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1
알베르 까뮈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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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고 하면 일단 겁부터 집어 먹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베스트셀러야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대목이 나오면, 형편없는 책이라고 깍아 내려도 별 문제 없지만, 고전이 재미없으면 그건 곧 나의 독서 수준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일이라, 지루하고 하품이 나와도 기를 쓰고 읽게 된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문호들의 걸작들을 접할 때는 더욱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까뮈의 "이방인"은 아주 평이하고 쉬운 문체로 쓰여졌고 분량도 200페이지가 채 못 된다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짧은 중편 소설이다

부조리의 대명사 까뮈가 이렇게 쉬운 소설을 쓰다니, 훌륭한 소설이란 어렵게 쓴다와 등식이 아님을 새삼스레 느꼈다

(오히려 까뮈를 해석하는 비평서들이 더 어렵다 박홍규의 말처럼 원래 평론가란 쉬운 걸 어렵게 설명해야 먹고 사는 직업인 모양이다)

 

이방인의 줄거리는 워낙 유명해 익히 알고 있었다

햇빛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태양이 눈부셔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는 뫼르소의 심리 상태가 길게 늘어질 줄 알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사변적인 독백 같은 건 없다

오히려 깔끔하고 담백한 느낌이다

박홍규는 햇빛 때문에 죽은 불쌍한 아랍인에 대해서는 일말의 논평도 없다고 까뮈의 식민 지배자 근성을 비판하지만, 여기서 아랍인이란 아무 의미도 없는 얘기다

그는 다만 누군가를 죽였을 뿐이고, 배경이 알제리다 보니 거기 사는 아랍인이 희생자가 됐을 뿐이다

 

뫼르소라는 독특한 느낌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양로원에서 죽은 뒤,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고 관리인과 담배를 피웠으며 밀크 커피도 얻어 마셨다

(나중에 검사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어머니 장례식에서 밀크 커피는 사양해야 마땅하다고 논평했는데, 마치 밀크 커피가 술과 비슷하게 취급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우스웠다)

더구나 그 다음 날 여자 친구인 마리와 정사를 나누고 영화를 보러 갔다

담당 검사는 그들이 본 영화 프로그램까지 조사했는데, 비극도 아니고 하필이면 코미디 영화였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부모가 죽은 다음 날 코미디 영화를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럼 비극적인 영화를 보면 용서가 된단 말인가?)

 

사실 뫼르소의 살인이 완전히 우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느닷없이 지나가는 아랍인을 쏜 게 아니라, 나름대로의 상황 설명이 가능하다

뫼르소의 옆집에 레몽이라는 남자가 사는데, 아랍 여자의 생활비를 대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자기 몰래 딴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이에 격분한 레몽은 뫼르소에게 부탁해 거짓 편지를 써서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유혹한 후, 거기서 폭행을 가한다

뫼르소는 이 일로 경찰에까지 출두한다

레몽이 뫼르소와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아랍 여인의 오빠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레몽을 가격한다

가벼운 상처를 입은 레몽은 뫼르소에게 권총을 맡기는데, 그 무리 중 하나가 해변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괴로워 하던 뫼르소는 태양을 등지기 위해 아랍인에게 다가가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아랍인은 칼을 휘두르고 그는 권총을 발사한다

어찌 보면 정당 방위로 설명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뫼르소라는 남자가 자신의 일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설사 생명과 연관된 일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의 일인냥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아랍인이 칼을 휘둘러 권총을 발사했다는 주장 대신, 뫼르소는 햇빛이 너무 강렬해 자기도 모르게 쏘고 말았다는 어이없는 속마음을 얘기한다

사실 이런 충동은 살면서 가끔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햇빛에 아주 민감한데, 살인 충동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강렬한 햇빛을 피하지 못할 때는 자제력을 잃곤 한다

이건 단순히 태양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건 설사 이런 이유에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자신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데, 뫼르소는 자신에 대한 변호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삶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는 허무주의자인가?

