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말 그대로 환상적인 책이다
여기서 환상이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책, 사라져 버린 책을 말한다
폴 오스터는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혹시 "뉴욕 3부작" 의 기묘한 줄거리에 질린 사람이라면 이 책과 "달의 궁전" 을 꼭 권한다
"공중 곡예사" 도 재밌지만 이건 정말 재밌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독서, 은둔, 액자 소설 등으로 뒤덮혀 있다
주인공은 늘 독서열에 불타고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숨어 버리며 주인공의 얘기를 다른 사람이 들려 주는 화자가 꼭 존재한다
모든 소설이 다 그런 형식을 취한다
그는 문장을 참 잘 쓴다
이문열과는 다른 의미로 글을 잘 쓴다
이문열은 문체 자체가 훌륭한데 비해, 오스터는 묘사력이 뛰어나다
사물이나 풍경 묘사가 아니라 주변 정황이나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어쩜 이렇게 술술 잘 풀어 놓는지...
오스터의 높은 독서열이 소설의 수준을 높혀 주는 것 같다
역시 최고의 글쓰기 비법은 다독인 것일까?

이 소설의 화자인 데이비드 짐머는 "달의 궁전" 에 나오는 마르코의 친구다
마르코가 굶어 죽기 직전 집으로 데려가 숙식을 제공하고 돌봐 준 바로 그 짐머다
마르코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그를 만나는데, 그 당시 짐머는 아내가 죽었고 폐인 같이 살 때였다고 나온다
전작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두 번 인용되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창작하기 보다는 기존의 인물을 변형시키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영화배우다
오스터는 또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이 강한 편인데 여기서는 무성 영화 시대의 코메디 배우가 등장한다
찰리 채플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920년대라면 오스터 역시 태어나기 전인데, 아마 과거 기록을 보고 흥미를 느낀 것 같다
이미 영화의 역사도 100여 년이 되기 때문에 무성 영화 시대는 이제 새로운 신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오스터라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 하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도 오스터처럼 대단한 이야기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지 이야기만 잘 해서는 안 된다
같은 얘기도 수준 높게 잘 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문득 안정효가 쓴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가 떠오른다
비슷한 느낌의 책이다

짐머의 아내와 아이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후 그는 폐인이 된다
사실 실감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괴롭긴 하겠지만 인생을 망쳐 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울까?
아직 경험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과장법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브리지드가 실종된 후 그녀의 아버지가 고통을 견디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 하는 심정이 들었다
브리지드는 살아 생전 아버지와 크게 다툰 후 거의 의절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실종되자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녀를 찾아 다닌다
딸이 사라져 버렸을 때 아버지가 느껴야 할 고통은 얼마나 클까?
사이가 좋았던 딸도 아니고 잘해 준 것도 없는 딸인데 화해할 기회도 안 주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면 그 동안 잘못한 게 얼마나 후회가 되겠는가!!
브리지드의 아버지 오팰런은 속죄하는 심정으로 그녀를 찾아 헤맨다
차라리 시신이라도 발견되면 포기할텐데 실종됐으므로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도 없다
결국 오팰런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딸에 대한 죄책감과 부질없는 희망으로 자신의 삶을 갉아 먹는 것이다

짐머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그는 가족을 잃는 댓가로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받았지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 버렸다
돈이, 혹은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그 행복이 어느 정도 본질적일까?
때로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돈이 없으면 당장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그 돈을 가졌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혹은 물질이 생활을 안락하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본질적인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 보다 정신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즉 최저 생계 수준만 유지할 수 있다면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서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오스터 소설의 은둔자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안락함을 제공해 주는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났지만 형편없는 새 환경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산다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대부분이 책이었다
책 속에 진리가 있고 행복이 있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헥터 역시 헐리우드 대스타라는 최고의 물질적인 자리를 버리고 나왔지만 (물론 어쩔 수 없긴 했다) 부둣가의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그는 책을 읽으며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봤다
나는 이 설정이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행복의 기준은 달라진다
행복이 충만한 자기 만족감이라면 만족에 대한 기분을 바꾸면 된다

짐머는 아내와 아이들이 죽은 후 피폐한 삶을 산다
사실 그는 대학 교수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굳이 큰 재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물질적인 것에 큰 가치를 주거나 가족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큰 돈까지 안겨 준 비행기 사고가 고맙기도 하겠지만 (아마 로또 복권 당첨된 기분일 것이다), 짐머는 대단히 가족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비행기 사고가 가져다 준 불행은 엄청난 보상금으로도 절대 회복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짐머는 보상금을 아낌없이 다른 곳에 쓴다
술과 마약 등 자신을 좀먹는 일에 쓰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남은 가족과 사회를 위해서 쓴다
아내 헬렌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고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와 유치원에 놀이 기구를 제공한다
또 그와 헬렌의 피붙이들에게도 나눠 준다
만약 내 가족이 내가 죽는 불행을 당한다면, 그래서 혹시라도 돈을 얻게 된다면 우리 엄마 아빠 역시 내 이름을 기리기 위해 그렇게 할 것 같다
나를 잃은 슬픔은 다른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가족이란 바로 이런 존재들인가...
(어제 읽은 "변신" 에 나오는 가족과는 참 다르긴 하지만)

짐머가 헥터의 영화에서 위로를 얻는 장면도 공감이 간다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을 웃기는 코메디 배우에게 집중한다
아마 그 순간에는 어떤 것에라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뭐라도 살아갈 희망이 있어야 하니까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그 대상이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타당한 것일 필요는 없다
하여간 자기 마음을 의지할 수 있으면 된다
짐머는 헥터에게 빠져 그의 영화들을 모두 섭렵하고 책을 쓴다
헥터의 영화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유럽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앨머의 등장은 그를 다시 삶 속으로 끌어 들인다
여기서 삶이란 행복과 기쁨 등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앨머는 짐머를 헥터에게 데려가기 위해 권총까지 꺼내 들고 첫 만남에서부터 섹스를 하는 좀 특이한 여자인데 결론적으로 정신 상태가 매우 불안했다
프리다가 헥터에 관한 전기를 불태우는 걸 보고 그녀를 밀친다는 게 우발적 살인이 되버린 후 죄책감과 불안감에 자살하는 장면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실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헥터의 일생을 수집하는데 7년이나 매달렸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의 전기를 쓴 짐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으며 헥터의 아내와도 격렬하게 다퉜을 것이다
그녀가 정상적인 감정 상태였다면, 또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다면 헥터나 짐머에게 매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일 인상적인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헥터다
오스터 소설에 절대 빠지지 않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바로 헥터 같은 은둔자다
그들은 왜 안락한 현실을 포기하고 고통스런 익명의 삶으로 뛰어들까?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없다
나는 현재 누리고 있는 것 보다 더 얻기 위해 늘 긴장하며 산다
혹시 내 것을 뺏기지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 하다
그래서 여유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스터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누리던 것들을 미련없이 버리고 떠난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물질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라면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익명의 삶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함은 없지만, 대신 의무감이나 구속감도 똑같이 사라진다

