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과 김용옥 - 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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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라는 작가는 그다지 호감이 안 가지만 그의 소설에는 깊이 감동한다
강준만이 비판하는 그 서구식 교영주의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그의 미려한 문장에 늘 감탄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을 읽을 때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어찌나 아까운지 밑줄 긋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가 만연체를 쓰고 장중하고 화려하게 미사여구를 동원해 가끔은 읽기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문장은 눈에 쏙쏙 꽂힌다
모름지기 소설가라면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의 문체를 보여 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배수아나 김영하 같은 가벼운 작가의 소설은 왠지 신뢰가 안 간다
자꾸 기본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현대 문학의 특성상 가볍고 빠른 문체를 수준 낮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말 기본적인 수준은 되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배수아 소설을 읽을 때는 정말 짜증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함부로 글을 쓰다니, 얘 문학 수업 한 거 맞나?
그런데 왜 이런 애들 글이 팔리지?
신기하다...

이문열이 누리는 문화 권력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 되서 새롭지도 않은 주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소재다
이 당연한 전제가 과연 논리적으로 합당한지 알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강준만의 진짜 전공은 신문 방송학이 아니라 인물 비평인 것 같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 에서는 나를 몹시 실망시키더니, 그래도 이문열 비판은 시원시원 하다
이문열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그래서 작은 것 하나까지 철저하게 챙긴 것 같다
그는 아무래도 학자 타입은 아닌 것 같다
교수 직함은 글 쓰는 자격으로 가지고 있고 진짜 직업은 정치 비평가로 나가야겠다

김용옥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서 1권만 빌렸다
이문열은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비판가들로부터 가장 형편없는 작품으로 꼽히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마저도 나는 너무 재밌게 읽었다
이문열은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다
어쩜 그렇게 맛깔스럽게 얘기를 잘 하는지...
그 문장의 질과 더불어 플롯 구성이 탄탄하다
특히 중단편들을 보면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편과 달리 짧은 분량에서 완성된 구조를 보여 주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그의 중단편은 장편 못지 않게 탄탄한 구조가 돋보인다
적어도 그를 문학성만 가지고 깍아 내릴 수는 없으리라

문학적으로는 훌륭하다
그냥 글만 쓰는 작가였다면 오늘날의 위상도 얻지 못했겠지만 이 정도의 비난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왜 문화 권력을 탐하는가?
강준만이 지적하는 대로 그는 권위주의와 가부장제로 뭉친 사람이다
조선 시대 큰 선비에 비유하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전통 문화에 대해 얼마나 큰 애착을 갖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애틋한 면이 많았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문장 곳곳에 묻어나 마음이 쓸쓸했다
매잡이도 그렇고 갓 만드는 노인도 그랬다
더 이상 가치를 얻지 못하는 것들을 붙들고 있는, 그것도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로써 붙잡고 있는 구시대의 장인들에 대한 묘사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을 휘두르는 가부장제와 족보, 문중, 권위주의 등에 대해서도 강한 애착을 보인다
역설적으로 가부장제가 구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문열이 굳이 욕먹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취향 내지는 신념의 다양성으로 치부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21세기 한국 사회는 가부장제에 꽁꽁 묶여 있을 뿐더러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다
즉 가부장제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문학을 통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해 내고, 그 댓가로 문화 권력을 얻는다
비판자들은 이것을 공격한다

이문열은 아버지가 월북한 후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 줘야 했다
고시에도 실패하고 젊은 시절을 불행히 보낸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대한민국 사회의 중심 인물이 됐을까?
강준만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신해 자기가 당했던 그 방식을 답습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할 때 더 무섭고 위선적이며 철저한 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을 핍박하는 지배 체제에 반항하기 나름인데, 이문열은 영리하게도 그 지배 체제 200 % 동의해 그들보다 더 완벽하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제화 시킨다
사실 이것은 자기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원래 이문열은 공산주의 속성이 없다
아버지가 월북하지 않았더라도, 그래서 빨갱이 자식이라고 차별받지 않았더라도 그는 공산주의를 혐오했을 것 같다

