, 그 상인은 은행에서 다시 영국돈으로 바꿀 것이므로 은행은 달러를 벌게 된다

은행이 이 달러를 다른 사업에 투자하면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링컨은 같은 값으로 더 좋은 코트를 입게 된다

이처럼 국산품을 사는 게 애국이 아니라, 질 좋은 물건을 낮은 가격에 사는 합리적인 행동이 결국 모두를 부유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우던 여러 이론들의 창안자들이 등장해 흥미로웠다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경제 시간에 졸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가장 어려웠던 이론이 비교우위론인데, 이것을 창안한 사람이 리카도다

스미스가 절대 우위론을 주장해 국내 제품보다 생산비가 적게 드는 외국 제품만 수입하라고 한 반면, 리카도는 비교 우위론을 내세워 모든 물품들은 다 교역의 대상이 되야 한다고 했다

경제학 시간에도 나온 유명한 로빈슨 크룻 얘기가 등장한다

로빈슨이 그의 충복 프라이데이와 무인도에 갇히는데, 로빈슨은 오두막을 짓고 물고기 잡는데 프라이데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스미스 이론을 적용하면 두 가지 다 프라이데이가 앞섬으로 로빈슨과 교역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리카도에 따르면, 로빈슨은 프라이데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두막 짓기 보다 물고기 잡는데 시간이 덜 걸리므로 로빈슨은 물고기만 잡고 프라이데이는 오두막만 지어 서로 교역하는 게 둘 다에게 유리하다

즉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적게 되는 일에 집중한 후 교역하는 쪽이 아예 무역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다

이 비교우위론은 꽤나 어려운 문제라(문제집에 나오면 자주 틀렸다) 리카도는 국회에서 정치가들을 이해시키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경제 시간에 배웠던 것들 중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용어는 "수정 자본주의"다

애덤 스미스-국부론, 케인스-수정 자본주의, 이런 식으로 외웠던 것 같다

케인스는 한계 효용으로 유명한 마셜의 제자인데, 뛰어난 천재였다고 한다

19세기만 해도 전문화가 덜 된 시점이라 케인스는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여러 학문 중 하나로 경제학을 택했다

그는 애덤 스미스의 완전 방임주의가 내포한 모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라는 중재자 내지는 구원자를 등장시킨다

즉 불경기가 오면 수요를 촉진시키기 위해 공공 사업 등을 통해 정부가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케인스의 조언을 받아 들인 정책이 루즈벨트의 그 유명한 뉴딜 정책이다

세계 공황 이후 미국은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창출하므로써 경기를 활성화 시켰다

오늘날도 케인스의 수정 자본주의는 각 정부의 기본 정책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런데 케인스는 정부 관료들의 이기심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빅토리아풍의 학자였던 케인스는 정부 관료들이 양심껏 정책을 수행하리가 믿었다

불행히도 양심적인 관료를 드물었다

기업과 결탁해 다수 소비자의 이익을 무시하는 정책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뷰캐넌을 위시한 공공학파가 등장한다

관료들 역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합리적인 인간에 불과하므로, 국가에 지나친 권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때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 "합리적인 무시"다

정부의 부정 행위를 감시하는데 100만원이 드는데 비해, 그 부정을 바로잡아 얻는 내 개인의 이익은 2원에 불과하다면 감시하는 것보다 부정을 눈감아 주는 게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다수보다 소수 이익집단이 언제나 로비에 성공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소수 이익집단은 정책이 시행될 경우 얻게 될 혜택을 나눠 가질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돌아올 몫도 커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끊임없이 정치가를 어르고 달래면서 수억원을 들여 로비를 펼친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정부는 특별히 도덕적이지도, 악하지도 않은 그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정부에 지나친 기대를 건 케인스의 이론은 어느 정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불경기를 타개해야 할까?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량을 조절하라고 제안한다

불경기가 되서 돈이 안 돌면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하므로써 민간의 통화량을 늘린다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유동성을 원치 않으므로 소비재 투자재를 구입할 것이다