가장 큰 의무감이라면 물론 가족에 대한 것이리라
이런 생각하면 큰일나겠지만 가끔 가족이 없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럼 정말 내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멋대로 살아도 미안해 할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나로 인해 실망하고 속상해 할 사람이 없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롭게 내 맘대로 살 것 같다
이것도 그저 환상일 뿐일까?
가족은 내 삶의 큰 원천이지만 때로 구속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정한 길대로 따라 가라고 요구하는 그런 구속 말이다
가장이 되면 특히 그럴 것이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라면 가끔은 그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헥터는 헐리우드를 떠난 후 부둣가에서 거친 노동을 하면서 산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브리지드를 배신하고 그녀가 자신의 약혼녀 돌로레스의 손에 죽는데 도의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보속하는 마음으로 밑바닥 삶을 받아 들인다
만약 헥터가 헐리우드의 삶에 전혀 미련이 없었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돌로레스 역시 바로 은퇴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했더라도 우발적인 살인 내지는 정당방위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명성을 위해 사건을 숨겼지만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그 사건이 알려지면 돌로레스나 헥터가 편안하게 사라질 수는 없었겠지만 평생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것이 가엾은 브리지드의 가족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눈에 총을 맞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암매장된 딸을 찾기 위해 평생을 매달린 아버지 오팰런을 생각해 보라
결국 헥터의 행동은 비겁했다
그가 브리지드의 동생 노라의 구혼을 뿌리친 것은 당연하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헥터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심한 육체 노동을 하고 책을 도피처로 삼는다
사실 그는 이민자의 아들로 정규 교육을 못 받았다
더구나 연예인의 화려하고 무절제한 삶에 익숙한 헥터가 책에서 재미를 찾는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헥터의 기질 속에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면이 풍부했던 것은 아닐까?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그 수준이 형편없더라도)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좋지도 않지만 나쁠 것도 없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다
상대적인 박탈감만 안 갖는다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뭘 하든지 세 끼 밥은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생활 보호 대상자를 생각해 보라 직업이 없어도 나라에서 쌀과 반찬값을 준다) 도서관에 가면 책은 널려 있다
결혼을 해서 책임질 사람이 생기면 다르지만, 혼자 몸이라면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
더구나 나라면 평생을 안락하게 살 안정된 직업이 있다
나는 욕심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노라가 헥터에게 반한 걸 보면 자매간에 닮은 구석이 있나 보다
브리지드는 헥터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가 다른 여자들과 놀아난 것도 참아 준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오리라 믿은 것이다
이 믿음은 나도 경험해 봐서 안다
비록 당신이 지금은 다른 여자들과 만나지만, 시간이 가면 내 사랑의 진실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내가 유일한 안식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자의적이고 허망하기까지 한 믿음에 매달리는 가엾은 여자!!
결국 헥터가 돌로레스와 약혼까지 한 후 브리지드는 자살을 기도한다
헤어졌다고 자살까지 할 정도면 그녀가 얼마나 헥터에게 매달렸는지 알 만 하다
나도 누군가를 사랑해 봤지만 그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죽을 생각은 안 해 봤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브리지드는 헥터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안다
그리고 돌로레스에게 찾아간다
아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위협감을 느낀 돌로레스는 권총으로 위협한다는 게 그만 총을 발사하고 만다
살인 무기가 허용된 미국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돌로레스는 그 후 연예계를 은퇴하고 결혼한 뒤 곧 사고로 죽는다
그녀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는데, 혹시 그녀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을까?
암매장 당한 딸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가엾은 오펠런에 관해 알았더라면 편한 잠을 자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말이다
어쩌면 사고로 죽는 순간 자기 손에 죽은 브리지드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헥터가 노라의 사랑을 받게 된 까닭은 일단 그가 헐리우드 배우를 할 정도로 잘 생겼다는 것과 함께 놀라울 정도로 성실한 태도에 있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는 가진 것 없는 남자지만 헥터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유능했다
브리지드 가족의 집이었고 또 죄책감을 덜기 위해 헥터는 가게 일에 헌신적으로 매달린다
사실 그렇게라도 집중하지 않았다면 헥터는 브리지드의 집에서 정상적으로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책에서 구원을 찾은 헥터는 노라에게 수업을 받으며 지적 교양을 넓혀 간다
만약 이 정도로 신실하게 사는 남자라면 (더구나 잘 생겼다면) 나도 한 번쯤 호감을 느낄 것 같다
비록 그가 객관적으로는 가진 게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노라는 진실된 여자였다
상원의원의 아들이 가진 명예와 재산에 현혹되지 않고 내면에 숨겨진 가치를 볼 줄 아는 여자!!
그래서인지 노라는 학교 선생님에서 시작해 교장까지 진급한다
비록 헥터가 떠날 때는 괴로웠겠지만 그 후 그녀의 삶이 평탄하고 행복했을 것 같다
또 헥터가 자신이 언니를 죽이는데 일조했다는 걸 평생 몰랐기 때문에 더욱 다행스럽다
만약 헥터가 노라를 사랑해 그 사실을 고백했다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언니를 죽인 범인이나 다름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동생의 괴로움이라니!!
헥터는 노라에게 그런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또 브리지드의 가족에게 일말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결국 그녀 곁을 떠나고 만다

헥터란 남자는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소설이기 때문에 뭐든 잘 풀리는 걸까?
내가 보기에 노라와 잘 안 된 걸로 그의 운은 다한 것 같은데, 즉 그녀 곁을 떠난 후 막노동자로 인생을 마감할 것 같은데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온다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프리다를 대신해 총에 맞은 후 놀랍게도 그녀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뭐가 딱딱 들어 맞으려고 프리다는 부잣집 딸이었고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결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 한다
프리다는 왜 이 보잘 것 없는 남자에게 반했을까?
아무래도 헥터에게 큰 매력이 있나 보다
책을 읽을 때는 코메디 배우라길래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논리적으로 꿰맞추다 보니까 그가 엄청나게 잘 생겨야 (장동건이나 송승헌처럼) 여자들 마다 그에게 반한 게 설명이 된다

프리다와 헥터는 시골로 이주해 농장을 짓고 영화를 찍으며 살아 간다
둘 사이의 아들은 벌에 쏘여 일찍 죽었다
이 부부는 그 충격을 이기기 위해 영화 찍는 일에 몰입한다
사람마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기 마련인데, 짐머가 헥터의 전기에 매달린 것처럼 프리다와 헥터 역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영화 촬영에 몰두한다
책에서는 헥터만 몰입하는 걸로 나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프리다 역시 헥터 같은 열정으로 매달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을 평생 후원했을 리 없고 그가 죽고 난 후 편집증적으로 영화를 없애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부부는 쿵짝이 잘 맞았다
아마 프리다는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헥터와 함께 영화에 매달렸을 것이다