그가 실은 민주주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딱히 꼬집어 증명할 수는 없지만 강준만의 이 느낌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박정희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 어리석은 대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권위주의 사회다
그는 대중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권위주의야 말로 문중과 더불어 그를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 같다
이러한 이문열의 성향과 가장 대조적인 사람이 바로 마광수가 아닐까?
마광수는 문학의 다양성, 더 나아가 다원주의 사회를 꿈꾼다
"즐거운 사라" 가 법정으로 간 것은 황당한 사건이다
하긴 "천국의 신화" 도 검찰에 출두했으니 할 말도 없지마 말이다
왜 사법 당국은 자신들이 국민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마광수 소설이 문학적으로 우수한지 비열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인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가 간통 같은 부도덕적인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좀 야한 소설 몇 권 썼을 뿐인데 구속까지 시키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나도 그의 소설을 읽어 봤지만 요즘처럼 인터넷에 성이 넘쳐 나는 시대에 그 정도면 별 문제도 아니다
연세대 교수라는 신분 때문에 문제가 된 걸까?
글쎄, 명문 사립대 교수는 반드시 정숙한 소설만 써야 하는 건가?
어쨌든 이런 마광수와 가장 배척되는 사람이 바로 이문열이니, 그가 마광수를 작가로 인정조차 안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문열의 진짜 적수는 진중권이다
여당과 시민 단체의 관계를 이문열과 젖소 부인 관계로 비유한 그의 글발은 놀랍기 그지 없다
강준만 보다도 한 수 위 같다
미학을 전공했다더니만, 확실히 정곡을 찌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앞으로 진중권 책도 읽을 생각이다
이문열은 진중권과의 직접 대결을 피한다
이길 수 없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신문과 문학의 문언유착이다
신문은 TV 보다는 덜 상업적이고 더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강준만은 신문 역시 철저하게 상업주의를 표방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TV 광고에서 만큼은 책을 팔지 않게 되길 바란다는 이문열의 바램을 비웃는다
왜? 그의 소설은 신문에서 엄청나게 팔아 주니까 말이다
강준만은 일제 시대부터 신문이 문학을 지배해 왔다고 말한다
식민지 치하였으니 사회 비평이나 역사 평론 같은 것은 못하고, 가장 원만한 형태의 문학만이 신문에 제대로 실릴 수 있었다
그래서 신문은 문학을 장악하고 문단에 등단하기 위해서 신춘문예는 필수 코스가 됐다

이 신춘문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심사위원이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문열만 해도 여러 신춘문예의 심사위원을 겸하고 있다
새롭고 참신한 인재를 개발해 줄 신문에서 예비 작가들에게 심사위원의 입맛에 맞출 것을 강요하는 꼴이니 기존 문학의 답습 밖에는 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므로 신문이 진정으로 문학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신춘문예 이외의 여러 등단 루트를 열어 주고 심사위원 역시 특정인에게만 집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21세기를 지배하는 원리는 다원성 같다
권위주의와 반대되는 말,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바로 다원주의 같다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이문열의 문화 권력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철저한 상업주의에 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 그가 먹히는 이유도 바로 돈을 벌어 주기 때문이다
그는 평역한 "삼국지" 까지 합치면 천만권 이상을 판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다
천만권이라니, 상상이 안 가는 부수다
그의 작품은 늘 대중에게 먹힌다
심지어 이문열이 선정한 고전이라는 전집도 나오고 그의 중단편은 끊임없이 끼워 넣기 식으로 재출간 된다
이것은 우리 문단의 스타 시스템과 관련이 크다
즉 신문으로서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
확실한 것만 띄워 준다
영화나 드라마 캐스팅 때 스타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일단 이문열 작품이 어느 정도 먹힌다고 생각되니까 신문에서는 안전제일주의로 그의 작품을 계속 띄운다