파리 전근 명령을 거부할 정도로 변화를 싫어하긴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는 세상에 대해 무심하다

어머니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밀크 커피를 얻어 마신 것도 다만 자신이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슬프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이미 죽은 분을, 통곡한다고 살려 낼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는 사랑을 믿지도 않는 것 같다

마리가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지만, 또 결혼하자고 했을 때 선선히 승낙한다

어쩌면 그는 삶에 대한 기대감이 지나치게 낮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식민지 알제리에서 멋진 수도 파리로 옮기라는 제안을 거부하는 뫼르소를, 사장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어디에 있든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사는 건 어디서나 똑같은 거라고 되뇌이는 뫼르소는 삶에 대한 기대치가 거의 없다고 여겨진다

즉 어떤 선택을 하든 더 나이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고, (그러므로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고) 살기 위해 바둥거린다고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이 까뮈를 허무주의자로 오인하는 부분인 것 같다)

 

그래서 뫼르소는 상고를 거부하고 담담히 죽음을 맞는다

상고를 해서 이긴다 할지라도 영원히 사는 건 아니다

몇 십년 후에 죽으나 며칠 후에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또 그는 신부의 구원도 거절한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죽으면 내세가 있으므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신부의 논리를, 뫼르소는 비웃는다

그는 비록 얼마 안 가 죽을테지만, 당신보다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부르짖는다

 

만약 내가 사형 언도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뫼르소처럼 행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삶에 대한 희망은 더욱 놓치기 어려운 법이다

혹은 세속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영생이라도 얻어 보자고 종교에 매달리기 쉽다

그러나 뫼르소는 독방 안에서 어떻게 긴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고민할 따름이다

그는 세상을 통달한 사람은 아니지만 삶이라는 게 강렬한 애착 관계를 형성할 만한 건 못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랍인을 살해한 것과 어머니 죽음에 초연한 것을 연관짓는 검사의 논리는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아마도 검사는 피고가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는 악독한 성품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 어머니가 죽은 다음 날에도 섹스를 벌이는 놈 따위가 사람 하나 죽이는 게 뭐 어렵겠느냐, 이런 놈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으므로 사회가 죽여줘야 마땅하다는 논리였다

사실 주위를 둘러 보면 이런 어이없는 인과 관계가 자주 형성된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원인과 결과를 끼워 맞추길 좋아한다

그래야 재밌는 이야기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한 주부가 투신자살 하면, 얼마 전 그녀가 쌍거풀 수술이 잘못되서 비관했다는 이웃의 말이 나오는 순간 그녀는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희생된 불쌍한 여자로 전락한다

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외모 지상주의에 물들어 있는가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논평이 길게 이어진다

그래서 죽기 전 왜 죽는가를 밝히는 유서를 쓰는 모양이다

 

소설의 전개는 참으로 담백하고 가볍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감정의 과장이 없어 부담스럽지 않다

왜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는지, 애인 마리를 왜 사랑하지 않는지, 왜 아랍인을 쐈는지, 사형 선고 이후 왜 상고하지 않는지 등에 대한 장황한 설명없이 그저 담담하게 1인칭 시점으로 순간순간의 기분을 서술할 뿐이다

삶에 대한 애착이 부족한, 혹은 원래 세상이란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곳이란 것을 깨달은 한 젊은이의 의식의 흐름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허무주의에 빠지지도 않고, 세상을 통달한 것처럼 잘난 척 하지도 않으며 삶을 아주 포기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일상에 대한 기대가 적을 뿐이다

뫼르소가 옆집 친구의 어이없는 치정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타인이나 인생의 여러 사건들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의 낭비없이 단순하고 명료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조차 삶의 본질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알만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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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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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소설인지 자서전인지 구분이 안 간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오스터 역시 자기 얘기를 하면서도 허구적인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1인칭 시점을 즐겨 쓰는 그의 스타일 때문일까?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긴 하지만, 자기 얘기가 아닌 또 하나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빵 굽는 타자기"라는 제목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의미를 되새겨 보니 상당히 슬프다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슬픈 현실을 빗대는 말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야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되어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만 해도 10여 권이 넘는 인기 작가인데, 그에게도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처참한 과거가 있었던 모양이다

스티븐 킹 역시 "캐리"로 뜨기 전까지 고등학교 교사와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힘들게 생계를 유지한 전적이 있는데, 글로 생계를 유지하기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험난한 것 같다