반면 호경기가 되서 돈이 지나치제 많이 유통되면 중앙은행은 채권을 매각해 통화량을 줄인다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유동성을 유지하길 원하므로 사람들은 소비를 줄일 것이다

프리드먼은 정부 대신 통화량 조절을 통한 중앙은행의 조절을 강조했다

 

또다른 재밌는 개념으로는 마셜의 "한계효용"과 베블런의 "현시적 소비"가 있다

한계효용이란 예를 들어 요플레 한 개가 1000원의 만족감을 준다면 두 개는 9백원, 세 개는 6백원, 네 개는 300원, 이런 식으로 계속 떨어질 것이다

요플레 가격이 310원이라면 세 개를 사는 게 합리적이다

만약 네 개를 사면 310원을 지불하는데 비해, 한계효용은 300원이므로 10원의 손해를 본다

이처럼 소비자는 한계효용과 한계비용, 즉 가격을 비교하면서 사므로 값을 내리면 수요가 늘고, 값을 올리면 수요가 줄게 된다

이것이 유명한 수요의 법칙이다

또 만약 대체제가 있거나 의료처럼 가격에 비해 수요가 비탄력적인 분야는 얘기가 달라진다

 

베블런은 욕구(want)와 필요(need)를 구분했는데, 유한 계급의 경우 보이기 위한 현시적 소비와 레져를 즐긴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돈이 있으므로 남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필요 이상의 돈을 지불한다는 얘기다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를 고가로 구입하는 이유는 다른 청바지에 비해 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표가 주는 네임 벨류 때문에 비싸게 산다

"빽튜더 퓨처"를 보면 1950년대 소녀가 미래에서 온 소년의 이름을 캘빈으로 추측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지 뒤에 캘빈 클라인 로고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비싼 소비를 부추긴다

아마도 19세기의 천재 경제학자들에게 광고 효과까지 고려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여러 경제학자들의 빛나는 이론들을 읽으면서 경제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인류 복지를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임을 느낄 수 있었다

경제학자들이 이론만 늘어 놓을 뿐 제대로 된 예측을 한 적이 없다는 불평은 현대의 불확실성에 비추면 무리한 비판일 것이다

저자도 지적한 바와 같이 시대는 급변하고 있으므로 부모는 자식에게 확실성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대신,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해 왔고, 과거보다 살기 좋아진 것만은 확실하다

(비록 정신적으로는 복잡해졌다 할지라도 말이다)

인간의 이윤 추구 동기를 무시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공산주의 국가의 해체로 완전히 실패했고, 인구 폭발로 인한 식량난을 우려했던 멜서스의 인구론도 틀렸음이 입증됐다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다듬어져, 또 정치가들이 그것을 정책에 잘 반영하여 조금씩 더 나아지는 일상을 기대해 본다

 

경제학의 기본 이론에 대해 풍부한 사례와 설명을 통해 자세히 기술되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경제학자들에 대한 위트 넘치는 비판도 서슴치 않아 읽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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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빈센트 - 행복한 책꽂이 03
박홍규 지음 / 소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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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라면 그 강렬한 색체와 더불어 광기서린 삶으로 더욱 유명한 화가다

그 만큼 유명한 화가로는 겨우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피카소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가 이렇게 유명해진 것은 그림도 그림이지만, 살아 생전에는 단 한 장의 그림 밖에 못 팔았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는데 죽고 난 후 엄청난 평가를 받았다는 극적인 과정에 있을 것이다

특히 그는 예술가의 광기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평생 가난했고 인정받지 못했으며 자신의 귀를 자를 정도로 광기에 휩싸였고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결국은 권총으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800여통의 편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의 삶은 더욱 소상히 알려질 수 있었다

 

박홍규는 평전을 쓸 때 주류의 인식과 다른 관점을 갖는데, 상당히 신선한 면이 있다

무엇보다 위인들을 신격화 시키거나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하는 태도가 마음에 든다