강준만은 그가 철저히 상업적인 작가임을 지적하면서 마광수에게 상업성 운운하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고 비웃는다
적어도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설마 자신이 상업주의와 무관하다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하긴 그렇다고 대놓고 나 돈 벌려고 글 쓰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문열이 간접적으로 위선을 떠는 반면 김용옥은 대놓고 말하는 스타일이다
어쨌든 둘은 튀길 좋아하고 기본적으로 문화 권력 내지는 지식 권력을 원한다
특히 미디어의 지배를 통해 권력을 휘두르고자 한다
김용옥은 관심없는 사람이라 이만 각설한다
"신들메를 고쳐 매며" 를 쓰던 그 자세로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말년의 대작을 위해서 정진했으면 좋겠다
수십년 간 누려온 그 문화 권력을 내려 놓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쓰길 기대한다
우리 문학사에도 자랑할 만한 큰 작품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문열이 그 작품을 써 주길 바란다
그는 충분히 역량있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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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 의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0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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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어렵지는 않았다
"이방인" 도 마찬가지지만 문장이나 내용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오히려 평이한 서술이다
그 안에 숨겨진 상징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일 것이다
혹시 카프카는 박홍규의 말처럼 그냥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쓴 건 아닐까?
우리가 지나치게 상징을 부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재 자체는 독특하다
언젠가 이 책의 앞부분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주인공이 벌레로 변하는 걸 보고 꿈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어떻게 사람이 벌레로 변할 수 있겠는가?
혹은 남들은 나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는데 내가 벌레로 변했다고 주인공 혼자 착각한다고 생각했다
설마 진짜 벌레가 된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카프카는 참 독특한 설정을 한 셈이다

만약 정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벌레로 변하는 것 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상황을 찾자면 갑자기 장애인이 된다거나 감옥에 갇히는 등 식구들에게 짐이 되는 처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문열의 "영웅일기" 에서 빨갱이 남편을 둔 죄로 친정에서도 쫒겨나는 여자의 캐릭터가 있다
그녀는 유일한 피난처로 친정을 찾는데 아버지와 동생이 모두 그녀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가족이 등을 돌릴 정도라면 세상에 자기 편은 하나도 없단 얘기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경제 활동을 못하고 여동생은 너무 어렸다
그레고르는 자기가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여동생을 음악 학교에 보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그레고르의 직장은 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사업체다
그는 출장을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기차를 타야 하는 고달픈 일을 한다
그럼에도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에 그레고르는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장들 모습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그는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몸을 가눌 수 없고 걸을 수도 없어 배로 기어다닌다
가족들은 기겁을 하고 그를 방에 가둔다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 하려고 하지만 말도 안 통한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처지인가!!
중요한 건 식구들의 태도다
그레고르의 노동력에 기대 살던 식구들은 그를 괴물로 생각하고 가두려고만 한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벌레라 생각하고 사과를 던져 치명타를 입히기도 한다
가족들은 그를 부끄러워 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결국 하숙생들에게 그레고르의 모습을 들킨 후 그들이 집을 나가 버리자, 가족의 분노는 폭발하고 만다
심지어 그에게 인간적으로 대해 주던 여동생 그레테마저 저 벌레는 오빠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만약 진짜 오빠라면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는데 아직도 뻔뻔하게 살아서 이 집을 돌아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 날 하숙생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바로 그레테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하숙생들은 그레테의 바이얼린 연주를 청했으면서도 막상 연주가 시작되자 지루해 하고 그녀를 무시한다
여동생이 상처받을 것을 걱정한 그레고르는 그녀에게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다 그만 모습을 들키고 만 것이다
물론 그레고르의 이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결국 그레고르는 그 날 숨을 거둔다
자살했는지 굶어 죽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죽고 나자 가족들은 죽은 벌레 대하듯 그의 시체를 치운다
그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이 단편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던 그레고르의 비극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는 가족을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했다
여동생을 음악 학교에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일 정도로 가족을 사랑했다
그런데 그가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고 끔찍한 벌레로 변하자 가족은 그를 외면한다
대체 그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일했단 말인가?
가족이란 가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거라 믿었는데, 그것은 그저 당위일 뿐일까?
만약 장애인이 됐다면 그레고르를 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가족은 기본적인 양심과 가치관을 가진 정상적인 집단이었다
그렇지만 벌레로 변한 아들을 여전히 가족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일단 그 혐오감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벌레로 변할 만큼의 충격적이고 끔찍한 일이 생긴다면 이것을 사랑으로 감쌀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벌레로 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버림받음으로써 가장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혹시 그는 자기 가족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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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4-11-19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 매번 읽어야지 읽어야지하면서 또 방치해둔 작가...

