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 루쉰 - 위대한 지식인의 초상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박홍규의 인물 평전을 읽다 보면 그 박학다식함과 광범위한 범위에 놀라곤 한다 그가 이번에 손댄 사람은 "아큐정전"의 루신이다 위대한 지식인의 초상이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박홍규답게 무조건적인 추종의식은 불허한다 그의 평전을 읽다 보면 주체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조건적 찬양은 체질적으로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생각이 든다 좋게 말하면 비판 정신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꼬였다는 생각도 든다 하여간 그는 마이너리티 기질이 아주 다분하다


책의 모양은 아주 마음에 든다 한 손에 쥐고 읽을 수 있는 이 정도 크기가 딱 좋다 표지도 튼튼해서 쉽게 찢어질 것 같지 않다


저자가 인간 루쉰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은 재밌게 읽었는데, 그의 작품들을 광범위하게 해석한 것은 솔직히 제대로 못 읽었다 당장 제일 유명한 아큐정전조차 읽어 보지 않았으니 흥미가 날 리 없다 그런데 박홍규는 그 많은 루쉰의 저작들을 모조리 통독한 것일까? 그는 늘 기존의 학설들을 비판하기 때문에 자기 방어를 위해서는 꼼꼼하게 텍스트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박홍규의 독서 범위는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쓴 평전을 읽을 때마다 그 광범위한 독서 범위에 대해 깜짝 놀라곤 한다 그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성실함과 부지런함에는 감탄을 보내고 싶다


루쉰이 비판한 것은 봉건적인 유교 문화의 악습이었다 유학은 이미 그 순기능을 잃어버린 채 민중을 억압하는 굴레로 전락했기 때문에 유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쉰은 중국의 식인 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광인일기"가 바로 그 식인 문화를 고발한 작품이다 아버지가 아프면 아들의 살을 베어 먹이는 행위가 효로써 칭찬을 받고, 임금을 위해 가족의 고기를 먹음으로써 충히 효보다 먼저임을 보인다는 식의 잔인한 식인 문화를 고발한다 사실 이런 설화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자기 살을 베어 부모를 공양한다는 얘기는 전통적인 효의 대표적인 설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게 얼마나 끔찍한 얘기인가? 루쉰은 이 설화를 듣고 혹시 할아버지를 위해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 했다고 고백한다 식인 문화라고 하니까 끔찍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뜯어 보면 그것이 유교 문화의 모습 중 하나다


언젠가 마광수가 쓴 서편제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득음한다는 핑계로 딸 몰래 눈 멀 약을 먹여 장님으로 만든다는 스토리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얘기라는 것이다 딸의 인생을 망치는 것은 물론이고, 한이 있어야 득음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 없다고 비난했다 사실 나도 그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저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무리 딸이라지만 자기 인생을 아버지 마음대로, 그것도 평생 장님으로 살게 한다는 것이 득음을 핑계로 대지만 잔인하고 부도덕한 처사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워낙 유명한 영화이고 우리 소리의 미를 보여 준 훌륭한 영화라고 찬사 일색이라 혼자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마광수의 글을 보니까 속이 시원했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자식을 죽인 후 자살하는 부모들의 심리도 이와 똑같다 대체 자식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가미가제 특공대 식의 군국주의나 죽은 남편을 따라 죽으면 열녀비를 세워 주고 강간당하면 목숨을 끊어야 명예를 유지한다는 식의 정절 이데올로기 등도 다 같은 파시즘의 변형 같다 그렇다면 정말 유학은 21세기에 더 이상 존재 가치를 잃는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루쉰이 서구 정신을 무조건 찬양한 것도 아니다 박홍규에 따르면 그는 중국의 고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다만 그는 중국인들이 봉건적인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주체성을 갖기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했을 따름이다 아큐정전을 보면, 주인공 아큐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만 정신수련법을 통해 자기 위안을 삼는 인물로 나온다 어떻게 보면 긍정적인 사람 같기도 한데, 루쉰은 그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웃는다 중국인들은 이민족에게 점령당했으나 정신적으로는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자부심 강한 민족이다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현실을 받아 들이고 극복하려고 애쓰는 대신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해석하므로써 그 지배에 대해 저항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루쉰은 중국인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이민족 지배자를 향해 저항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현실에서는 노예지만 상상 속에서는 그들을 지배하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자기 중심적 사고 방식을 비웃고 있다