"까뮈를 위한 변명"에서 보여 준 것처럼 그는 고흐 역시 우리 가까운 곳으로 데려 오고 싶어 한다

고흐는 절대 광기에 휩싸인 삶을 산 게 아니었으며, 다만 열심히 살려고 애썼을 뿐이다

고흐를 "내 친구"라고 명명한 것은 고흐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신비주의를 걷어 버린 저자의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지나치게 주류 인식에 대해 반발한다는 느낌도 없지는 않다

 

고흐의 삶을 살펴 보면 의외로 성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해 16세부터 숙부의 화랑에서 근무한다

학교 성적이 꽤 좋은 편이었으나, 자기 자신에게 침잠하길 좋아했던 고흐의 적성에는 잘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 독서를 열심히 한다

저자는 고흐의 독서 목록을 여러 차례 인용하는데, 의외로 수준있는 책들이 많아서 놀랬다

그리는 일 말고 별다른 일이 없었던 고흐는 독서와 그림 그리는 일을 매일 규칙적으로 행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가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직업으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고흐가 정말 그림을 직업으로 생각했다면, 좌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붓을 꺽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관찰하는 자연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추상은 분명하게 거부했다

그런 이유로 가장 존경했던 화가도 다름아닌 농부의 화가 밀레였다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노동자 계층에 대한 그의 애정이다

전도사가 되어 광산촌으로 파견된 얘기는 널리 알려졌다

거기서 처음 습작을 시작했고 "감자 먹는 사람들" 등을 그렸다

고흐는 이 하층민들에 대한 애정을 평생 유지했는데,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 그의 애정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고흐는 다소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비사교적이라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유전성 간질 때문에 가끔 발작을 하기도 했으며 외모가 특이해 호감을 사기 어려웠다

(자화상을 보면 그렇게 특이한 것도 아닌 듯 한데...)

그는 얼마 안 되는 월급까지 광부들을 위해 썼지만, 결국 아무런 감정적 공감도 얻지 못한 채 쓸쓸하게 광산촌을 떠나야 했다

기독교의 권위주의와 교조주의를 비판했던 고흐는 전도사직에서 곧 해임됐다

 

고흐의 일생 중 제일 유명한 사건은 고갱과의 공동 생활일 것이다

저자는 고갱을 거짓말 잘 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정의했는데, 고흐가 미쳤다는 강력한 증거가 바로 고흐의 자서전이라면서 그 부당함을 얘기한다

고갱 전기 작가들은 뭐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주식 중계인이었다는 전적에 비춰 보면 고흐보다는 세속적 이익에 더 밝았을 것 같기는 하다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었던 고흐는 고갱의 입주를 학수고대 한다

그는 여러 화가들에게 의사타진을 했는데 그림 한 점 못 파는 이 내성적인 화가의 청에 응할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고갱이 오겠다고 승낙했으므로 고흐는 꿈에 부푼다

당시 고흐는 아를에 정착한 후 커피와 압셍트에 완전히 중독되어 무절제한 삶을 살고 있었다

고흐는 고갱이 자기 삶을 바로잡아 줄 거라 믿었다

 

저자는 꼭 고갱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고흐와 함께 지낸다는 건 어려운 일일 거라 말한다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던 동생 테오마저 고흐와 함께 산 2년 동안 몹시 괴로워했다

그들이 평생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800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애착 관계를 유지했다고 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흐와 고갱의 공동체 생활비를 테오가 지불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는 고갱도 다소 뻔뻔한 것 같다

테오는 화가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가엾은 형을 위해 고갱에게까지 생활비를 대 준 것일까?

어쨌든 형에 대한 테오의 헌신은 놀랍기 그지 없다

화상이었던 테오는 당시 비주류였던 인상파 그림들을 사 모아 고객에게 팔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는 형의 예술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동안 형의 생활비를 댔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

더구나 자신이 결혼한 후에도 형의 생계를 책임질 정도였다

 

고흐는 평생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한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 눈물나는 사연이 있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다

내가 여자보다 그림을 더 사랑하긴 하지만, 서른 다섯이나 먹어 가족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산다는 게 얼마나 서글프고 쓸쓸한지 모르겠다...