ㅡㅡ;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패자가 되는 카프카. 나중엔 꼭 읽어야지.

marine 2004-11-19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서 멋진 리뷰 부탁드려요^^
 
여성 클라시커 50 11
바르바라 지히터만 지음, 안인희 옮김 / 해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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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 시리즈는 기획 의도는 좋은데 집필 내용은 수준 이하다
솔직히 왜 번역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나의 주제에 따른 50개의 다른 예를 단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커플" 읽을 때도 짜증났는데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 수준의 문제인가?
아니면 편집의 한계인가?
독일에서 출판되는 거라 그런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인상적인 인물들은 있었다
제일 기억나는 사람은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다
마리아 칼라스가 즐겨 맡은 역할인데 그녀의 정열적인 이미지와 딱 들어 맞는다
메데이아는 바람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애인을 죽이는 것은 물론 자식들마저 죽인다
남편의 기쁨을 모두 빼앗고 싶었던 것이다
차라리 이아손을 죽이면 되지 왜 자기가 낳은 자식들마저 죽여야 했을까?
그야말로 복수의 화신이 아닐 수 없다
동양 신화 같으면 아무리 복수를 한다고 해도 어머니가 친자식을 죽이는 설정은 불가능 할텐데, 역시 그리스 신화답다

이집트 여왕 하쳅수트나 예카테리나 여제 등도 흥미롭다
하쳅수트는 의붓아들의 섭정 노릇을 하다가 직접 여자 파라오에 등극하는데, 20여년을 다스렸으나 죽은 뒤 그녀의 이름은 전부 지워졌다
의붓 아들 투트모세 3세가 계모의 흔적을 역사에서 지운 것이다
여자 파라오에 등극하고 자그만치 20년 씩이나 나라를 다스렸는데도 권력 기반이 확실하지 못했나 보다
솔직히 의붓아들을 20년 씩이나 살려 둔 것도 신기하다
그녀에게는 친딸 네페루레가 있었는데 왜 그녀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을 못했을까?
여자라는 한계 때문이었을까?
하긴 측천무후도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결국 감금 상태로 죽고 말았다

반면에 예카테리나 여제는 남편을 죽이고 차르에 오른 독특한 케이스다
그녀는 러시아 사람도 아니고 독일 여자였다
그녀는 권력 기반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귀족들이 그녀를 권력 파트너로 삼았을까?
아무리 남편 표트르가 멍청하다고 해도 황제 자리에서 끌어 내고 외국인 마누라를 세운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대체 그녀는 어떻게 러시아 청년 장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마리 퀴리를 비롯한 여자 과학자들의 생애는 늘 감동을 준다
그녀들이 과학 분야에서는 소수였고 편견을 열정으로 이겨 낸 의지의 화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퀴리 부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이지만, 리제 마이트너는 처음 알게 됐다
불행한 유태 여성 과학자였던 그녀는 나치 치하에서 연구를 중단하고 스웨덴으로 망명한다
수용소에서 안 죽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공동 연구를 진행하던 오토 한은 핵분열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단독 수상했다
그렇지만 화학 분야에서 빛나는 그녀의 업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독일 학생운동의 꽃인 소피 숄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겨우 스무 한 살 먹은 이 여대생은 오빠 한스와 함께 "하얀 장미" 라는 지하 조직에서 삐라를 돌린 죄로 사형에 처해진다
나치 치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가 전복죄라니, 너무나 엄청난 죄목이라 도저히 스물 한 살 짜리 여자애와 연결이 안 된다
왜 독재 국가들은 보잘 것 없는 개인의 힘을 이토록 두려워 하는 것일까?
2차 대전 치하였기 때문이겠지만 그녀와 오빠 한스는 재판 2개월 만에 처형된다