루쉰은 민중의 저항을 촉구했지만 정작 그 민중과는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루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지식인의 눈으로 보면 민중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무리인가? 그는 평민문학이 없다고 단언한다 과연 일반 민중들이 스스로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예술을 창조할 수 있을까? 요즘은 대중 문화 시대라 매스 미디어를 통한 오락거리가 넘쳐 나지만 그것이 민중예술일 수는 없다 루쉰이 꿈꾸는 평민문학은 개인 개인이 진정한 주체가 되는 완전한 개인주의 사회, 혹은 아나키즘적인 사회가 올 때까지 요원한 문제로 남을 것이다 혁명가가 거리에서 처형당하면 민중들은 혁명가를 애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목 잘린 시체를 구경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민중의 의식 수준이다 이래서 파퓰리즘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가는 로마가 정치적으로 더 발전적인 형태인 공화정을 포기하고 제정으로 역행한 이유를 파퓰리즘으로 보기도 한다 플라톤이 말한 철인정치란 바로 이런 어리석은 대중을 지배할 독재자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가 비록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할지라도 어쨌든 1인 독재 아닌가


어쨌든 현대 사회는 갈수록 개인의 주체성이 강조되고 국가나 사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쓴다 개인이 어떤 권력 구조로부터도 지배당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가 아나키즘이 꿈꾸는 사회가 아닐까? 그렇다면 개인주의를 꿈꾼 루쉰은 앞으로도 계속 연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반봉건성을 추구한 루쉰이지만 그 역시 시대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집안의 강요로 결혼한 후 아내를 버려둔 채 17세 연하의 여제자와 동거한다 그 역시 이 사실에 많은 부담을 가지면서도 간통죄로 아내가 고소할까 봐 두려워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장하는 이념을 스스로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지행합일, 혹은 남에게 관대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기 같은 덕목은 언제나 요원한 문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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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11-30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읽다가 숨 넘어갈 뻔 했습니다. 문단 좀 나눠 주세요... ㅎㅎㅎ ㅋ

여울 2004-11-3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문득 몸에 붙어있는, 때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일상의 파시즘 잔재로 깜짝깜짝 스스로 놀랍니다. 그러려니 하지만,,, 넘 어려운 문제죠. 지식이라는 넘 자체가 다분히 이런 기질이 있죠...? 암튼 집중은 문제가 있어요??

marine 2004-12-01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블로그에 먼저 올린 후 복사해서 올리는데, 알라딘 시스템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잘 나눠지는데 어떨 때는 또 이 모양으로 붙어 버리더라구요

일상의 파시즘, 이걸 극복하는 게 실은 제일 어려운 문제 같아요 왜냐면 매일매일 마주치는 것들이잖아요^^

하이드 2004-12-07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네요. 전기류, 인물 평전류 좋아하는데, 말씀하신데로, ' 아큐정전 ' 동화판 읽은 저로서도 좀 조심스럽긴 하네요. 이 참에 아큐정전도!