데뷔작이 바로 인정받는 운 좋은 작가들에 비하면 불행하지만, 여전히 먹고 살기 위해 잡문들을 대량 생산해 내야 하는 가엾은 작가 예비군들에 비해서는 대단한 행운인지도 모른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능력은 전제 조건일 뿐이다

실력 있는 작가들이 편집자의 눈에 발탁되어 대중에게 읽혀지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오스터나 스티븐 킹 정도면 대단히 성공한 소설가들인데, 이들에게도 무명 시절은 혹독했으니 성공은 쉽게 움켜 쥘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닌 게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 오스터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사실은 작가 자신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뉴욕 3부작"에 등장한 팬쇼의 유조선 생활은 오스터 자신의 젊은 시절이었고, 파리 체류 역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탐정 소설을 쓰는 퀸이라는 캐릭터도 실은 오스터 자신이다

그의 소설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미친듯이 책을 읽고 현실을 떠나 고립된 삶을 즐기는 은둔자도 바로 오스터 자신의 모습이다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소설과 현실의 차이는 곧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현실 감각이 부족한 주인공이 운명적인 사람을 만난 후 곧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스터가 유명한 소설가로 성공하긴 했지만, 그건 순전히 피땀 어린 노력 탓이지, 그의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운명적인 구원자 덕은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 삶에 행복한 우연이란 흔히 찾아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컬럼비아 대학을 중퇴한 오스터는 파리로 건너가 번역일을 하며 책 읽기에 몰두한다

베트남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온 후 졸업한 그는, 유조선에서 식당일을 하면서 돈을 모은다

하루에 두 세시간만 일을 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야 하는 단조롭기 그지없는 생활이 그에게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인 삶이었다

노동 시간을 최소화하고 생계에 지장을 안 받으면서 책 읽는 시간을 최대화 시킬 수 있는 삶!!

(배에서의 생활은 "뉴욕 3부작"에서 거의 똑같이 묘사된다)

오스터의 소설을 읽다 보면, 풍부한 고전 인용에 깜짝 놀라게 되는데 그 왕성한 독서력이 그 배 안에서 완성된 모양이다

컬럼비아 대학 시절에도 그는 미친듯이 책을 읽었다고 쓴다

스티븐 킹도 지적했지만 훌륭한 소설을 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불타는 독서열인 것 같다

(킹은 트레드밀 위에서도 책을 읽는다!!)

 

졸업 후 좋은 번호를 추첨해 징집을 피한 오스터는 파리로 건너가 그 때부터 생계를 잇기 위한 비참한 삶을 산다

유조선에서 모은 돈이 바닥난 후 먹고 살기 위해 미친듯이 글을 써야 했다

그의 타자기는 훌륭한 작품을 쓰기 위한 창작의 도구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잡문을 대량 생산해 내야 하는 "빵 굽는 타자기"로 전락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서 그는 더욱 비참해진다

자기 혼자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무려 세 명의 입을 책임지게 됐으니 그 무력함과 막막함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있다

오스터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가 죽은 후 많은 유산을 상속해 글쓰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왜 그의 부모는 그를 돌봐 주지 않았을까?

독립하면 부모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는 그들의 사고방식 때문일까?

결국 오스터에게 많은 재산이 상속된 걸 보면, 달리 유산을 나눠 가질 사람도 없고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꽤 부자였던 모양인데 왜 아들이 세일즈맨으로까지 전락해 이혼하도록 방치해 둔 걸까?

부유한 아버지를 두고도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할 정도의 절대 가난을 겪어야 하는 그 시스템이 신기하다

 

글쓰기에 지친 오스터는 최후의 수단으로 야구 게임을 만들어 판다

그가 얼마나 야구를 좋아하는지 잘 드러나는 일화다

그런데 이 "액션 베이스볼"은 한 마디로 시대 착오적인 게임이다

보드 게임이 새롭게 유행하고 있긴 하지만,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 카드 게임을 판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는 카드 그림까지 직접 그리는 성의를 보이며 장난감 박람회에서 바이어들을 설득하지만 모욕만 듣는다