마돈나는 섹스의 화신으로 현대 연예 사업을 요리하는 주체성으로 대표된다
그녀의 노래를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그 위력이 실감은 안 나지만, 어쨌든 모든 언론과 출판물에서 그녀는 대중 문화의 요리사로 나온다
대중 문화의 소모품이 아니라 그것을 주무르는 능동적 객체로 묘사된다
대체 그녀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녀는 대중 문화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락가수 제니스 조플린은 마약 중독에 빠져 스물 여섯의 나이로 죽었다
절제하지 못한 댓가일까?
마를린 먼로 역시 마약 중독으로 죽은 것을 보면 마돈나의 지배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제인 오스틴은 결혼도 하지 않은 얌전한 18세기 여성이었다
목사 딸이었는데 당시 여성들처럼 집에만 갇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놀라운 관찰력으로 빅토리아 시대인들의 풍속사를 잘 묘사했다
"오만과 편견" 은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도 집에 머무르는 걸 좋아하는 주부 작가였다
그래서 추리 소설의 공간은 집이 자주 등장한다
반드시 세상 경험이 많아야 글을 잘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두 여성 작가만 봐도 말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도 다시 읽고 싶다

코코 샤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옷을 명품으로 승화시켰을까?
여성이 기업을 이룬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그녀의 위대함은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데 있다
그녀는 사치품을 미적 기호와 심미안으로 연결시켰다는 비판을 받긴 하지만 어쨌든 대단하다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처녀가 혼자의 힘으로 패션사에 길이 남을 거대 기업과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화다

난잡한 구성과 얕은 해설이 불만이지만 다양한 케이스를 알게 된 건 기쁘다
좀 더 깊이 있는 서술을 했더라면, 또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오페라와 문학에 대한 것도 읽을 생각이다
역시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기쁨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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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끓는 사랑 - 세계문화예술기행 3
김혜순 지음 / 학고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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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기행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중간 정도다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말하자면 변방 국가다
그래서 서유럽 여행할 때 여기 가려면 한 달은 잡아야 한다
내가 스페인에 가고 싶은 이유가 바로 프라도 미술관이듯, 이 책의 저자도 스페인이 배출한 위대한 예술가들을 보기 위해 먼 이국 땅으로 날아 갔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유산인 문화임이 틀림없다

스페인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독특한 유럽 국가다
지도책을 열심히 봐야 할 것 같은데, 이베리아 반도가 아프리카와 가깝고 중동과도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나 보다
그래서 7세기 이후 이슬람이 팽창하면서 스페인까지 진격했고 수백년 동안 이슬람 지배권 하에 있었다
16세기에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나도 왕에 의해 통일됐다
국토 회복 운동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페인도 이민족의 지배를 수 백년 동안 받은 셈인데 어떻게 르네상스 시대 때 그 많은 식민지를 거느릴 수 있었을까?
유럽 역사는 흥망성쇠가 잦아 동양사 보다 훨씬 흥미롭다
그 역동적 에너지가 그들의 발전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이슬람 서원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살아 있는 생명체나 사물을 조각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아라베스크라는 기하학 무늬가 발달했다고 한다
저자의 해설에 따르면 추상형이기 때문에 시대가 달라져도 촌스럽지 않고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유럽의 동양적 풍경이라...
이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과는 좀 다르지만 어쨌든 동서 문명이 하나로 잘 어울어져 멋진 풍경을 연출할 것 같다

더 관심 있었던 것은 가우디의 건축물이다
가우디가 유명한 건 알았지만 막상 그의 건축물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쩜 그렇게 형형색색의 칼라풀한 페인트칠을 했을까?
또 건축물에 자유로운 곡선을 동원할 생각을 했을까?
원형이 아니라 완전히 파도치는 곡선 모형이다
그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BR>건축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또 자유로운 생각의 표현일 수 있음을 느꼈다
가우디에 관한 관심이 증폭된다
꼭 직접 가서 보고 싶다