아무리 고립을 좋아하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사랑을 주고 받는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고흐는, 생계를 꾸려 나갈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배척받는다

화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뮤즈가 있기 마련인데, 고흐는 평생 제대로 된 여자 모델 하나 없이 작업했다

평생을 여자들에게 둘러 싸였던 피카소를 생각하면 더욱 비교가 된다

유일하게 함께 살았던 여자는 하필 애가 다섯이나 딸린 창녀였다

심지어 처음 만났을 때조차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피임약이 없던 시절이라 창녀들은 끊임없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했다

고흐는 그녀에게 애정을 보였으나, 테오는 그녀와 계속 동거한다면 생활비를 끊겠다고 위협하고 그녀 역시 돈이 궁해지자 다시 창녀 생활로 돌아가길 원해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진다

고흐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창녀가 아니면 사랑을 나눌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저자는 고흐의 죽음을 자살로 보지 않는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죽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친 상태에서 자살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본다

진짜 사인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그림이 미친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보는 것에는 동의한다

특히 죽기 직전에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의 경우 그림에 광기가 서려 있다고 해석하는데, 저자는 단호히 주류 해석을 거부한다

고흐는 정신 분열병이 아니었고, 단지 유전적 간질을 앓았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테오도 이 병으로 6개월 후 사망하고 그의 여동생도 죽었기 때문에 집안 내력일 뿐 특별히 고흐가 미쳤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고흐는 정상적이 삶을 살았다는 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그렇다면 고흐는 더욱 불행했을 것이다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속적인 즐거움도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림도 인정받았으면 좋겠고, 생계 걱정도 안 하고 살면 좋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었다

저자는 이 가엾은 화가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 "내 친구"라고 명명한다

고흐의 그림에서 상징성 대신 관람자의 느낌을 중시한 해석은 마음에 든다

"빈 의자" 등의 그림에서 어려운 상징을 뽑아 내기 보다는, 고갱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렸을 것이라는 소박한 해석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당대에는 형편없는 평가를 받다가 사후에 갑자기 유명해진 화가는 아주 드물다

(반대의 경우는 흔히 있다 생전에 높이 받들였으나 죽고 나서 가치가 하락한 경우 말이다)

르네상스의 대가들만 봐도 그림은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루벤스 같은 경우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유럽 왕실을 돌아 다니며 외교관 역할을 했을 정도다

고흐처럼 생전에는 철저히 무시되다가 사후에 갑자기 부각되는 건 아주 드문 경우다

그렇다면 결국 예술가 역시 살아 생전의 행복을 누리길 원할 것이다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술적 세계와 (즉 사회적 성공) 개인의 삶이 아름답게 조화되길 바란다

 

고흐의 가치가 잊혀지지 않는 것은 테오의 아내 수산나의 공이 크다

그는 1년 밖에 못 산 가엾은 남편 테오를 위해 고흐가 보낸 편지들과 그림을 수집한다

남편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즉 수산나가 괴팍한 시아주버니의 예술 세계를 이해했던 건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좀 삐딱하다)

수산나는 테오에게 보낸 800여통의 편지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 놀라운 집념을 보이고, 흩어진 고흐의 그림들을 열심히 수집해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

(고흐가 죽었을 당시 가족들은 그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테오가 모두 상속했다)

아들은 세계 각 미술관에 전시되야 한다는 어머니의 의견을 무시하고 한 데 모은 후 국가에 기증해 오늘날 반 고흐 미술관이 탄생했다

(상속세 문제 때문에 기부했다고 한다)

현명한 제수와 조카 덕에 우리는 편하게 앉아 이 위대한 화가의 일생을 살펴 볼 수 있다

적어도 가족 관계 측면에서는 고흐가 행복했음이 분명하다

살아 생전에는 동생의 지원을 받고, 죽어서는 동생 가족 덕분에 위대한 화가로 거듭났으니 말이다

 