어쨌든 헥터가 죽은 뒤 그의 영화는 모조리 파기된다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없애기 위해 찍은 영화라...
사실 일기나 다른 글들도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해서 쓴다
즉 남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내적 만족감을 위해 쓰기도 한다
영화라고 다를 게 있겠는가?
만드는데 돈이 좀 들어가서 그렇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제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적인 기록이라면 남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들도 가끔 일기나 유고들을 없애 달라고 하지 않는가?
헥터는 자신의 전기를 쓴 짐머에게만은 그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프리다를 설득해 그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프리다는 완전무결성을 위해 첫 약속처럼 누구에게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결국 헥터가 죽기 전 날 도착한 짐머는 그와 단 5분 밖에는 얘기를 못하고 그의 단편 한 작품을 보게 된다
짐머는 프리다가 헥터를 질식사 시켰다고 추리한다

정말 프리다는 헥터가 모든 것을 발설할까 봐 두려워 그를 살해했을까?
90이 넘은, 오늘 내일 하는 노인이니 죽인다고 큰 죄책감은 없겠지만, 더구나 그녀 자신도 80이 넘은 나이니 삶에 미련 같은 것도 없겠지만, 헥터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까 봐 평생 사랑한 남편을 죽이기까지 한 걸 보면 그녀 성격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다
프리다는 앨머의 전기마저 불태워 버릴 정도로 집요했다
결국 그 편집증적인 태도 때문에 앨머에게 우발적이지만 죽기까지 했다
프리다는 뭐가 두려웠을까?
세상에 헥터의 작품이 알려지면 자신들이 평생 쏟아 부은 노력이 헛것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나이가 들면 완고해지고 자기만의 세계에 갖히기는 한다
한편 모든 것을 정리할 때이므로 너그러워지기도 하는데, 하여간 프리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꽤나 완고한 여자였을 것 같다

짐머가 본 단 하나의 단편에서도 나오듯, 헥터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화를 곧 파괴하므로써 죄책감을 덜려고 한다
"프로스트의 내면적 삶" 을 보면 작가인 프로스트는 사랑하는 클레인이 죽어가자 자신의 소설을 하나씩 불태운다
클레인은 죽기 전 그 소설의 완성을 보려고 간절히 소원하는데 어느 순간 프로스트는 자신이 소설을 없애 버려야 그녀가 살아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만든,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을 파괴하므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역설을 보여준다
헥터는 브리지드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평생을 바쳐 만든 영화를 모두 파괴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에게도 형벌을 내리는 것일테니까
프리다의 경우는 벌에 쏘여 죽은 어린 아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담감을 벗기 위해서였을까?
어쨌든 자기 학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드문 경우라 하겠다

아주 재밌고 인상적인 책이다
특히 마지막 결론이 마음에 든다
짐머는 앨머의 성격상 헥터의 단편들을 복사해 놨을 거라 믿는다
사실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헥터의 전기를 7년씩이나 쓰면서 그의 과거 행적을 전부 조사하고 다닌 앨머가, 헥터가 죽는 즉시 불타 없어질 영화들을 그대로 방치했을 리 없다
이 부부는 헥터가 죽으면 영화도 없앨 거라고 늘 공언했기 때문에 앨머는 분명히 모종의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영화는 그녀의 아버지가 촬영하고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이다
말하자면 헥터와 프리다만의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짐머는 앨머가 어딘가에 그 영화들을 복사해 놨을 거라 믿고 누군가가 영화를 발견해 내면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리라 믿는다
멋진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난 사실 앨머와 헥터의 관계를 의심했다
프리다가 앨머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거나, 앨머가 성적으로 액티브한 걸 보면 둘 사이에 뭔가 모종의 거래가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오스터는 진부한 형식을 거부한다
또 짐머 역시 평생 앨머만 그리워 하며 사는 게 아니라 (사실 둘은 겨우 8일 동안 알고 지냈을 뿐이다)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룬다
그는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려 하지만 심장마비를 겪은 후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기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건을 기록한다
그리고 헥터처럼 죽은 후 출간하라고 유언한다
그러니까 헥터가 살아 있을 때는 이 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 이 책은 헥터와 앨머가 죽고 프리다가 모든 기록을 없애 버렸으므로 증거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환상의 책" 이 되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참 대단한 작가다
그가 비록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가는 아닐지라도 독자에게 이 정도의 재미와 생각할 꺼리를 준다면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문열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물론 둘의 차이는 명백하지만 말이다
그가 한국 사람이라면 이 독후감을 보내고 싶다
과연 그 자신은 자기 소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도 처음에는 책이 안 팔려 야구 게임을 팔러 다녔다고 하니,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글을 써야 하려나 보다
(역설적이지만 그가 훌륭한 작가가 아니었다면 백날 글 써도 여전히 게임이나 팔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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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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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영하는 요즘 잘 나가는 젊은 소설가 중 한 명인데, 이번에 동인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서 그의 수상작 "검은 꽃" 을 읽었다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독특한 제목이 돋보이는 그의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 는 별로였는데, 이 책은 정말 재밌다
지루하지 않고 빨아 들이는 매력이 있다
직접 멕시코와 과테말라까지 가서 쓴 책이라고 하니 현장성이 더욱 돋보인다
역시 단편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작품이 좀 길어야 플롯도 들어가고 하고 싶은 얘기도 다 할 수 있는 것 같다

언젠가 TV에서 염정아와 옥소리가 나오는 애니깽에 관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초반에는 재밌게 봤는데 그들이 늙은 후 김혜자 등으로 바꿔 나올 때는 좀 황당해서 거의 안 봤다
어쨌든 그 때 이 두 자매가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을 간다
언니 염정아는 공산주의자가 되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동생 김혜자는 아마 큰 부자가 되서 해방 조국으로 돌아올 거다
그 드라마가 생각나는 소설이다

조정래가 쓴 "아리랑" 도 비슷한 얘기다
배경은 하와이다
솔직히 "아리랑" 류면 어쩌나 걱장을 했는데, 역시 신세대 소설가는 다르다
만약 이 소설을 "아리랑" 처럼 썼다면 상도 못 받고 대중에게 외면당했을 것이다
왜냐?
시대가 바뀐 것이다
더 이상 민족주의와 선악 이분법 구도로는 작품을 끌어 갈 수가 없다
독자들은 보다 입체적이고 개인적인 소설을 원한다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시대이므로 독자의 요구도 변했다
뒤에 나오는 평론에서도 이 점을 강조한다