스페인 하면 뭐니뭐니 해도 프라도 미술관이다
다들 마드리드 가면 여기부터 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유럽이 우리를 끄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놀라운 미술관들 덕택인 것 같다
서양사가 곧 세계사가 되버린 현대에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감상하는데 동서 구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프라도 미술관의 백미는 고야와 벨레스케스다
사실 고야의 그림이 왜 훌륭한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고흐 같은 정열적인 인상파 그림이나 미켈란젤로 같은 정교한 르네상스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해석하기 어려운 피카소나 대충 그린 듯한 고야의 그림은 솔직히 감동이 별로다
그렇지만 두 화가 모두 미술사에 워낙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라 관심이 간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범한 후 시민 병사들을 사격하는 그림은 아주 유명하다
자주 봐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 훌륭한 평가를 받아서 그런지 내 눈에도 인상적으로 보이긴 한다
그래도 역시 친숙한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다
이것은 화가들이 꼽은 최고의 그림이라고 한다
나 같이 평범한 독자는 일단 평론가들이 좋다고 하면 좋게 인식하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이 나에게도 특별해 보인다<BR>워낙 자주 언급되는 그림이라 직접 보면 가슴이 떨릴 것 같다
언젠가는 꼭 가서 직접 보고야 말리니!!

스페인 하면 생각나는 게 플라맹고와 투우, 그리고 집시다
이미 바르셀로나에서 투우는 금지됐고 전체적으로 사라져 가는 추세라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래도 좀 이상하긴 하다 1995년도에 쓰여진 기행문인데 왜 그 유명한 투우를 안 봤을까? 저자가 동물학대라고 싫어하나?)
플라맹고와 집시는 스페인 전역에 퍼진 것 같다
어딜 가나 집시가 등장한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도둑질 하거나 동정해서 먹고 산다
또 열정적으로 플라맹고를 춘다
캐스터네츠를 치는 경우는 드물고 박수를 치면서 신들린 듯 춤을 춘다고 하다
너무 더우니까 주로 시원한 동굴에서 관람을 한다
동굴 속에 앉아 신들린 듯 격정적인 춤을 보는 즐거움!!
얼마나 신비롭고 환상적일까? 우리도 이런 전통이 잘 계승됐으면 좋겠다

집시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유태인들은 미국에서 상류층을 형성하고 돈도 많고 기어이 나라까지 건설했는데, 이 가엾은 민족은 왜 소매치기로 전락한 걸까?
민족이란 이처럼 섞이기 어려운 독특한 집단일까? 원래 집시라는 것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특성이 있나?
하여간 우리처럼 한 곳에 정착해 무려 5000년을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런 유랑 민족은 특이하게 보인다
저자는 집시들을 몹시 경계하는데, 이것도 결국 민족차별이라는 편견에 싸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실을 어쩌란 말인가!!

스페인 사람들은 엄청나게 먹어댄다고 한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워낙 더운 나라라 많이 먹고 푹 쉬는 게 체질화 됐다
특히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유명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상점이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오후 일을 위해 원기를 충전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더운 것 같기는 한데, 우리처럼 부지런한 민족에게는 낯선 관습 같다
그래서 성당도 몇 백년 걸쳐 짓는 걸까?
저자는 스페인 사람들의 엄청난 식성과 불룩 나온 배에 깜짝 놀랜다
그러고 보면 동양인들은 다들 날씬하다
나도 유럽 가서 깜짝 놀랬다
진짜 비만이란 바로 저런 거구나, 고개가 다 끄덕여질 정도였으니까

야간 열차에서 고생한 얘기는 내 얘기 같아 웃음이 나왔다
3주간 유럽 여행하면서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잠자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대체 나는 무슨 베짱으로 야간 열차를 많이 끼워 넣던지!!
그 놈의 열차 예약하느라 관광 포기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행은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야간 열차, 생각하기도 싫다
그나마 이 사람들은 침대칸에서라도 잤다
우린 여섯 명이 들어간 그 좁은 객실에서 앉아서 밤을 보내야 했다
정말 끔찍하다
그렇게 고생하고 나면 다음 날 여행은 포기해야 한다
베네치아에 가서도 두깔레 궁전에 누워 잠만 잤고, 뮌헨 가서는 아예 호텔에서 나오지도 않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유럽을 왜 갔나 몰라