바이어들 앞에서 열심히 카드를 늘어 놓고 게임을 하지만, 몇 분 하지도 않고 나가라는 매몰찬 말을 들을 때 그 패배감과 수치심이라니!!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그의 첫 탐정 소설 "스퀴즈 플레이" 역시 편집자들로부터 수모를 선사한 애물단지였다

요즘 세상에 누가 탐정 소설을 읽느냐는 식이다

 

어쨌든 그는 성공했다

이혼 후 새로 결혼도 하고 쓰는 책마다 비상한 관심을 이끌어 내며 이 먼 한국땅에도 수많은 매니아들을 만들어 냈다

그는 스스로 현실 감각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것을 능력으로 채울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임이 틀림없다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글을 써야 하는 끔찍한 삶이 싫어 아마추어로 남기로 한 소심한 나에게, 소설가들의 치열한 삶은 늘 흥분을 불러 일으킨다

한 번에 이룬 것이 아니라 고통의 삶을 견뎌 낸 뒤 마침내 성취한 것들은, 객관적인 평가를 떠나서 훨씬 더 위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천재는 평범한 사람들의 질투를 받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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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h0903 2005-01-2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을 전부 설명하는건 쫌......-_-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 탐사와 산책 9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진욱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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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철학을,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아픈 사람의 육체적 고통을 없애 주는 게 의사의 몫이듯, 영혼의 문제로 괴로워 하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이 철학자의 몫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따지면 철학은 21세기의 죽은 학문이 아니라,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 가야 할 본질적인 학문이 될 것이다

인문학의 존재 의의에 대해 회의를 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왜 철학이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지 깨닫게 될테니까

 

드 보통은 스물 다섯의 나이로 사랑의 본질에 대해 경쾌하게 풀어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영어 제목은 Essay in Love, 참 소박하다) 철학 소설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위대한 철학자의 입을 빌어, 사랑을 비롯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철학자들의 이론이 현실에서 이렇게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하고 감탄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피부로 와닿는다

 

이 책에서 가장 흥분되는 발견은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라면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과 함께 (그 말도 본인이 한 게 아니라지만) 우민 정치에 희생되어 독배를 마신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몰랐다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나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한 채 그저 단순 지식의 나열 정도로만 인식됐다는 얘기다

(아마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이름이 주는 명성에만 관심이 있을 것이다)

저자의 설명을 들어 보면, 소크라테스는 자격 없는 다수의 비판을 두려워 하지 말고 철저한 논증을 통한 진리를 얻기 위해 애쓰라고 가르쳤다

상식적이라고 받아 들여지는 대부분의 명제들은, 사실 제대로 된 사유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우리는 신념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왜 옳은가를 증명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사유와 논증을 통해 옳다고 증명된 일에 대해, 다수가 비판한다면 그것은 무시해도 좋다

자격없는 대중의 비판을 두려워 하는 대신, 전문가의 통찰력은 늘 무서워 해야 한다

그가 어리석은 대중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의 사형 언도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논리적인 사유 과정 없이 그저 분위기에 휩싸여 잘못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신념은 틀렸고 자신은 옳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었다

 

집단에 속해 살면서 과연 다수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을 베짱이 있을까?

흔히 상식이라고 불리는 범위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나 주장을 할 경우, 끔찍한 비난과 따돌림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흔히 남과 대화할 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호의를 얻기 위해 애쓴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깊은 사색을 통해 옳다는 확신이 든다면 대중의 비판을 가치없는 것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예를 든다

올림픽에서 우승하기 위해 체력 단련을 하는 선수를 보고, 운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왜 저런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비웃겠지만, 전문가가 본다면 그의 훈련을 훌륭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자격없는 사람들의 근거없는 비난이 아니라,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의 평가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격언의 의미를 깨닫는 기분이다

 

쾌락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의 사상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윤리 시간에 배운 기억으로는 고통 대신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 사는 철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쾌락이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행복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돈이 있으면 행복해질 거라 믿지만, 실상 물질이 주는 쾌락은 미미하다

굶주림이나 추위 같은 기본적인 욕구들만 해결된다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옷을 입는다 해도 행복 지수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광고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사막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짚차 선전에서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은, 짚차 그 자체가 아니라 광활한 사막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다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면서 행복하게 음료수를 마시는 광고에서 얻고 싶은 것은 음료수가 아니라 우정일 것이다

