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문학
마종기 손명세 정과리 이병훈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정말 재미없게 읽은 책이다
여러 명이 쓰면 꼭 이게 문제다
전체적인 일관성이 없고 수준이 떨어지는 글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좀 심하다
여러 필자들의 글을 모을 때는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로 수렴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의학과 문학을 소재로 했다는 걸 제외하면 비슷한 점을 찾을 수가 없다
차라리 몇몇 사람들만 선발해서 좀 더 많은 분량을 할당해 깊이있는 분석을 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의학과 문학의 결합이라는 보기 드문 시도를 했다는 점은 높이 사지만, 중구난방 식의 편집은 문제가 있다
편견일수도 있지만 전문적인 글쓰기를 안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수준도 낮은 편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풀어내는 에세이 형식을 탈피하긴 했지만, 의학과 문학의 상관관계라는 거대한 담론을 펼치기에는 아직은 저자들의 실력이 부족한 듯 싶다

그러나 시도 자체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 하다
언젠가 "비블리오 테라피"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비블리오는 그리스어로 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책으로 심리 치료를 한다는 얘기다
요즘 음악 치료니, 색깔 치료니, 향기 요법이니 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심리 치료를 시도하지만 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참 신선했다
비블리오 테라피가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제 의사들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필요성이 생긴다
사실 의사들은 지나치게 자연과학 쪽으로 치우쳐 있다
비단 의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공계쪽 전부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의학은 인간의 몸을 다루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자연과학 학문보다도 더 많은 인문학적 교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이 점을 중요시 한다
많은 부분을 검사나 의료 기계에 의존하고 있지만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알려 주는 정보이다
이 정보를 문진을 통해 충분히 습득하기 위해서는 환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의사들은 실제로 이 기술이 매우 서툴다
대중매체에서 흔히 그려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의사는 차갑고 냉정해서 환자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적인 인간으로 나오는데, 상당 부분은 의사들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저자들도 지적하는 바지만 대체의학이나 한의학 쪽으로 관심이 가는 까닭은 왠지 그 사람들은 전인적인 치료를 할 것 같고 보다 인간적으로 병에 대한 접근을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실제적인 치료율을 떠나서 대체의학이나 한의학이 검사나 기계에 의존하는 대신, 전체적이고 인간적인 치료를 한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에 대해 의사들은 한 번쯤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제일 인상적인 글은 질병의 개별성을 강조한 어떤 교수의 글이었다
병원에 가면 환자는 통증을 호소하며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한다
그런데 의사들은 그저 수많은 환자 중 하나로 생각하고 그 질병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즉 환자는 질병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데 비해, 의사는 보편적으로 대할 뿐이다
사실 의사가 모든 환자의 질병에 대해 개별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의사 역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성자가 아니고 일을 해서 먹고 사는 하나의 직업인인 이상 매일 매일 해야 하는 일, 즉 치료과정에 항상 특별한 관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매일 매일 듣는 환자들의 불평이 얼마나 지겹겠는가
그들의 무관심과 일상적인 접근이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대체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것을 다루는 직업이므로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직업 윤리가 투철하고 엄격해야 한다고 믿는다
환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한다는 의미에서도 의사의 인문학적 소양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의과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또 일반 학부에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을 선발해 4년간 의학 교육을 시키는 대학원 제도를 통해 의사의 인문학적 자질을 장려한다
우리나라 의과 대학은 2년간의 예과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인 인문학적 지식의 습득은 미미한 편이다
미국 의과대학은 대학원 입학을 위한 필수 학점에 문학을 포함시키고 있다
생물이나 화학 등 일반적인 과학 과목보다 문학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가능하면 인문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려고 노력한다
인문학적 지식이 많다고 해서 인간적인 의사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균형감각을 갖춘 의사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의사가 지역 사회의 리더 역할을 하려면 글쓰기 훈련도 해야 하고 인문학적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연세대학교에서 본과 과정에 문학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예과도 아닌 본과에서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접목은 비단 의학과 문학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갈수록 스페셜리스트 보다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고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만큼 자기 전공 분야에만 몰두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학문들의 교류가 필요할 것이다
의학은 자연과학 중에서도 특히 인문학과의 접목이 많이 필요한 학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에서부터 기본적인 인문학 지식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진 의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의외로 의사 출신 작가들이 많다
제일 유명한 사람은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거릿 미첼도 의과 대학을 중퇴한 전적이 있다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 등을 쓴 영국의 서머셋 몸도 일반의였고, 광인일기나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루쉰도 일본의 한 의과대학을 중퇴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의학과 문학의 만남은 아주 낯설거나 이질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인간의 생로병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만큼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깊은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보면 의사 출신 작가들의 등장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로빈 쿡처럼 우리나라에도 의사 출신 작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안톤 체호프 같은 대문호가 나온다면 더 바랄 게 없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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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청목 스테디북스 31
에밀리 브론테 지음, 인병선 옮김 / 청목(청목사)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정말 정말 어렵게 읽은 책이다
어렸을 때 주니어 세계 문학 전집에서 절반 정도 읽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기를 쓰고 읽었다
솔직히 아주 재밌거나 감동적이지는 않다
소설, 특히 애정 소설의 맛은 주인공의 세심한 심리 묘사라고 믿는 나에게, 이 소설은 너무나 불친절하다
작가가 주인공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전지적 시점도 아니고, 주인공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1인칭 시점도 아닌, 제 3자에 의한 관찰자 시점이기 때문에 사건의 나열에 불과한 느낌이 든다
"위대한 게츠비" 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랑 이야기를 남이 해 주는 소설은 정말 재미없고, 머리를 아주 많이 굴려서 상상을 해야만 그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좀 난해하다