조정래의 "아리랑" 을 보면 인물들의 선악 구도가 너무나 명확하다
착한 놈은 계속 착하고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쁘다
평면적인 캐릭터라 재미가 없다
반면 김영하 소설의 주인공은 보다 인간적이다
사실 나쁘기만 하고 착하기만 한 인간이 어딨겠는가?
인간성의 좋고 나쁘고는 있겠지만 선악을 분명히 따진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소설을 읽다 보면 대부분의 캐릭터는 전형적인 성격을 띈다
즉 그들의 행동은 거의 예측 가능하다
특히 역사 소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가끔 지루하다

주인공의 이름도 현대적이라 마음에 든다
김이정은 가수 이정이 생각나고 이연수라는 이름도 조선 시대의 촌스런 한문 이름 같지가 않다
그녀의 동생 이진우도 현대적인 이름이다
박정훈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신세대 소설가가 짓는 이름은 현대적이다

이정과 연수는 멕시코로 가는 화물선에서 만나 사랑을 나눈다
연수는 왕족인데 아버지와 달리 현실을 빨리 받아들인다
또 그녀는 자신이 욕망에 충실한다
연수나 이정 모두 외모가 괜찮은 사람들로 나온다
내 예상으로 둘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 줄 알았는데 작가의 결말은 뜻밖이었다
제일 황당한 건 이정의 최후다
이정은 주인공인 만큼 (읽다 보니 특별한 주인공도 아닌 것 같지만) 성품도 남다르고 세상을 잘 헤쳐 나갈 것 같았는데 의외로 인간성도 나쁘고 허망한 죽음을 맞는다
이정과 연수의 재회도 이뤄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주인공 이정은 갖은 고난을 겪은 후 자신의 아이를 가진 사랑하는 연수를 되찾아 와야 하는데, 왠걸 그는 멕시코 혁명군이 되어 사람들을 죽일 뿐이다
또 굳이 연수에게 매달리지도 않는다
그저 과거의 추억 쯤으로 간직할 뿐 그녀를 위해 어떤 모션도 취하지 않는다
나중에 연수의 남편 박정훈의 이발관에 찾아가 그녀와 자신의 아들을 보긴 하지만 만나지도 않고 떠나 버린다

김영하는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소설 읽기가 더욱 편했다
이정은 혁명군이 되어 과테말라의 마야 용병으로까지 건너 가지만 결국 거기서 총맞아 죽는다
농장에서 탈출해 혁명군이 될 때는 그래도 뭔가 한 가닥 할 줄 알았는데 왠걸, 그냥 허망하게 밀림에서 남의 나라 군인 손에 죽을 뿐이다
멋진 전투나 영웅적인 행동도 없었다
연수나 아들을 못 잊는 것도 아니다
작가의 눈이 매우 냉정함을 느낄 수 있다


연수 역시 마찬가지다
이정의 아기를 벤 후 권력을 누리는 통역사 권용준에게 남편을 찾아 달라고 부탁할 때만 해도 사랑을 위해 뭔가 할 여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허망하게 권용준의 첩으로 들어 앉는다
조선으로 떠나는 권용준을 배신하고 그의 돈을 훔쳐 달아날 때도 그녀가 이정을 찾아 역경을 헤쳐 나갈 걸로 기대했다
그러나 역시 중국집의 하녀 내지는 매춘부로 팔리고 만다
무려 8년을 그렇게 보내다 중국집 손님으로 온 박정훈에게 구출된다
옛날 소설 같으면 이정을 그리워 하며 정절을 지킬텐데 또 그녀는 박정훈과 쉽게 살림을 차린다
사랑에 목숨 거는 전형적인 여주인공의 역할을 거부하고 보다 현실적인 여자로 사는 것이다

그녀가 농장으로 아이를 찾으러 갔을 때 그녀의 어머니 소식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녀가 권용준의 첩이 된 후 더럽다고 말 섞은 것도 거부하던 그 꼿꼿한 왕실의 여자가, 마야인 감독의 아내가 된 것이다
자살까지 생각하던 조선 왕실의 여자가, 딸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던 그 여자가 어떻게 남편을 배신하고 농장 감독과 결혼할 수 있을까?
지배자인 스페인 귀족도 아니고 자신들과 별 다를 것도 없는 마야인과 말이다
한 문장에 불과한 얘기지만 이 소설의 핵심 반전 같다
연수의 어머니도 망해 버린 나라 붙들고 앉아서 일할 생각조차 않하는 이 왕족 남편에게 질린 것이리라

그 후에도 연수의 운명은 놀랍기만 하다
그나마 제일 잘 풀렸다고 해야 하나?
착실한 이발사 박정훈과 결혼한 후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 것 같던 연수는 남편이 심장마비로 죽은 후 재산을 가지고 고리대금업과 매춘업을 한다
큰 돈을 모았지만 기부 따위는 절대 안 하고 악착같이 모아 고스란히 아들에게 물려 주고 죽는다
여주인공이라면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과 더불어 도덕심이나 애국심도 뛰어나기 마련인데, 그녀는 전형적인 설정을 거부하고 돈이 최고다는 배금주의적 자세를 갖는다
과테말라에서 총 맞아 죽는 이정의 삶 만큼이나 쇼킹했다

그녀의 아버지 이종도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
일단 왕족 씩이나 된 사람인 멍청하게 멕시코 이민을 떠난 것부터가 어리석다
그래도 왕족이면 주어 들은 정보라도 있을텐데 어쩜 그렇게 순진하게 가족을 이끌고 생판 모르는 곳으로 가는 노동자들의 배를 탔을까?
그가 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행히 환경 변화에 민감한 아들 이진우 덕에 먹고 살기는 했지만 평생을 지나가 버린 것에 집착해 산다
일도 안 하면서 아들이 벌어 온 돈으로 밥과 반찬은 제일 많이 먹는다
마치 잘 먹는 게 자신의 유일한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무능한 가장들은 뻔뻔함이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걸까?
이종도의 아내가 마야인에게 가 버린 후 책에 묘사된 건 없지만, 아마 폐인이 됐을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마누라가, 그것도 왕족의 부인이 외국인에게 재가해 버린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자존심도 없는 것 같다
조선 시대 선비라면 이런 모욕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자살로써 정신의 고매함을 지키기 마련인데, 이종도는 그마저 실천할 용기도 없이 끝까지 살아 남는다
아마도 그가 피로써 썼을 글들은 현실주의자 아들에 의해 불태워지고 만다
참으로 허망한 인생이다!!