물론 그 때 추억은 내 삶에서 가장 멋진 것이다
말로만 듣던 유럽을 직접 내 눈으로 체험했을 때, 역시 보는 것과 듣는 것은 확연히 다름을 느꼈다
문화적 쇼크라고 할까?
어쩜 그렇게 도시들이 문화적이고 아기자기 한지...
문화 콘텐츠가 참 풍부한 아름다운 도시라는 이미지가 남는다
어떤 도시를 가든 책에서 볼듯한 고딕 양식들의 건물들이 서 있고 그 넓은 분수대와 광장들, 또 공원, 박물관이나 미술관!!
특히 파리나 런던은 루브르와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적어도 파리에 살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을 알고 있을까?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무엇보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
저자처럼 딸을 데리고 충분한 일정을 가지고 그것도 공짜로 하는 그런 여행, 정말 부럽다
물론 그녀에게는 책을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겠지만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다
나도 아이를 갖게 되면 어렸을 때부터 꼭 해외 여행을 데리고 다니겠다
성장에 가장 큰 자극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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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진중권의 책을 꼭 읽어 보고 싶었다
한 말빨 한다길래 대체 수준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운 대목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강준만 보다 한 수 위다
적어도 진중권은 자기 입으로 자기 논리를 얘기한다
강준만처럼 남의 얘기 가지고 책 한 권 쓰지는 않는다
다만 문장이 가끔 구어체로 흘러 가는 건 불만이다
본인은 가벼움을 추구하는 모양인데, 글을 쓸 때는 좀 진중했음 좋겠다
옛날에 유시민이 쓴 "Why not?" 에서도 거부감을 느낀 바다
글을 잘 쓰는데 가끔 너무 가볍다
그래도 글은 정제된 언어여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진중권은 마초는 아니다
일단 그건 마음에 든다
마초들의 집단 히스테리를 보면 머리가 다 아프다
한국이라는 가부장 사회에서 철저하게 남성 우월주의 문화에 길들여진 마초들은, 권위주의와 파시즘에 물든 부류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이 파시즘과 연결됐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병역 가산점 폐지 나왔을 때 소수이고 약자인 여성들에게 퍼부은 그 폭언과 집단 행동을 보라!!
이런 놈들이 설마 진보 운운하지는 않겠지?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생각을 남성 우월주의와 동일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걸 깨닫지 못한다
"다르다" 는 것과 차별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입으로는 다르다 하면서도 인식은 똑같게 한다
이게 문제다
남녀차별은 인종차별과 똑같은 논리다
미국 가서 유색인종이라고 무시당하는 게 열 받는다면 우리 역시 흑인 무시하면 안 되고 마찬가지로 여자들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에 관한 시각은 신선했다
역시 푸코는 예리하다
그는 동성애를 새로운 인간 관계의 형태로 봤다
진중권의 지적처럼 남녀 간의 사랑이란 남성 우월주의에 기초한 관계다
동성애는 이 우월 관계를 깨뜨리고 새롭게 다시 맺는다
동성애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다는 논리는, 성을 단순히 생식의 본능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므로 동성애 뿐 아니라 피임과 매춘 등 애를 낳지 않는 모든 종류의 쾌락적 행위도 다 비판해야 한다
또 성서에서 금지했다는 말 역시, 왜 동성애만 아직까지 금기시 하는가?
공평하게 돼지고기도 안 먹어야지
동성애 차별하는 거 반대하지만 호불호 표현까지 막지 말라는 얘기도 진중권이 한 방에 날려 버린다
인터넷 같은 공적 자리에서 표현하면 이미 그 자체가 동성애자들에 상처를 주는 언어 폭력이 된다
네오 나치주의자 같은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유색 인종이나 외국인 싫어한다고 표현하면 그것 역시 우리에게 상처가 되지 않겠는가?