이런 고전들은 어린이용으로 줄거리만 압축되서 출판된다
그런데 줄거리만 나열하고 쉬운 문장으로 번역이 됐다면 과연 이 소설의 참맛을 알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떤 어린이가 미치광이 히드클리프의 사랑을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고 난해한 소설이다
문장을 쉽게 바꾸고 내용을 요약한다고 해서 이해할 만한 책이 절대 아니다
이러니 내가 중학생 때 던져 버렸지
19세기에 발표된 소설이라 요즘 읽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 정도의 현대성을 가진 게 신기할 정도다

사실은 소설의 제목 때문에 꼭 읽어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었다
"폭풍의 언덕" 이라... 왠지 무슨 사연이 숨겨 있을 것 같은, 그것도 아주 격정적이고 치열한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단 한 편만을 쓴 채 20대에 죽었다는 슬픈 사연이나, 언니 샬롯 역시 "제인 에어" 를 쓰고 요절했다는 집안 내력 등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추긴 것 같다
여러가지 흥미로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읽기는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줄거리만 가지고는 실패할 것 같다
미치광이 히드클리프의 심리 상태를 과연 어떤 배우가 제대로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히드클리프의 캐릭터는 참으로 독특하다
한 여자를 사랑한 것까지는 이해하는데, 그녀가 죽은 후 18년의 긴 세월 동안 그녀의 유령과 함께 살면서 고통받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안 간다
히드클리프는 안쇼우씨가 장에서 주어 온 아이다
이상하게도 안쇼우씨는 지저분하고 거칠게 생긴 히드클리프를 총애해 그의 아들 힌드레이는 히드클리프를 미워한다
대신 딸 캐서린은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지주의 딸과 주어온 아이가 결혼할 수는 없는 노릇, 캐서린은 결국 자기와 신분이 비슷한 린튼에게 시집가 버린다
구박만 받던 히드클리프는 집을 나간 후 3년 만에 되돌아 온다
그 사이 안쇼우씨는 죽고 아들 힌드레이가 결혼해서 헤어톤을 낳는다