권용준이나 이진우는 현실 순응적인 인물로 나온다
그들은 영어나 스페인어가 권력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는다
권용준이야 원래 역관 출신이니 그렇다 치지만, 이진우의 변신은 놀랍다
그는 이른바 왕족인데도 자신이 처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받아 들이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몰락해 버린 왕족 집안의 무력한 도련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울증까지 있었는데 오히려 생판 낯선 환경이 그에게 힘을 준다
생존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라고 할까?
그는 권용준 주위를 얼씬거리며 스페인어를 주어 담고 결국 통역으로 출세한다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절대 스페인어를 배워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는데, 어린 아이의 세상 보는 눈이 놀랍다
결국 이진우는 사업가로 성공한다
멕시코에 있었으면 나았을 것을,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 투자했다가 카스트로 집권 후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하고 미국으로 ?겨 온다
이진우나 이연수 모두 돈에 밝고 현실 적응을 잘 하는 사람인가 보다
아버지 이종도 대신 어머니를 닮은 모양이다

멕시코 이주민들의 안타까운 최후를 보면서 차라리 미국으로 건너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고 사회가 안정되어 그럭저럭 버티다 보면 밥은 먹고 살 수 있으니까
1세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그래도 2세대, 3세대는 중산층으로 편입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멕시코는 정국의 혼란으로 모두들 불행한 삶을 살았다
인간에게 환경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인 것 같다
이런 걸 운명이라 해야 하나?
이정이 미국으로 못 간 후 혁명군에 참가해서 승승장구 하는 걸 보고 그래, 미국 가서도 노동자로 있을 거라면 차라리 어수선한 멕시코가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겠다, 잘 하면 권력도 잡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안정된 선진국이 나을 뻔 했다
처음 계획대로 미국에 갔다면 편안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다
이정은 담력도 세고 세상 풍파를 헤쳐 나갈 능력도 있는 남자인데 (더구나 잘 생긴 사람으로 묘사된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과테말라 밀림에서 총살됐는지, 그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멕시코 이민선에서도 일본인 요리사들 시중을 들며 먹을 것을 해결하던 사람이 아닌가!!
어린 나이지만 어떻게 하면 먹고 살 수 있을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똑똑한 놈이었다
그런데 상황 판단을 못하고 과테말라 용병으로 떠나다니!!
세상 일을 다 알 수는 없는 것 같다

최선길의 캐릭터는 좀 마음에 안 든다
도둑놈이던 최선길이 멕시코에 온 후 천주교도가 되면서 같은 조선인을 학대한다는 설정은 너무 뻔하다
그 상황이 되면, 즉 동료를 배신하고 그들을 감독해야 할 입장이 되면 마음의 부담감을 벗기 위해서라도 더 잔인해지는 걸까?
난 그래도 최선길이 조선인과 멕시코인 사이에서 마음의 갈등도 하고 괴로워 할 거라 기대했는데, 그는 더욱 잔인해진다
그의 농장 주인 이그나시오는 광신도다
종교란 왜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들고 그것에 명분을 부과하는가?
요즘 문제가 되는 이슬람의 테러도 그렇지만 참 안타까운 역사다
이그나시오는 박수 무당에게 마귀를 ?는다고 채찍질을 한다
농장 노동자들에게 채찍질을 하면서도 성당에 앉아 울면서 기도하는 이 모순적인 인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럴 때 보면 대체 신의 뜻이 무엇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는 신, 분노하는 신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그나시오 같은 뻔뻔한 인간의 행태를 용서해 주실까?
그는 결국 최선길과 함께 노동자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
기가 막힌 최후다
어쩌면 예수와 같은 최후를 맞았다고 기뻐하며 죽지는 않았을까?

멕시코의 인디오들은 대부분 카톨릭으로 개종했는데, 요즘도 사순절이 되면 십자가를 끌고 가서 못박히는 행사를 거행한다고 한다
그 기사를 보면서 광신적인 행위가 거북스러웠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그들의 역사임을 알았다
저자의 설명으로는 인디오들은 카톨릭을 자신들의 종교 형식으로 바꿔서 받아 들였다고 한다
즉 인육을 바치는 제사처럼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리아 숭배에도 열광한다

조장윤이란 캐릭터도 독특하다
처음 서술로 보면 뭔가 큰 일을 할 것 같은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결국 그가 꿈꾸는 세상이란 박정희식의 독재자 정부였다
문 대신 무가 지배하는 세상, 한 사람의 초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서 일사분란 하게 일하는 세상 말이다
조장윤은 군인으로 배에서 이정에게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다
그는 멕시코 농장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대표해 협상도 끌어낸다
계약에서 풀린 후는 조선인 협회도 세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자아도취에 빠진 것이다
그는 심지어 과테말라에 나라를 세울 계획까지 갖는다
그런데 웃긴 건 막상 밀림에 도착하고 보니 자기 계획이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자기가 데려 온 용병들을 버리고 줄행랑을 친 것이다
훗날을 기약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명분을 앞세우면서 말이다
원래 인간이란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인가?
우리가 감탄에 마지않는 영웅이란 어쩌면 환상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과장되고 부풀러진 신화 속에 쌓여 있는, 실은 인간적인 즉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사실은 별 능력도 없는 그런 인간이 영웅의 실체는 아닐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은 책이다
문학상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난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재밌는 건 확실하다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시청자들 많이 끌 것 같다
일단 혁명이 끼어 드니까 화면 구성이 화려할 것 같다
솔직히 부럽다
이렇게 재밌는 소설 쓰는 작가를 보면 부럽기 짝이 없다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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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4-11-1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작가같으면 한 다섯권 이상으로 불려서 질질 끌 얘기를 한 권에 녹여내는 작가의 역량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어요.또 짧디짧은 문장과 건조한 문체로도 이렇게 입체적으로 얘기를 재미있게 끌고 갈 수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던 작품입니다.

marine 2004-11-19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죠 대하소설로 쓸 만도 한데 확실히 요즘은 그런 책은 안 먹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김영하의 단편들 읽고 좀 실망스럽긴 했는데, 이 책은 정말 재밌어요

하얀달 2004-11-19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상을 참..간편하게 쓰신다는 느낌이 드네요. 참, 솔직합니다.

marine 2004-11-20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은 일기 형식으로 쓴 비공개 글을 올린 거라 내면적인 얘기들이 많습니다 좀 부끄럽기도 하네요
 