사람들은 큰 집과 멋진 차를 원하지만, 실상 진짜 원하는 것은 그것들을 소유하므로써 타인에게 받게 될 부러움과 호의적인 태도이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결정짓는 여러 감정들을 물질로 착각하고 있다고 힐난한다

그가 주장하는 행복의 3대 조건은 우정, 자유, 사색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존재 의의를 찾기 때문에 사랑이나 우정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대신, 누구와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충고한다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살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욕구도 인간의 본성이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샐러리맨들이 가장 원하는 덕목일지도 모른다)

상관의 명령에 따르는 대신 하고 싶은 일과 관심있는 분야에 몰두하는 삶을 꿈꿀 것이다

사색은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 왜 그런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불안을 다스리는 가장 큰 해결책은 바로 깊은 사색이다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편안함을 되찾을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충고는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더 갖기 위해 애쓴다고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인들에 비해 기본적인 욕구가 거의 충족된 상태에 사는지도 모른다

즉 불행할 까닭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진짜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필수 조건이 물질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쾌락주의라는 어감 속에는 물질에 대한 갈망이 들어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정신적 쾌락의 추구에는 실상 물질이 별 필요가 없다는 역설이 재밌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네로에게 죽임을 당한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해답을 준다

세네카는 우리가 분노하는 까닭을,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근거없는 낙관에 있다고 갈파한다

리모컨이 제자리에 없으면 갑자기 화가 치민다

그렇지만 왜 꼭 리모컨이 제자리에 있을 거라 기대한단 말인가?

오히려 지정된 단 하나의 장소에 존재할 확률이 훨씬 낮다

세네카는 운명의 여신이 얼마나 무심한가를 강조한다

어떤 일이 되어가는데 있어 인간의 행동은 그저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운명의 여신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그는 미래의 불행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늘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혹시 내가 왕의 미움을 받아 낮은 신분으로 떨어진다면, 내 운명에 대해 분노할 것이 아니라 원래 낮은 신분인 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현명하다

세네카는 이를 두고 체념의 기술이라 부른다

 

정신에 비해 열등하다고 믿는 육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몽테뉴나 (그가 쓴 "수상록"의 어감으로는 정신의 가치를 중시했을 것 같은데 의외다), 삶의 고통을 무시하는 대신 극복함으로써 더 높은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고 역설한 니체의 철학도 가슴에 와 닿는다

생의 의지로 요약되는 생철학의 대가 니체는, 잘 될 거라는 위안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를 혐오했다

그래서 기독교와 알콜을 거부했다

기독교는 몰라도 알콜은 담배와 더불어 철학자에게 필수품일 것 같은데, 니체가 술을 멀리 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고통을 직시해야 보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데, 기독교와 술은 근거없는 희망을 주므로써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절름발이가 착할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니체의 독설이 떠오른다

 

드 보통은 철학을 일상 생활로 끌어 들이는 놀라운 매력이 있다

혹시 난무하는 인생 지침서들 사이에서 수준있는 책을 원한다면, 반드시 이 책을 고르라고 권한다

(사실 그런 책의 저자들이 남에게 이렇게 살아라고 말할 수준이 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더불어 위대한 여섯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드 보통처럼 철학을 우리 삶 가까이로 끌어들일 좋은 철학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철학이야 말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학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철학자를 키워내는 학과를 폐지한다고 드는 요즘의 세태가 슬프기 그지없다

이제 철학자들도 세속의 삶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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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행복한 중독 - 아이다에서 서푼짜리 오페라까지
이용숙 지음 / 예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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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단 분량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책이다

오페라 입문서로서는 부담스러운 500페이지 짜리 책이라 선뜻 손이 안 간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아주 평이하고 (사실 그래서 좀 불만이다), 삽입된 많은 사진들이 올 컬러라 보는 즐거움이 있다

또 100편의 오페라를 소개한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출판된 책이라, 새로운 오페라를 알아 가는 즐거움이 있다

 

실제로 유명 오페라 공연을 본 적은 없다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극단이 연출하는 몇몇 오페라를 본 적은 있지만, 특별한 감동은 없었다