marine 2004-12-0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전 좋아하시면 박홍규가 쓴 책들 읽어 보세요 일단 이 사람은 위인들을 우러러 보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니까 읽기 편해요 업적에 가려진 인간적인 면, 혹은 위선 등을 파헤친다고 해야 할까? 일반적인 시각과 좀 다른 독특한 시각으로 조명하니까 참신한 면이 있어요 물론 지나친 비약도 있지만요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
스가야 아키코 지음, 이진영 외 옮김 / 지식여행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서점에서 발견하고 꼭 읽고 싶던 책이다
나는 요즘 도서관에게 엄청난 애정을 쏟고 있는지라 도서관 사랑에 관한 책을 읽고 싶었다
책사랑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와도 도서관 사랑에 관한 책은 없어서 좀 아쉬웠는데 이 책 역시 도서관에 대한 개인적인 에세이는 아니다
제목에서 말해 주듯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 뭐 이 정도다
약간 실망스러웠던 것은 일본인이 뉴욕 공공도서관을 소개하는 선에서 그쳤다는 점이다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라든가, 도서관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이라든가, 여러 도서관 시스템의 비교 등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을 것 같은데 단순히 가장 앞선 모델을 소개하는데 그친 것 같아 기대에는 못 미쳤다
선진국의 문화에 관한 책을 쓸 때는 이게 문제다
자기도 모르게 그 문화에 경도되어 찬양 일색이 되기 일쑤다
뉴욕 공공도서관의 다양한 기능들은 충분히 감탄할만 하지만, 부러움 수준을 넘어 보다 깊이있는 분석을 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지만 미국 도서관의 소개만으로도 의의는 충분하다
솔직히 나도 너무 부럽다!!

내가 생각하는 도서관의 기능은 기껏해야 자료 대출 아니면 공부방 정도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도서관의 문화 행사들을 보면 좀 낯설게 느껴지고 실제로 이용한 적도 거의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도서관이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지난 9.11 테러 때였다
일반 도서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뉴욕 공공도서관이 해냈다
테러가 발생한 후 언론 매체는 선정적인 보도만 할 뿐 실제로 뉴욕 시민들에게 도움될 내용은 없었다
그러자 사서들이 도서관 홈페이지에 의료기관 전화번호라든가 생존자 확인 방법 등 구체적으로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들을 올렸다
인터넷의 장점을 잘 이용해 매 두 시간마다 정보들이 업데이트 됐다
또 이슬람 문화라든가, 위기 대처 방법 등에 관한 책 목록을 편집해서 올리고 테러 공포로 시달리는 시민을 위해 상담 치료도 시작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죽은 끔찍한 테러 바로 다음 날 이 정도의 실제적인 정보를 즉시 제공해 줄 수 있는 도서관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도서관이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인드 자체가 놀랍고 부럽기 그지 없다
테러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사를 가면 병원이나 슈퍼 등 실제적인 지역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으로 갈 정도라고 하니, 도서관이 지역 주민들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만 하다

영화 "로렌조 오일" 을 보면 불치병을 앓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도서관에서 열심히 의학 정보들을 검색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주민들은 도서관에서 많은 의학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의료 정보가 개방되면서 더 이상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을 의사에게 일임하지 않고 스스로 치료 과정에 동참하길 원한다
또 의사들 역시 환자가 질병과 치료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길 바란다
이 때 환자들에게 올바른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더구나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스스로의 건강에 대한 책임감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도서관은 치료는 물론 예방의학적 관점에서도 많은 기능을 수행한다
어떤 병원은 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도서관에 기부금을 내기도 하고, 일반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의학 도서관을 따로 둔다고 한다
또 건강 강좌도 자주 열고 사서들이 원하는 건강 정보를 찾아주기도 한다
도서관이 예방의학 기능을 수행하리라곤 생각조차 못해 봤다