히드클리프가 캐서린에게 미쳐 있는 걸 보면 그녀를 대단히 사랑했음은 분명한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희생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은 아닌 것 같다
힌드레이에게 구박받던 히드클리프는 3년 후 건장해진 채 돌아와 오히려 힌드레이를 압박하는 처지가 된다
소설에서는 아버지 안쇼우씨가 히드클리프만 총애해 힌드레이가 삐뚤어진 것으로 나오지만, 내가 보기에는 힌드레이 자체가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이 있다
그는 겨우 스물 일곱의 나이에 노름과 술에 빠져 비명횡사 하고 만다
히드클리프는 어린 아들 헤어톤을 제치고 폭풍의 언덕을 차지해 버린다
이 집안 사람들 때문에 사랑하는 캐서린을 뺏겼다고 생각하는 히드클리프는 복수심에 불타올라 캐서린의 시누이인 이사벨라를 유혹한다
이사벨라는 어째서 이런 폭력적이고 어두운 남자의 희생물이 됐을까?
더구나 이사벨라는 부유한 지주였던데 비해 히드클리프는 근본도 모르는 고아인데 말이다
사랑을 하면 어리석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이사벨라 자체가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히드클리프의 복수심을 잘 알고 있던 캐서린은 시누이를 놓아 달라고 사정한다
물론 그러면 그럴수록 히드클리프는 이사벨라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한다
캐서린을 뺏어간 린튼에게 히드클리프는 그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뺏음으로써 복수한 셈이다
잔인하게도 히드클리프는 결혼하자마자 이사벨라를 구박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복수심 때문에 결혼한 것이기 때문에 아내를 더욱 고통에 빠뜨려야 오빠인 린튼에게 완벽한 복수를 하게 된다
결국 어리석은 이사벨라는 히드클리프의 잔인함에 질려 먼 곳으로 도망가 아이를 낳고 혼자 키우다가 일찍 죽는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왜 이사벨라는 이혼을 하지 않았을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세기라면 이혼이 금지되지도 않았을텐데,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혼자 아기를 낳고 13년씩이나 키우면서도 여전히 법적인 결혼 상태를 유지한다는 게 좀 이해가 안 간다
더구나 그녀가 상속받기로 한 재산은 자신이 죽고 나면 남편 히드클리프에게 전해지는데도 말이다
"오만과 편견" 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확실히 근대 영국 사회를 요즘의 눈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 시대적 차이나 관습들이 소설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다

히드클리프의 목표는 단 하나다
캐서린과의 결혼을 방해한 안쇼우가와, 캐서린이 시집간 린튼가를 파멸시키는 것
평생을 그 목표 하나로 살았을 정도로 캐서린에 대한 집착과 사랑이 강했다면 차라리 그녀를 데리고 도망이라도 칠 것이지, 왜 속수무책으로 당하더니만 별 명분도 없는 복수에 온 인생을 바치는지 모르겠다
캐서린과 히드클리프가 서로 닮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둘은 거의 똑같은 영혼을 가졌다
캐서린 역시 버릇없고 격정적이며 이기적인 여자로 나온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죽어도 잊지 못하는 순정파가 아니라, 서로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떨어지지 못하는 것 뿐이다
더구나 캐서린은 거칠고 가난한 히드클리프 대신 교양있고 부유한 린튼을 택했다
히드클리프로서는 캐서린에게 역시 원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캐서린을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친정과 시댁 가문을 멸망시킴으로써 고통을 준다
결국 병약한 캐서린은 자기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딸 캐서린을 낳다가 죽고 만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왜 그렇게 빨리 죽는지 모르겠다
작가 브론테네 집안 사람들도 다 일찍 죽은 걸로 봐서 당시 수명이 길지 않았음은 알겠는데, 하여간 다들 일찍 죽는다
그래서 결혼을 빨리 하는 걸까?
캐서린의 딸 캐서린은 히드클리프의 아들 린튼과 겨우 16세에 결혼한다
히드클리프는 잔인하게도 캐서린이 죽은 후에도 복수를 멈추지 않는다
린튼가의 유일한 혈육인 캐서린을 자기 며느리로 맞은 후 린튼가의 나머지 재산까지 가로채고 며느리를 구박하는 것이다
그는 병약한 자신의 아들 린튼을 위협해 캐서린의 딸을 유혹하라고 시킨다
그리고 강제로 결혼시킨다
캐서린의 남편 린튼은 이미 병들어 죽기 직전이었므로 이 결혼을 말리지 못한다
결국 히드클리프는 린튼가와 안쇼오가의 모든 재산을 다 갖게 되지만 자신은 거칠은 폭풍의 언덕을 떠나지 않는다
복수가 완성돼서 허망했을까?
그는 아들 린튼마저 죽고 난 후 실성한 사람처럼 폭풍의 언덕을 헤매이다 병들어 죽고 만다
그의 며느리는 헤어톤과 결혼한다