강준만이 지적한 것처럼 피해자는 가해자의 위치에 설 때 더욱 잔인하다
철저하게 가해자 역할을 하므로써 피해자의 신분을 벗어 버리려고 애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문열이다
빨갱이 아니라는 거 보여 주려고 더욱 빨갱이를 욕하고 나서는 것이다
수구 이데올로기의 철저한 내제화라고 할까?
인종 차별에 열받는 사람들은 타고난 것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나 늘 살펴 봐야 한다
내 자신이 남을 차별한다면 나 역시 또다른 사람으로부터 차별받는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진중권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다
개인주의의 참뜻을 새롭에 아는 기분이다
흔히 개인주의란 서구 사회에 만연한 이기주의 비슷하게 쓰이는데, 이거야 말로 개인주의나 서구 시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말이다
개인주의는 집단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등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구속을 넘어서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이 바로 개인주의다
애국심 같은 단어 대신 사회적 연대라는 개념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꾀하는 것이 바로 개인주의다
최연구가 쓴 "프랑스 문화 읽기" 에서도 발견한 개념이다
솔리디테르, 사회적 연대,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이념인 박애를 의미한다
개인주의는 근대 민족국가의 범주를 넘어서는 개념이므로 탈근대적이고 세계화와 어울린다

진중권은 개인주의를 학연이나 지연, 혈연 등에 의지하지 않고 또 민족이나 인종의 테두리 안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홀로서기 할 것을 권한다
그래서 그는 선후배를 공적인 자리에서 씹는 걸 힘들어 하지 않는다
그의 인격과 공적은 구분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이 얼마나 닫힌 사회인가는 인맥의 끈끈함으로도 금방 알 수 있다
적어도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이라면 이 인맥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몸으로 실천해야 그들의 말에 귀기울일 게 아닌가?
마찬가지로 진보를 자처한다면 집에서도 가사 분담을 당연시 해야 한다
마초적 기질과 진보는 너무나 대립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보수층, 아니 수구층의 이데올로기를 보면 대체 이데올로기라는 게 있나 싶을 때도 있다
신념이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지켜내야 하는 가치인 법인데, 우리나라 보수층들은 가장 기본적인 병역 의무도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쥬 아닌가?
자신들이 가치 있다고 믿는 안정과 질서, 애국심 등을 국민에게 강요하려면 먼저 국가의 의무를 솔선수범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입으로는 국가 발전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조하면서 정작 국가의 근간이 되는 병역의무는 기피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들이 누누히 강조하는 그 국가의 이익이란 바로 수구층의 이익에 지나지 않단 말인가?

진중권은 이문열의 삼국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자신이 주인으로 섬기는 자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죽어가는 충신들의 숭고함을 찬양하는 이문열은 전체주의자 내지는 파시스트적이다
진중권의 지적처럼 자기가 옳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섬기는 자가 옳은 것을 위해 죽는 것은 개죽음 아닌가?
자발성과 주체성이 결여된 어떤 형태의 희생도 무가치 할 뿐이다
진중권은 그런 의미에서 전태일의 죽음이 가미가제 특공대 보다는 더 숭고하다고 본다
일단 죽음이 숭고미를 띄려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이바지 해야 하는데, 아무리 좋은 쪽으로 보려고 해도 가미가제나 미시마 유키오의 군국주의를 옳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진중권이 이문열을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자칭 보수층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파시스트적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집단의 가치에 개인을 함몰시킨다
또 그것은 필연적으로 독재와 권위주의, 억압 등과 연결된다
그러니 이문열이나 이인화 등이 박정희의 개발 독재를 찬양할 수 밖에
박정희의 경제 발전 업적은 업적이고, 그의 독재는 독재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기념관까지 지어 떠받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사실 공병호 같은 자칭 자유주의자는 극단적인 자유, 즉 완전한 규제 철폐를 원한다
시장주의자들이 작은 정부를 원하는 것은 새롭지도 않은 고전적 개념이다
공병호는 심지어 장기 매매의 합법화까지 주장했다고 하는데,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의 생명까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다
진정한 자유란 국가나 집단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상태다
보수층이 국가의 안전을 내세워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대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경제적 규제의 철폐는 자유가 아니다

미국보다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깊은 서구 유럽 사회를 역할 모델로 삼아야 할 것 같다
결국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우리의 의식이 성숙해져서 억압과 차별을 분명히 인식하고 일상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보다 살기 좋아질 것이다
유시민 책을 보고도 글 참 잘 쓴다 싶었는데, 진중권도 만만치 않은 필력을 자랑한다
그가 쓴 "미학 오딧세이" 도 꼭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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