광기 서린 예술혼이라는 부담스런 수식어 대신, 그림을 사랑하고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기 좋아했던 소박한 화가를 만나고 싶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

종이도 갱지를 사용해 좀 어둡긴 하지만 가벼워서 보기 편하다

대신 칼라 그림이 없어 약간 아쉽다

고흐의 훌륭한 그림들은 큰 도판으로 구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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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
윌리엄 골딩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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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뉴욕 3부작"에서 폴 오스터가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The Fly"라는 영화의 원작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결론은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책을 몇 장 읽을 때는 정말 괴로웠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라는데, 도대체 진지한 맛이 없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처럼 어린애들 난파당한 얘기를 그저 가볍게 스케치 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애들 이야기라서 그런지 사건 전개나 문장들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게 읽어 나가다가 해설을 먼저 봤는데, 역시 내 이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역자의 해설이 없었다면 (그런데 이 역자는 "호밀밭의 파수꾼"도 번역했다 나는 이 사람이 번역한 책을 읽었는데 솔직히 번역 자체는 아주 매끄럽지만은 않다), 나는 이 위대한 우화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만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니라, 윌리엄 골딩이 영미 문학권의 가장 중요한 작가임은 분명하나, 그것은 지식인 계층에 한정되어 있을 만큼 일반인에게는 난해하다고 한다

문장이나 작품 구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가 비유로 사용하는 장치들의 상징성을 일반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여기 등장하는 소라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패각 민주 정치를 의미한다고 한다

어설프게 대의 민주주의를 표명한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평론가들의 해설이 없으면 정확한 의미 파악은 힘들다

 

이 소설은 골딩의 첫 데뷔작인데 (원래 그는 고대 영시를 연구했다고 한다) 처녀작이 노벨상 수상작으로 결정될 만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학교 교사였던 골딩은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자연 상태로 돌아가면 자유를 만끽하며 착한 인간의 본성대로 살 것이라 믿었던 루소나, 어린 아이의 마음은 백지와 같다던 로크의 말과는 달리, 인간의 본성은 사실 폭력적이고 악하다는 것이다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잔혹성에 치를 떨 것이다

또한 원래 인간은 도덕적이고 착한 존재라는 당위성에도 의혹을 품는 게 당연하다

골딩은 인간이 이성적이고 도덕적이며 합리적인 존재라는 신화를 깨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산호섬"이라는 소설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산호섬"의 대강의 줄거리를 살펴 보면, 영국 소년들이 어떤 섬에 표류되는데 식인종들에게 민주주의를 심어 주고 기독교를 전파해 그들을 문명인으로 교화시킬 만큼 훌륭하게 대영제국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 대영제국 국민이라는 타이틀 만큼 편견 가득한 것도 드물 것이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토착인들을 개화시킨다는 환상에 찬 영국인들은, 자신들을 합리적인 근대인으로 보고 토착인들을 야만인으로 생각했다

영국인이었던 골딩은 이 어리석은 환상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산호섬"에서 멋지게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잭과 랠프라는 인물을 똑같이 자기 소설에도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야만인으로 변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인도에 처음 표류했을 때, 잭은 당당하게 "우리는 영국 시민들이야,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구조될 무렵, 형편없는 야만인으로 변해 있는 그들을 보고 해군 장교는 한심하단 듯 되뇌인다

"너희가 영국 소년들이라면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줬어야 하는데..."

이 말이야 말로 영국 시민의 합리성에 찬사를 보내는 "산호섬"의 저자에게 보내는 일갈일 것이다

 

이 소설의 두 축은 폭력적 권위주의와 합리적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잭과 랠프이다

소라를 발견한 뒤 그것을 불어 섬에 표류된 아이들을 불러 모은 랠프는 대장으로 선출된다

말하자면 합법적인 우두머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성가대의 대장이었던 잭은 투표로 뽑힌 랠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표류되기 전부터 성가대원들을 지휘했었고, 호전적인 성격으로 섬에 표류된 이후에는 그들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다

그러나 성가대원이 다수가 아닌 상황에서 선거로 뽑힌 랠프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며 랠프의 지도력을 흔든다