오히려 높게만 질러 대는 성악가들의 음색이 귀에 거슬린다고 느꼈을 정도다

연극에서도 느낀 거지만, 영화와는 다르게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전개가 선뜻 호감이 안 가는 장르였다

다시 오페라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예술의 세계에 대해 새롭게 눈뜬 것도 있지만, TV 매체의 힘이 크다

장예모가 연출하는 투란도트의 특별석 가격이 100만원인데, 일본인 관광객이 싹쓰리 했다는 식의 선정성 보도들 때문에 약간의 동경이 생겼다

대체 얼마나 훌륭한 무대인데 한 장에 100만원 씩이나 주고 가는 걸까?

문화적 허영심이 불쑥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조수미나 신영옥 등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월간 "객석"을 읽으면서 그녀들이 출연하는 오페라의 이름을 주어 듣기도 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기사는, 조수미가 밤의 여왕으로 출연했던 "마술피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신영옥은 "리골레토"의 질다 역에 자주 캐스팅 된다는 기사도 기억이 난다

그 외에 "나비 부인"이라던가, "아이다" 같은 오페라는 음악 시간에 비디오로 감상했다

그러니까 어디서 주어 들은 건 꽤 있었던 셈이다

 

예술의 세계란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말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오페라 입문서를 집어 들었다

집에 모셔다 놓은 클래식 CD 100 장 모음집 같은 엄청난 분량의 음악들을 선택하는 기준이 필요하기도 했다

뭘 좀 알아야 제대로 들릴 게 아닌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흔히 공연되는 오페라는 대략 2-30편인데, 실제로는 500 여편의 오페라가 공연된다고 한다

확실히 오페라는 서구 문화이고, 우리에게는 아직 대중적이지 않는 모양이다

저자는 100편의 오페라를 소개했는데, 다양한 오페라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워낙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소개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용은 부실하다

다음에는 좀 더 자세한 해설이 들어간 책을 읽어 봐야겠다

 

오페라는 연극과 달리 노래를 최우선으로 하는 장르인지라 줄거리가 황당무계한 것이 많다

비현실적이고 단조롭고 엉뚱한 내용들이 자주 등장한다

모짜르트의 "마술피리"는 자라스트로가 데리고 가 버린 딸을 밤의 여왕이 찾는 내용이고, "사랑의 묘약"은 사랑에 빠지는 약을 파는 약장수 이야기다

"카르멘"은 집시 이야기고, "후궁 탈출"은 터키로 끌려 간 연인을 찾아 오는 내용이다

줄거리가 간단하고 비슷한 게 많아 100편이나 되는 오페라를 한꺼번에 읽다 보니, 그 내용이 그것인 듯한 착각이 생긴다

솔직히 제대로 구분을 못하겠다

아무래도 CD로 음악을 듣고, 직접 오페라 공연장을 찾아 가야 할 모양이다

 

인상적인 내용은 오페라가 18-19세기에 대중 매체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오페라라고 하면, 클래식 음악과 더불어 대중 문화와 구별되는 고급 문화로 인식되는데, 과거에는 서민들의 오락거리였던 모양이다

지겹도록 먹고, 뒹굴뒹굴 놀다가 더 이상 할 게 없으면 오페라 극장으로 간다는 괴테의 말이 당시 오페라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그러므로 오페라 작곡가들 역시 가능하면 대중의 취향에 맞춰 원전을 재밌게 각색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

오페라의 대가 푸치니의 경우,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사람이라, 대중의 속성을 금방 파악하고 최고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TV나 출판물이 없던 시절, 돈을 가진 부르주아 시민들이 특별한 오락거리를 갖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귀족들은 사냥을 최고의 오락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오페라는 경제력과 함께 성장한 부르주아 시민들 덕택에 성장한 장르라고 할 수도 있다

 

바그너는 척박한 독일 오페라계의 혜성과 같은 존재였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눌려 있던 독일 오페라는 바그너의 등장으로 단번에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었다

바그너라면 니체와 정신적 교류를 하고, 히틀러를 찬양한 사람이라고 기억하는데 반유태주의자에다 민족주의자이긴 했지만 오페라사에는 엄청난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흔히 알려진 것만 해도 "니벨룽의 반지".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이 있다