더욱 부러웠던 것은 도서관의 헬퍼 기능이다
뉴욕 어린이들 역시 열쇠만 맡겨진 채 방치되기 일쑤이므로 방과 후 숙제를 도서관의 헬퍼들이 도와준다
도서관에 인터넷과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고 헬퍼들이 배치되어 학생들의 숙제를 지도해 주고 다른 취미 활동도 지원한다
우리나라의 학원이 하는 기능을 도서관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사회가 기른다는 말이 생각난다
경제 상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내몰리는 젊은 엄마들에게 도서관은 든든한 후원자가 돼 준다
아이들이 학원 대신 도서관에서 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서관은 비단 어린이들만 도와 주는 게 아니라 노인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시니어 어시스던트를 채용해 노인 스스로 다른 노인을 도울 기회를 제공한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 빌려 주고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역 사회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취미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장소와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 의미로 저자는 도서관이 민주적인 정보의 장이라고 정의한다
빌 게이츠가 자신을 키운 것은 도서관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 도서관들도 지역 사회에 좀 더 가까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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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4-11-3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도서관의 역할을 생각하며 늘 독서실생각을 했어요. 수험서적만 즐비한 도서관의 풍경은 그야말로 살풍경이지요. 그리고 대학도서관도 눈에 거슬리더군요. 마치 섬처럼 지역주민이 범접하기가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공공도서관의 기능. 수험생만 있지 님처럼 도서관을 즐기는 분들은 많지 않더군요. 지역과 함께가려는 도서관도 보기 힘들구요. 쫓기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도서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marine 2004-11-3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수험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실업 문제를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 읽을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학 도서관도 지역 주민에게 공개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뉴욕 공공도서관의 경우 뉴욕 시민이 아니면, 즉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면 1년에 100달러를 낼 경우 회원증을 발급해 준다는군요 우리돈으로 생각하면 좀 비싼 것 같긴 하지만 대학 도서관이 돈을 받더라도 일단 개방을 해 주면 좋겠어요

토토와꼬맹이 2004-12-12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 자치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이 꿈 아닌 꿈입니다.

많은 책들이 개인의 서가에 있기 보다는 훌륭한 환경에서 공유의 오프라인을 실천할 수 있는 주민자치 도서관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대학도서관은 대학에서 공공도서관은 공공을 위주로 자치도서관은 가까운 지역주민들이 만들어가고 운영해가면서 그 지역의 모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marine 2004-12-13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역 자치 도서관이라... 참 대단한 꿈 같네요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전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고, 대신 도서관에 기부금을 내겠다는 꿈은 있어요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서 안 되지만 좀 더 여유가 생기면 꼭 하고 싶어요 도서관에서 소액 기부 제도를 운영해도 좋을 것 같구요
 
인간들이 모르는 개들의 삶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정영문 옮김 / 해나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소 실망스러운 책이다
제목은 참 멋진데 내용은 지루하다
추천서의 말처럼 흥미 위주의 의인화 대신 (동물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멘트처럼) 절제된 과학적 의인화를 추구해서일까?
지루하고 문장도 매끄럽지 않아 쉽게 책에 빠져들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인간의 시각이 아닌 개의 시각으로 비교적 객관적인 관찰을 한 것은 인정한다
저자가 동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개의 생태에 관한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건 아니지만 (저자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함께 사는 개들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 기록으로서의 의의는 있다
저자의 문장력의 한계인지, 아니면 번역상의 문제인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쉽게 눈에 안 들어온다

저자는 열 마리 내외의 개를 키웠다
즉 한 무리의 개를 키운 것이다
그러므로 한 두 마리의 개를 키울 때는 알 수 없는, 집단으로서의 개를 키울 때만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발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서열이다
저자는 개들이 무리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결론짓는다
그들은 서열을 정하고 거기에 복종하며 자기들끼리 어울릴 때 가장 행복해 한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똘이는 무척 외로울 게 틀림없다
내가 키우는 한 살짜리 요크셔 테리어는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과 살고 있다
이 개를 키우기 전에는 개에 대해 약간은 적대적이었다
개에게 옷을 입히고 리본을 매는 등 사람처럼 치장한 후 안고 다니는 모습이 왠지 인위적이고 유난스럽다고 느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개를 키우게 되자 한 가족처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단순한 애완 동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 교류가 가능한 생명체로 인지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개에 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과연 개들은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고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일까?