위장된 학교 - 한 사회학자의 한국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한 지적 성찰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온 책은 색깔이 너무 분명해 간혹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이 책도 흥미있는 제목과는 달리 주관적인 견해나 감정 과잉이 많아 초반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뒤로 갈수록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진중권의 책에서도 느낀 바지만 일명 진보주의자들이 추종하는 이념은 다름 아닌 개인주의임을 느낀다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개인주의라고 하면 이기주의를 연상시키는데, 그만큼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에 경도되어 있다는 의미도 된다
서구 시민 혁명의 전통이 없는 한국에서 비록 그들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 들였으나 그 밑바탕이 되는 개인주의나 사회적 연대감이 약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 같다
저자는 독일에서 유학한 후 그들의 교육 방식이나 사회를 모델로 삼았다
선진국과의 비교는 때로 위험하기도 하다
우리보다 잘 살기 때문에 무조건 그들의 제도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문제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또 그 사회만의 특수성이라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지적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교육 문제는 저자의 표현처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입 전형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는가?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면 대입 정책에 비상한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사교육의 왕국 아닌가?
강남 엄마의 반대는 그냥 엄마라는 말도 있다
고액 과외가 판치고 오직 명문대 입학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질주하는 게 대한민국 학생들의 현실이다
분명히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제일 문제시 되는 것이 주입식 교육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또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주로 조선일보 같은 보수 언론에서 하는 얘기다
미국 공교육의 학력 저하를 예로 들면서, 일정 지식은 주입식 교육으로 집중해서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주입식 교육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토론하고 연구하는 방식을 배운 적이 없으니, 학생들에게 알아서 공부하라는 말은 어찌 보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현대 사회의 교육 목표란 저자의 말처럼 주체성을 가지고 사회와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근대적인 목표, 즉 사회가 원하는 노동력 제공에 매달려 있다
짧은 기간의 경제적 근대화를 이룬 대신,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특징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란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개인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에 있는데 전체주의와 아주 상극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시민의 책에서도 읽는 것이지만, 제발 국론 분열 걱정 좀 하지 말자고 한다
다양한 의견을 내 놓고 하나의 합일점을 찾아 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인데, 우리 사회는 언제나 일사분란 하게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전체주의를 원한다
그야말로 조국 근대화에 온 국민이 매진해야 하는 박정희 시대의 정신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 사회를 선진국으로 규정하는 것은 경제적인 성장 외에도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성숙도 포함되지 않을까?
개성과 주체성을 가진 개인들이 보여 사회적 연대를 이루는 사회, 이것이 바로 현대 국가가 지향해야 할 목표일지 모른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또 들자면 대학의 서열화다
이건 정말 고질적인 문제라 새롭지도 않다
그래도 요즘은 대학이 늘어나고 가치관이 다양화 되면서 대학보다 과가 중요시 되고, 선망하는 직업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서울대가 주는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강준만이 서울대 망국론을 들고 나오면 서울대 못 나온 놈의 학벌 컴플렉스라고 들을 생각조차 안 한다
서울대라는 엘리트 교육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를 위해 돌진하는 교육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이다
왜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 컴플렉스를 느껴야 하는가?
차라리 프랑스처럼 정말 소수가 들어가는,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만들어 국가를 이끌 싱크 탱크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지금처럼 비대해진 대학에서 쏟아져 나온 졸업생들이 특권층을 형성하는 구도는 문제가 많다
더구나 서울대는 모든 과가 다 한국 최고다
저자는 이런 예를 든다
한국 외대의 러시아학과가 전통을 자랑하며 최고의 권위를 가졌더라도 어느 날 서울대에 러시아학과가 개설되면 그 때부터 외대는 무조건 2등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무조건 서울대가 만들면 최고다

서울대의 엘리트 교육이 문제가 아니다
최고라는 자부심이 학구열을 높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서울대를 선두로 하여 모든 대학이 서열화 된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아이비 리그라고 해서 여러 개의 명문 대학이 생기면 좀 더 나을 것 같다
그래야 서로 경쟁하며 더 발전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대학의 바람직한 목표를 전문화와 특성화로 잡는다
사실 그래야 대학의 존재 이유가 생긴다
모든 대학이 서열화 되면 저자이 표현처럼 연세대는 서울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죽었다 깨나도 절대 1등 대학이 될 수 없다

사실 대학 교수 집단이 폐쇄성도 문제가 많다
같은 대학 같은 과 출신만 뽑는 관행에 대해, 저자는 동종교배와 근친상간이라고 일갈을 가한다
정말 딱 맞는 얘기다
근친상간은 유전적 결함이 많고 다양성이 상실되서 열등한 생물을 낳는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에 무슨 발전 가능성이 있겠는가?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집단이 더욱 배타적인 법이다
책에서 배운 가치를 현실에서는 절대 써 먹지 않는 지성인 집단의 모순이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교수로 채용되는 일이 심심치 않은데, 그 나라라고 해서 편견이나 배타성이 없을 리 없다
다만 우리보다 훨씬 개방적인 태도로 학문의 다양성을 위해 아무 빽 없는 유색인종도 채용해 주는 것이리라

요즘 한창 문제가 되는 교실의 붕괴도 교육하는 쪽의 책임이 크다
학생들은 점점 다원화 되고 개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나가는데, 학교는 여전히 감시와 처벌을 통해 근대적인 인간을 만들려고 한다
사실 체벌이야 말로 당장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때려서 교육시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개인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저자는 중고교 교실의 붕괴보다 대학 강의실의 붕괴가 먼저였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대학생 수가 적고 교수의 권위도 높아서 강의 시간에 졸 망정 떠들거나 휴대폰 통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대출이나 딴 짓 등 수업 참여율이 현저히 낮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요즘은 대학생 수가 늘고 교수의 권위도 예전 같지 않으므로 대놓고 떠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의 권위는 누가 세워야 하는가?
학문의 연구를 통해 교수 자신이 세워야 한다
더 이상 교수라는 직책이 주는 위압감이나 권력만으로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교사가 커뮤니케이션을 지도한다고 한다
즉 세미나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주제를 준 후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면 교사는 그 과정을 원활하게 조정해 주는 것이다
또 숙제를 낸 후 부모가 아이 학습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학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독일 교사들은 이 커뮤니케이션을 잘 지도할 때 교사의 권위가 생긴다고 말한다
저자도 인정한 바지만 세미나 형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학생들의 수준이 제각각인데 일정 지식을 먼저 암기해 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하기 힘들 것이다
나도 해 봐서 알지만 이런 세미나 형식은 능동적인 대신 효율성이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암기해야 할 지식들이 많은 상태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 정도는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되는 토론 문화의 부재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교양이 테마 중심이어여 한다고 주장한다
일리있는 말이다
중고교는 그렇다 쳐도 적어도 대학이라면 일단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상태이므로 더 이상 단순 나열식의 교육은 도움이 안 된다
테마를 잡아 보다 깊이 있게 파고 들고 또 각자의 견해를 제시하는 세미나 형식의 수업이 훨씬 유용할 것 같다
전공은 몰라도 교양은 테마 중심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지나친 도덕주의에 있다
사유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도덕적인 인간을 만드려고 한다
하긴 그렇게 도덕 강조하면 왜 이렇게 부정부패가 많은가?
도덕 자체를 스스로 내면화 시킨 것이 아니라 집단의 규율로써 받아 들이므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아주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다
철학이란 인간교육을 시키는 지적 수단이 아니라 문화, 우주, 세계, 존재, 자연, 윤리 등의 주제에 대하여 엄밀하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유하는 지적, 정신적 능력을 배양하는 학과목이라는 것이다
엄밀한 과학으로서의 철학이라!!