히드클리프라는 캐릭터는 너무 독특해 쉽게 공감이 가질 않는다
언뜻 생각하면 죽은 캐서린의 딸에게 애정을 가질 것도 같은데 히드클리프는 그녀에게도 폭력을 휘두른다
또 아무리 복수심 때문에 결혼했다고 해도 자기 아들 린튼마저 복수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도 납득이 안 간다
캐서린을 가장 많이 닮은 힌드레이의 아들 헤어톤을 그나마 총해하지만, 그 역시 하인으로 부릴 뿐 기본적인 교육조차 시키지 않고 화가 나면 그에게도 폭력을 휘두른다
여기 나온 캐릭터들은 요즘 눈으로 보자면 다 성격파탄자들 같다
복수의 화신 히드클리프는 물론이고, 캐서린 역시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을 청순한 여인이 아니라 지극히 이기적인 여자로 나오고, 그녀의 오빠 힌드레이도 아주 폭력적이다
이 두 집안의 불행은 안쇼우씨가 히드클리프를 데리고 들어온 것이다
그는 과연 태생적으로 나쁜 인간일까?

그렇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히드클리프에게 왠지 모를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일단은 그가 주인공이라 나도 모르게 히드클리프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점도 있지만, 복수심에 불타 자신의 인생을 황량하게 만들어 버린 그가 가엾다는 생각도 든다
린튼가를 파멸시키기 위해 캐서린의 딸을 며느리로 맞던 날 히드클리프는 이야기의 화자인 하녀 딘에게 처음으로 고백을 한다
캐서린이 죽던 날 그는 묘지로 찾아가 관을 파헤치고 그녀의 혼을 불러냈다
유령이라도 함께 있어 주길 바란 것이다
그 후 캐서린의 영혼은 18년씩이나 자신을 따라 다닌다고 한다
눈을 감아도 떠나질 않는다
그는 늘 캐서린이 자신을 노려 보고 있어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한다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던 여인의 혼령이 자신을 떠나지 않고 괴롭힌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어쩌면 캐서린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 대한 히드클리프의 집착이 캐서린의 유령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식 속에서 도저히 캐서린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히드클리프의 삶은 죽을 때까지 캐서린에게 묶여 있어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그는 소원대로 캐서린의 옆에 묻힌다
죽어서라도 그녀와 통하길 바랬기 때문에 그녀와 자신의 관 뚜껑을 열어 달라고 유언한다

보통 죽음도 갈라 놓지 못하는 사랑이라든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사랑 등은 지고지순하고 애절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히드클리프의 사랑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왜 그녀의 주위를 파괴시키지 못해 안달이고, 심지어 자신의 아들과 그녀의 딸마저도 파멸시키고 저주할 정도로 복수심에 불타는 것일까?
또 그녀에 대한 추억과 사랑이 히드클리프에게 애틋함을 불러 일으키는 게 아니라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준다
죽은 영혼이라도 만나고 싶어 관 뚜껑을 열지만 정작 그녀의 유령이 나타난 후 평생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괴로워 한다
결국 더 이상 복수할 대상이 없어져서인지, 히드클리프는 자신의 몸을 학대해 병들어 죽고 만다
지극히 파괴적이고 끔찍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캐서린 옆에 묻히고서야 편한해졌을까?
히드클리프의 유령이 폭풍의 언덕을 떠돈다는 소문으로 미뤄 보면, 캐서린 옆에 잠들고서도 편안한 안식을 취하지 못한 것 같다
지독하게도 끔찍한 사랑의 열정에 휩싸여 죽어서도 편안하지 못한 그의 삶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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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서영심 옮김 / 민중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실은 "데미안" 을 오랫동안 못 읽었다
처음 읽어 보려고 시도했을 때 생각보다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손을 놓은 뒤 읽고 싶은 욕구가 안 생겼다
어려운 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쉽게 접근을 못했다
더구나 헤르만 헤세의 다른 책 "수레바퀴 밑에서" 가 워낙 재미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이 소설 읽으면서 나도 비슷한 내용으로 소설을 썼다 물론 쓰다 말았지만) "데미안" 에 대한 편견이 컸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항상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데미안" 을 집어들 때는 나름대로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막스 데미안은 자의식이 강한 매력적인 남자로 그려진다
자아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할까?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 사람인지도 모른다
현명하다거나 똑똑하다는 식의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다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주변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책을 계속 읽다 보니 한쪽으로 경도된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꿈꿔 온 바로 그 사람이다
데미안처럼 완전히 나 자신의 머리로만 사고하고 나 자신의 의지로만 행동할 수 있을까?
타인의 감정에 영향받지 않고 주변 환경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그런 주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의 내면은 얼마나 단단할까?