베르디나 푸치니, 모짜르트 등도 우리 귀에 익숙한 많은 오페라들을 만들었다

반면 유명한 베토벤은 "피델리오" 단 한 편을 남겼을 뿐이다

그는 오페라를 수준 낮은 장르로 인식했다고 한다

 

풍부한 성량과 기교를 요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유명 성악가들이 계속 겹치기 출연을 하는지라, 식상한 면이 없지 않다고 한다

특히 연기적 요소보다는 음악성을 우선시 하므로 20대 주인공 역을 50대의 뚱뚱한 성악가가 맡는 경우도 흔한지라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은 몰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리나라 극단이 연출하는 오페라를 먼저 관람하라고 권한다

특히 학생들이 공연하는 작품들은 실제 극 내용과 비슷한 또래들이라 연극적인 요소가 훨씬 풍부하다는 것이다

문화적 허영심 떄문에 값비싼 오페라 좌석표를 들고 앉아서 졸기 보다는, 영화 한 편 보는 기분으로 젊은 극단의 오페라 공연을 찾는 것이 훨씬 문화적이교 교양있는 행동 같다

예술이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가까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찾아 보려고 애쓰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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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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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음이 꽤 빠른 편이다

보폭도 크고 뛰듯이 걷는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기 힘든 편이다

내가 잘 하는 것은 걷기와 오래 달리기

단거리는 못하지만, 오래 달리기는 비교적 잘 하는 편이다

민첩성 보다는 지구력이 낫다고 할까...

 

언제부터인가 걷기가 좋아졌다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는 책도 있던데, 자동차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이 부족하다고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트레드밀을 뛰느니, 차라리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가는게 현명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운동을 하기 위해 차를 타고 피트니스 클럽으로 간다...

왠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걷기와 더불어 트래킹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

가장 좋은 독서법이란 생각이 든다

 

"걷기 예찬"은 상당히 현학적인 책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이양하의 "신록 예찬"을 읽는 기분이다

걷기의 미학에 대한 온갖 사변적 생각을 늘어 놓아, 사색적이란 느낌은 들지만 실제적이지는 않다

그렇지만  웰빙 열풍을 타고 걷기가 왜 몸에 좋은가를 역설하는 상업주의 냄새가 물씬나는 책들 보다는 훨씬 낫다

저자는 프랑스의 사회학과 교수라고 하는데, 직업에 딱 맞는 감상들을 풀어 놓는다

"이미지와 환상"에서 부어스틴은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 여행 풍조를 한탄하는데, "걷기 예찬"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자주 등장한다

두 발로 걷는 것, 자동차를 버리고 자연과 호흡하면서 주위를 둘러 보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묘사한다

문득 한비야가 쓴 기행문이 생각난다

그녀 역시 세계 여행을 하면서 절대 자동차는 안 타겠다고 결심했는데, 그 때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관광으로서의 여행도 좋아하지만, 시간만 허락한다면 두 발로 걷는 여행을 하고 싶다

 

책은 전체적으로 지루하다

인문학자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사변적인 생각들이 많아 크게 공감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걷기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가 많아 자동차를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생긴다

특히 파리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거니는 행복함이 기억에 남는다

확실히 차를 타고 휙 지나가면 그 곳에 대한 감상은 표면적이기 마련이다

배낭 여행 갔을 때도 참 열심히 걸어다녔는데, 유럽 도시들은 크기가 작아 굳이 차를 탈 필요가 없었다

파리나 런던 모두 관광지가 한데 모여 있어 어지간한 거리는 두 발로 열심히 걸었던 생각이 난다

걷기 힘든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

우리나라는 자전거 타기에 상당히 위험한데, 자전거야 말로 환경 정책에도 부합하고 건강에도 좋은 최고의 교통 수단이 될 듯 하다

 

물질의 풍요 속에 허우적거리며 절제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현대인들이 몸에 관심을 돌리는 건 당연한 현상 같다

우리는 너무 편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적게 먹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일부러 운동을 해서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야 한다

풍요가 주는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시간이 허락한다면 고풍스런 도시들, 혹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을 오랫동안 걷고 싶다

꼭 좋은 책도 손에 쥐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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