정말 개들에게도 의식이 있을까?
사실 나는 우리 똘이가 사고 능력이 있고 감정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만 그건 개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애정일 뿐, 과연 객관적으로도 개에게 사유 능력이 있고 감정 표현이 가능한지는 자신이 없었다
아마 이 책의 저자도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그런 사실들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당연히 개들 역시 의식이 있다
슬퍼하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기뻐할 줄 안다
어쩌면 개들은 감정표현이 특히 뛰어나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감정교류를 나누는 반려동물의 위치를 차지했는지도 모른다

개들은 집단으로 모여 사는 동물이므로 서열이 정해진다
서열이 낮은 암컷과 높은 암컷이 같이 출산을 하면 서열이 낮은 암컷의 새끼들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한 무리 안에서는 오직 한 마리의 암컷만이 출산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비바와 코키 두 마리가 같이 출산을 했는데 코키의 서열이 높다
어느 날 코키는 비바가 낳은 세 마리의 새끼를 모두 죽여 버린다
그런데도 비바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새끼들을 보호할 생각을 안 한다
한 집단에서 두 마리의 암컷이 함께 새끼를 키울 수 없음을 비바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좀 놀라운 사실은 근친혼이 성행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다소 쇼킹하다
한 무리에 여러 마리의 암컷과 수컷이 섞여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가장 우두머리 암컷인 마리아는 출산 후 다시 발정기가 찾아오자 큰 아들과 교미를 해서 다시 아이를 낳았다!!

제일 재밌었던 대목은 시베리안 허스키 미샤가 자동차를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개로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미샤는 혼자 여행을 잘 떠나는데 고속도로를 여러 차례 지나지만 한 번도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없다
미샤의 여행에 동참한 저자는 자동차를 대하는 미샤의 태도를 보고 비로소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미샤는 자동차를 보면 꼬리와 귀를 내린 채 복종의 자세로 앉아서 차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출근길에 보면 유달리 고양이 시체가 많은데 고양이는 불빛을 보면 달려든다고 한다
저자의 관찰에 따르면 개는 자동차를 자기보다 높은 존재로 생각하고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기 때문에 교통사고 확률이 더 적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출근하는 길에 관찰한 바로는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가엾은 고양이들...

개에 관한 책을 좀 더 읽어 보고 싶다
개를 한 식구로 받아 들인 이상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하고 어떻게 느끼는지 그들의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일 좋은 것은 그들이 무리를 이루고 자기와 똑같은 동족끼리 교류하는 기쁨을 느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지 못하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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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 - 시선과 타자 살림지식총서 97
변광배 지음 / 살림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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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책이지만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르트르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 때문에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물론 사르트르라는 이 거대한 실존주의 철학자를 100페이지의 책으로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인식할 수는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난 번 푸코 입문서에서도 느낀 바지만 살림 총서는 깊이있는 지식을 부담없는 분량으로 쉽게 소개한다
100페이지 내외의 짧은 분량과 3300원이라는 부담없는 가격에 이 정도의 지적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흔할까?
살림 총서 같은 좋은 책들이 많이 발간됐으면 좋겠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지만 그 내용은 가히 인류 문화의 진수를 훑어낸다고 단언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자다
즉 그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다
우리의 존재는 어떻게 증명될 수 있는가?
그는 세상을 즉자적 존재와 대자적 존재로 나누는데, 의식을 가진 인간은 대자적 존재이고 의식이 없는 사물은 즉자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의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인간은 모든 것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이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근거이기도 하다