흔히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윤리 과목일 것 같은데 인성 교육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가 윤리적 인간 양성을 포기하고 지적이고 학문적인 전문인 양성에 뜻을 둔다면 보다 합리적인 교육이 이루어질까?
하긴 사회도 구성원들을 윤리적으로 교육시키려는데 학교는 오죽하겠는가?
제발 개인의 도덕성은 개인에게 맡겨 두면 좋겠다
외제 승용차 타고 다닌다고 부유층 도덕성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기사도 그만 나오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한가로이 인문학 서적이나 붙잡고 있어도 될까, 문득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잠자는 시간을 쪼개 가면서 굳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단순한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책에서 얻는 지식과 깨달음을 통해 내 삶을 보다 가치롭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책에서 얻은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가?
자신이 없다
그저 한 번 읽고 감동하고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이 아니라면, 대체 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책을 읽는다는 말인가!!

다원화 사회에 절대 가치란 없다
내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나도 주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싶다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내 개성을 드러내며 신념에 따라 사회적 연대를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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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만큼 아주 재밌지는 않다
역시 출판사가 책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일까?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도 없지 않다
특히 미군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는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균형잡힌 시각이란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만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보편 타당한 길도 있는 거 아닐까?

친일파에 관한 변명은 수긍이 간다
나치 치하에서 겨우 4년 있었던 프랑스와 36년 일제의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작은 꼬투리까지 들춰내 정쟁의 도구로 삼는 요즘 행태는 마음에 안 든다
또 어쩔 수 없이 그 시대를 살면서 크고 작게 일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 의한 해방이 됐더라면, 그래서 일제에 동조한 사람이 권력을 잡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국력 낭비는 없었을텐데 참 아쉽다
그렇지만 항일 무장 세력이었던 김일성조차 친일파를 전면 처단하지는 않았다고 하니, 오늘날의 친일파 처단 논란은 희화화된 느낌이다

저자는 우리의 가장 큰 문제를 개인주의의 부재라고 본다
시민 혁명을 거치지 않고 직수입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의 기본이 되는 시민 의식을 심어주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게 1945년인데 우리는 1948년에 거저 획득했으니, 우리나라가 여전히 남성 우월주의에 시달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진보주의자들이 박정희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독재자였고 한국 사회를 권위주의 내지는 전체주의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가진 개인의 부족, 또 그 개인끼리의 연대 의식 부재, 이 결핍을 애국심과 민족주의로 묶으려고 하니 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했는데 기득권층은 왜 최소한의 사회적 의무도 도외시 하는 것일까?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만큼 그 권력을 도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조차 거부하는 요즘의 사태가 참 안타깝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의 의무다
왜 그렇게 군대 빠지는 놈들이 흔한가 했더니, 인구가 늘어나 지원병이 너무 많기 때문이란다
빽 있는 놈들은 다 빠지고 서민층만 군대로 끌려가는 요즘의 세태는, 역사책에 나오는 군역 폐단과 다를 게 없다
최소한 병역 의무만은 특권층일수록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는 없을까?
이회창 아들들의 병역 면제로 그렇게 떠들썩 한 것도 다 사회적 공분의 표현이다

레드 컴플렉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층은 사회주의를 철저하게 억눌렀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더니만, 무슨 얘기만 나오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난리를 친다
연좌제는 또 어떤가?
요즘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 가족의 죄로 같이 처벌받아야 하다니, 정말 미친 사회 아닌가?
노무현 장인의 경력을 두고 한나라당에서 문제 삼았다는 말은 참 코메디 같이 들린다
그 동안 권력층은 반공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휘둘러 왔나?
민족과 반민족의 대립 구도가 되야 할 것을, 어처구니 없이 반공과 공산주의로 양분됐으니, 한국사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친일파들은 반공을 무기로 내세워 여전히 권력을 유지했다
슬픈 역사의 산물인 그 놈의 진절머리 나는 반공을 아직도 심심찮게 입에 올리는 일명 보수 세력들!!

현 대통령의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실은 지난 정권까지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중동의 언론 탄압 발언은 웃기지도 않다
보수라는 이데올로기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제발 그 이념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사회적 의무는 전혀 도외시 하면서 오직 특권만 누리려고 하는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의 한심한 작태는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할 정도다
그래도 조선 시대 선비들은 절개라도 있었지만 현 기득권층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
이문열은 자신이 보수라고 주장하지만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취하고 있음을 모른 척 한다
보수든 진보든 자기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따른 최소한의 도덕적 책무는 수행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단군 아래 한 자손이란 말도 실은 폐쇄적인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차별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백인에게 멸시당하면서도 동남아인들을 똑같이 멸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일본의 한국인 학살을 비판하려면 우리의 베트남 학살도 똑같이 반성해야 한다
열린 마음과 편견없는 태도란 이렇게 어려운 문제인가?

맥아더 장군에 관한 얘기는 상당히 쇼킹했다
인천 자유 공원에 맥아더의 동상이 있는 걸 당연시 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의 사당과 비슷하다는 것을 읽고 충격받았다
역사책에서 명나라를 받드는 장면을 읽을 때마다 한심하고 분노했는데, 정작 우리 역시 미국에 대해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니!
맥아더는 원자 폭탄까지 투하해 한국 전쟁을 마무리 짓자고 했다가 트루먼에게 해임당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처럼 나 역시 맥아더가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통일되지 않았을까 아쉬워 했다
그런데 가만이 생각해 보면 만주에 원폭 떨어뜨렸다가는 소련이나 중국이 선전포고로 생각하고 3차 대전 일으켰을 수도 있겠다
한 마디로 아주 위험한 발상인 셈이다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사람의 동상을 세워 놓고 존경한다는 게 왠지 부자연스럽다
조선 정부가 재조지은이라 하여 이여송 등 명나라 장수들 사원 세운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주체성을 갖는다는 것, 특히 권력층이 민족적 자존심을 갖는다는 건 참 힘든 일 같다

모병제에 대한 주장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제발 그 놈의 병역 의무제 좀 폐지됐으면 좋겠다
병역제 때문에 모성 보호법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자신들을 군대로 보낸 정부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군대 안 가도 되는 여자들을 비난한다
사실 그 점도 어찌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현 사회가 남성 위주라는 건 누구나 다 인정한다
특권을 누리는 사람의 의무로써 군대에 간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사실 여자가 군대에 안 가는 이유는 장애인이 징집되지 않는 것과 같다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군대 얘기만 나오면 역차별이라고 이를 간다
병역 비리로 얼룩진 특권층이나 정부 시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감하면서 말이다
만약 여자가 군대 안 가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남자라면 특권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요구할 권리도 없을 것이다
나부터가 이기적인데 누구를 비난한단 말인가?