싱클레어는 사춘기에 방황을 한다
어린 시절은 가족으로 대표되는 밝은 세계에서만 살았지만, 자의식이 생기면서 그는 어두운 세계를 기웃거리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그런데도 부모나 교사는 그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의 방황을 무의미한 일탈로 보고 하루라도 빨리 밝은 세계로 복귀하라고 다그친다
왜 어른들은 아이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이미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런 방황들이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도 그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꼭 부모 자식 사이만 그런 것도 아니다
친구간에도 그렇고 부부 사이도 그렇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데미안이 말하는 아프락사스에 대해 생각해 봤다
신이면서도 악마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
신이라고 하면 밝은 세계를 대표하고 정의감과 선의 상징적인 존재다
그런데 신이 악마적 속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게 가능할까?
그렇지만 신이 선한 존재라면 세상의 악은 설명할 길이 없다
신이 세상을 지배한다면서 왜 악한 무리는 살려 둔단 말인가?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신이다는 말이 생각난다
아프락사스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신이 절대적인 선한 존재는 아니라는 건 분명히 알 것 같다

카인의 표적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카인이 원래는 뛰어난 사람이었고 그에게 복종해야 하는 사람들이 (즉 아벨의 족속들) 카인을 질투한 나머지 나쁜 사람이라는 전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인의 표적을 받은 사람은 사람들의 질투를 받지만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뛰어난 존재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나 자기가 바로 카인의 표적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카인의 표적은 자아 주체성이 확실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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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4-11-19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미안 읽으셨네요. ^^; 님의 해석대로라면 제가 꿈꾸는 것이 카인의 표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ㅋㅋ

marine 2004-11-19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카인의 표적...^^
 
선택의 패러독스
배리 슈워츠 지음, 형선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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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패러독스" 를 읽고 있다
나는 이런 인지행동학 책들이 좋다
미국은 교수들이 이런 책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지난 번에 읽은 "럭셔리 신드롬" 이나 "보보스" 와 비슷한 맥락의 책이다
무척 유용한 내용들이 많다
심리학은 돈 버는 방법 만큼이나 우리 생활에 유용하다
돈 버는 방법은 경제적인 혜택을 주고, 심리학은 물질적인 것을 갖지 못하는 사람에게 대신 심리적인 만족감을 준다
사회적인 성공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으로서 누군가 돈을 벌고 승진하면 대신 나는 돈을 잃고 좌전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심리적인 만족감은 환경을 바꾸는 대신 자기 인식만 바꾸면 되므로 윈-윈 효과를 낼 수 있다
나도 이기고 상대도 이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성공하려고 애쓰는 대신 행복감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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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일간의 음악 여행 70일간의 여행 시리즈 4
이장직 지음, 김언경 그림 / 새터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는 재밌게 읽었는데 점점 지루해지면서 손을 놔 버렸다
대충 읽더라도 빼먹지 말아야 읽었다는 소릴 할텐데, 좀 부끄럽다
그렇지만 어쨌든 2/3 이상은 읽었으니까 감상문을 쓴다

앞으로 가능하면 옛날 책은 안 보고 싶다
나온지 오래 된 책은 감각이 떨어진다
이 책 역시 그렇다
활자 크기부터 너무 작다
내용도 옛날 식이다
고전은 그래서 위대한가 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읽히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고전 역시 새로 번역하고 편집되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죽은 책이 된다
고서의 가치와는 별개로 말이다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칙센트미하이는 음악을 듣는 것 보다 연주하는 게 우수한 여가 생활이라고 했다
일단 귀를 연 후 직접 도전해 보자
책은 한 번에 읽어야지 며칠에 걸쳐 보니까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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