표류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봉화를 피워 구조를 받는 일이다

랠프는 봉화 피우는 일에 아이들의 역량을 집중하려고 한다

반면 잭은 자기가 잘 하는 멧돼지 사냥을 우선 순위에 둔다

사실 잭의 행동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랠프의 말대로 아무리 멧돼지 고기를 배터지게 먹는다고 해도, 구조되지 않으면 평생 섬에 갇혀 살아야 할 것이다

잭 역시 봉화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랠프의 지휘를 받아야 하고 또 자기가 잘 하는 것은 멧돼지 사냥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일에 매짆고 싶었을 것이다

랠프는 봉화를, 잭은 사냥을 외치며 결국 둘은 분열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독특한 캐릭터가 새끼 돼지다

새끼 돼지는 천식을 앓고 있는 뚱뚱이로, 외모 때문에 이름 대신 "새끼 돼지"라는 모욕적인 별명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이성과 좋은 머리를 지녔다

더군다나 그의 안경은 봉화를 피울 수 있는 발화점을 제공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문명 세계가 아닌 자연 상태에서, 체력이 약한 새끼 돼지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당한다

결국 그는 잭의 패거리에게 둘러싸여 로저라는 잔인한 아이가 굴린 바위에 맞아 끔찍한 죽음을 당한다

만약 그가 문명 사회에서 살았다면 머리가 좋기 때문에 출세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의 치명적인 약점인 천식이나 심한 근시 등도 살아가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자연 상태의 인간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발언권을 얻고 싶으면 소라를 집어 들고, 소라를 들고 있는 한 그 말을 제지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누구보다 신봉했던 새끼 돼지는, 자신의 안경을 강탈해 간 잭의 무리에게 소라를 들고 찾아갔다가 소라처럼 처참하게 으깨진다

이거야 말로 민주주의의 참담한 파괴가 아닌가

 

"넌 소라에 미쳤구나 누구에게나 발언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발상인 줄 알아? 이제 힘있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는 게 옳다는 사실을 너도 깨닫지 않았니? 이 따위 소라는 필요없다고!!"

잭은 민주주의의 비능률적임을 지적하고, 소수에 의한 다스림을 주장한다

사실 그가 능력있는 사람이란 합리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려운 상황이 되면 호전적인 사람이 주도권을 잡듯, 거칠고 폭력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그가 이 상황을 타개할 인물이며, 무리를 지배해야 한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잭의 폭력성을 지도력이라 착각하고 구조되기 위한 봉화는 버려둔 채, 그가 제공하는 멧돼지에 열광한다

잭과 그의 패거리들은 온 몸에 진흙을 바르므로써 부끄러움을 잊고 폭력성과 잔인함을 떳떳하게 드러낸다

광기에 휩싸인 춤을 추는 동안, 그들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가엾은 동료 사이먼을 짐승으로 착각해 죽이고 만다

그가 동료임을 곧 알아차렸으나, 한 번 광기에 빠진 이들은 계속 피를 원하고 결국 멧돼지 사냥하듯 끔찍하게 때려 죽이고 만다

 

이 사이먼이야 말로 작가의 주제 정신이 응집된 인물이다

섬세한 감성을 지녔으나 새끼 돼지처럼 합리적인 사이먼은, 아이들을 공격할 짐승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착각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혼자 숲으로 들어간다

(잭은 짐승의 실체를 믿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역시나 짐승의 실체는 낙하하다 바위에 걸려 죽은 조종사의 시체였다

그는 이 사실을 알려 주려 잭의 무리에게 달려 갔다가 어이없이 짐승으로 오인되어 죽은 것이다

사이먼은 잭이 사냥한 멧돼지의 시체에 달라붙은 파리떼를 본다

파리떼의 대왕은 사이먼에게 속삭인다

"너희들이 이렇게 된 건 모두 나 때문이다, 나는 너희의 일부다"

"나"라는 것은 인간의 파괴적이고 잔인한 본성을 말하는 것이리라

 