타자와의 관계를 맺는 방법에는 세 가지 태도가 있다
먼저 동화의 태도다
말 그대로 타자의 시선과 나를 동화시키는 것이다
타자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의 존재 의미가 생긴다
동화의 태도는 다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사랑이다
제일 흔한 남녀간의 사랑을 생각하면 된다
사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존재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완벽한 만족을 줄 수는 없다
타자의 시선으로 어떻게 내 존재의 의미를 완벽하게 부여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랑을 통한 존재의 증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언어다
언어란 단순히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모든 기호 체계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마조히즘을 들 수 있다
마조히즘은 나의 주체성을 완전히 타자에게 일임해 버리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자식을 대리 만족의 내지는 자아 실현의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나의 주체성을 포기하면 절대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

동화가 타자의 시선을 전부 수용하는 것이라면 제 2의 태도는 타자를 내가 객체화 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도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는 매조히즘의 반대 새디즘, 성적 욕망, 무관심, 그리고 증오다
새디즘은 폭력을 통해 나에게 상대를 예속시킨다
성적 욕망은 폭력을 매개하지는 않지만 상대의 주체성과 자유를 육체에 종속시킴으로써 객체화 시킨다
즉 의식을 가진 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적 욕구를 풀어 줄 육체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무관심은 아예 타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타자를 나에게 영향을 끼칠 존재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사물로 인지하므로써 관계 자체를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타자는 시선의 폭발을 통해 나를 언제든지 객체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관심은, 세상은 오직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부수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유아론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편할 것 같다)
마지막 증오는 사르트르가 제 3의 태도라고 따로 명명할 정도로 중요하다
타자의 시선으로 정의되는 나 자신이 너무 싫기 때문에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타자를 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한 번 타자에게 인식된 이상, 그 머릿속에 있는 의식을 지울 수는 없다
그가 죽는다고 해도 내 머릿속에는 그에게 인식됐다는 사실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맺는 제 4의 태도는 유희의 태도다
유희란 우스꽝스러움을 의미한다
주체성을 상실하고 남이 나를 보는 이미지대로 연기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나를 바보같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 이미지에 맞게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므로써 편안함을 느낀다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자의 시선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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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4-11-2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살림 도서 괜찮은 것이 많죠. 푸코는 넘 어렵던데...ㅎㅎ

marine 2004-11-2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밑줄 그으면서 두 번이나 읽었어요 직접 푸코의 저서를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성의 역사를 샀는데, 아 그 난해함이라니...

스파피필름 2004-11-2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토를 읽고 나서 바로 읽었는데 사르트르에 대해 쉽게(?) 정리가 되는 듯 하더라구요. 값도 싸고 정말 좋더라구요..
 
고고학 탐정들
폴 반 엮음, 김우영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 부분을 읽으면서 왜 슐리만은 직업도 아니면서 트로이 발굴에 재산을 올인했을까, 생각해 봤다


책을 읽어도 사는 데 별 도움 안 된다고 타박을 듣는 판에, 자기 돈으로 직접 발굴까지 하겠다고 나선 진정한 이유는 뭘까?


난 알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이라고 해 두고 싶다


사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일에 몰두하는 건 인간이란 존재가 갖는 궁금증, 못말리는 호기심 때문이고, 그건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이 이유라고 믿는다


 


어렸을 때 공룡 책을 읽고 감명받아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한 적이 있다


한창 공룡에 열을 올려 친척들이 선물로 공룡책만 사 줘서 그 이름 외우는 게 일이었다


공룡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같은 어려운 인류의 조상 같은 이름도 같이 외워 줬다


고고학자가 되는 걸 포기한 이유는 역사학과는 달리, 책 보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직접 발굴을 해야 한다는, 말하자면 과학이 필요한 학문이라는 걸 알면서부터이다


나에게 탄소 연대 측정 같은 건 너무 어렵다!!


 


알프스 산맥에서 냉동 인간이 발견됐다


처음에는 조난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옆에서 구리 도끼가 발견되면서 선사 시대 인류임을 알았다


무려 3300년 동안이나 알프스 얼음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곡식을 대충 갈아 먹어 이빨이 많이 닳아졌다고 한다


키는 겨우 15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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