미국과의 관계도 솔직히 어떻게 정립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북한처럼 민족 자존심 지킨답시고 고립되어 망해 가는 게 옳은 것인지, 아니면 굴욕적 외교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 미국 밑으로 들어 가는 게 옳은지 헷갈린다
오늘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신라나 고려, 조선 정부들이 당, 송, 명을 받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해된다
그래도 지금은 세계화가 되서 미국 말고도 문화교류를 할 나라가 많지만, 당시에는 중국 뿐이지 않았겠는가?
지배층이 그들의 문화를 숭상하고 받드는 심정이 이해된다
그런데 왜 내제적 가치관으로까지 변모시켰을까?
그만큼 도덕적 기반이 약했기 때문은 아닐까?
지배층의 도덕심은 어쩌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까?

저자는 기득권층의 비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지만, 사실 학생 운동 세력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그들의 권위주의 역시 기성 세대와 별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언젠가 여성 동인지에서 본 것처럼 밖에서는 평등, 인권 외치던 남자가 집에 들어 오면 공부하는 아내에게 집안일을 맡긴 채 손가락 까닥도 안 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상 생활에서까지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렵다
정권 탈취를 위한 하위 개념으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더욱 빛나는 미시적 의미의 진보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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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1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특권층이어서 군대를 가야 한다는 주장은 과한 듯^^ 어떤 측면에서 여자보다 남자가 혜택을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계급, 계층적인 성격을 함께 고려하지 않고 성별만으로 어떻게 특권층을 나눌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졸자들은 군대 안 가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marine 2004-11-1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특권층이라는 말이 아니라, 특권층인 일부 남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쟁나면 귀족들이 먼저 전쟁터로 나가는 애국심을 발휘한다, 뭐 이런 얘기 있잖아요^^

릴케 현상 2004-11-1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권층 남성을 군대 보내는 건 우리모두의 소망입죠^^
참!일상생활에서 신념을 지킨다는 건 어렵다는 글을 보며 문득 딴지를 걸게 됩니다.일상생활에서 신념을 지키는 건 참 쉽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사실은 그게 '신념'이 아니었던거죠.
 
잠들지 못하는 희망 - 세계문화예술기행 5
김명인 지음 / 학고재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역시 작가가 쓰는 여행기는 뭔가 다르다
여정이나 싸구려 감상의 나열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과 반성이 들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스페인 여행기와 한 씨리즈인데 그것보다 더 괜찮은 것 같다
스페인 기행기는 여정이 거의 없어 여행기라기 보다는 감상문 같았는데, 이번 독일 여행기는 여정도 자세히 나열하고 주변 풍경에 대한 묘사도 많아 더 좋았다
아무래도 저자에게 독일은 특별한 곳인 것 같다
스페인 여행기를 읽을 때는 그저 스페인이라는 독특한 나라를 가서 느낀 점만 쓴 것 같은데, 독일 여행기를 읽으면 저자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이 밀려 온다
한 때 학생운동에 가담해 사회주의를 꿈꾸던 청년이, 수년 후 망해 버린 사회주의의 탄생지에 갔을 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을지 알 만 하다
인생에 대한 반추라고 할까?
이루지 못한 젊은 시절의 열정에 대한 한탄이라고 할까?

나는 독일의 뮌헨에 갔었는데 어이없게도 숙소에만 머물렀다
그 전날 야간 열차를 타고 오면서 너무 고생을 해서 시원한 호텔에서 꼼짝 달싹도 안 하고 잠자고 먹기만 했다
독일에 도착했을 때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 분위기에 놀랬다
뮌헨은 원래 독일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도시라고 한다
날씨가 꽤 더웠는데 에어컨이 없다는 얘기 듣고 깜짝 놀래기도 했다
호텔 방은 비교적 크고 깨끗했다
주유소 안의 편의점 가서 샌드위치 사 먹던 기억이 난다
뮌헨에 있는 큰 맥주집 겸 양조장에 가기도 했다
흑맥주와 구운 소세지를 시켰는데 사람이 어마어마 하게 많았다
독일 사람들은 신이 나서 춤추고 난리도 아닌데 난 그저 소외감만 들었다
즐겁게 논다는 건 바로 저런 거구나, 그런 생각만 했다

저자는 스페인 기행기처럼 아들을 데리고 간다
나중에는 아내도 합류해서 자동차 여행으로 다닌다
자동차를 타고 가니까 교통이 편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저자는 닫힌 여행이었다고 말한다
하긴 버스 타고 길도 물어 가면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일 것이다
의외로 유럽의 도시는 작아서 길 찾기가 쉽다
런던 같은 경우는 관광지가 한 곳에 모여 있어 걸어 다닐 수도 있다
지하철 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역시 뭘 좀 알아야 깊이 있는 여행이 되는 것 같다
독일 학문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이 없다면 그저 무감각하게 박물관이나 건축물을 볼 것이다
자신의 전공 탓인지 저자는 작은 기념물에도 크게 감동한다
하긴 모든 사물이 다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의 차이지만 말이다
베를린의 박물관은 가 볼 생각을 못했는데 거기도 만만치 않은 예술품이 있다고 한다
이집트나 그리스 등지에서 건축물을 떼어 온 것을 두고 저자는 안타까워 한다
건축물이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나면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강대국의 문화재 약탈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잘 전시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뭐라고 평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한 해에 한 번씩 한 나라만 집중적으로 돌아 다녀도 좋을 것 같다

독일은 분권주의 나라라고 한다
중앙 집권화가 늦어 근대 국가 탄생도 늦었지만, 모든 도시들이 각각의 특색을 지닌 채 고르게 발전해서 오늘날 지방주의가 잘 발달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다 잘 꾸며져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기념관 등도 풍부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서울로만 집중되는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보면 정말 부럽다

솔직히 독일은 별 감흥이 없는 나라였는데 여행기를 읽으면서 가 보고 싶은 곳이 참 많았다
저자의 자세한 여정과 설명, 또 풍부한 감상 탓이다
독일 문학이나 사상이 인류 문화에 기여한 바가 참 크다
전혜린이 사랑한 도시가 바로 뮌헨인데, 이국적 정서가 그녀에게 딱 어울렸던 모양이다
낯선 곳에서 향수병을 앓지 않고 오히려 그 곳을 사랑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유학 생활이 되겠지

책을 더 많이 읽고 예술과 역사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무엇보다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류 문화의 보고들을 돌아보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어느새 독서처럼 여행도 나의 중요한 취미가 되버렸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돈이 좀 없어도 책과 여행을 벗 삼으면 외롭지 않게 살 것 같다
나도 다음에는 꼭 여행기를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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