일반적인 표류기라면, 특출난 능력을 지닌 착하고 합리적인 지도자가 선출되어 그 사람을 중심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기 마련인데, "파리대왕"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우리의 숨겨진 본성을 그려낸다

랠프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지도자로 나오지만, 그는 힘이 없고 또 천성적인 도덕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폭력 세력을 제압할 능력도 없고, 무리에게 고기를 제공할 수도 없으며, 그의 핵심 브레인이던 새끼 돼지를 같이 놀리는 평범한 소년일 뿐이다

랠프의 캐릭터만 봐도 이 소설의 치밀함을 금방 알 수 있다

우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소설은 절대 어렵거나 복잡하게 말하지 않는다

야만 상태에서 인간의 합리성과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소년들 수준에서 쉽게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상징성을 제대로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리 훌륭한 주제를 담은 우화라 할지라도 그 묘사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권선징악식의 진부한 양식을 벗어날 수 없다는 역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동의하는 바다

 

이문열의 단편 중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원시 시대의 평등한 부족 사회에서 권력 구조가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그린 소설이다

그 때도 고개를 끄덕이며 작가의 관찰력에 감탄했는데, 이 소설과 비교해 보면 지나치게 많은 것을 독자에게 가르치려 하므로써 해석의 여지가 적다는 느낌이 든다

역자는 본질적인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개인적인 경험을 배제시키고 일부러 현실과 가장 먼 설정을 따르는 골딩의 치열한 작가 정신을 높이 샀는데,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 탁월함이 바로 그런 데서 나와지 않나 싶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 날마다 부딪치는 주변의 현실에만 골몰하는 우리나라 작가들에 대한 역자의 아쉬움을 이해하는 바다

인간 내부에 숨어 있는 잔인함과 폭력성의 실체에 대한 위대한 작품을 읽고 싶다면, 꼭 한 번 일독하라 권하고 싶다

더불어 역자의 작품평도 나 같은 평범한 독자의 이해력을 높히는데 훌륭한 기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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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2 - 1994.11 - 1995.11
장정일 지음 / 미학사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나를 슬프게 한 책이다

한 번 집은 책은 끝까지 읽는 편인데  (마음에 안 드는 책은 욕하려고라도 읽는다), 절반 읽고 손을 놔 버렸다

내가 거의 읽지 않은 책들이야 공감할 수가 없었다

다른 책 에세이들은 감상문 외에도 책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이 많이 추가되어 공감할 때가 많았는데, 장정일은 평범한 독자에게는 불친절 하다

읽다가 그만 둔, 내 독서 역사에 아주 드문 케이스가 되고 말았다

의미없이 읽어가는 문장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의 사색적인 감상문들이 좀처럼 감동을 주지 않았다

대신 꽤나 책을 많이 읽는다는 생각은 했다

1년간 쓴 감상문을 세어 보니 영화 몇 편까지 합해서 대략 일주일에 세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사실 이 정도면 직업이 글 쓰는 사람이라면 아주 많이 읽는 건 아니다

예전에 일본의 한 평론가가 하루에 1권 꼴로 한 달이면 30권을 읽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글 쓰는 게 직업이라면, 즉 직장을 따로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독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어려운 책은 예외겠지만, 글쓰기를 직업으로 한다면 자기 일을 위해서라도 이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다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글재주를 타고 난 위대한 작가들이 아닌 이상 우리 모두는 글을 잘 쓰기 위해 끊임없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심지어 차에서는 오디오북을 듣고 헬스 클럽에서도 책을 읽는다고 한다

책 읽는데 이 정도의 시간 투자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일 주일에 세 권은 읽는다

직장에서 10시간을 근무하고 남는 시간에 이렇게 읽는다

장정일처럼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독서에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사실 하루 종일 책을 읽을 수 있는 그의 처지가 부럽기도 했다

물론 창작이라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밥을 먹는다는 사실은 싫지만,  솔직히 독서하는 게 직업인 사람은 부럽다

그래서 도서관 사서가 제일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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